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망명 태영호 공사의 그림자도 두려운 북한

입력 2016.10.19 (14:59) 수정 2016.10.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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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공개한 평양 주재 외교관 체육대회 사진북한이 공개한 평양 주재 외교관 체육대회 사진

화창한 가을을 맞아 한강변에서 열렸을 법한 가을 운동회의 줄다리기를 연상시키는 이 사진은 북한이 공개한 것입니다. 연일 미국과 한국 정부에 독설을 퍼부으며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이 공개한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화롭고 온기가 느껴지기까지 하는데요, 함경북도에 닥친 최악의 수해의 그늘도 이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에 파견된 각국 외교관들이 평양에서 체육대회를 열고 친목을 도모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매체는 평양 대성산 유원지에서 평양 주재 외교관들이 5개의 팀으로 나뉘어 축구·배구·농구 등 3개 종목 경기를 펼쳤으며 북한 외무성 궁석웅 전(前) 부상과 각국 대사들, 국제기구 대표들과 대사관 가족이 경기를 관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얼핏 보면 평양 주재 외교관들의 체육대회 동정 기사에 불과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큰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바로 태영호 공사 망명으로 숙청설이 제기됐던 궁석웅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 체육대회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궁석웅 부상(우리나라 차관에 해당)은 북한의 유럽 외교의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궁석웅 부상이 숙청당해 가족과 함께 지방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고 최근 대북소식통이 전했습니다. 궁 부상의 이런 전격적인 해임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주영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탈북과 한국 망명에 따른 문책이라고 전해졌습니다.

사진 출처: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사진 출처: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하지만 이런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듯 궁석웅 부상은 체육대회에서 환하게 웃으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체육경기대회에 "궁석웅 전 외무성 부상이 명예손님으로 관람했다"고 보도했는데요, 궁석웅에 대해 '전직 부상'이라고 불러 궁석웅이 부상 자리에서 물러났음을 확인했습니다.

궁석웅 전 부상은 8월 말 김정일 러시아 방문 15돌 기념 연회 참석을 마지막으로 2달 동안 북한 매체에 동정이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달 초 열렸던 북-러 수교 68주년 연회에도 등장하지 않은 만큼 이 기간 중 숙청돼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북한이 궁석웅을 전 부상을 등장시켜 숙청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북한이 궁 전 부상을 공식 석상이 아닌 외교관 친선 모임에 등장시킨 것은 숙청설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입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궁석웅 전 부상이 정년퇴직에 해당하는 연로보장으로 은퇴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이것도 북한이 일본 매체에 이 같은 정보를 흘려 숙청되지 않았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이처럼 북한이 궁석웅의 신병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선전하는 것은 태영호 공사 망명이 궁석웅 숙청으로 다시 이슈화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현직에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식행사에는 나올 수 없으므로 각국 외교관들의 친선 체육행사에 자연스럽게 등장시켜 태영호 공사 망명 파장 확산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각국 외교관들이 궁석웅 전 부상이 숙청당한 게 아니라 정년퇴임했다고 본국 정부에 보고하리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남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남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

