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니까…’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은 없다

입력 2016.10.09 (22:56) 수정 2016.10.0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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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CEO, 즉 최고경영자의 자질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사소한 판단 실수 하나가 회사는 물론 국민 경제 전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때문에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가장 뛰어난 사람이 경영을 맡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최근 부실경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진해운 사태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우리나라 해운 물류의 중심 부산 신항만.

축구장 94개 면적의 한진해운 부두 전체가 컨테이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당수는 최대 한도인 6층까지 콘테이너를 쌓아올렸습니다.

그런데도 빈 곳을 찾기 힘들 정돕니다.

절반 이상은 빈 컨테이너입니다.

한진해운 배들이 출항을 못하자 화주들이 컨테이너 안의 화물을 빼가면서 빈 컨테이너들만 쌓이고 있는 겁니다.

터미널 인근의 도로.

컨테이너는 이곳까지 점령했습니다.

컨테이너로 한진 부두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임시로 마련한 장소입니다.

법정관리 한 달이 지나면서 피해는 확산되고 있습니다.

해운 수송 마비로 인한 납품 지연 우려를 넘어서 바이어로부터 계약 해지 경고를 받은 수출업체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성철(무역업체 대표) : "어떠한 내용으로 클레임을 받을 지 지금 심히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렇게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중소 항만 업체들의 경영난은 물론 항만 노동자들의 실직 우려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녹취> 부산 신항만 관계자(음성변조) : "배 한 대가 들어왔을 때 그 배를 정박하는 사람들부터 해가지고 현장직원이 수백 명이나 있거든요. 그분들 대부분 일용직이고 일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나올수가 없게 돼서...대량 해고를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게되는 상황이고.."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97척 가운데 1/3이 넘는 수가 여전히 하역을 하지 못한 채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가압류된 선박도 8척이나 됩니다.

피해신고건수는 500여건, 피해액은 2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한진 해운을 넘어 한국 해운업 전체가 먹구름에 휩싸여 있습니다.

한진그룹 창업주의 2세였던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7년.

회장직을 이어받은 건 그때까지 경영과는 무관했던 전 회장의 부인 최은영 씨였습니다.

최 씨는 조수호 전 회장과 1985년, 24살에 결혼한 후 22년 동안 경영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최은영(전 한진해운 회장/9월 27일 국정감사) : "돌아가신 조수호 회장님과 많은 회의나 또는 선주나 화주를 만나야 될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혀 해운업에 대해 무지한 상태는 아니었고..."

그런 최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은 이후 한진해운은 급속도로 경영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회장직을 이어받은 2007년 매출액 6조9천여억 원에 당기순이익 천4백억 원대였던 회사는 불과 2년 뒤인 2009년 적자로 돌아섰고 2011년에는 8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회장 재임기간 부채비율도 405%에서 1460%로 3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탓도 있지만, 2011년을 전후해 무리하게 비싼 용선료를 주고 배를 빌리는 경영상 실책이 화근이 됐습니다.

<녹취> 조양호(한진그룹 회장/10월 4일 국정감사) : "한진해운이 최 회장 경영진에 의해서 해운업을 모르는 해운업과 업무 현황 특수성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굉장히 부실해졌습니다."

결국 2011년부터 3년간 쌓인 적자가 1조 원이 넘자 2014년 경영권을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회장에게 넘깁니다.

경영권을 넘긴 뒤의 처신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최 전 회장이 한진해운으로부터 넘겨받은 빌딩으로 시가 2000억 원 대입니다.

<녹취> "(회장님 혹시 매일 출근하세요?) 매일 다른 일정이 없으시면 출근을 하시고요."

빌딩 6개층을 사용하는 한진해운 등으로부터 매년 받는 임대수익만 140억 원에 이릅니다.

여기다 한진해운에서 일감을 받은 계열사로부터 수억 원의 배당까지 받았습니다.

회사가 쓰러지는 동안 수십억 원의 보수까지 챙겼습니다.

2013년도 한진해운 사업보고서입니다.

당기순손실만 7척억 원에 육박했지만 대표이사였던 최은영 회장에게는 17억 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기록돼있습니다.

<인터뷰> 김우찬(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교수) : "어떻게 보면 잘못된 사람을 임명한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인거고요. 그 다음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가족들이 자기네 사적편익을 추구하게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역시 부실 경영으로 채권단 자율 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2003년 정몽헌 전 현대회장이 갑작스럽게 숨지자 부인 현정은 씨가 경영을 맡았습니다.

현 회장 역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정 전 회장과 결혼해 회장이 되기 전까지 27년 동안 회사 경영활동에는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2011년부터 적자 행진이 이어지자 현 회장은 경영책임을 묻는다며 현대상선 대표를 6차례나 갈아치웠습니다.

