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녀가 말한 ‘그날’의 진실은…2인극 ‘블랙 버드’

입력 2016.10.1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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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넌 어떻게 날 찾았니?"(레이)

"병원 대기실에 놓인 잡지에서 봤어요. 공로상인가 표창장인가를 받은 사진이 실려 있던데요."(우나)

55살의 레이는 서른 살가량 차이가 나는 젊은 여성 우나가 갑자기 자신의 일터를 찾아오자 당황한다. 레이는 우나에게 "너랑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어"라며 자꾸 가라고 재촉한다.

우나는 그런 레이를 "난 당신이 짐승이라고 생각했어요"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5년 전 우나가 열두 살일 때 둘은 한 여관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레이는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6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생활을 마친 그는 이름을 바꾸고 살던 곳도 떠나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우나가 찾아오기 전까지.

우나는 '그날' 이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는 "나도 형을 살았어. 15년간. 모든 것을 잃었지. 당신보다 더 많은 걸 잃었어"라며 레이 못지않게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호소한다.

우나는 레이가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자신을 버리고 여관방을 떠났다고 믿고 있지만 레이는 그것은 오해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극작가 데이빗 해로워가 쓴 '블랙버드'는 15년 만에 만난 두 남녀, 레이와 우나가 과거 사건을 두고 엇갈린 기억을 쏟아내는 내용의 2인극이다.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레이 역을 배우 조재현이 맡아 30년 내공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과거의 상처로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사는 우나 역은 배우 옥자연과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됐다.

옥자연은 이번이 첫 연극 주연작이고, 브라운관에서 활동 중인 채수빈은 두번째 연극 출연이다.

조재현은 19일 종로구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이 연극의 매력은 날 것이라는 점인데, 배우들이 공연에 익숙해지면 연극의 맛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경험이 많은 배우보다 신인이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옥자연은 "제가 얼마큼 퀄리티를 뽑아내느냐에 따라 그날 연극을 본 관객들의 만족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중압감이 생겼다"며 첫 주연을 맡은 부담감을 털어놨다.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출연한 채수빈은 "첫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할 때 큰 공부가 돼 이후에도 연극을 꼭 해야지 욕심이 있었다가 이번에 기회가 와서 덥석 물었다"고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레이의 행위가 소아성애인지 사랑이었는지 모호해진다. 법정에서 소아성애자로 판결이 났지만 레이는 '자기는 그런 변태와 다르다'고 항변한다.

그는 열두 살짜리 여자애를 사랑한 것은 우나가 유일했다고 말하고 우나 역시 레이를 먼저 좋아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레이의 말 중 일부가 거짓으로 드러남에 따라 레이가 털어놓은 진심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불분명해진다.

조재현은 "배우로서 인물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니 레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해로워의 희곡을 번역하고 연출까지 맡은 문삼화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 대표는 "기억은 반드시 왜곡되고, 15년은 왜곡의 정도가 깊어질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라며 "레이는 그렇게 믿고 있을 수 있으나 사람은 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지 않나"라며 조재현과 다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원작의 작가는 스토리텔링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인물들의 관계나 행동, 거기에 놓인 애매함, 미스터리에 더 관심이 있다"며 원작 자체가 모호하게 그려졌음을 확인했다

'블랙버드'는 국내에서 2008년 추상미, 최정우 주연으로 초연됐고 이번이 8년 만의 재공연이다.

조재현은 "8년 전 공연을 봤을 때 건물에 비유하면 철골을 세우고 시멘트로 포장까지 했는데 인테리어가 안 들어간 느낌이었다"며 "새로운 번역으로 원작자가 의도한 인테리어에 맞게끔 해봤다"고 재공연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 연극을 제작한 수현재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소아성애를 다루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냐는 물음에 "소아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뤘다면 이 연극을 안 했을 것"이라며 "사건 이후 인간 대 인간의 부딪힘을 말하고 있고 소아성애자들이 우리 사회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면 사건 이후의 일도 함께 고민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이 연극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답했다.

