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25) 화장, 영원한 여성의 로망 ‘예쁨’
입력 2016.11.02 (18:32)
수정 2016.11.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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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 여인을 바꾸는 마술
거리를 오가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핸드백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마법의 지팡이가 있습니다. 10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이 예쁜 막대기는 아무리 평범한 여성이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립스틱입니다. 신체부위 가운데 가장 관능적인 입술은 원래 음식을 삼키고 물을 마시고 말을 하는 역할을 하는 얼굴 기관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빨간 립스틱을 칠하는 순간 입술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한 여성의 존재 전체를 뒤바꿔놓는 마법의 동굴이 됩니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고대부터 여성은 가장 비싼 보석이나 자연에서 채취한 온갖 안료를 버무려 입술을 칠했습니다. 미인의 대명사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독성이 퍼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곤충의 껍질 등을 짓이겨 입술에 발랐는가 봅니다. 여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입술을 아름답게 칠합니다. 순간 여인들은 날개를 타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긴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붉게 칠한 관능적인 입술에 끌려 성적 욕망을 일으키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합니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립스틱을 '생활인'에 불과한 여성을 '예술가'로 바꾸는 '미(美)의 지팡이' 라고 표현합니다.
'화장'은 아름다운 부분을 돋보이게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을 수정하거나 위장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보면 타인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어디 인간 뿐인가요? 생명을 지니고 번식을 해야 하는 짐승과 식물도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돋보이고 싶어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합니다. 그런 치장은 종족을 보존하고 생식에 유리하다는 점때문에 더욱 진화하기 마련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화장은 매우 발달했나 봅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 지구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도 이미 화장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은 2010년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지방에서 5만년 전 거주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조개껍데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껍데기에서는 파운데이션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노란 색소와 검은 색 광물이 섞여 있는 붉은 색 파우더가 발견됐습니다.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으로 꼽히는 이집트에서도 화장은 매우 유행했다고 합니다. 기원 전 7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고대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에는 눈화장을 짙게 한 남녀의 모습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집트 왕조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 아케니톤의 부인 네페르티티 왕비는 진한 아이라인을 그려넣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로마 제국의 두 영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았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시인의 묘사대로 아름다운 피부와 뇌쇄적인 얼굴을 가꾸기 위해 우유, 알로에, 곤충의 껍질, 다양한 향수를 사용했고, 짙은 아이섀도우와 스모키 화장 등을 했다고 합니다. 고대인들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숭상해 때로는 납성분이 든 화장품 사용도 불사했다고 하니, '빛나는 입술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시인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리스 로마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육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숭상하고 조각과 그림 문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몸의 미를 구현한 만큼 화장술이 더욱 발달했습니다. 기독교적 원죄론에 입각해 육체를 영혼에 비해 열등하거나 죄악시했던 중세의 침체기를 제외한다면, 르네상스 이후 화장은 다시 귀족사회와 부르주아 그리고 평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화장은 좁게는 얼굴에 무엇인가를 바르거나 그리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가발, 염색, 장신구 착용, 문신, 몸단장에 이르기까지 온 몸을 치장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화장을 통해 보다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꿔 사람들의 칭찬과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에는 젊고 늙음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흔살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한 일본의 시인 시바타 토요 할머니는 여인의 이런 지극한 소망을 동시처럼 썼습니다.
아흔일곱에도 화장을 한다니,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다니, 아침에 눈을 뜨면 거울 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앉아 곱게 화장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란 상상만으로도 감동적이지 않나요?
'너머'의 세계로 가고 싶은 욕망
사실 화장은 주로 이성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유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이 곳'을 넘어 '저 곳'으로 가고 싶은 초월의 욕망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화장의 기원과 관련해서 동양이나 서양 모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무녀 등이 얼굴을 치장하는 종교적 의식을 꼽는 학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화장은 새로운 자아로의 변신 수단이었기도 합니다. 화장을 통해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보려는 무의식의 표현인 것이지요. 연극이나 영화 오페라와 같은 공연예술에 등장하는 예술인이나 음악인들이 예외없이 화장을 짙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인간은 누구나 세탁기의 물통처럼 똑같이 돌아가는 따분하고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영화관을 찾기도 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술에 취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장품을 바르고 몸 치장을 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손쉽게 이 반복과 정체의 굴레를 빠져나갑니다.