그 와중에 회사는 더 어려워졌고, 결국 구조조정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인터뷰>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 "아무런 경영과는 연관성이 없이 가끔 찾아오는 경영인들에게 밥대접하는 그런 사교적 모임에는 나갔던 사람이 어느날 15개 이상의 업종을 가지고 있고 30개 이상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총수가 되었다고 했을 때 과연 파악할 수 있을까요?"

해외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애플을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스티브잡스.

창업주이지만 이사회의 결정으로 한때 회사를 쫓겨났다가 회사가 어려워지자 다시 복귀해 회사를 위기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췌장암을 진단받아 다시 잠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회사의 상징과도 같던 잡스가 떠난 상황에서도 애플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녹취> 스티브 잡스(전 애플 CEO/2009년 경영 복귀 당시) : "팀쿡과 경영진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시련을 잘 극복하고 회사를 잘 운영했습니다."

잡스가 사망한 후 13년 동안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아왔던 팀쿡은 CEO 자리를 이어받아 회사를 더욱 성장시켰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일찌감치 동료 스티브 발머에게 회장직을 물려줬습니다.

세계 100대 기업 가운데 창업자의 후손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곳은 채 10곳도 안됩니다.

가족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경우라도 능력에 대한 검증은 매우 엄격합니다.

스웨덴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그룹 발렌베리.

그룹을 지배하는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경영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에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려면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또 해외 사업을 반드시 거치는 등 20년 가까운 검증을 받아야합니다.

<인터뷰> 이창민(한양대 경영대 교수) : "CEO들이 기업가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무능력한 CEO한테 기업이 넘어갔을 때 주가의 폭락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 리스크가 돼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대두가 된 거죠."

미국 기업 10곳 중 7곳은 능력있는 CEO를 길러내기 위해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GE입니다.

제프리 이멜트 GE 현 회장은 7년에 걸쳐 수십 명의 후보자와 경쟁한 뒤에야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주주총회나 사업계획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는 것도 우리와는 다른 점입니다.

축제처럼 치러지는 월마트의 주주총회 모습입니다.

주주총회 자료집에 회사의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창민(한양대 경영대 교수) : "CEO 승계 계획을 잘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이 주가가 오르고 기업실정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업가치나 좋은 경영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이 미국에서의 컨센서스입니다."

삼성과 현대, LG 등 국내 자산순위 20대 대기업에게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녹취> A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공식적으로 그런 내용이 따로 알려드릴만한 그런게 있진 않을 것 같은데요?"

CEO 승계 프로그램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다는 반응도 많았고.

<녹취> B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승계프로그램이요? 그런 건 따로 들어본 적 없는데요... 후계자 교육 이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회장님이 건강하거나 젊기 때문에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답변도 나왔습니다.

<녹취> C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네, 저희는 회장님 충분히 건강하시고 그런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할 단계는 아니죠."

<녹취> D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는 아시다시피 회장님이 상당히 젊으시잖아요. 이런 것 자체가 없습니다."

취재 결과 20대 대기업 중 CEO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대답한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창민(한양대 경영대 교수) : "경영권 승계가 비공개적으로 되다보니까 오히려 시장에서는 불신만 계속 생기는 거죠.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3,4세 경영에 대해서 그쪽 문화랑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더 불신을 가지죠."

지난 8월 한국거래소 산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13년 만에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개정했습니다.

상장회사들에게 제시하는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입니다.

개정안에는 경영권 승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가 최고경영자 승계프로그램을 마련해서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인터뷰> 김우찬(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교수) : "10년 전 20년 전부터 했어야 되는거죠. 그래서 일부 재벌그룹의 경우엔 있고요. 그렇지만 잘못한 그룹들도 있고요. 집안 내부 규율을 잘 만들어야죠. 어떻게 승계할거냐. 누가 승계할거냐. 정해야죠."

최은영 전 한진회장은 경영 실패를 지적 받자 눈물을 흘리거나 심지어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녹취> "진심 어리게 사죄드리겠습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대기업을 잘못 경영함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는 개인적인 사과로 수습할 수 없습니다.

종업원과 주주, 국민경제에 돌이키기 힘든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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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이니까…’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은 없다
    • 입력 2016-10-09 22:44:15
    • 수정2016-10-09 23:13:33
    취재파일K
<오프닝>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CEO, 즉 최고경영자의 자질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사소한 판단 실수 하나가 회사는 물론 국민 경제 전체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데요.

때문에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가장 뛰어난 사람이 경영을 맡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가 사회적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기업들의 상황은 어떨까요?

최근 부실경영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진해운 사태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 문제점을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우리나라 해운 물류의 중심 부산 신항만.