북한은 태영호 공사 망명에 대해 내부 매체에 전혀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대외 매체에도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비난한 정도에 그친 바 있는데요, 그만큼 북한 당국이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행여나 엘리트층의 탈북과 한국 망명 사실이 알려지면 주민들이 동요할 수도 있고 김정은 정권 내 체제 균열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북한 고위층의 탈북과 한국 망명이 연쇄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단지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이 확산되는 것을 덮으려는 북한의 노력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태영호 공사의 망명 이유가 영국 해군을 매수해 영국의 핵 개발 정보를 빼내라고 하는 다소 황당한 지시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에서 보듯이 터무니없는 명령과 충성 자금 상납 압박,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모부도 잔인하게 처형시키는 김정은의 잔혹한 공포정치가 계속되는 한 탈북 행렬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며 국제사회에는 핵을 무기로 협박을 일삼는가 하면 측근과 엘리트 계층에게조차도 지도자로서의 아량과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공포심을 줘서 체제를 유지하려는 통치 스타일은 결국 김정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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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망명 태영호 공사의 그림자도 두려운 북한
    • 입력 2016-10-19 14:59:46
    • 수정2016-10-19 15:02:02
    취재후·사건후
북한이 공개한 평양 주재 외교관 체육대회 사진 화창한 가을을 맞아 한강변에서 열렸을 법한 가을 운동회의 줄다리기를 연상시키는 이 사진은 북한이 공개한 것입니다. 연일 미국과 한국 정부에 독설을 퍼부으며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북한이 공개한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화롭고 온기가 느껴지기까지 하는데요, 함경북도에 닥친 최악의 수해의 그늘도 이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에 파견된 각국 외교관들이 평양에서 체육대회를 열고 친목을 도모했다고 전했습니다. 이 매체는 평양 대성산 유원지에서 평양 주재 외교관들이 5개의 팀으로 나뉘어 축구·배구·농구 등 3개 종목 경기를 펼쳤으며 북한 외무성 궁석웅 전(前) 부상과 각국 대사들, 국제기구 대표들과 대사관 가족이 경기를 관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얼핏 보면 평양 주재 외교관들의 체육대회 동정 기사에 불과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큰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바로 태영호 공사 망명으로 숙청설이 제기됐던 궁석웅 북한 외무성 부상이 이 체육대회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궁석웅 부상(우리나라 차관에 해당)은 북한의 유럽 외교의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궁석웅 부상이 숙청당해 가족과 함께 지방 협동농장으로 추방됐다고 최근 대북소식통이 전했습니다. 궁 부상의 이런 전격적인 해임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주영 북한 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탈북과 한국 망명에 따른 문책이라고 전해졌습니다. 사진 출처: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 페이스북 하지만 이런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일축하듯 궁석웅 부상은 체육대회에서 환하게 웃으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체육경기대회에 "궁석웅 전 외무성 부상이 명예손님으로 관람했다"고 보도했는데요, 궁석웅에 대해 '전직 부상'이라고 불러 궁석웅이 부상 자리에서 물러났음을 확인했습니다. 궁석웅 전 부상은 8월 말 김정일 러시아 방문 15돌 기념 연회 참석을 마지막으로 2달 동안 북한 매체에 동정이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달 초 열렸던 북-러 수교 68주년 연회에도 등장하지 않은 만큼 이 기간 중 숙청돼 혁명화 교육을 받은 것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시점에서 북한이 궁석웅을 전 부상을 등장시켜 숙청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북한이 궁 전 부상을 공식 석상이 아닌 외교관 친선 모임에 등장시킨 것은 숙청설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입니다. 일본 교도통신은 궁석웅 전 부상이 정년퇴직에 해당하는 연로보장으로 은퇴했다고 보도했는데요, 이것도 북한이 일본 매체에 이 같은 정보를 흘려 숙청되지 않았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분석입니다. 이처럼 북한이 궁석웅의 신병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선전하는 것은 태영호 공사 망명이 궁석웅 숙청으로 다시 이슈화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현직에 있지 않기 때문에 공식행사에는 나올 수 없으므로 각국 외교관들의 친선 체육행사에 자연스럽게 등장시켜 태영호 공사 망명 파장 확산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각국 외교관들이 궁석웅 전 부상이 숙청당한 게 아니라 정년퇴임했다고 본국 정부에 보고하리라는 추측은 어렵지 않습니다. 남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공사 북한은 태영호 공사 망명에 대해 내부 매체에 전혀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대외 매체에도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비난한 정도에 그친 바 있는데요, 그만큼 북한 당국이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행여나 엘리트층의 탈북과 한국 망명 사실이 알려지면 주민들이 동요할 수도 있고 김정은 정권 내 체제 균열이 생긴 것처럼 보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북한 고위층의 탈북과 한국 망명이 연쇄적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단지 태영호 공사의 망명 사실이 확산되는 것을 덮으려는 북한의 노력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태영호 공사의 망명 이유가 영국 해군을 매수해 영국의 핵 개발 정보를 빼내라고 하는 다소 황당한 지시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에서 보듯이 터무니없는 명령과 충성 자금 상납 압박,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모부도 잔인하게 처형시키는 김정은의 잔혹한 공포정치가 계속되는 한 탈북 행렬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몰두하며 국제사회에는 핵을 무기로 협박을 일삼는가 하면 측근과 엘리트 계층에게조차도 지도자로서의 아량과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 채 공포심을 줘서 체제를 유지하려는 통치 스타일은 결국 김정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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