우리도 친한 사람이 화장을 짙게 하고 나타나면 잘 몰라보는 수가 있지요. 요가원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젊은 선생님은 마치 세속의 아름다움과는 담을 쌓거나, 경멸할 것만 같이 고매한 이성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시인은 좀 거북했겠지요. 그런데 우연히 지하철 역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요가원에서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청바지에 진하게 화장을 한 얼굴. 가면을 벗어던진 경극의 주인공을 본 기분이랄까요? 그렇지만 시인은 잡스럽다기 보다는 호감을 느낍니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 흔히 종교나 심신수련단체에서 인간의 속된 욕망과 쾌락을 경계하는 의미로 화장을 경멸하는 행위가 아마도 시인은 늘 불편했나 봅니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그의 대표적 '토니오 크뢰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건실한 은행원은 예술가가 될 수 없으며, 생활인은 창조하지 못한다" 예술인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고, 창조와는 담을 쌓고 살기 일쑤인 생활인이 매일 매일 예술가가 되고 창조인이 될 수 있는 마술! 바로 화장입니다.
각종 문헌과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도 고조선 시대부터 화장을 즐겨했던 민족이었고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나 신라 무덤에서도 화장과 관련된 유물이 많습니다. 이런 전통은 통일신라에서 화랑에서 절정을 이룬 뒤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이었고 명문 사대부 집안의 규수였던 허난설헌 역시 곱게 화장하고 낭군의 사랑을 받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봉숭아 꽃잎을 절구에 찧어 희디 흰 손가락을 물들이고 그 손가락으로 새벽에 발을 걷으면 마치 붉은 별이 쏟아진 듯 하고, 가야금을 탈 때는 손에서 복사꽃이 피어납니다. 곱게 분 바르고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을 그릴 때는 봉숭아 물들인 손가락에서 붉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 합니다. 거울 앞에 앉아 낭군을 기다리며 정성껏 분 바르고 눈썹과 머리매무새를 다듬는 난설헌의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이 아름다운 싯귀 만큼이나 난설헌은 매일 곱게 화장하고 낭군을 기다렸지만, 지혜로운 부인의 꼴을 봐주지 못하는 남편의 외도와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요절하고 맙니다.
한류의 견인차 K 뷰티
1960년대 중국을 강타했던 '문화혁명'의 광기에 희생된 당시 중국 국가 주석 류샤오치의 이 말은 지금 중국에서 불고 있는 화장 열풍을 예견한 듯 합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의 본능은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도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류 주석은 간파했나 봅니다.
우리나라도 가히 '화장왕국'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특히 해방과 전쟁 이후 본격적인 경제성장 가도에 들어선 1960년 이후 우리의 화장품 산업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합니다. 1960년 총생산액이 1억 원 정도에 불과했던 화장품 산업은 2015년말 기준으로 무려 12조6천억 원으로 세계 10위의 화장품 소비국이 됐습니다.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남성들도 화장품을 부쩍 많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 CNN의 보도와 화장품 업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성이 연간 화장품을 사는 데 지출하는 돈은 10년 전인 2005년 4530억 원 정도였으나, 2007년에는 5000억 원을 넘었고 2012년 1조 원을 넘더니, 2015년에는 1조50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지난해 1인당 구매액도 25달러로 2위인 덴마크의 네 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의 화장품은 대중가요와 드라마 영화 음식 등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이른바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한 몫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장품 소비가 폭발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에서 한국 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른바 K-뷰티 열풍이 중국 대륙에 불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업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중국에서 팔린 한국 화장품은 2억8700만 달러였지만, 2014년에는 5억3400만 달러, 2015년에는 10억6000만 달러로 해마다 두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 동유럽, 동남아, 중남미 등 한국 화장품의 진출은 전 세계를 무대로 어느 때보다 활발합니다. 실제로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11년 8억 달러 정도였는데, 지난 해에는 18억 달러로 2.2배나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2014년 기준으로 세계 화장품 시장은 무려 431억 달러나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18억 달러니까 2%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K 뷰티의 성장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말입니다.
