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래서 합병 찬성했다” 해명 믿을 수 있나?

입력 2016.11.19 (09:36) 수정 2016.11.19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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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국민연금공단이 한 언론사의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를 하나 냈습니다. 큰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자산을 훼손해가면서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인 셈입니다.

[바로 가기] ☞ 국민연금공단의 보도설명자료

4쪽으로 구성된 설명자료의 핵심은 첫 번째 항목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찬성 결정을 내린 이유'에 담겼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지요. 어떤 내용인지, 의혹을 해소할 만한 수준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설명자료에 있는 '찬성 결정 이유'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 설명자료의 의미를 좀 더 풀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1) 1:0.35라는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주주로서는 손해이지만, 제일모직 주주로서는 이익이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 주식을 비슷한 금액만큼 갖고 있으니 손해와 이익이 상쇄된다.

2) 두 회사가 합병하면 1+1=2+@의 효과가 생겨 합병 회사의 주식 가치가 올라간다. 그러므로 합병에 반대하는 것보다 찬성하는 것이 더 이익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이런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따져 들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생깁니다.

1) 예를 들어, 삼성물산 주식을 1억 원어치, 제일모직 주식을 1억 원어치 가지고 있으면 합병 비율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을까요? 직관적으로 보면, 우산장수와 짚신장수인 두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이쪽에서 손해를 본 것을 저쪽에서 만회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이 논리가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지분율'이라고 말합니다. 합병 비율의 변화에 따라 새로 탄생하는 회사에서 갖게 될 지분율이 달라진다면 '우산장수 짚신장수'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겁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 측이 공시한 합병 비율 1:0.35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산출한 적정 합병 비율은 1:0.46이었지요.

1대 0.35로 합병하게 되면 (뉴)삼성물산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6.7% 정도 됩니다. 반면, 국민연금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던 1대 0.46으로 합병하게 되면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7.1%로 올라갑니다. 0.4%p 더 늘어나는 것이죠.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지분을 제일모직보다 2배 정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입니다.


지난 11월 18일을 기준으로 삼성물산 주식의 시가총액이 26조 원가량이니 0.4%p의 가치는 1천억 원을 넘습니다. 두 주식을 비슷한 금액 만큼 들고 있어도 불합리한 합병 비율을 받아들임으로써 국민연금이 입는 '순손실'이 적지 않다는 얘깁니다.

2) '합병 효과로 주식 가치가 올라가니 반대보다는 찬성이 이익'이라는 논리에 대해,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이 설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국민연금은 찬성과 반대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 둘째 '삼성은 합병안이 부결되면 합병을 아예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당시 국민연금은 합병 성사의 열쇠(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국민연금의 찬성을 끌어내기 위해 애타게 노력한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국민연금이 합병 비율을 적정하다고 판단한 1:0.46으로 올려달라고 삼성 측에 요구할 힘이 있었던 셈입니다. 국민연금은 과연 이런 노력을 했을까요? 찬성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던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그 자리에서 이런 요구를 했을까요?

또 당시 증시에서는 삼성물산 주주들(국민연금을 포함한)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이 합병 비율을 조정해 다시 합병을 추진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이재용 씨 중심으로 만드는데 이 합병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연금이 일단 반대표를 던진 뒤에 합병을 재추진할 때 협상을 통해 국민연금에 더 유리한 합병 비율을 끌어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찬성표를 던지기 전에 이런 '전략적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나 논의를 해봤을까요?

의혹 해명하려면 '회의록' 공개해야

대다수 국민의 노후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더 자세히, 더 구체적으로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의문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찬성 결정을 내린 이유'라며 불과 몇 줄짜리 설명을 내놓는 것이 충분할까요?

[연관 기사] ☞ ‘최순실-삼성-국민연금?’ 정말 국민을 배신했나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홍순탁 정책위원(공인회계사)은 "국민연금이 찬성한 이유가 정말 설명자료에 나온 그대로라면 국민연금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고,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와 협상을 통해 연금 자산의 가치를 높일 기회를 그냥 포기해버린 '무능'을 보여준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정말 억울하다면, 제대로 의혹을 해소하고 싶다면 경제개혁연대의 공개 요구를 거부했던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지금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국회 등에서 전문가들이 참석한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공개하면 됩니다.

객관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회의록 열람을 통해 '찬성 결정'이 충분한 분석과 검토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한다면 '부적절한 결탁'에 대한 의혹은 설 자리가 없을 겁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회복은 연금공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노후가 정말 괜찮을까'를 걱정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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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래서 합병 찬성했다” 해명 믿을 수 있나?
    • 입력 2016-11-19 09:36:27
    • 수정2016-11-19 11:06:33
    취재후·사건후
지난 15일 국민연금공단이 한 언론사의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를 하나 냈습니다. 큰 논란이 일고 있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이 국민들의 자산을 훼손해가면서 삼성그룹 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에 대한 반론인 셈입니다.