축구장 94개 면적의 한진해운 부두 전체가 컨테이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상당수는 최대 한도인 6층까지 콘테이너를 쌓아올렸습니다.

그런데도 빈 곳을 찾기 힘들 정돕니다.

절반 이상은 빈 컨테이너입니다.

한진해운 배들이 출항을 못하자 화주들이 컨테이너 안의 화물을 빼가면서 빈 컨테이너들만 쌓이고 있는 겁니다.

터미널 인근의 도로.

컨테이너는 이곳까지 점령했습니다.

컨테이너로 한진 부두가 포화 상태에 이르자 임시로 마련한 장소입니다.

법정관리 한 달이 지나면서 피해는 확산되고 있습니다.

해운 수송 마비로 인한 납품 지연 우려를 넘어서 바이어로부터 계약 해지 경고를 받은 수출업체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최성철(무역업체 대표) : "어떠한 내용으로 클레임을 받을 지 지금 심히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렇게 기다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중소 항만 업체들의 경영난은 물론 항만 노동자들의 실직 우려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녹취> 부산 신항만 관계자(음성변조) : "배 한 대가 들어왔을 때 그 배를 정박하는 사람들부터 해가지고 현장직원이 수백 명이나 있거든요. 그분들 대부분 일용직이고 일이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나올수가 없게 돼서...대량 해고를 부득이하게 할 수밖에 없게되는 상황이고.."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97척 가운데 1/3이 넘는 수가 여전히 하역을 하지 못한 채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가압류된 선박도 8척이나 됩니다.

피해신고건수는 500여건, 피해액은 2000억 원을 넘어서면서 한진 해운을 넘어 한국 해운업 전체가 먹구름에 휩싸여 있습니다.

한진그룹 창업주의 2세였던 조수호 전 한진해운 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07년.

회장직을 이어받은 건 그때까지 경영과는 무관했던 전 회장의 부인 최은영 씨였습니다.

최 씨는 조수호 전 회장과 1985년, 24살에 결혼한 후 22년 동안 경영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녹취> 최은영(전 한진해운 회장/9월 27일 국정감사) : "돌아가신 조수호 회장님과 많은 회의나 또는 선주나 화주를 만나야 될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혀 해운업에 대해 무지한 상태는 아니었고..."

그런 최 전 회장이 회장직을 맡은 이후 한진해운은 급속도로 경영 사정이 나빠졌습니다.

회장직을 이어받은 2007년 매출액 6조9천여억 원에 당기순이익 천4백억 원대였던 회사는 불과 2년 뒤인 2009년 적자로 돌아섰고 2011년에는 8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회장 재임기간 부채비율도 405%에서 1460%로 3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탓도 있지만, 2011년을 전후해 무리하게 비싼 용선료를 주고 배를 빌리는 경영상 실책이 화근이 됐습니다.

<녹취> 조양호(한진그룹 회장/10월 4일 국정감사) : "한진해운이 최 회장 경영진에 의해서 해운업을 모르는 해운업과 업무 현황 특수성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굉장히 부실해졌습니다."

결국 2011년부터 3년간 쌓인 적자가 1조 원이 넘자 2014년 경영권을 시아주버니인 조양호 회장에게 넘깁니다.

경영권을 넘긴 뒤의 처신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서울 여의도의 한 빌딩.

최 전 회장이 한진해운으로부터 넘겨받은 빌딩으로 시가 2000억 원 대입니다.

<녹취> "(회장님 혹시 매일 출근하세요?) 매일 다른 일정이 없으시면 출근을 하시고요."

빌딩 6개층을 사용하는 한진해운 등으로부터 매년 받는 임대수익만 140억 원에 이릅니다.

여기다 한진해운에서 일감을 받은 계열사로부터 수억 원의 배당까지 받았습니다.

회사가 쓰러지는 동안 수십억 원의 보수까지 챙겼습니다.

2013년도 한진해운 사업보고서입니다.

당기순손실만 7척억 원에 육박했지만 대표이사였던 최은영 회장에게는 17억 원의 급여를 지급한 것으로 기록돼있습니다.

<인터뷰> 김우찬(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교수) : "어떻게 보면 잘못된 사람을 임명한거죠. 그게 가장 큰 문제인거고요. 그 다음에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가족들이 자기네 사적편익을 추구하게되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역시 부실 경영으로 채권단 자율 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2003년 정몽헌 전 현대회장이 갑작스럽게 숨지자 부인 현정은 씨가 경영을 맡았습니다.

현 회장 역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정 전 회장과 결혼해 회장이 되기 전까지 27년 동안 회사 경영활동에는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2011년부터 적자 행진이 이어지자 현 회장은 경영책임을 묻는다며 현대상선 대표를 6차례나 갈아치웠습니다.