예쁜 여자 신드롬의 명과 암
출근길 화장하는 여인을 보고 썼던 졸시입니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하는 여성,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흔히 보는 장면입니다. 지하철에서도 당당하게 화장할 권리와, 그렇게라도 화장하지 않으면 여성이 살아가기 힘든 우리 사회의 구조 사이에서 페미니즘 논쟁을 비롯한 이런저런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화장품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남성이 세계에서 가장 화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된 것은 반드시 좋게만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특히 페미니즘의 관점이나 정치경제학적 사유 체계에서 보자면, 화장을 비롯한 여성과 남성의 몸가꾸기 문화는 반드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경우 예뻐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좀 노골적으로 말자하면 시집도 잘 가고 취직도 잘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합니다. 남성들의 화장품 소비가 세계 제일이라는 통계는 취직 경쟁, 스펙쌓기 경쟁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나라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방대한 역사적 사료를 분석해 유럽의 풍속사를 계급적 관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에드워드 푹스 역시 화장이나 의상은 철저하게 계급과 신분의 상징이었고, 자본주의 이후에는 교환 가치에 바탕을 둔 상품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분석합니다. 사회학자 이영아씨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와지기 위한 화장도 사실은 철저히 시장에서 모든 것이 교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화장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인간의 비인간화 상품화 정도가 심하다는 말입니다. 최영미 시인도 유럽 여행의 경험을 들어 젊은 여인에게 두터운 화장을 강요하는 나라일수록 여성의 지위가 낮은 가부장적 나라였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워지기 위한 주체적 행위로서의 화장과, 상품과 교환가치 속에서 아름다워지기를 강요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늘 산을 오르고 산에서 세상과 삶의 깊은 뜻을 배우는 산악인이자 시인인 박인식 선생의 말을 곰곰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산이 철따라 초록으로 파랑으로 붉은 색으로 혹은 흰 색으로 얼굴을 바꾸듯이 사람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실제로 요즘 화장의 트렌드도 요란한 인공 화합물을 찍어 바르기보다는 천연식물이나 곡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엷게 바르는 자연친화적 화장이라고 합니다. 산이 과장을 하지 않듯이, 강물과 들판이 허세를 부리지 않듯이 가능한 한 자연미를 살리는 화장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공자님 말씀이라고 비아냥거릴 지도 모르지만, 붕어빵 찍어내듯이 모두 똑같은 화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화장, 나아가 내면의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화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뻐지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만의 개성을 살리는 화장을 하면 좋겠습니다. 값비싼 화장품을 너도나도 사서 진열대에 놓여 팔려가기를 고대하는 상품 같은 화장이 아니라, 때가 되면 계절에 순응해 색깔과 분위기를 바꾸는 저 산과 들의 의연한 화장술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의 소망처럼 얼굴만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텃밭도 가꾸고 화장하는 한 차원 높은 화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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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6-11-04 09:53:46
화장, 여인을 바꾸는 마술
거리를 오가는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핸드백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마법의 지팡이가 있습니다. 10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이 예쁜 막대기는 아무리 평범한 여성이라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스타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바로 립스틱입니다. 신체부위 가운데 가장 관능적인 입술은 원래 음식을 삼키고 물을 마시고 말을 하는 역할을 하는 얼굴 기관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빨간 립스틱을 칠하는 순간 입술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기관이 아니라, 한 여성의 존재 전체를 뒤바꿔놓는 마법의 동굴이 됩니다.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고대부터 여성은 가장 비싼 보석이나 자연에서 채취한 온갖 안료를 버무려 입술을 칠했습니다. 미인의 대명사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독성이 퍼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곤충의 껍질 등을 짓이겨 입술에 발랐는가 봅니다. 여인들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입술을 아름답게 칠합니다. 순간 여인들은 날개를 타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긴 많은 남성들이 여성의 붉게 칠한 관능적인 입술에 끌려 성적 욕망을 일으키는 장면은 영화나 소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합니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립스틱을 '생활인'에 불과한 여성을 '예술가'로 바꾸는 '미(美)의 지팡이' 라고 표현합니다.
