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연치 않은 여객기 회항

입력 2016.10.2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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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발지로 즉각 회항하라"

한편의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노선을 오가는 벨라루스 항공 '벨아비아' 소속 여객기가 당한 일이다.

지난 21일 키예프의 쥴라니 국제공항을 이륙해 민스크로 향하던 벨아비아 소속 보잉 737-
800기 기장에게 우크라이나 관제센터가 키예프 공항으로 즉각 회항하라는 긴급연락을 보내왔다. 여객기는 벨라루스 영공 진입 50km 정도를 앞두고 있었다. 키예프에서 민스크까지 거리는 대략 434km 정도이고 비행 시간은 55분 정도이다. 여객기에는 136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관제센터는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회항을 지시했으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이륙시키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장은 어쩔 수 없이 기수를 돌려 키예프 공항에 착륙했고, 우크라이나 보안당국 요원이 기내에 올라 아르메니아 국적 승객 1명을 연행해 갔다.


이후 여객기는 재급유를 받은 뒤 민스크로 돌아갔다. 연행됐던 승객도 21일 저녁 풀려나 다른 항공편으로 민스크를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로 온 것으로 전해졌다.

연행됐던 승객은 2014년 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반대했던 '아르멘 마르티로시얀'으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에선 이 시위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정권이 쫓겨나고 친서방 성향의 현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정권이 들어섰다.

결국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이 자국에 적대적인 성향의 외국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140여 명이 탄 여객기를 강제 회항시킨 셈이다.


■ 우크라이나-벨라루스간 '진실 게임'

이 사건은 주말인 22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양국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했고 러시아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벨아비아 항공사간 주장이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전투기 출격 위협'이 있었느냐는 부분이다.

우크라이나 보안당국은, 여객기 이륙 직후 국가안보에 중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게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고, 우크라이나 언론은 전했다. 또 여객기가 이륙하자마자 회항을 요청했고 회항하지 않으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겠다는 위협은 없었다고, 우크라이나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벨아비아 항공사측은, 분명히 우크라이나 관제센터에서 여객기 기장에게 회항하지 않으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겠다고 위협했다면서, 해당 부분 녹음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한가지는,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타국의 여객기를 회항시켜 가면서 까지 자국에 '위협적인(?) 인물'을 연행했던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이 비교적 신속하게(?) 풀어 줬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 때문에 아르메니아 국적의 '아르멘 마르티로시얀'을 연행했고, 조사 내용이 무엇이며, 강제 회항이라는 사안에 중대성에 비춰볼때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빠른 시간(?)에 풀어줬는지 등에 대해,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은 더이상 설명이 없다.


■ 외교 문제로 비화

당장 벨라루스 항공사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회항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벨라루스 정부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벨라루스 외무부는 자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리 대사를 불러 항의 서한을 전달했는데, 서한 내용은 우크라이나 측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여객기 회항으로 발생한 모든 비용을 보상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벨라루스 외무부는 또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에게도 현지 외무부로 항의 서한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강제 연행된 승객 '아르멘 마르티로시얀'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크라이나 당국의 불법행동에 대해 유럽 재판소 등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우리에겐 이번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번 사건의 전말을 보자면, 우크라이나 당국이 우선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도대체 국가안보에 중대한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다른 나라 승객 140여 명의 안전과 기회비용을 침해해도 될 만큼 절박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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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연치 않은 여객기 회항
    • 입력 2016-10-24 16:09:17
    취재K
■ "출발지로 즉각 회항하라"

한편의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지난 21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 노선을 오가는 벨라루스 항공 '벨아비아' 소속 여객기가 당한 일이다.

지난 21일 키예프의 쥴라니 국제공항을 이륙해 민스크로 향하던 벨아비아 소속 보잉 737-
800기 기장에게 우크라이나 관제센터가 키예프 공항으로 즉각 회항하라는 긴급연락을 보내왔다. 여객기는 벨라루스 영공 진입 50km 정도를 앞두고 있었다. 키예프에서 민스크까지 거리는 대략 434km 정도이고 비행 시간은 55분 정도이다. 여객기에는 136명의 승객과 6명의 승무원이 타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관제센터는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회항을 지시했으며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전투기를 이륙시키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장은 어쩔 수 없이 기수를 돌려 키예프 공항에 착륙했고, 우크라이나 보안당국 요원이 기내에 올라 아르메니아 국적 승객 1명을 연행해 갔다.


이후 여객기는 재급유를 받은 뒤 민스크로 돌아갔다. 연행됐던 승객도 21일 저녁 풀려나 다른 항공편으로 민스크를 거쳐 러시아 모스크바로 온 것으로 전해졌다.

연행됐던 승객은 2014년 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 야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반대했던 '아르멘 마르티로시얀'으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에선 이 시위로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정권이 쫓겨나고 친서방 성향의 현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정권이 들어섰다.

결국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이 자국에 적대적인 성향의 외국 인사를 체포하기 위해 140여 명이 탄 여객기를 강제 회항시킨 셈이다.


■ 우크라이나-벨라루스간 '진실 게임'

이 사건은 주말인 22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양국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했고 러시아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그런데, 우크라이나와 벨아비아 항공사간 주장이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전투기 출격 위협'이 있었느냐는 부분이다.

우크라이나 보안당국은, 여객기 이륙 직후 국가안보에 중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게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밝혔다고, 우크라이나 언론은 전했다. 또 여객기가 이륙하자마자 회항을 요청했고 회항하지 않으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겠다는 위협은 없었다고, 우크라이나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벨아비아 항공사측은, 분명히 우크라이나 관제센터에서 여객기 기장에게 회항하지 않으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겠다고 위협했다면서, 해당 부분 녹음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한가지는,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타국의 여객기를 회항시켜 가면서 까지 자국에 '위협적인(?) 인물'을 연행했던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이 비교적 신속하게(?) 풀어 줬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문제 때문에 아르메니아 국적의 '아르멘 마르티로시얀'을 연행했고, 조사 내용이 무엇이며, 강제 회항이라는 사안에 중대성에 비춰볼때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 빠른 시간(?)에 풀어줬는지 등에 대해, 우크라이나 보안 당국은 더이상 설명이 없다.


■ 외교 문제로 비화

당장 벨라루스 항공사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회항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벨라루스 정부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벨라루스 외무부는 자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리 대사를 불러 항의 서한을 전달했는데, 서한 내용은 우크라이나 측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여객기 회항으로 발생한 모든 비용을 보상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벨라루스 외무부는 또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에게도 현지 외무부로 항의 서한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강제 연행된 승객 '아르멘 마르티로시얀'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크라이나 당국의 불법행동에 대해 유럽 재판소 등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경험을 해서 그런지 우리에겐 이번 일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이번 사건의 전말을 보자면, 우크라이나 당국이 우선 해명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도대체 국가안보에 중대한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다른 나라 승객 140여 명의 안전과 기회비용을 침해해도 될 만큼 절박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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