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몰래 일해요…‘취업비자 없이 한국에서 일하는 러시아인 급증’

입력 2016.10.1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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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외무부 기자브리핑러시아 외무부 기자브리핑

■ “러시아인, 한국서 입국 거부 사례 급증”

매주 목요일 오후에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정례 정책 브리핑을 실시한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이 13일 브리핑에서 또 한국 관련 독특한 문제를 언급했다. 2주 연속 '한국 관련' 뉴스를 발언한 것이다. 지난주에는 영국 공군이 왜 한국에서 연합작전을 실시하느냐고 발언하더니, 이번주에는 한국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러시아인들을 언급했다.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

자하로바 대변인의 말이다.

"이미 러시아 외무부 웹사이트에서 공지했지만, 다시 한번 한국 공항에서 입국 거부당하는 러시아 시민들에 대해 언급하겠다. 최근 한-러간 비자면제 협정을 이용해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러시아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2013년 11월 체결된 한-러간 비자면제 협정은, 일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러시아인에게 비자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할 경우, 돌아오는 비행기편 등 모든 비용은 본인에게 부담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파심에서 당부하는데, 취업비자 없이도 별 문제없이 입국장을 통과할 수 있다고 말하는 (한국측) 비양심적인 고용주나 에이전트의 말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주의를 주는데 모든 법적 책임은 여행자 본인에게 돌아간다."

한-러간 비자면제 협정은 2014년 1월 1일부터 발효됐고, 양국 국민들은 60일 이내에 한해 비자 없이 상대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일할 목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할 경우엔 당연히 미리 취업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제도를 이용해 취업 비자 없이 입국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한국 공항 입국장에서는 행색이 특이하거나 수상쩍은 사람은 꼬치꼬치 숙박지나 향후 일정 등을 캐물어 취업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가려내 본국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말이다.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문의해보니, 이런 식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러시아인들이 2015년엔 1,000명 미만이었는데 2016년 8월에만 이미 3,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갈수록 입국 거부당한 러시아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 러시아인, 입국 거부 사례가 늘어난 이유

러시아는 현재 75개 정도 나라들과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독립국가연합과 중앙아시아,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이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홍콩,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 정도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져, 러시아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입국이 쉬워진 한국을 대거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24 프로그램 중 브럇트 노동자러시아 24 프로그램 중 브럇트 노동자

러시아의 유명 TV 채널인 '러시아 24'는 9월 17일, 러시아 극동 이르쿠츠크주의 바이칼 호수 근처에 있는 '브럇트 공화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실태를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했다. 바이칼 호수는 종종 한민족의 시원지로 언급되는데, 바이칼 호수 근처에 사는 브럇트 사람들은 한국사람과 외모가 비슷한 몽골족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사람과 선뜻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거의 똑같이 생겼다.

■ “한국에서 일하는 브럇트 공화국 사람들만 13만 명”

'러시아 24'는 브럇트 공화국 가용 노동력의 70% 정도인 13만 명 정도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젊은 여성들은 식당 종업원으로, 나이든 여성이나 남성들은 공장, 건설현장, 과일·채소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브럇트에서 평균 임금은 2만 9천 루블(52만 원 정도)인데 비해, 한국에서는 9만 루블(160만원 정도)에서 20만 루블(36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러시아 연방정부가 브럇트 공화국에 지급하는 보조금이 연간 130억 루블(2300억 원)인데, 한국에서 일하는 브럇트 사람들이 본국에 송금하는 금액이 연간 40억 루블(72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취업비자 없이 무비자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러시아 24'는 전했다.


또다른 러시아 언론 '라이프 뉴스'도 8월 16일자 특집 기사에서, 브럇트 사람들의 한국 취업 실태를 보도했다. 비자면제 협정이 발효되자 브럇트 사람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 들었고, 한국 당국에서는 브럇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을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귀국 항공편은 있는지, 단순 관광객인지 아니면 취업 노동자처럼 보이는지 등을 까다롭게 따지기 시작해서, 입국을 거부당해 되돌아가는 브럇트 사람들이 20% 정도라고 소개했다. 라이프는 "현재 한국은 '이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언제부터인가 '헬조선'이란 자조적 표현이 일상화될만큼 한국 청년들은 국내에서 일자리를 못찾아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비자면제 협정을 악용해, 비양심적인 고용주들이 외국인들을 불러 들이고, 외국인들은 이에 호응해 역설적으로 '입국 거부' 사례가 늘고 있다면, 이는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러시아 외무부가 자국민의 한국 입국 거부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를 걱정할 정도라면, 우리 국내에서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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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들 몰래 일해요…‘취업비자 없이 한국에서 일하는 러시아인 급증’
    • 입력 2016-10-15 16:14:02
    취재K
러시아 외무부 기자브리핑
■ “러시아인, 한국서 입국 거부 사례 급증”

매주 목요일 오후에 외신기자들을 상대로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이 정례 정책 브리핑을 실시한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이 13일 브리핑에서 또 한국 관련 독특한 문제를 언급했다. 2주 연속 '한국 관련' 뉴스를 발언한 것이다. 지난주에는 영국 공군이 왜 한국에서 연합작전을 실시하느냐고 발언하더니, 이번주에는 한국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는 러시아인들을 언급했다.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
자하로바 대변인의 말이다.