'화장'은 아름다운 부분을 돋보이게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을 수정하거나 위장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절해고도(絶海孤島)에서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고 보면 타인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어디 인간 뿐인가요? 생명을 지니고 번식을 해야 하는 짐승과 식물도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돋보이고 싶어 온갖 화려한 치장을 합니다. 그런 치장은 종족을 보존하고 생식에 유리하다는 점때문에 더욱 진화하기 마련입니다.
시인의 표현대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화장은 매우 발달했나 봅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 이전에 지구에 살았던 네안데르탈인도 이미 화장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영국 브리스톨대 연구팀은 2010년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지방에서 5만년 전 거주했던 네안데르탈인의 유적지를 발견했는데 여기에는 조개껍데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껍데기에서는 파운데이션처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노란 색소와 검은 색 광물이 섞여 있는 붉은 색 파우더가 발견됐습니다.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으로 꼽히는 이집트에서도 화장은 매우 유행했다고 합니다. 기원 전 75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이집트 고대 무덤에서 발굴된 벽화에는 눈화장을 짙게 한 남녀의 모습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집트 왕조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제18왕조의 10대 파라오 아케니톤의 부인 네페르티티 왕비는 진한 아이라인을 그려넣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로마 제국의 두 영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사로잡았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시인의 묘사대로 아름다운 피부와 뇌쇄적인 얼굴을 가꾸기 위해 우유, 알로에, 곤충의 껍질, 다양한 향수를 사용했고, 짙은 아이섀도우와 스모키 화장 등을 했다고 합니다. 고대인들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숭상해 때로는 납성분이 든 화장품 사용도 불사했다고 하니, '빛나는 입술을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시인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리스 로마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육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숭상하고 조각과 그림 문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몸의 미를 구현한 만큼 화장술이 더욱 발달했습니다. 기독교적 원죄론에 입각해 육체를 영혼에 비해 열등하거나 죄악시했던 중세의 침체기를 제외한다면, 르네상스 이후 화장은 다시 귀족사회와 부르주아 그리고 평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화장은 좁게는 얼굴에 무엇인가를 바르거나 그리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넓게는 가발, 염색, 장신구 착용, 문신, 몸단장에 이르기까지 온 몸을 치장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화장을 통해 보다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꿔 사람들의 칭찬과 주목을 받고 싶은 욕망에는 젊고 늙음의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흔살이 넘어 시를 쓰기 시작한 일본의 시인 시바타 토요 할머니는 여인의 이런 지극한 소망을 동시처럼 썼습니다.
아흔일곱에도 화장을 한다니,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다니, 아침에 눈을 뜨면 거울 앞에 설레는 마음으로 앉아 곱게 화장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이란 상상만으로도 감동적이지 않나요?
'너머'의 세계로 가고 싶은 욕망
사실 화장은 주로 이성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유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이 곳'을 넘어 '저 곳'으로 가고 싶은 초월의 욕망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화장의 기원과 관련해서 동양이나 서양 모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무녀 등이 얼굴을 치장하는 종교적 의식을 꼽는 학자들이 있는 것을 보면, 화장은 새로운 자아로의 변신 수단이었기도 합니다. 화장을 통해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 환상의 세계로 넘어가보려는 무의식의 표현인 것이지요. 연극이나 영화 오페라와 같은 공연예술에 등장하는 예술인이나 음악인들이 예외없이 화장을 짙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인간은 누구나 세탁기의 물통처럼 똑같이 돌아가는 따분하고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영화관을 찾기도 하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술에 취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화장품을 바르고 몸 치장을 하는 순간 인간은 가장 손쉽게 이 반복과 정체의 굴레를 빠져나갑니다.
