반기문 출마, 유엔협정 위반인가

입력 2016.10.04 (15:39) 수정 2016.10.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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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UN)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는 UN협정 위반일까.

최근 정치권과 외교가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추미애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반 총장의 대선 출마는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추 대표는 "1946년 UN총회에서 채택된 약정서에는 사무총장이 각국 정부의 비밀 상담역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퇴임 직후에는 어떤 정부 자리도 사무총장에게 제안해서는 안된다 "면서 "이런 사실을 아는 반 총장이 내년 대선 출마를 안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 봄 부터 일각에서 반 총장의 대선 출마가 UN 협정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는데, 이번에 야당 대표가 정면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원로 정치인인 박찬종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제3당(신정치개혁당) 후보로 출마했던 그는 같은 이유를 들며 "UN총회 결의가 그렇게(사무총장이 곧바로 국가의 고위직을 맡으면 안되게) 돼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그 결의를 안 지키면서 북한한테 안보리 제재 결의를 지키라고 말할 명분이 있겠느냐"며 반 총장의 대선 출마 불가론을 펼쳤다.

이들이 반 총장의 대선출마 불가론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1946년 UN총회 결의문이다. UN은 창설직후 1차 총회에서 '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를 의결했다. 내용은 이렇다.


협정의 전체적인 맥락은 UN사무총장이 퇴임 직 후 정부 고위직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규정이 UN 사무총장의 자국내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최근 전직 외교관들이 페이스북에서 벌인 논쟁을 보면 논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교통상부 안보정책과 등에 근무했던 전직 외교관 출신 신상목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UN 협정은 반 총장과의 대선 출마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3가지 근거를 들었다.

우선 '퇴임 직후'(immediately on retirement)라는 문구다. 이는 퇴임과 동시에 어떤 자리를 맡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올 12월 UN 사무총장에서 퇴임하는 반 총장이 내년 12월 대선에 출마한다 해도 1년의 시간 차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신씨 주장의 두번째 근거는 어떤 자리를 제안해서는 안된다는 주체가 'member(회원국)'라는 것이다.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 직을 제안하는 것은 정부(국가)가 아니라 정당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세 번째 근거는, 제안하면 안되는 것은 'governmental position(정부직)'이다. 즉 정부의 직, 정부 업무를 담당하고 정부로부터 급료를 받는 직을 말한다. 대선 출마는 '정부직'에 임명되는 것이 아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조항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신씨는 "UN의 이 조항은 냉전 시기를 배경으로 사무총장이 어느 진영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정치인으로서 활동과는 관계가 없는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반 총장의 출마가 문제가 없다는 견해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올 봄 이 문제와 관련한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 과정에서 비공식 입장을 전제로 "반 총장이 대선에 도전해 당선된다 해도 퇴임 후 1년이 흐른 뒤이기 때문에 결의안에서 얘기한 '퇴임 직후'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직 외교관 출신으로 존스홉킨스 대학 박사인 장부승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신씨의 견해를 반박했다.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반 총장의 대선 출마는 문제의 UN결의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시기에 대해 협정은 '어쨋든 퇴임 직후(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라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장씨는 "퇴임 직후만 안된 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공직 취임은) 안되고, 특히 퇴임 직후에는 더더욱 안된다는 의미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맡을 수 없는 공직의 범위에 대해 선출직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신씨의 주장도 반박했다.

장씨는 "협정의 의미는 공직을 맡을 때 다른 회원국들이 embarrassment(곤란함)을 느낄 자리는 안된다는 것이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예술이나 스포츠 관련 공직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고, 외교안보나 중대한 경제협상을 다루는 자리는 (협정이) 반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문맥의 흐름상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의 외교안보 및 군사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자리로 전직 UN사무총장이 가게 될 경우, 일부 회원국들은 embarrasment(곤란함)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장씨는 "공직 제공의 주체는 정부이기 때문에 본인(반기문 총장)이 직접 출마하는 것은 괜찮다는 해석에도 이론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의문 마지막 문장에 그러한 공직을 받는 것을 전직 UN사무총장이 스스로 삼가해야(refrain)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씨는 해당 조항이 강제성이 없는 권고적 사항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협정에 등장하는 'desirable'(바람직한), 'refrain'(자제하다) 등의 표현을 볼 때 강행 규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법적인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은 UN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대선 출마가 전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UN 사무총장을 지낸 7명 중 대선에 출마한 사람은 2명이다. 쿠르트 발트하임 전 사무총장(오스트리아)과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전 사무총장(페루)이다.

발트하임은 퇴임 후 5년 뒤, 케야르는 4년 뒤 출마해 반총장(출마시 1년)같이 협정 위반 시비가 많지 않았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코피아난 7대 사무총장의 경우 퇴임 무렵 가나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연관 기사] ☞ 반기문, 제2의 발트하임이냐? 고건이냐?

