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있나” 질문에 말문 막힌 국악원…당시 녹취 입수

입력 2016.11.14 (18:56) 수정 2016.11.14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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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국립국악원 '소월산천' 공연을 불과 2주 앞두고 국악원으로부터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소월산천' 공연을 2주 앞두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소월산천'은 국악 연주단체인 앙상블시나위를 주축으로 기타리스트 정재일, 그리고 박근형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골목길이 함께 만드는 협업 공연이었다. 김소월의 시와 삶을 다룬 작품으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의 '금요공감' 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획된 것이었다.

국립국악원 공연 담당자였던 A연구관은 "연극은 다 빼고 앙상블시나위와 정재일씨만 공연하는 게 좋겠다"면서 공연 형식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미 8월에 확정된 공연을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이다. 그것도 공연을 목전에 두고.


■ '연극은 빼야 한다' 이 말만 되풀이... 왜?

A연구관은 연극적 대사가 풍류사랑방 공연장에 잘 어울리지 않고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공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신현식 대표는 "음악과 시가 서로 어울리는 공연으로 일반적인 연극 대사와는 다르다"면서 설득했지만 A연구관은 "연극은 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는 지난 2013년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 이후 문화계에서 공공연하게 존재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었던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특히 당시는 국정감사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 대상에 선정되고도 강압에 의해 지원사업을 포기했다는 폭로가 터져나온 후였다.

박근형 연출가박근형 연출가

■ '박근형 연출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그거 참... 얘기 못합니다.'

대화는 겉돌았고,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는 A연구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고 A연구관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께요. 혹시 박근형 연출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국립국악원 A연구관> "아니 저희는 연극은 넣지 말고 그냥 시나위앙상블 하고 정재일 정도만 하면..."

<신현식> "예 알겠습니다. 그건 알겠고. 그러니까 박근형 연출 때문에 그러신 것도 있죠?"

<ㅇㅇ연구관> "그거는 참...제가 뭐라고 얘기 못합니다"

<신현식> "짐작은 하는데 그런 식으로 아...우리 작품까지 훼손해 가면서 그럴 필요 없잖아요. 이럴 땐 정말 눈물이 나요..."

<연구관> "아..."

국악원의 방침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신현식 대표는 멤버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면서 통화를 마쳤다. A연구관은 자신의 입장이 어렵다는 말로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신현식> "어떤 뜻으로 하신 말인지 이제 감이 와요...알겠습니다. 일단 멤버들하고 협의해 보겠습니다. 어렵게 말씀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ㅇㅇ연구관> "저 정말 어렵습니다"

<신현식> "어떤 입장이신지 제가..."

<ㅇㅇ연구관> "제가 예술가 존중하고...진짜로...허허...진짜 어려운 말을 꺼내는 거고요"

■ 당시 통화 이후 공연 포기... 블랙리스트 논란 확산

이 통화 이후 앙상블시나위와 기타리스트 정재일씨는 박근형 연출을 제외하라는 국악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연을 포기했다. 또 금요공감 무대를 이끌어왔던 김서령 예술감독도 "예술가들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감독직을 사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예술위원회에 이어 국립국악원에서도 예술검열 의혹이 터져나왔고 블랙리스트 논란은 문화계 전반으로 퍼졌다.

당시 국악원은 "공연장 특성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협의하는 과정에 발생한 일로, 예술가를 향한 정치적 탄압이나 검열은 없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KBS는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와 통화한 A연구관에게 1년 전 통화내용을 다시 물었다. A연구관은 정확한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공연장 특성 때문에 연극적 요소를 뺀 것으로, 상부에서 결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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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리스트 있나” 질문에 말문 막힌 국악원…당시 녹취 입수
    • 입력 2016-11-14 18:56:33
    • 수정2016-11-14 22:43:48
    취재K
지난해 10월, 국립국악원 '소월산천' 공연을 불과 2주 앞두고 국악원으로부터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 '소월산천' 공연을 2주 앞두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소월산천'은 국악 연주단체인 앙상블시나위를 주축으로 기타리스트 정재일, 그리고 박근형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골목길이 함께 만드는 협업 공연이었다. 김소월의 시와 삶을 다룬 작품으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의 '금요공감' 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획된 것이었다. 국립국악원 공연 담당자였던 A연구관은 "연극은 다 빼고 앙상블시나위와 정재일씨만 공연하는 게 좋겠다"면서 공연 형식을 완전히 바꿀 것을 요구했다. 이미 8월에 확정된 공연을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이다. 그것도 공연을 목전에 두고. ■ '연극은 빼야 한다' 이 말만 되풀이... 왜? A연구관은 연극적 대사가 풍류사랑방 공연장에 잘 어울리지 않고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공연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신현식 대표는 "음악과 시가 서로 어울리는 공연으로 일반적인 연극 대사와는 다르다"면서 설득했지만 A연구관은 "연극은 빼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연출가는 지난 2013년 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연극 '개구리' 이후 문화계에서 공공연하게 존재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었던 '블랙리스트 명단'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특히 당시는 국정감사에서 박근형 연출가가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 대상에 선정되고도 강압에 의해 지원사업을 포기했다는 폭로가 터져나온 후였다. 박근형 연출가 ■ '박근형 연출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그거 참... 얘기 못합니다.' 대화는 겉돌았고,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는 A연구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고 A연구관은 어렵게 말을 이었다.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볼께요. 혹시 박근형 연출 때문에 그러시는 건가요?" <국립국악원 A연구관> "아니 저희는 연극은 넣지 말고 그냥 시나위앙상블 하고 정재일 정도만 하면..." <신현식> "예 알겠습니다. 그건 알겠고. 그러니까 박근형 연출 때문에 그러신 것도 있죠?" <ㅇㅇ연구관> "그거는 참...제가 뭐라고 얘기 못합니다" <신현식> "짐작은 하는데 그런 식으로 아...우리 작품까지 훼손해 가면서 그럴 필요 없잖아요. 이럴 땐 정말 눈물이 나요..." <연구관> "아..." 국악원의 방침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신현식 대표는 멤버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면서 통화를 마쳤다. A연구관은 자신의 입장이 어렵다는 말로 심경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신현식> "어떤 뜻으로 하신 말인지 이제 감이 와요...알겠습니다. 일단 멤버들하고 협의해 보겠습니다. 어렵게 말씀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ㅇㅇ연구관> "저 정말 어렵습니다" <신현식> "어떤 입장이신지 제가..." <ㅇㅇ연구관> "제가 예술가 존중하고...진짜로...허허...진짜 어려운 말을 꺼내는 거고요" ■ 당시 통화 이후 공연 포기... 블랙리스트 논란 확산 이 통화 이후 앙상블시나위와 기타리스트 정재일씨는 박근형 연출을 제외하라는 국악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연을 포기했다. 또 금요공감 무대를 이끌어왔던 김서령 예술감독도 "예술가들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감독직을 사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예술위원회에 이어 국립국악원에서도 예술검열 의혹이 터져나왔고 블랙리스트 논란은 문화계 전반으로 퍼졌다. 당시 국악원은 "공연장 특성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협의하는 과정에 발생한 일로, 예술가를 향한 정치적 탄압이나 검열은 없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KBS는 앙상블시나위 신현식 대표와 통화한 A연구관에게 1년 전 통화내용을 다시 물었다. A연구관은 정확한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공연장 특성 때문에 연극적 요소를 뺀 것으로, 상부에서 결정한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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