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봉달이’ 이봉주…‘2초 차’ 우승의 추억

입력 2016.12.01 (21:52) 수정 2016.12.0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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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20년 전 오늘인 1996년 12월 1일은 이봉주가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2위를 2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날인데요.

갈수록 뒷걸음질 쳐 이제는 세계 정상권에서 한참 멀어진 한국 마라톤의 현실과 대비돼 더욱 그리운 추억입니다.

스포츠 타임머신, 박선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는 무명에 가까웠던 투과니에게 다 잡은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투과니와 불과 3초밖에 차이 나지 않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녹취> 이봉주(1996년 올림픽선수단 환영식 당시) : "마음은 앞 사람을 따라잡고 싶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이봉주는 하루 50km씩을 뛰며 설욕을 다짐했고, 넉 달 뒤 후쿠오카에서 투과니와 다시 만났습니다.

이례적으로 한겨울인 12월에 열린 대회는 흩날리는 눈발이 보여주듯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는 악조건이었습니다.

이봉주와 경쟁하던 투과니는 올림픽 이후 연습량 부족 탓인지 25km 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봉주는 스페인의 후스다도를 2초 차로 따돌리는 마라톤에서 보기 드문 명승부를 연출했습니다.

<녹취> 이봉주(1996년 올림픽선수단 환영식 당시) : "투과니 선수를 이기고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에 부응한 것 같아 (국민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세계 정상급 대회도 우승한 이봉주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고, '국민 마라토너'로 떠올랐습니다.

<녹취> 공옥희(이봉주 어머니/1996년) :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 전 보지 못하겠어요. 심장이 자꾸 뛰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재 한국마라톤의 영광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이봉주가 2000년에 세운 한국 신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고, 선수들의 기량이 갈수록 뒤처져 리우올림픽에선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유망주 발굴과 육성보다 외국인 선수의 특별 귀화를 먼저 추진할 정도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KBS 뉴스 박선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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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땐 그랬지] ‘봉달이’ 이봉주…‘2초 차’ 우승의 추억
    • 입력 2016-12-01 22:05:05
    • 수정2016-12-01 22: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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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20년 전 오늘인 1996년 12월 1일은 이봉주가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2위를 2초 차로 따돌리고 우승한 날인데요.

갈수록 뒷걸음질 쳐 이제는 세계 정상권에서 한참 멀어진 한국 마라톤의 현실과 대비돼 더욱 그리운 추억입니다.

스포츠 타임머신, 박선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이봉주는 무명에 가까웠던 투과니에게 다 잡은 금메달을 내줬습니다.

투과니와 불과 3초밖에 차이 나지 않아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녹취> 이봉주(1996년 올림픽선수단 환영식 당시) : "마음은 앞 사람을 따라잡고 싶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습니다."

이봉주는 하루 50km씩을 뛰며 설욕을 다짐했고, 넉 달 뒤 후쿠오카에서 투과니와 다시 만났습니다.

이례적으로 한겨울인 12월에 열린 대회는 흩날리는 눈발이 보여주듯 영하의 추위가 몰아치는 악조건이었습니다.

이봉주와 경쟁하던 투과니는 올림픽 이후 연습량 부족 탓인지 25km 지점에서 레이스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봉주는 스페인의 후스다도를 2초 차로 따돌리는 마라톤에서 보기 드문 명승부를 연출했습니다.

<녹취> 이봉주(1996년 올림픽선수단 환영식 당시) : "투과니 선수를 이기고 우승했으면 하는 바람에 부응한 것 같아 (국민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세계 정상급 대회도 우승한 이봉주는 뜨거운 환영을 받았고, '국민 마라토너'로 떠올랐습니다.

<녹취> 공옥희(이봉주 어머니/1996년) :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지 전 보지 못하겠어요. 심장이 자꾸 뛰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재 한국마라톤의 영광은 과거의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이봉주가 2000년에 세운 한국 신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고, 선수들의 기량이 갈수록 뒤처져 리우올림픽에선 최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유망주 발굴과 육성보다 외국인 선수의 특별 귀화를 먼저 추진할 정도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KBS 뉴스 박선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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