[바로 가기] ☞ 국민연금공단의 보도설명자료

4쪽으로 구성된 설명자료의 핵심은 첫 번째 항목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대해 찬성 결정을 내린 이유'에 담겼습니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지요. 어떤 내용인지, 의혹을 해소할 만한 수준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설명자료에 있는 '찬성 결정 이유'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이 설명자료의 의미를 좀 더 풀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1) 1:0.35라는 합병 비율은 삼성물산 주주로서는 손해이지만, 제일모직 주주로서는 이익이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 주식을 비슷한 금액만큼 갖고 있으니 손해와 이익이 상쇄된다.

2) 두 회사가 합병하면 1+1=2+@의 효과가 생겨 합병 회사의 주식 가치가 올라간다. 그러므로 합병에 반대하는 것보다 찬성하는 것이 더 이익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이런 설명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따져 들어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생깁니다.

1) 예를 들어, 삼성물산 주식을 1억 원어치, 제일모직 주식을 1억 원어치 가지고 있으면 합병 비율이 어떻게 되든 별 상관이 없을까요? 직관적으로 보면, 우산장수와 짚신장수인 두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이쪽에서 손해를 본 것을 저쪽에서 만회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이 논리가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 아니라 '지분율'이라고 말합니다. 합병 비율의 변화에 따라 새로 탄생하는 회사에서 갖게 될 지분율이 달라진다면 '우산장수 짚신장수'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겁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 측이 공시한 합병 비율 1:0.35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산출한 적정 합병 비율은 1:0.46이었지요.

1대 0.35로 합병하게 되면 (뉴)삼성물산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6.7% 정도 됩니다. 반면, 국민연금이 적정하다고 판단했던 1대 0.46으로 합병하게 되면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7.1%로 올라갑니다. 0.4%p 더 늘어나는 것이죠.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지분을 제일모직보다 2배 정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결과입니다.


지난 11월 18일을 기준으로 삼성물산 주식의 시가총액이 26조 원가량이니 0.4%p의 가치는 1천억 원을 넘습니다. 두 주식을 비슷한 금액 만큼 들고 있어도 불합리한 합병 비율을 받아들임으로써 국민연금이 입는 '순손실'이 적지 않다는 얘깁니다.

2) '합병 효과로 주식 가치가 올라가니 반대보다는 찬성이 이익'이라는 논리에 대해, 인수합병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이 설명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두 가지 조건이 형성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국민연금은 찬성과 반대 외에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 둘째 '삼성은 합병안이 부결되면 합병을 아예 포기해버린다'

그런데 당시 국민연금은 합병 성사의 열쇠(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습니다. 삼성이 국민연금의 찬성을 끌어내기 위해 애타게 노력한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국민연금이 합병 비율을 적정하다고 판단한 1:0.46으로 올려달라고 삼성 측에 요구할 힘이 있었던 셈입니다. 국민연금은 과연 이런 노력을 했을까요? 찬성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던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은 그 자리에서 이런 요구를 했을까요?

또 당시 증시에서는 삼성물산 주주들(국민연금을 포함한)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될 경우 삼성이 합병 비율을 조정해 다시 합병을 추진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이재용 씨 중심으로 만드는데 이 합병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연금이 일단 반대표를 던진 뒤에 합병을 재추진할 때 협상을 통해 국민연금에 더 유리한 합병 비율을 끌어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찬성표를 던지기 전에 이런 '전략적 시나리오'에 대한 검토나 논의를 해봤을까요?

의혹 해명하려면 '회의록' 공개해야

대다수 국민의 노후자산을 책임지는 국민연금은 이런 질문들에 대해 더 자세히, 더 구체적으로 답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많은 국민이 의문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찬성 결정을 내린 이유'라며 불과 몇 줄짜리 설명을 내놓는 것이 충분할까요?

[연관 기사] ☞ ‘최순실-삼성-국민연금?’ 정말 국민을 배신했나

삼성물산 합병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홍순탁 정책위원(공인회계사)은 "국민연금이 찬성한 이유가 정말 설명자료에 나온 그대로라면 국민연금은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고,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와 협상을 통해 연금 자산의 가치를 높일 기회를 그냥 포기해버린 '무능'을 보여준 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정말 억울하다면, 제대로 의혹을 해소하고 싶다면 경제개혁연대의 공개 요구를 거부했던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지금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최선일 겁니다. 일반에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국회 등에서 전문가들이 참석한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공개하면 됩니다.

객관성을 가진 전문가들이 회의록 열람을 통해 '찬성 결정'이 충분한 분석과 검토 과정을 거쳐 합리적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한다면 '부적절한 결탁'에 대한 의혹은 설 자리가 없을 겁니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 회복은 연금공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노후가 정말 괜찮을까'를 걱정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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