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소비자 고발’에 망신당한 한식당들

입력 2016.11.16 (15:28) 수정 2016.11.16 (15:2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러시아판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한식당을 '급습'하다

러시아 방송사의 대표적인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위생 문제 등으로 한식당들이 연속 망신을 당했다. 러시아 방송사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식당들이 지적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예능채널인 '뺘트니짜(Пятница)' 방송사가 매주 월·화·수·목 저녁 9시에 방송하는 '레비조로(Ревизорро)'라는 프로그램이다.

러시아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인 ‘레비조로’ 포스터러시아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인 ‘레비조로’ 포스터

감찰관이라는 뜻을 지닌 '레비조로'는 일종의 탐사 프로그램으로, 러시아 내 호텔, 레스토랑, 카페, 클럽 등 모든 업소에 대한 소개 및 검증 프로그램이다. 모바일 시스템을 통해 시청자들이 각 업소에 대해 별점를 메기고, '레비조로' 쇼를 통해 이 업소들의 실체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진행을 맡고 있는 엘레나 레투차야,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진행을 맡고 있는 엘레나 레투차야,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진행자는 '엘레나 레투차야'라고 하는 180cm 장신의 전형적인 러시아 금발 아나운서다. 2014년 6월부터 시작된 방송에서 레투차야는 흰색 면장갑을 끼고 호텔, 식당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위생 상태 등 각종 문젯거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소비자 고발', '불만 제로', '먹거리 X파일' 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 줄줄이 망신당한 한식당들

11월 9일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 희생양(?)은 북한 식당 A였다. A 식당은 지난해 7월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인근에 개업한 북한 식당이다. 북한 대사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북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A 식당은 위생 상태 등에서 13가지 지적을 받았다. 요리사들은 위생 장갑을 끼지 않았고,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보관돼 있는 등 엉망인 상태였다. 식재료에는 어떤 음식인지 표기돼 있지 않았고, 어떤 재료에는 천 조각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취재진이 들이닥치자 직원들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서둘러 치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식당 안에 취침실이 있고, 개인 소지품 등이 있는 것으로 미뤄 불법 근로자가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북한 노동신문 기자가 나타나더니 촬영을 중지하라고 거세게 항의하고 곧이어 거친 몸싸움을 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이튿날인 11월 10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식당 B가 등장했다. B식당은 90년대 중반 한국인이 개업했지만, 2000년대 중반 고려인이 인수한 모스크바 시내 대표적인 한식당이다.

B 식당은 11가지에 걸쳐 지적을 받았다. 부엌은 위생상태가 불량하고, 요리사는 위생 장갑도 끼지 않았으며, 상한 재료도 보였다. 음식재료에 명칭도 제대로 쓰여 있지 않았고, 보관 상태도 엉망이었다. 취재진에 대한 직원들의 위압적인 자세도 지적 사항으로 꼽혔다. 결과적으로 평점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다.


엉뚱한 것은, 진행자가 B 식당의 웹사이트를 보면 한국에서 온 요리사들이 한국 음식을 만든다고 돼 있다면서, 고려인 요리사에게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자료 화면으로 한국의 거리를 편집해 방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방송에 나간 거리는 한국이 아닌 중국의 거리였고, 일부 한국인들이 그 장면에 화가 나서 방송사 측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 러시아 법이 보장한 취재 권한

진행자가 취재 증명서를 제시하는 장면,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진행자가 취재 증명서를 제시하는 장면,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취재 과정을 보면서 눈길을 끈 것은, 국내 고발 프로그램의 경우 '몰카(몰래 카메라)'가 자주 등장하는 반면, 러시아 고발 프로그램 취재진은 카메라를 켜고 당당하게 들어간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는 몰카 사용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레비조로'를 보면, 취재진이 업소에 들이닥치면 당연히 직원들이 촬영을 못 하게 완강히 저항하게 마련이다. 그때 진행자 레투차야가 취재 기자증을 들어 보이면서 자신들은 러시아 연방법이 보장한 권한에 따라 정당하게 취재를 하는 것이라고 고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레비조로'가 주장하는 러시아 연방법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 연방법 2124호 제47조 (주요 내용 발췌)
"저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 정보의 탐색, 요청, 접수 및 분배
- 정부 기관, 조직, 대기업, 기관, 공공 기관, 대언론 서비스 기관 방문
- 법으로 보호받는 비밀 외에 문서와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 등"

◆ 러시아 정부 법령 1036호 (주요 내용 발췌)
"소비자는 주요 소비재와 음식물의 질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취득할 권한이 있다. 그 정보가 거래상 비밀이 아니라면."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레비조로'의 진행자인 레투차야는 호텔, 식당 등 해당 업소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하다고 한다. 하얀 면장갑을 끼고 식당 곳곳을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한식당들이 망신당한 경우를 보고 한인 사회에서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재수 없게 시범 케이스에 걸렸다', '하얀 면장갑으로 문지르면 먼지 안 나오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다른 한식당들에 비상이 걸렸다' 등등.