물론 이 규정이 이미 70년 전에 만들어졌고, 세월이 많이 흘러 이미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모두가 잊었던 규정 하나를 이유로 대선 출마 자격 시비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상황이 바뀐 만큼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으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구속력과 관련해서도 외교부는 UN 총회 결의사항이 구속력이 따르는 안보리 결의사항과 달리 법적인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법적 논란을 떠나 반 총장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될 경우 이 논란은 앞으로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동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UN협정이) 국제법적 관습까지는 될 수 없고, 의견 표현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이걸 어긴 사무총장이 지금까지 없었던 만큼 (출마한다면) 도덕적 비난은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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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기문 출마, 유엔협정 위반인가
    • 입력 2016-10-04 15:39:20
    • 수정2016-10-12 16:01:20
    취재K
반기문 유엔(UN)사무총장의 대선 출마는 UN협정 위반일까. 최근 정치권과 외교가를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추미애 더불어 민주당 대표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반 총장의 대선 출마는 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추 대표는 "1946년 UN총회에서 채택된 약정서에는 사무총장이 각국 정부의 비밀 상담역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퇴임 직후에는 어떤 정부 자리도 사무총장에게 제안해서는 안된다 "면서 "이런 사실을 아는 반 총장이 내년 대선 출마를 안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 봄 부터 일각에서 반 총장의 대선 출마가 UN 협정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는데, 이번에 야당 대표가 정면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원로 정치인인 박찬종 아시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 제3당(신정치개혁당) 후보로 출마했던 그는 같은 이유를 들며 "UN총회 결의가 그렇게(사무총장이 곧바로 국가의 고위직을 맡으면 안되게) 돼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그 결의를 안 지키면서 북한한테 안보리 제재 결의를 지키라고 말할 명분이 있겠느냐"며 반 총장의 대선 출마 불가론을 펼쳤다. 이들이 반 총장의 대선출마 불가론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1946년 UN총회 결의문이다. UN은 창설직후 1차 총회에서 '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를 의결했다. 내용은 이렇다. 협정의 전체적인 맥락은 UN사무총장이 퇴임 직 후 정부 고위직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 규정이 UN 사무총장의 자국내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최근 전직 외교관들이 페이스북에서 벌인 논쟁을 보면 논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외무고시 출신으로 외교통상부 안보정책과 등에 근무했던 전직 외교관 출신 신상목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UN 협정은 반 총장과의 대선 출마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3가지 근거를 들었다. 우선 '퇴임 직후'(immediately on retirement)라는 문구다. 이는 퇴임과 동시에 어떤 자리를 맡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 올 12월 UN 사무총장에서 퇴임하는 반 총장이 내년 12월 대선에 출마한다 해도 1년의 시간 차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신씨 주장의 두번째 근거는 어떤 자리를 제안해서는 안된다는 주체가 'member(회원국)'라는 것이다.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 직을 제안하는 것은 정부(국가)가 아니라 정당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세 번째 근거는, 제안하면 안되는 것은 'governmental position(정부직)'이다. 즉 정부의 직, 정부 업무를 담당하고 정부로부터 급료를 받는 직을 말한다. 대선 출마는 '정부직'에 임명되는 것이 아닌,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후보'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조항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신씨는 "UN의 이 조항은 냉전 시기를 배경으로 사무총장이 어느 진영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을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정치인으로서 활동과는 관계가 없는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반 총장의 출마가 문제가 없다는 견해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올 봄 이 문제와 관련한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 과정에서 비공식 입장을 전제로 "반 총장이 대선에 도전해 당선된다 해도 퇴임 후 1년이 흐른 뒤이기 때문에 결의안에서 얘기한 '퇴임 직후'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직 외교관 출신으로 존스홉킨스 대학 박사인 장부승 씨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신씨의 견해를 반박했다. 그는 몇 가지 이유를 들어 반 총장의 대선 출마는 문제의 UN결의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시기에 대해 협정은 '어쨋든 퇴임 직후(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라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장씨는 "퇴임 직후만 안된 다고 보는 것이 아니다. 원칙적으로 (공직 취임은) 안되고, 특히 퇴임 직후에는 더더욱 안된다는 의미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맡을 수 없는 공직의 범위에 대해 선출직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신씨의 주장도 반박했다. 장씨는 "협정의 의미는 공직을 맡을 때 다른 회원국들이 embarrassment(곤란함)을 느낄 자리는 안된다는 것이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예술이나 스포츠 관련 공직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고, 외교안보나 중대한 경제협상을 다루는 자리는 (협정이) 반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문맥의 흐름상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그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의 외교안보 및 군사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자리로 전직 UN사무총장이 가게 될 경우, 일부 회원국들은 embarrasment(곤란함)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장씨는 "공직 제공의 주체는 정부이기 때문에 본인(반기문 총장)이 직접 출마하는 것은 괜찮다는 해석에도 이론이 있다"고 덧붙였다. 결의문 마지막 문장에 그러한 공직을 받는 것을 전직 UN사무총장이 스스로 삼가해야(refrain)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씨는 해당 조항이 강제성이 없는 권고적 사항이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협정에 등장하는 'desirable'(바람직한), 'refrain'(자제하다) 등의 표현을 볼 때 강행 규정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 총장의 대선 출마 여부를 놓고 법적인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은 UN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 대선 출마가 전례가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UN 사무총장을 지낸 7명 중 대선에 출마한 사람은 2명이다. 쿠르트 발트하임 전 사무총장(오스트리아)과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전 사무총장(페루)이다. 발트하임은 퇴임 후 5년 뒤, 케야르는 4년 뒤 출마해 반총장(출마시 1년)같이 협정 위반 시비가 많지 않았다.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코피아난 7대 사무총장의 경우 퇴임 무렵 가나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됐지만, 출마하지 않았다. [연관 기사] ☞ 반기문, 제2의 발트하임이냐? 고건이냐? 물론 이 규정이 이미 70년 전에 만들어졌고, 세월이 많이 흘러 이미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모두가 잊었던 규정 하나를 이유로 대선 출마 자격 시비를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상황이 바뀐 만큼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으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구속력과 관련해서도 외교부는 UN 총회 결의사항이 구속력이 따르는 안보리 결의사항과 달리 법적인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법적 논란을 떠나 반 총장의 대선 출마가 가시화될 경우 이 논란은 앞으로도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동준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UN협정이) 국제법적 관습까지는 될 수 없고, 의견 표현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이걸 어긴 사무총장이 지금까지 없었던 만큼 (출마한다면) 도덕적 비난은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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