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경대’가 ‘실망대’로…북새통의 그늘

입력 2016.10.18 (16:45) 수정 2016.10.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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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둔 단풍 명소'
'한국의 장자제(張家界 장가계)'
'한눈에 보는 만가지 비경'

설악산 망경대(望景臺)를 묘사한 언론의 기사 제목들입니다. 46년 만에 개방되는 최고의 비경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단 46일 동안만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단풍철을 바로 앞둔 시점입니다. 이러니 반응이 어땠을까요?

설악산 망경대 탐방로 입구 앞. 10월 15일(토) 오전 9시.설악산 망경대 탐방로 입구 앞. 10월 15일(토) 오전 9시.

지난 주말 15일, 망경대 탐방로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오른쪽 벽을 따라 늘어선 줄이 만경대 쪽으로 들어가는 줄이고 왼쪽은 그 줄의 끝을 찾아가기 위해 용소폭포 탐방로 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화장실 앞에 늘어선 줄도 보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이 전부가 아닙니다.

망경대에 가기 위해 500m가량 이어진 줄.망경대에 가기 위해 500m가량 이어진 줄.

줄은 용소폭포 쪽 탐방로를 따라 500m가량 이어져 주전골까지 내려갑니다. 줄 왼쪽 사람은 망경대로 가는 사람이죠. 좀처럼 움직이질 못하고 다들 서 있습니다. 오른쪽 사람은 그 줄 끝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주전골 용소폭포 삼거리까지 내려가야 겨우 줄 끝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줄을 선 채 조금씩 이동하면 두 시간 뒤에 비로소 망경대 탐방로 입구에 도착합니다. 500m 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린 거죠. 많은 사람이 엉키다 보니 혼란과 새치기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몰린 사람으로 엉킨 줄.한꺼번에 몰린 사람으로 엉킨 줄.



망경대 탐방로망경대 탐방로


망경대 탐방로에 들어서도 줄은 계속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입니다. 탐방로가 좁다 보니 한 방향으로만 가는 일방통행입니다. 계속 사람들의 등과 엉덩이를 보며 갑니다. 빨리 가지도 못합니다. 걷다가 서다가 반복합니다. 주변은 숲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단풍에 물든 나무도 있습니다. 다른 전망은 없습니다. 그렇게 1km가량 가면 망경대에 이릅니다.

망경대 망경대

해발 560m, 망경대에서는 점봉산 쪽 전망이 나옵니다. 왼쪽 위로 높게 튀어나온 산이 점봉산이고 그 앞으로 흘림골과 주전골을 둘러싼 기암의 경관이 펼쳐집니다. 장관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설악산 최고의 비경이라 이르기엔 천불동 계곡과 공룡능선, 서북능선, 용아장성, 등선대, 울산바위의 풍광이 눈에 걸립니다. 설악산은 장관이 많습니다. 더구나 여기는 이 경관 하나뿐입니다. 어딜 봐도 '만 가지 비경'이나 '만물상'으로 이르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천불동이나 공룡능선, 서북능선처럼 길지도 않습니다. 이 경관 하나를 보고 이제는 하산입니다.

망경대 탐방로 하산길망경대 탐방로 하산길

하산길 역시 숲길입니다.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올라올 때처럼 앞사람 등만 보고 내려갑니다. 더구나 하산길은 가파릅니다. 속도가 더 떨어집니다. 탐방로 전체 구간이 약 2km, 보통 한 시간이면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4시간이 걸렸습니다. 줄 서서 2시간, 탐방길이 4시간, 모두 6시간 걸린 겁니다.

도로 양쪽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교차 통행을 못 하고 서 있는 버스.도로 양쪽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교차 통행을 못 하고 서 있는 버스.

이뿐인가요? 워낙 많은 차량이 몰리는 바람에 주변 도로 역시 정체가 심합니다. 도로 양옆에 주차한 차들 때문에 대형버스 두 대가 마주칠 경우 지나가질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렇게 차가 막히다 보니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가파른 망경대 하산길가파른 망경대 하산길

이런 고생 끝에 본 망경대 경관이 겨우 이 정도라니... 탐방객들은 불만이 나옵니다. '만 가지 비경' 혹은 '한국의 장자제'가 어디 있느냐는 거죠. 돈과 시간만 버렸다고 화를 냅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성토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언론은 왜 과장(?)된 표현으로 망경대를 묘사했을까요?