우리도 친한 사람이 화장을 짙게 하고 나타나면 잘 몰라보는 수가 있지요. 요가원에서 요가를 가르치는 젊은 선생님은 마치 세속의 아름다움과는 담을 쌓거나, 경멸할 것만 같이 고매한 이성의 소유자로 보입니다. 시인은 좀 거북했겠지요. 그런데 우연히 지하철 역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요가원에서와는 전혀 딴판입니다. 청바지에 진하게 화장을 한 얼굴. 가면을 벗어던진 경극의 주인공을 본 기분이랄까요? 그렇지만 시인은 잡스럽다기 보다는 호감을 느낍니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 흔히 종교나 심신수련단체에서 인간의 속된 욕망과 쾌락을 경계하는 의미로 화장을 경멸하는 행위가 아마도 시인은 늘 불편했나 봅니다.
독일의 소설가 토마스 만은 그의 대표적 '토니오 크뢰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건실한 은행원은 예술가가 될 수 없으며, 생활인은 창조하지 못한다" 예술인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고, 창조와는 담을 쌓고 살기 일쑤인 생활인이 매일 매일 예술가가 되고 창조인이 될 수 있는 마술! 바로 화장입니다.
각종 문헌과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도 고조선 시대부터 화장을 즐겨했던 민족이었고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나 신라 무덤에서도 화장과 관련된 유물이 많습니다. 이런 전통은 통일신라에서 화랑에서 절정을 이룬 뒤 고려와 조선시대,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이었고 명문 사대부 집안의 규수였던 허난설헌 역시 곱게 화장하고 낭군의 사랑을 받고 싶기는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봉숭아 꽃잎을 절구에 찧어 희디 흰 손가락을 물들이고 그 손가락으로 새벽에 발을 걷으면 마치 붉은 별이 쏟아진 듯 하고, 가야금을 탈 때는 손에서 복사꽃이 피어납니다. 곱게 분 바르고 초승달처럼 고운 눈썹을 그릴 때는 봉숭아 물들인 손가락에서 붉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듯 합니다. 거울 앞에 앉아 낭군을 기다리며 정성껏 분 바르고 눈썹과 머리매무새를 다듬는 난설헌의 조금은 쓸쓸한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이 아름다운 싯귀 만큼이나 난설헌은 매일 곱게 화장하고 낭군을 기다렸지만, 지혜로운 부인의 꼴을 봐주지 못하는 남편의 외도와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요절하고 맙니다.
한류의 견인차 K 뷰티
1960년대 중국을 강타했던 '문화혁명'의 광기에 희생된 당시 중국 국가 주석 류샤오치의 이 말은 지금 중국에서 불고 있는 화장 열풍을 예견한 듯 합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들의 본능은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도 공자와 노자의 가르침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류 주석은 간파했나 봅니다.
우리나라도 가히 '화장왕국'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특히 해방과 전쟁 이후 본격적인 경제성장 가도에 들어선 1960년 이후 우리의 화장품 산업은 양과 질적인 면에서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합니다. 1960년 총생산액이 1억 원 정도에 불과했던 화장품 산업은 2015년말 기준으로 무려 12조6천억 원으로 세계 10위의 화장품 소비국이 됐습니다.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는 남성들도 화장품을 부쩍 많이 쓰고 있습니다.