사실 음식은 가장 대표적인 한 나라의 문화 아이콘이다. 한식당은 그런 한국 문화를 외국에 전파하는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점의 기본은 청결과 매너라 하겠다. 이번 해프닝이 타산지석이 됐으면 좋겠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러시아판 ‘소비자 고발’에 망신당한 한식당들
    • 입력 2016-11-16 15:28:36
    • 수정2016-11-16 15:29:46
    취재K
■ 러시아판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한식당을 '급습'하다 러시아 방송사의 대표적인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서 위생 문제 등으로 한식당들이 연속 망신을 당했다. 러시아 방송사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식당들이 지적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러시아의 예능채널인 '뺘트니짜(Пятница)' 방송사가 매주 월·화·수·목 저녁 9시에 방송하는 '레비조로(Ревизорро)'라는 프로그램이다. 러시아의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인 ‘레비조로’ 포스터 감찰관이라는 뜻을 지닌 '레비조로'는 일종의 탐사 프로그램으로, 러시아 내 호텔, 레스토랑, 카페, 클럽 등 모든 업소에 대한 소개 및 검증 프로그램이다. 모바일 시스템을 통해 시청자들이 각 업소에 대해 별점를 메기고, '레비조로' 쇼를 통해 이 업소들의 실체를 검증하는 방식이다, 진행을 맡고 있는 엘레나 레투차야,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진행자는 '엘레나 레투차야'라고 하는 180cm 장신의 전형적인 러시아 금발 아나운서다. 2014년 6월부터 시작된 방송에서 레투차야는 흰색 면장갑을 끼고 호텔, 식당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위생 상태 등 각종 문젯거리(?)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소비자 고발', '불만 제로', '먹거리 X파일' 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 줄줄이 망신당한 한식당들 11월 9일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첫 번째 희생양(?)은 북한 식당 A였다. A 식당은 지난해 7월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인근에 개업한 북한 식당이다. 북한 대사관 근처에 자리 잡고 있어 북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A 식당은 위생 상태 등에서 13가지 지적을 받았다. 요리사들은 위생 장갑을 끼지 않았고, 냉장고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이 보관돼 있는 등 엉망인 상태였다. 식재료에는 어떤 음식인지 표기돼 있지 않았고, 어떤 재료에는 천 조각이 들어가 있기도 했다. 취재진이 들이닥치자 직원들이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서둘러 치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식당 안에 취침실이 있고, 개인 소지품 등이 있는 것으로 미뤄 불법 근로자가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도 제기됐다. 북한 노동신문 기자가 나타나더니 촬영을 중지하라고 거세게 항의하고 곧이어 거친 몸싸움을 하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이튿날인 11월 10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식당 B가 등장했다. B식당은 90년대 중반 한국인이 개업했지만, 2000년대 중반 고려인이 인수한 모스크바 시내 대표적인 한식당이다. B 식당은 11가지에 걸쳐 지적을 받았다. 부엌은 위생상태가 불량하고, 요리사는 위생 장갑도 끼지 않았으며, 상한 재료도 보였다. 음식재료에 명칭도 제대로 쓰여 있지 않았고, 보관 상태도 엉망이었다. 취재진에 대한 직원들의 위압적인 자세도 지적 사항으로 꼽혔다. 결과적으로 평점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다. 엉뚱한 것은, 진행자가 B 식당의 웹사이트를 보면 한국에서 온 요리사들이 한국 음식을 만든다고 돼 있다면서, 고려인 요리사에게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자료 화면으로 한국의 거리를 편집해 방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방송에 나간 거리는 한국이 아닌 중국의 거리였고, 일부 한국인들이 그 장면에 화가 나서 방송사 측에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 러시아 법이 보장한 취재 권한 진행자가 취재 증명서를 제시하는 장면,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취재 과정을 보면서 눈길을 끈 것은, 국내 고발 프로그램의 경우 '몰카(몰래 카메라)'가 자주 등장하는 반면, 러시아 고발 프로그램 취재진은 카메라를 켜고 당당하게 들어간다는 점이다. 러시아에서는 몰카 사용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레비조로'를 보면, 취재진이 업소에 들이닥치면 당연히 직원들이 촬영을 못 하게 완강히 저항하게 마련이다. 그때 진행자 레투차야가 취재 기자증을 들어 보이면서 자신들은 러시아 연방법이 보장한 권한에 따라 정당하게 취재를 하는 것이라고 고지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고로 '레비조로'가 주장하는 러시아 연방법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 연방법 2124호 제47조 (주요 내용 발췌) "저널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 정보의 탐색, 요청, 접수 및 분배 - 정부 기관, 조직, 대기업, 기관, 공공 기관, 대언론 서비스 기관 방문 - 법으로 보호받는 비밀 외에 문서와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 등" ◆ 러시아 정부 법령 1036호 (주요 내용 발췌) "소비자는 주요 소비재와 음식물의 질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취득할 권한이 있다. 그 정보가 거래상 비밀이 아니라면." ‘레비조로’ 방송 영상 캡처 '레비조로'의 진행자인 레투차야는 호텔, 식당 등 해당 업소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자자하다고 한다. 하얀 면장갑을 끼고 식당 곳곳을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취재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한식당들이 망신당한 경우를 보고 한인 사회에서 말들이 많은 것 같다. '재수 없게 시범 케이스에 걸렸다', '하얀 면장갑으로 문지르면 먼지 안 나오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 '다른 한식당들에 비상이 걸렸다' 등등. 사실 음식은 가장 대표적인 한 나라의 문화 아이콘이다. 한식당은 그런 한국 문화를 외국에 전파하는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식점의 기본은 청결과 매너라 하겠다. 이번 해프닝이 타산지석이 됐으면 좋겠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