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피해 학생에 방사능 취급…日 사회 충격

입력 2016.11.16 (19:37) 수정 2016.11.1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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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그래서 난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해온 후쿠시마 출신 소년이 적은 이 한 구절은 무엇이 그를 버티게 해줬는지를 알게 해 준다.

2011년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와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소년은 부모를 따라 요코하마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것을 목격하고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이미 안고 있던 소년이었지만, 그 소년을 기다리는 건 후쿠시마 출신이기에 겪어야 했던 집단 따돌림, 이지메였다.

"세균 취급을 당하고, 방사능이라고 해 늘 괴로웠다"

"후쿠시마 사람은 괴롭힘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었다"
(수기 중에)

수기 일부 [NHK 방송 캡처]수기 일부 [NHK 방송 캡처]

후쿠시마 출신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어린 소년의 짐. 결국 소년은 2012년 초등학교 3학년 첫 등교 거부를 시작으로 자신의 괴로움을 표했지만 아무도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학교는) 믿어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선생님께 말했지만 무시 당했다"
(수기 중에)


그러는 사이 "배상금을 받았지? 돈 가져와"라는 괴롭힘 속에 동급생 등에게 빼앗긴 돈만 1500만 원에 이르는 지경이 됐다.

"돈을 가져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답답하고, 분했지만 거절하면 또 이지메가 시작될거라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섭고 어쩔 수가 없었다"
(수기 중에)

2번의 등교 거부와 부모의 호소 속에 결국 드러나게 된 이지메의 실상들. 특히 이번 사건이 후쿠시마라는 아픔이 있는 고향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주 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후쿠시마 내 가설 주택과 어린이들후쿠시마 내 가설 주택과 어린이들

후쿠시마에서 이주해 나간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후쿠시마시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후쿠시마 출신 아이들에 대한 이지메에 대해 들은 것은 원전폭발사고 이후 2013년 정도까지가 많았다"며 "이전에도 도쿄 부근으로 이사한 부모로부터 아이 이름에 '세슘'을 붙여 불러 괴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메 속에서도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지켰던 소년은 이번에는 또 다른 집단 따돌림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며 수기를 공개하기로 했단다. 담당 변호사는 소년이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자신은 이지메를 당해도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한다"며 수기 공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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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원전 피해 학생에 방사능 취급…日 사회 충격
    • 입력 2016-11-16 19:37:06
    • 수정2016-11-16 19:59:19
    취재K
"지진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그래서 난 살겠다고 마음 먹었다"

집단 따돌림을 당해온 후쿠시마 출신 소년이 적은 이 한 구절은 무엇이 그를 버티게 해줬는지를 알게 해 준다.

2011년 후쿠시마를 덮친 쓰나미와 원자력 발전소 폭발사고.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소년은 부모를 따라 요코하마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어갔던 것을 목격하고 가슴 속 깊은 상처를 이미 안고 있던 소년이었지만, 그 소년을 기다리는 건 후쿠시마 출신이기에 겪어야 했던 집단 따돌림, 이지메였다.

"세균 취급을 당하고, 방사능이라고 해 늘 괴로웠다"

"후쿠시마 사람은 괴롭힘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었다"
(수기 중에)

수기 일부 [NHK 방송 캡처]
후쿠시마 출신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어린 소년의 짐. 결국 소년은 2012년 초등학교 3학년 첫 등교 거부를 시작으로 자신의 괴로움을 표했지만 아무도 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학교는) 믿어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선생님께 말했지만 무시 당했다"
(수기 중에)


그러는 사이 "배상금을 받았지? 돈 가져와"라는 괴롭힘 속에 동급생 등에게 빼앗긴 돈만 1500만 원에 이르는 지경이 됐다.

"돈을 가져오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답답하고, 분했지만 거절하면 또 이지메가 시작될거라 생각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섭고 어쩔 수가 없었다"
(수기 중에)

2번의 등교 거부와 부모의 호소 속에 결국 드러나게 된 이지메의 실상들. 특히 이번 사건이 후쿠시마라는 아픔이 있는 고향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주 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후쿠시마 내 가설 주택과 어린이들
후쿠시마에서 이주해 나간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후쿠시마시의 시민단체 관계자는 "후쿠시마 출신 아이들에 대한 이지메에 대해 들은 것은 원전폭발사고 이후 2013년 정도까지가 많았다"며 "이전에도 도쿄 부근으로 이사한 부모로부터 아이 이름에 '세슘'을 붙여 불러 괴롭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지메 속에서도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며 자기 생명의 소중함을 지켰던 소년은 이번에는 또 다른 집단 따돌림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며 수기를 공개하기로 했단다. 담당 변호사는 소년이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자신은 이지메를 당해도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한다"며 수기 공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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