그 와중에 회사는 더 어려워졌고, 결국 구조조정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인터뷰> 정선섭(재벌닷컴 대표) : "아무런 경영과는 연관성이 없이 가끔 찾아오는 경영인들에게 밥대접하는 그런 사교적 모임에는 나갔던 사람이 어느날 15개 이상의 업종을 가지고 있고 30개 이상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 기업의 총수가 되었다고 했을 때 과연 파악할 수 있을까요?"

해외 기업들의 경영권 승계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애플을 창업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킨 스티브잡스.

창업주이지만 이사회의 결정으로 한때 회사를 쫓겨났다가 회사가 어려워지자 다시 복귀해 회사를 위기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췌장암을 진단받아 다시 잠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회사의 상징과도 같던 잡스가 떠난 상황에서도 애플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녹취> 스티브 잡스(전 애플 CEO/2009년 경영 복귀 당시) : "팀쿡과 경영진에게 특별한 감사를 전합니다. 시련을 잘 극복하고 회사를 잘 운영했습니다."

잡스가 사망한 후 13년 동안 최고운영책임자를 맡아왔던 팀쿡은 CEO 자리를 이어받아 회사를 더욱 성장시켰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 역시 일찌감치 동료 스티브 발머에게 회장직을 물려줬습니다.

세계 100대 기업 가운데 창업자의 후손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곳은 채 10곳도 안됩니다.

가족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경우라도 능력에 대한 검증은 매우 엄격합니다.

스웨덴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그룹 발렌베리.

그룹을 지배하는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경영 세습을 하고 있습니다.

발렌베리 가문에서 그룹 경영에 참여하려면 부모 도움 없이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또 해외 사업을 반드시 거치는 등 20년 가까운 검증을 받아야합니다.

<인터뷰> 이창민(한양대 경영대 교수) : "CEO들이 기업가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이런 것들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무능력한 CEO한테 기업이 넘어갔을 때 주가의 폭락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기업의 일상적인 경영 리스크가 돼서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대두가 된 거죠."

미국 기업 10곳 중 7곳은 능력있는 CEO를 길러내기 위해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의 GE입니다.

제프리 이멜트 GE 현 회장은 7년에 걸쳐 수십 명의 후보자와 경쟁한 뒤에야 최고 경영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을 주주총회나 사업계획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외부에 알리는 것도 우리와는 다른 점입니다.

축제처럼 치러지는 월마트의 주주총회 모습입니다.

주주총회 자료집에 회사의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이 어떻게 운영되는 지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창민(한양대 경영대 교수) : "CEO 승계 계획을 잘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이 주가가 오르고 기업실정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업가치나 좋은 경영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것이 미국에서의 컨센서스입니다."

삼성과 현대, LG 등 국내 자산순위 20대 대기업에게 경영권 승계 프로그램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녹취> A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공식적으로 그런 내용이 따로 알려드릴만한 그런게 있진 않을 것 같은데요?"

CEO 승계 프로그램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다는 반응도 많았고.

<녹취> B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승계프로그램이요? 그런 건 따로 들어본 적 없는데요... 후계자 교육 이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회장님이 건강하거나 젊기 때문에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는 답변도 나왔습니다.

<녹취> C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네, 저희는 회장님 충분히 건강하시고 그런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할 단계는 아니죠."

<녹취> D그룹 관계자(음성변조) : "저희는 아시다시피 회장님이 상당히 젊으시잖아요. 이런 것 자체가 없습니다."

취재 결과 20대 대기업 중 CEO 승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대답한 곳은 한 곳도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창민(한양대 경영대 교수) : "경영권 승계가 비공개적으로 되다보니까 오히려 시장에서는 불신만 계속 생기는 거죠.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더 그렇게 생각합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3,4세 경영에 대해서 그쪽 문화랑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더 불신을 가지죠."

지난 8월 한국거래소 산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13년 만에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을 개정했습니다.

상장회사들에게 제시하는 지배구조 가이드라인입니다.

개정안에는 경영권 승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가 최고경영자 승계프로그램을 마련해서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인터뷰> 김우찬(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교수) : "10년 전 20년 전부터 했어야 되는거죠. 그래서 일부 재벌그룹의 경우엔 있고요. 그렇지만 잘못한 그룹들도 있고요. 집안 내부 규율을 잘 만들어야죠. 어떻게 승계할거냐. 누가 승계할거냐. 정해야죠."

최은영 전 한진회장은 경영 실패를 지적 받자 눈물을 흘리거나 심지어 무릎을 꿇기도 했습니다.

<녹취> "진심 어리게 사죄드리겠습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대기업을 잘못 경영함으로써 발생하는 피해는 개인적인 사과로 수습할 수 없습니다.

종업원과 주주, 국민경제에 돌이키기 힘든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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