설악산 흘림골 설악산 흘림골

발단은 1년 전 흘림골 산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색으로 이어지는 흘림골 탐방로는 단풍 명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2015년 흘림골에 300t짜리 바위가 떨어지면서 탐방로를 덮쳐 한 사람이 숨졌습니다. 탐방로는 폐쇄됐습니다. 오색 상가 상인들은 영업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탐방로 복구를 촉구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복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돌이 계속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20여 차례 크고 작은 돌이 굴러떨어졌습니다. 올봄, 공단 측은 정확한 안전진단 용역을 의뢰하고 주민들에게 대체 구간을 제시했습니다. 그 대체 구간이 바로 망경대 탐방로였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반대했습니다. 망경대가 흘림골을 대체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주민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망경대가 흘림골에 비해 그다지 매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망경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탐방객망경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탐방객

사실 망경대 길은 예부터 유명했던 곳이 아닙니다. 1970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 법정 탐방로로 지정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주민들이 송이 채취를 위해 간간이 이용하던 길입니다. 지역을 잘 아는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샛길 가운데 하나였던 겁니다.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공단 측이 적극적으로 막았던 곳도 아닙니다. 이런 길을 임시 탐방로로 제시한 겁니다.

오색지구에 걸린 현수막.오색지구에 걸린 현수막.

양양군번영회는 올 9월까지도 망경대 구간을 반대하고 흘림골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앞에서 집회와 시위까지 열 계획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탐방객 안전을 우려한 공단은 흘림골을 개방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지난 8월에는 또 한차례 낙석이 발생했습니다. 9월 12일, 주민들은 마침내 망경대 구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부터 10월 1일 개방까지 남은 시간은 18일, 공단 직원과 주민들이 부랴부랴 탐방로 정비에 나섰습니다.

발길에 침식된 망경대 정상 부근.발길에 침식된 망경대 정상 부근.

짧은 기간 서둘러 준비한 흔적은 지금도 탐방로 곳곳에 있습니다. 가파른 경사인데도 계단이 없는 곳도 많습니다. 매트가 깔리지 않아 사람들 발길에 심하게 침식된 곳도 많습니다. 특히 망경대 정상 주변은 흙이 벗겨지고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탐방로 결정부터 개방까지 불과 18일, 공단 직원과 주민들이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지만, 탐방로는 훼손을 막기에 여전히 허술합니다.

망경대 개방을 처음 알린 9월 18일 연합뉴스망경대 개방을 처음 알린 9월 18일 연합뉴스

망경대 개방 소식은 양양군번영회가 먼저 지역 언론에 알렸습니다. 공단 측이 보도자료를 내기 전에 미리 보도자료를 낸 겁니다. 그래서 나온 최초 연합뉴스 보도의 제목이 이렇습니다. '남설악 숨은 비경 한눈에... 만경대 48년 만에 개방'. '숨은 비경' '장자제'란 표현은 양양군번영회가 낸 보도자료를 인용한 겁니다. 다음날부터 다른 언론사가 일제히 이 뉴스를 그대로 전했습니다. '한눈에 보는 만 가지 비경' '남설악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 표현도 경쟁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설악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묘사한 00일보‘남설악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묘사한 00일보

‘장자제 못지 않은 비경’으로 묘사한 00일보‘장자제 못지 않은 비경’으로 묘사한 00일보

정작 탐방로를 개방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보도자료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이미 언론에 다 보도됐기 때문이죠. 다만 공단은 최초 '만경대'란 표현을 '망경대'로 바꾸었습니다. 만경대(萬景臺)는 '만 가지 풍경을 본다'는 뜻이지만 망경대(望景臺)는 다만 '경치를 조망하는 곳'이라는 뜻이 됩니다. '48년 만의 개방'이란 표현도 '46년'으로 바뀝니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가 1970년입니다. 지금까지 46년 동안 법정탐방로를 제외하고 다른 샛길은 출입금지 구간이었기 때문에 46년 만에 개방이 바르다는 겁니다. 군 번영회 측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2년 전부터 그 길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48년 만에 개방'이라는 표현을 보도자료에 썼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공단이 보도자료를 냈다면 이런 혼선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평일인 17일(월) 아침에 늘어선 탐방객.평일인 17일(월) 아침에 늘어선 탐방객.