"이미 러시아 외무부 웹사이트에서 공지했지만, 다시 한번 한국 공항에서 입국 거부당하는 러시아 시민들에 대해 언급하겠다. 최근 한-러간 비자면제 협정을 이용해 한국으로 일하러 가는 러시아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2013년 11월 체결된 한-러간 비자면제 협정은, 일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하는 러시아인에게 비자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다.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할 경우, 돌아오는 비행기편 등 모든 비용은 본인에게 부담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노파심에서 당부하는데, 취업비자 없이도 별 문제없이 입국장을 통과할 수 있다고 말하는 (한국측) 비양심적인 고용주나 에이전트의 말을 절대 믿어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주의를 주는데 모든 법적 책임은 여행자 본인에게 돌아간다."

한-러간 비자면제 협정은 2014년 1월 1일부터 발효됐고, 양국 국민들은 60일 이내에 한해 비자 없이 상대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일할 목적으로 상대국을 방문할 경우엔 당연히 미리 취업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제도를 이용해 취업 비자 없이 입국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한국 공항 입국장에서는 행색이 특이하거나 수상쩍은 사람은 꼬치꼬치 숙박지나 향후 일정 등을 캐물어 취업 목적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을 가려내 본국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말이다.

한국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문의해보니, 이런 식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러시아인들이 2015년엔 1,000명 미만이었는데 2016년 8월에만 이미 3,0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갈수록 입국 거부당한 러시아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다.

■ 러시아인, 입국 거부 사례가 늘어난 이유

러시아는 현재 75개 정도 나라들과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독립국가연합과 중앙아시아, 남미 국가들이 대부분이고, 아시아에서는 한국, 홍콩, 몽골, 베트남, 인도네시아 정도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등으로 러시아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져, 러시아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입국이 쉬워진 한국을 대거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24 프로그램 중 브럇트 노동자
러시아의 유명 TV 채널인 '러시아 24'는 9월 17일, 러시아 극동 이르쿠츠크주의 바이칼 호수 근처에 있는 '브럇트 공화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실태를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했다. 바이칼 호수는 종종 한민족의 시원지로 언급되는데, 바이칼 호수 근처에 사는 브럇트 사람들은 한국사람과 외모가 비슷한 몽골족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사람과 선뜻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거의 똑같이 생겼다.

■ “한국에서 일하는 브럇트 공화국 사람들만 13만 명”

'러시아 24'는 브럇트 공화국 가용 노동력의 70% 정도인 13만 명 정도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젊은 여성들은 식당 종업원으로, 나이든 여성이나 남성들은 공장, 건설현장, 과일·채소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브럇트에서 평균 임금은 2만 9천 루블(52만 원 정도)인데 비해, 한국에서는 9만 루블(160만원 정도)에서 20만 루블(36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러시아 연방정부가 브럇트 공화국에 지급하는 보조금이 연간 130억 루블(2300억 원)인데, 한국에서 일하는 브럇트 사람들이 본국에 송금하는 금액이 연간 40억 루블(72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이 취업비자 없이 무비자로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고, '러시아 24'는 전했다.


또다른 러시아 언론 '라이프 뉴스'도 8월 16일자 특집 기사에서, 브럇트 사람들의 한국 취업 실태를 보도했다. 비자면제 협정이 발효되자 브럇트 사람들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 들었고, 한국 당국에서는 브럇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을 면밀히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귀국 항공편은 있는지, 단순 관광객인지 아니면 취업 노동자처럼 보이는지 등을 까다롭게 따지기 시작해서, 입국을 거부당해 되돌아가는 브럇트 사람들이 20% 정도라고 소개했다. 라이프는 "현재 한국은 '이민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

언제부터인가 '헬조선'이란 자조적 표현이 일상화될만큼 한국 청년들은 국내에서 일자리를 못찾아 청년실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비자면제 협정을 악용해, 비양심적인 고용주들이 외국인들을 불러 들이고, 외국인들은 이에 호응해 역설적으로 '입국 거부' 사례가 늘고 있다면, 이는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다. 러시아 외무부가 자국민의 한국 입국 거부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를 걱정할 정도라면, 우리 국내에서도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할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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