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도발’ 연극에 발끈한 北…왜?

입력 2016.10.25 (20:08) 수정 2016.10.2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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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월 4일...그날 어떤 일이?

2015년 8월 4일. 어떤 날인지 기억하십니까?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 DMZ 철책에서 지뢰가 폭발하면서 우리 수색대원 두 명이 크게 다친 이른바 '북한 목함지뢰 도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당시 하재헌 하사가 두 다리를, 김정원 하사는 한쪽 발을 잃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북간 긴장이 일촉즉발 상태까지 고조됐다가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갈등을 봉합했습니다.

[연관기사] ☞ 군 “DMZ 지뢰 폭발 사고는 북한 소행…의도된 도발”(2015.08.10.)

우리 국민들은 당시 비무장지대에 북한군이 고의적으로 지뢰를 매설한 사실에 분노하는 한편, 젊은 나이에 신체적 고통과 불편을 겪게 된 두 병사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겠죠? 넉달간의 재활 훈련 뒤 김정원 하사가 껑충 뛰어 보일 때 모두가 진심 어린 마음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년 여가 지나고 모든 게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 연극으로 재조명된 北 지뢰 도발 사건...'DMZ 1584'

올해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관련 기획을 준비하던 KBS <남북의 창>팀은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한의 지뢰 도발에 따른 위기와 고통을 우리 병사들이 전우애로 극복하는 과정이 연극으로 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의 제목은 'DMZ 1584'. DMZ에서 지뢰 도발 사건이 터진 2015년 8월 4일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습니다. 이같은 사연은 <남북의창>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DMZ의 그날'이란 제목으로 국군의 날 아침 KBS 1TV로 방송됐습니다. 연극도 10월 초 이틀동안 무대에 올랐습니다.

<남북의창>이 'DMZ 1584'를 소개한데는 연극의 기획과 제작 과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배우 최 일화 씨(한극연극배우협회 이사장)가 언론 보도로 수색대원들의 이야기를 접한 뒤 해당 부대와 수색대원들을 꾸준히 방문하고 설득해 연극으로 완성시켰기 때문입니다. 최 씨는 "길이 전해질 영웅담으로서 이 연극을 바치겠다"는 수색대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연극을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일화 씨의 이런 순수한 의도에 다른 배우들이 하나 둘 동참했습니다. 배우들은 당시 수색대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해당 부대도 찾아가 그날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정도로 열정을 쏟았습니다.


■ 난데없는 北의 비난 공세...왜?

그런데 지난 24일 북한의 대외매체들이 난데 없이 연극 'DMZ 1584'를 비난하는 글을 쏟아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대결 광대극의 종착점은 죽음과 파멸뿐'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대결을 선동하는 반공화국 연극 'DMZ 1584'가 남조선 사회에 버젓이 나돌고 있는 형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박근혜 정권이 지난해 비무장지대에서 있었던 '8월 사건'을 가지고 연극 'DMZ 1584'를 만들어 공연놀음을 벌이며 반공화국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연극의 취지를 왜곡하고 마치 정부의 사주로 연극을 만든 것처럼 왜곡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2016.10.24)북한 조선중앙통신 (2016.10.24)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2016.10.24)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2016.10.24)

이에 대해 연극을 기획했던 최 일화 씨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최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연극을 기획, 제작하는데 정부의 지시는 커녕 지원금도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사재를 털어 제작했고 경제적 손실은 컸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아픔을 보듬어 주겠다는 부상 병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연극 무대를 마련했고, 그래서 내용도 재활 의지, 인간 승리를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정말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민간 차원의 연극 공연을 비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실 이 연극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공연도 경기도 파주에서 이틀간 세차례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난해 자신들의 도발과 그에 따른 남북간 긴장 상황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는 방증입니다. 당시 우리측이 대대적인 확성기 방송으로 맞대응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군에 '선조치 후보고'를 지시하자, 북한도 준전시 상태를 선포할 정도로 한반도 긴장 수위가 고조됐었습니다. 이후 우리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참석한 고위급 회담이 열려 상황을 봉합했지만, 북한이 실제 확성기 방송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를 확인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연극이 1년여만에 무대에 오르고 관련 보도도 나오자 과민 반응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젊은 용사들 고통은 여전...연극은 무대를 못찾아

‘DMZ 1584’의 실제 주인공들. 앉아있는 사람 중 왼쪽이 김정원 하사, 오른쪽이 하재헌 하사. (사진제공 라미스튜디오)‘DMZ 1584’의 실제 주인공들. 앉아있는 사람 중 왼쪽이 김정원 하사, 오른쪽이 하재헌 하사. (사진제공 라미스튜디오)