최근 CNN의 보도와 화장품 업계의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성이 연간 화장품을 사는 데 지출하는 돈은 10년 전인 2005년 4530억 원 정도였으나, 2007년에는 5000억 원을 넘었고 2012년 1조 원을 넘더니, 2015년에는 1조5000억 원을 넘었습니다. 지난해 1인당 구매액도 25달러로 2위인 덴마크의 네 배를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의 화장품은 대중가요와 드라마 영화 음식 등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이른바 한류를 확산시키는 데 한 몫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특히 화장품 소비가 폭발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화장품에서 한국 화장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른바 K-뷰티 열풍이 중국 대륙에 불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업진흥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중국에서 팔린 한국 화장품은 2억8700만 달러였지만, 2014년에는 5억3400만 달러, 2015년에는 10억6000만 달러로 해마다 두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 뿐만 아니라 러시아, 동유럽, 동남아, 중남미 등 한국 화장품의 진출은 전 세계를 무대로 어느 때보다 활발합니다. 실제로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11년 8억 달러 정도였는데, 지난 해에는 18억 달러로 2.2배나 늘었습니다. 그렇지만 2014년 기준으로 세계 화장품 시장은 무려 431억 달러나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액이 18억 달러니까 2%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앞으로도 K 뷰티의 성장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말입니다.
예쁜 여자 신드롬의 명과 암
출근길 화장하는 여인을 보고 썼던 졸시입니다.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화장하는 여성,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흔히 보는 장면입니다. 지하철에서도 당당하게 화장할 권리와, 그렇게라도 화장하지 않으면 여성이 살아가기 힘든 우리 사회의 구조 사이에서 페미니즘 논쟁을 비롯한 이런저런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화장품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남성이 세계에서 가장 화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된 것은 반드시 좋게만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특히 페미니즘의 관점이나 정치경제학적 사유 체계에서 보자면, 화장을 비롯한 여성과 남성의 몸가꾸기 문화는 반드시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경우 예뻐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좀 노골적으로 말자하면 시집도 잘 가고 취직도 잘 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합니다. 남성들의 화장품 소비가 세계 제일이라는 통계는 취직 경쟁, 스펙쌓기 경쟁이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나라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방대한 역사적 사료를 분석해 유럽의 풍속사를 계급적 관점에서 예리하게 분석한 에드워드 푹스 역시 화장이나 의상은 철저하게 계급과 신분의 상징이었고, 자본주의 이후에는 교환 가치에 바탕을 둔 상품화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분석합니다. 사회학자 이영아씨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비판합니다.
그러니까 아름다와지기 위한 화장도 사실은 철저히 시장에서 모든 것이 교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라는 것이고, 그렇게 본다면 화장을 많이 하는 나라일수록 인간의 비인간화 상품화 정도가 심하다는 말입니다. 최영미 시인도 유럽 여행의 경험을 들어 젊은 여인에게 두터운 화장을 강요하는 나라일수록 여성의 지위가 낮은 가부장적 나라였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워지기 위한 주체적 행위로서의 화장과, 상품과 교환가치 속에서 아름다워지기를 강요당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늘 산을 오르고 산에서 세상과 삶의 깊은 뜻을 배우는 산악인이자 시인인 박인식 선생의 말을 곰곰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산이 철따라 초록으로 파랑으로 붉은 색으로 혹은 흰 색으로 얼굴을 바꾸듯이 사람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화장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실제로 요즘 화장의 트렌드도 요란한 인공 화합물을 찍어 바르기보다는 천연식물이나 곡물에서 추출한 물질을 엷게 바르는 자연친화적 화장이라고 합니다. 산이 과장을 하지 않듯이, 강물과 들판이 허세를 부리지 않듯이 가능한 한 자연미를 살리는 화장이 필요하지 않나 합니다.
공자님 말씀이라고 비아냥거릴 지도 모르지만, 붕어빵 찍어내듯이 모두 똑같은 화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화장, 나아가 내면의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화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예뻐지고 싶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인간의 본능에 충실하면서도, 자기 만의 개성을 살리는 화장을 하면 좋겠습니다. 값비싼 화장품을 너도나도 사서 진열대에 놓여 팔려가기를 고대하는 상품 같은 화장이 아니라, 때가 되면 계절에 순응해 색깔과 분위기를 바꾸는 저 산과 들의 의연한 화장술을 배우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님의 소망처럼 얼굴만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텃밭도 가꾸고 화장하는 한 차원 높은 화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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