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흑해를 가로지른 가스관 “가까이 더 가까이”

입력 2016.10.12 (15:4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터키가 흑해 해저를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제23차 세계에너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양국 에너지부 장관들이 '터키 스트림 (Turkish Stream)'으로 불리는 가스관 건설에 관한 정부 간 협정에 서명했다.


'터키 스트림'은 러시아 남부에서 흑해 해저를 통해 터키 서부 지역으로 약 1,100km 길이의 가스관을 부설하고 터키와 그리스 국경 지역에 유럽 국가 공급용 가스 허브를 건설한 다음, 이후에 수입자인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직접 자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하도록 하는 사업 구상이다. 사업비는 114억~ 136억 유로(우리 돈 17조 원가량)에 달할 것으로 러시아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협정에 따라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오는 2019년까지 흑해 해저를 따라 각각 150억㎥ 용량의 파이프라인 2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첫 번째 파이프라인은 터키 내수용이고 두 번째 가스관은 유럽 시장 수출용이다. 두 번째 가스관 건설은 앞으로 유럽연합(EU)과의 협상이 진전돼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터키 스트림'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목적으로 2014년 러시아가 처음 제안했으나 EU 국가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11월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중단됐었다.

러시아의 수출용 가스관은 현재 5개 정도인데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은 '소유즈'(1980년 가동/ 2,750km)와 '우렌고이~포마리~우즈고로드 가스관'(1984년 가동/ 4,451km) 등 2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스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에 정치적 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스프롬측이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터키 스트림'은 러시아의 자원 수출 전략 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터키에도 이익이 되는 사업이다. 협정이 서명된 뒤 당장 푸틴 대통령은 터키가 수입하는 러시아산 가스에 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동·터키 전문가인 러시아 전략연구소의 글라조바 안나 부소장은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터키는 러시아 못지않게 이 사업을 원한다. 이 사업은 양국에 이익이 되는 것이고 특히 사업비를 러시아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터키 스트림' 사업이 EU 회원국 특히 터키 주변국들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보고 있다. 터키로서는 에너지 허브라는 입지적 이점이 생긴다."

러시아-터키, "가까이 더 가까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가스관 협정 조인식을 갖고 있다.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가스관 협정 조인식을 갖고 있다.

러시아-터키 간 경제협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양국은 잠시 중단됐던 '아쿠유' 원전 건설 사업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아쿠유'는 120만kW급 원자로 4기를 건설하는 터키 최초의 원전 사업으로, 사업비만 200억 달러, 우리 돈 22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러시아는 또 지난 1월부터 수입 금지 조치했던 터키산 채소와 과일에 대해 일부 해제조치를 취했다. 매실, 복숭아 등 씨 있는 과실과 오렌지, 레몬 등 감귤류 과일에 대해 제재를 해제한 것이다. 2015년 러시아는 터키로부터 8억 달러 규모의 과일·견과류와 6억 달러 규모의 채소류를 수입한 바 있다.

아울러 러시아에 진출한 터키 건설업체에 대한 경제 제재도 해제할 전망이다. 터키 건설사들은 1990년대 초부터 저가의 건설비용과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대형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수주해왔는데, 지난 20년간 수주한 규모가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 이후 러시아와 터키는 당장에라도 전쟁을 불사할 것처럼 최악으로 치달았다. 러시아가 터키에 대해 갖가지 경제 제재를 가한 것도 그런 배경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숨진 전폭기 조종사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낸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양국 대통령은 8월 9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지난달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의에 이어 10일 별도 정상회담까지 석 달 동안 3번이나 정상회담을 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양국관계를 복원하고 있다.

러시아 전략연구소의 글라조바 안나 부소장은, "전폭기 격추 사건 이후 양국 관계가 최악을 달리다 이렇게 급속히 회복하게 된 계기는 러시아가 요구한 3가지 조건을 터키가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즉, 전폭기 격추 사건에 대한 사과와 희생된 조종사 가족에 대한 보상, 격추된 전폭기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터키가 양국 관계 복원을 통해 각자 서방을 압박하려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내전 개입 등으로 서방과 갈등을 겪고 있고, 터키도 지난 7월 군부 쿠데타 시도 진압 이후 쿠데타 간여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으로 서방과 알력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협력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적 측면의 분석 못지않게, 양국 간에 걸려있는 경제적 실익이 서로를 다시금 끈끈하게 뭉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러-터키, 가스관 연결 재개 합의…관계 회복 조짐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흑해를 가로지른 가스관 “가까이 더 가까이”
    • 입력 2016-10-12 15:46:52
    취재후·사건후
러시아와 터키가 흑해 해저를 관통하는 가스관 건설 사업을 본격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제23차 세계에너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터키 이스탄불을 방문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양국 에너지부 장관들이 '터키 스트림 (Turkish Stream)'으로 불리는 가스관 건설에 관한 정부 간 협정에 서명했다.