공단측이나 주민들 역시 이렇게 많은 탐방객이 몰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성황일 줄 알았다면 군번영회가 망경대 구간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겠죠. 아무도 예상 못 한 가운데 언론의 '대대적' 보도와 탐방객의 쏠림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주말이면 망경대에만 9천 명이 몰려들고 평일에도 6천 명 이상이 찾아옵니다. 양양군의 대성공입니다. 상대적으로 탐방객이 줄어든 설악동과 백담사 쪽 주민은 불만입니다. 탐방객들은 고생 끝에 실망입니다. 누구를 탓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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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경대’가 ‘실망대’로…북새통의 그늘
    • 입력 2016-10-18 16:45:10
    • 수정2016-10-20 14:09:52
    취재K
'감춰둔 단풍 명소'
'한국의 장자제(張家界 장가계)'
'한눈에 보는 만가지 비경'

설악산 망경대(望景臺)를 묘사한 언론의 기사 제목들입니다. 46년 만에 개방되는 최고의 비경을 10월 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단 46일 동안만 볼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단풍철을 바로 앞둔 시점입니다. 이러니 반응이 어땠을까요?

설악산 망경대 탐방로 입구 앞. 10월 15일(토) 오전 9시.
지난 주말 15일, 망경대 탐방로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오른쪽 벽을 따라 늘어선 줄이 만경대 쪽으로 들어가는 줄이고 왼쪽은 그 줄의 끝을 찾아가기 위해 용소폭포 탐방로 쪽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화장실 앞에 늘어선 줄도 보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사람이 전부가 아닙니다.

망경대에 가기 위해 500m가량 이어진 줄.
줄은 용소폭포 쪽 탐방로를 따라 500m가량 이어져 주전골까지 내려갑니다. 줄 왼쪽 사람은 망경대로 가는 사람이죠. 좀처럼 움직이질 못하고 다들 서 있습니다. 오른쪽 사람은 그 줄 끝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주전골 용소폭포 삼거리까지 내려가야 겨우 줄 끝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줄을 선 채 조금씩 이동하면 두 시간 뒤에 비로소 망경대 탐방로 입구에 도착합니다. 500m 가는 데 두 시간이 걸린 거죠. 많은 사람이 엉키다 보니 혼란과 새치기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몰린 사람으로 엉킨 줄.


망경대 탐방로

망경대 탐방로에 들어서도 줄은 계속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입니다. 탐방로가 좁다 보니 한 방향으로만 가는 일방통행입니다. 계속 사람들의 등과 엉덩이를 보며 갑니다. 빨리 가지도 못합니다. 걷다가 서다가 반복합니다. 주변은 숲입니다. 소나무 사이로 단풍에 물든 나무도 있습니다. 다른 전망은 없습니다. 그렇게 1km가량 가면 망경대에 이릅니다.

망경대
해발 560m, 망경대에서는 점봉산 쪽 전망이 나옵니다. 왼쪽 위로 높게 튀어나온 산이 점봉산이고 그 앞으로 흘림골과 주전골을 둘러싼 기암의 경관이 펼쳐집니다. 장관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설악산 최고의 비경이라 이르기엔 천불동 계곡과 공룡능선, 서북능선, 용아장성, 등선대, 울산바위의 풍광이 눈에 걸립니다. 설악산은 장관이 많습니다. 더구나 여기는 이 경관 하나뿐입니다. 어딜 봐도 '만 가지 비경'이나 '만물상'으로 이르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천불동이나 공룡능선, 서북능선처럼 길지도 않습니다. 이 경관 하나를 보고 이제는 하산입니다.

망경대 탐방로 하산길
하산길 역시 숲길입니다.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올라올 때처럼 앞사람 등만 보고 내려갑니다. 더구나 하산길은 가파릅니다. 속도가 더 떨어집니다. 탐방로 전체 구간이 약 2km, 보통 한 시간이면 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지난 주말에는 4시간이 걸렸습니다. 줄 서서 2시간, 탐방길이 4시간, 모두 6시간 걸린 겁니다.

도로 양쪽에 주차한 차량 때문에 교차 통행을 못 하고 서 있는 버스.
이뿐인가요? 워낙 많은 차량이 몰리는 바람에 주변 도로 역시 정체가 심합니다. 도로 양옆에 주차한 차들 때문에 대형버스 두 대가 마주칠 경우 지나가질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렇게 차가 막히다 보니 한계령에서 오색까지 차로 10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 이상 걸리기도 합니다.

가파른 망경대 하산길
이런 고생 끝에 본 망경대 경관이 겨우 이 정도라니... 탐방객들은 불만이 나옵니다. '만 가지 비경' 혹은 '한국의 장자제'가 어디 있느냐는 거죠. 돈과 시간만 버렸다고 화를 냅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성토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언론은 왜 과장(?)된 표현으로 망경대를 묘사했을까요?