공연은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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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남녀가 말한 ‘그날’의 진실은…2인극 ‘블랙 버드’
    • 입력 2016-10-19 18:35:04
    연합뉴스
"도대체 넌 어떻게 날 찾았니?"(레이)

"병원 대기실에 놓인 잡지에서 봤어요. 공로상인가 표창장인가를 받은 사진이 실려 있던데요."(우나)

55살의 레이는 서른 살가량 차이가 나는 젊은 여성 우나가 갑자기 자신의 일터를 찾아오자 당황한다. 레이는 우나에게 "너랑 이러고 있을 이유가 없어"라며 자꾸 가라고 재촉한다.

우나는 그런 레이를 "난 당신이 짐승이라고 생각했어요"라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쏘아붙인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5년 전 우나가 열두 살일 때 둘은 한 여관에서 성관계를 가졌다. 레이는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6년형을 선고받았다.

수감생활을 마친 그는 이름을 바꾸고 살던 곳도 떠나 새 삶을 살고 있었다. 우나가 찾아오기 전까지.

우나는 '그날' 이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는 "나도 형을 살았어. 15년간. 모든 것을 잃었지. 당신보다 더 많은 걸 잃었어"라며 레이 못지않게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호소한다.

우나는 레이가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자신을 버리고 여관방을 떠났다고 믿고 있지만 레이는 그것은 오해라고 주장한다.

영국의 극작가 데이빗 해로워가 쓴 '블랙버드'는 15년 만에 만난 두 남녀, 레이와 우나가 과거 사건을 두고 엇갈린 기억을 쏟아내는 내용의 2인극이다.

범죄자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려고 발버둥 치는 레이 역을 배우 조재현이 맡아 30년 내공의 연기력을 선보였다.

과거의 상처로 마음속에 분노를 품고 사는 우나 역은 배우 옥자연과 채수빈이 더블 캐스팅됐다.

옥자연은 이번이 첫 연극 주연작이고, 브라운관에서 활동 중인 채수빈은 두번째 연극 출연이다.

조재현은 19일 종로구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이 연극의 매력은 날 것이라는 점인데, 배우들이 공연에 익숙해지면 연극의 맛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했다"면서 "그런 점에서 경험이 많은 배우보다 신인이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옥자연은 "제가 얼마큼 퀄리티를 뽑아내느냐에 따라 그날 연극을 본 관객들의 만족도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니 중압감이 생겼다"며 첫 주연을 맡은 부담감을 털어놨다.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 출연한 채수빈은 "첫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할 때 큰 공부가 돼 이후에도 연극을 꼭 해야지 욕심이 있었다가 이번에 기회가 와서 덥석 물었다"고 출연 계기를 설명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레이의 행위가 소아성애인지 사랑이었는지 모호해진다. 법정에서 소아성애자로 판결이 났지만 레이는 '자기는 그런 변태와 다르다'고 항변한다.

그는 열두 살짜리 여자애를 사랑한 것은 우나가 유일했다고 말하고 우나 역시 레이를 먼저 좋아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레이의 말 중 일부가 거짓으로 드러남에 따라 레이가 털어놓은 진심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불분명해진다.

조재현은 "배우로서 인물에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니 레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해로워의 희곡을 번역하고 연출까지 맡은 문삼화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 대표는 "기억은 반드시 왜곡되고, 15년은 왜곡의 정도가 깊어질 만큼 충분히 긴 시간"이라며 "레이는 그렇게 믿고 있을 수 있으나 사람은 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지 않나"라며 조재현과 다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원작의 작가는 스토리텔링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인물들의 관계나 행동, 거기에 놓인 애매함, 미스터리에 더 관심이 있다"며 원작 자체가 모호하게 그려졌음을 확인했다

'블랙버드'는 국내에서 2008년 추상미, 최정우 주연으로 초연됐고 이번이 8년 만의 재공연이다.

조재현은 "8년 전 공연을 봤을 때 건물에 비유하면 철골을 세우고 시멘트로 포장까지 했는데 인테리어가 안 들어간 느낌이었다"며 "새로운 번역으로 원작자가 의도한 인테리어에 맞게끔 해봤다"고 재공연을 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 연극을 제작한 수현재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소아성애를 다루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냐는 물음에 "소아성애를 전면적으로 다뤘다면 이 연극을 안 했을 것"이라며 "사건 이후 인간 대 인간의 부딪힘을 말하고 있고 소아성애자들이 우리 사회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면 사건 이후의 일도 함께 고민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해 이 연극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답했다.

공연은 다음달 13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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