'터키 스트림'은 러시아 남부에서 흑해 해저를 통해 터키 서부 지역으로 약 1,100km 길이의 가스관을 부설하고 터키와 그리스 국경 지역에 유럽 국가 공급용 가스 허브를 건설한 다음, 이후에 수입자인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직접 자국으로 이어지는 가스관을 건설하도록 하는 사업 구상이다. 사업비는 114억~ 136억 유로(우리 돈 17조 원가량)에 달할 것으로 러시아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

협정에 따라 러시아 국영가스회사 가스프롬은 오는 2019년까지 흑해 해저를 따라 각각 150억㎥ 용량의 파이프라인 2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첫 번째 파이프라인은 터키 내수용이고 두 번째 가스관은 유럽 시장 수출용이다. 두 번째 가스관 건설은 앞으로 유럽연합(EU)과의 협상이 진전돼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터키 스트림'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목적으로 2014년 러시아가 처음 제안했으나 EU 국가들의 반대로 지지부진하다가 지난해 11월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으로 중단됐었다.

러시아의 수출용 가스관은 현재 5개 정도인데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은 '소유즈'(1980년 가동/ 2,750km)와 '우렌고이~포마리~우즈고로드 가스관'(1984년 가동/ 4,451km) 등 2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은 우크라이나를 거쳐 유럽으로 가스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에 정치적 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가스프롬측이 노심초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터키 스트림'은 러시아의 자원 수출 전략 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터키에도 이익이 되는 사업이다. 협정이 서명된 뒤 당장 푸틴 대통령은 터키가 수입하는 러시아산 가스에 할인 혜택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중동·터키 전문가인 러시아 전략연구소의 글라조바 안나 부소장은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터키는 러시아 못지않게 이 사업을 원한다. 이 사업은 양국에 이익이 되는 것이고 특히 사업비를 러시아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터키 스트림' 사업이 EU 회원국 특히 터키 주변국들의 구미를 당길 것으로 보고 있다. 터키로서는 에너지 허브라는 입지적 이점이 생긴다."

러시아-터키, "가까이 더 가까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가스관 협정 조인식을 갖고 있다.
러시아-터키 간 경제협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양국은 잠시 중단됐던 '아쿠유' 원전 건설 사업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아쿠유'는 120만kW급 원자로 4기를 건설하는 터키 최초의 원전 사업으로, 사업비만 200억 달러, 우리 돈 22조 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이다.

러시아는 또 지난 1월부터 수입 금지 조치했던 터키산 채소와 과일에 대해 일부 해제조치를 취했다. 매실, 복숭아 등 씨 있는 과실과 오렌지, 레몬 등 감귤류 과일에 대해 제재를 해제한 것이다. 2015년 러시아는 터키로부터 8억 달러 규모의 과일·견과류와 6억 달러 규모의 채소류를 수입한 바 있다.

아울러 러시아에 진출한 터키 건설업체에 대한 경제 제재도 해제할 전망이다. 터키 건설사들은 1990년대 초부터 저가의 건설비용과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대형 프로젝트를 집중적으로 수주해왔는데, 지난 20년간 수주한 규모가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러시아 전폭기 격추 사건 이후 러시아와 터키는 당장에라도 전쟁을 불사할 것처럼 최악으로 치달았다. 러시아가 터키에 대해 갖가지 경제 제재를 가한 것도 그런 배경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숨진 전폭기 조종사 유가족에게 사과의 뜻을 담은 편지를 보낸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양국 대통령은 8월 9일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지난달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의에 이어 10일 별도 정상회담까지 석 달 동안 3번이나 정상회담을 했다. 그리고 신속하게 양국관계를 복원하고 있다.

러시아 전략연구소의 글라조바 안나 부소장은, "전폭기 격추 사건 이후 양국 관계가 최악을 달리다 이렇게 급속히 회복하게 된 계기는 러시아가 요구한 3가지 조건을 터키가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즉, 전폭기 격추 사건에 대한 사과와 희생된 조종사 가족에 대한 보상, 격추된 전폭기에 대한 보상이다."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와 터키가 양국 관계 복원을 통해 각자 서방을 압박하려는 공통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시리아 내전 개입 등으로 서방과 갈등을 겪고 있고, 터키도 지난 7월 군부 쿠데타 시도 진압 이후 쿠데타 간여 세력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으로 서방과 알력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서로를 협력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치적 측면의 분석 못지않게, 양국 간에 걸려있는 경제적 실익이 서로를 다시금 끈끈하게 뭉치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연관기사] ☞ [뉴스광장] 러-터키, 가스관 연결 재개 합의…관계 회복 조짐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