<남북의창>이 연극 'DMZ 1584' 다루면서 아쉬웠던 점은 연극이 10월 초 단 이틀만, 그것도 무료 공연을 하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연 일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최일화씨는 비용 문제로 현재 공연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북한의 도발로 부상을 입은 하재헌, 김정원 하사가 마음의 고통이 여전해 보였던 점입니다. 두 사람은 <남북의창> 제작진의 인터뷰를 고사했습니다. 현역 군인 신분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젊은 나이에 신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데 대한 그늘도 느껴졌습니다. 두 젊은이가 마음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을 잊지 말자고 뜻을 모았던 배우들의 열정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관기사] ☞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DMZ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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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뢰 도발’ 연극에 발끈한 北…왜?
    • 입력 2016-10-25 20:08:55
    • 수정2016-10-25 22:29:07
    취재K
■ 2015년 8월 4일...그날 어떤 일이? 2015년 8월 4일. 어떤 날인지 기억하십니까?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 DMZ 철책에서 지뢰가 폭발하면서 우리 수색대원 두 명이 크게 다친 이른바 '북한 목함지뢰 도발 사건'이 일어난 날입니다. 당시 하재헌 하사가 두 다리를, 김정원 하사는 한쪽 발을 잃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남북간 긴장이 일촉즉발 상태까지 고조됐다가 남북 고위급 회담을 통해 갈등을 봉합했습니다. [연관기사] ☞ 군 “DMZ 지뢰 폭발 사고는 북한 소행…의도된 도발”(2015.08.10.) 우리 국민들은 당시 비무장지대에 북한군이 고의적으로 지뢰를 매설한 사실에 분노하는 한편, 젊은 나이에 신체적 고통과 불편을 겪게 된 두 병사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겠죠? 넉달간의 재활 훈련 뒤 김정원 하사가 껑충 뛰어 보일 때 모두가 진심 어린 마음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1년 여가 지나고 모든 게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 연극으로 재조명된 北 지뢰 도발 사건...'DMZ 1584' 올해 10월 1일 국군의 날을 맞아 관련 기획을 준비하던 KBS <남북의 창>팀은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북한의 지뢰 도발에 따른 위기와 고통을 우리 병사들이 전우애로 극복하는 과정이 연극으로 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극의 제목은 'DMZ 1584'. DMZ에서 지뢰 도발 사건이 터진 2015년 8월 4일을 잊지 말자는 취지였습니다. 이같은 사연은 <남북의창>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DMZ의 그날'이란 제목으로 국군의 날 아침 KBS 1TV로 방송됐습니다. 연극도 10월 초 이틀동안 무대에 올랐습니다. <남북의창>이 'DMZ 1584'를 소개한데는 연극의 기획과 제작 과정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배우 최 일화 씨(한극연극배우협회 이사장)가 언론 보도로 수색대원들의 이야기를 접한 뒤 해당 부대와 수색대원들을 꾸준히 방문하고 설득해 연극으로 완성시켰기 때문입니다. 최 씨는 "길이 전해질 영웅담으로서 이 연극을 바치겠다"는 수색대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묵묵히 연극을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 일화 씨의 이런 순수한 의도에 다른 배우들이 하나 둘 동참했습니다. 배우들은 당시 수색대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해당 부대도 찾아가 그날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볼 정도로 열정을 쏟았습니다. ■ 난데없는 北의 비난 공세...왜? 그런데 지난 24일 북한의 대외매체들이 난데 없이 연극 'DMZ 1584'를 비난하는 글을 쏟아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 '대결 광대극의 종착점은 죽음과 파멸뿐'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대결을 선동하는 반공화국 연극 'DMZ 1584'가 남조선 사회에 버젓이 나돌고 있는 형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대외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박근혜 정권이 지난해 비무장지대에서 있었던 '8월 사건'을 가지고 연극 'DMZ 1584'를 만들어 공연놀음을 벌이며 반공화국 대결 분위기를 고취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연극의 취지를 왜곡하고 마치 정부의 사주로 연극을 만든 것처럼 왜곡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2016.10.24)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2016.10.24) 이에 대해 연극을 기획했던 최 일화 씨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최 씨는 KBS와의 통화에서 연극을 기획, 제작하는데 정부의 지시는 커녕 지원금도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사재를 털어 제작했고 경제적 손실은 컸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아픔을 보듬어 주겠다는 부상 병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연극 무대를 마련했고, 그래서 내용도 재활 의지, 인간 승리를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정말 의아하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민간 차원의 연극 공연을 비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사실 이 연극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공연도 경기도 파주에서 이틀간 세차례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난해 자신들의 도발과 그에 따른 남북간 긴장 상황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라는 방증입니다. 당시 우리측이 대대적인 확성기 방송으로 맞대응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군에 '선조치 후보고'를 지시하자, 북한도 준전시 상태를 선포할 정도로 한반도 긴장 수위가 고조됐었습니다. 이후 우리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북측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참석한 고위급 회담이 열려 상황을 봉합했지만, 북한이 실제 확성기 방송을 얼마나 부담스러워하는지를 확인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연극이 1년여만에 무대에 오르고 관련 보도도 나오자 과민 반응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젊은 용사들 고통은 여전...연극은 무대를 못찾아 ‘DMZ 1584’의 실제 주인공들. 앉아있는 사람 중 왼쪽이 김정원 하사, 오른쪽이 하재헌 하사. (사진제공 라미스튜디오) <남북의창>이 연극 'DMZ 1584' 다루면서 아쉬웠던 점은 연극이 10월 초 단 이틀만, 그것도 무료 공연을 하는데 그쳤다는 것입니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공연 일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최일화씨는 비용 문제로 현재 공연 계획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북한의 도발로 부상을 입은 하재헌, 김정원 하사가 마음의 고통이 여전해 보였던 점입니다. 두 사람은 <남북의창> 제작진의 인터뷰를 고사했습니다. 현역 군인 신분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젊은 나이에 신체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데 대한 그늘도 느껴졌습니다. 두 젊은이가 마음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기를, 그리고 그들을 잊지 말자고 뜻을 모았던 배우들의 열정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관기사] ☞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DMZ의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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