설악산 흘림골
발단은 1년 전 흘림골 산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오색으로 이어지는 흘림골 탐방로는 단풍 명소로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2015년 흘림골에 300t짜리 바위가 떨어지면서 탐방로를 덮쳐 한 사람이 숨졌습니다. 탐방로는 폐쇄됐습니다. 오색 상가 상인들은 영업에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탐방로 복구를 촉구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복구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돌이 계속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20여 차례 크고 작은 돌이 굴러떨어졌습니다. 올봄, 공단 측은 정확한 안전진단 용역을 의뢰하고 주민들에게 대체 구간을 제시했습니다. 그 대체 구간이 바로 망경대 탐방로였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반대했습니다. 망경대가 흘림골을 대체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주민들은 알고 있었던 거죠. 망경대가 흘림골에 비해 그다지 매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망경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탐방객
사실 망경대 길은 예부터 유명했던 곳이 아닙니다. 1970년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당시 법정 탐방로로 지정되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주민들이 송이 채취를 위해 간간이 이용하던 길입니다. 지역을 잘 아는 사진작가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샛길 가운데 하나였던 겁니다.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공단 측이 적극적으로 막았던 곳도 아닙니다. 이런 길을 임시 탐방로로 제시한 겁니다.

오색지구에 걸린 현수막.
양양군번영회는 올 9월까지도 망경대 구간을 반대하고 흘림골 개방을 요구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앞에서 집회와 시위까지 열 계획도 세웠습니다. 하지만 탐방객 안전을 우려한 공단은 흘림골을 개방할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지난 8월에는 또 한차례 낙석이 발생했습니다. 9월 12일, 주민들은 마침내 망경대 구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때부터 10월 1일 개방까지 남은 시간은 18일, 공단 직원과 주민들이 부랴부랴 탐방로 정비에 나섰습니다.

발길에 침식된 망경대 정상 부근.
짧은 기간 서둘러 준비한 흔적은 지금도 탐방로 곳곳에 있습니다. 가파른 경사인데도 계단이 없는 곳도 많습니다. 매트가 깔리지 않아 사람들 발길에 심하게 침식된 곳도 많습니다. 특히 망경대 정상 주변은 흙이 벗겨지고 나무뿌리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탐방로 결정부터 개방까지 불과 18일, 공단 직원과 주민들이 밤을 새워가며 준비했지만, 탐방로는 훼손을 막기에 여전히 허술합니다.

망경대 개방을 처음 알린 9월 18일 연합뉴스
망경대 개방 소식은 양양군번영회가 먼저 지역 언론에 알렸습니다. 공단 측이 보도자료를 내기 전에 미리 보도자료를 낸 겁니다. 그래서 나온 최초 연합뉴스 보도의 제목이 이렇습니다. '남설악 숨은 비경 한눈에... 만경대 48년 만에 개방'. '숨은 비경' '장자제'란 표현은 양양군번영회가 낸 보도자료를 인용한 겁니다. 다음날부터 다른 언론사가 일제히 이 뉴스를 그대로 전했습니다. '한눈에 보는 만 가지 비경' '남설악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 표현도 경쟁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설악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묘사한 00일보
‘장자제 못지 않은 비경’으로 묘사한 00일보
정작 탐방로를 개방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보도자료를 내지도 못했습니다. 이미 언론에 다 보도됐기 때문이죠. 다만 공단은 최초 '만경대'란 표현을 '망경대'로 바꾸었습니다. 만경대(萬景臺)는 '만 가지 풍경을 본다'는 뜻이지만 망경대(望景臺)는 다만 '경치를 조망하는 곳'이라는 뜻이 됩니다. '48년 만의 개방'이란 표현도 '46년'으로 바뀝니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가 1970년입니다. 지금까지 46년 동안 법정탐방로를 제외하고 다른 샛길은 출입금지 구간이었기 때문에 46년 만에 개방이 바르다는 겁니다. 군 번영회 측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2년 전부터 그 길로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48년 만에 개방'이라는 표현을 보도자료에 썼다고 말합니다. 애초에 공단이 보도자료를 냈다면 이런 혼선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평일인 17일(월) 아침에 늘어선 탐방객.
공단측이나 주민들 역시 이렇게 많은 탐방객이 몰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성황일 줄 알았다면 군번영회가 망경대 구간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겠죠. 아무도 예상 못 한 가운데 언론의 '대대적' 보도와 탐방객의 쏠림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주말이면 망경대에만 9천 명이 몰려들고 평일에도 6천 명 이상이 찾아옵니다. 양양군의 대성공입니다. 상대적으로 탐방객이 줄어든 설악동과 백담사 쪽 주민은 불만입니다. 탐방객들은 고생 끝에 실망입니다. 누구를 탓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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