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 포퓰리즘 이탈리아 삼키다!

입력 2016.12.05 (13:43) 수정 2016.12.05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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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 [뉴스9] 이탈리아 개헌 부결…유로존 위기 오나?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 등 올 들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됐다. 이탈리아 국민투표와 나란히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중도좌파 성향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72) 전 녹색당 당수가 극우 후보를 누르고 사실상 당선됨으로써 유럽 주요 두 나라가 동시에 포퓰리즘에 희생되는 사태는 면하게 됐다. 하지만 대서양을 오가며 파죽지세로 힘을 키워가고 있는 포퓰리즘이 내년에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세력을 넓힐 가능성도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가 총리가 개헌안 부결이 확정된 후 패배를 인정하고 총리 사퇴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AP]마테오 렌치 이탈리아가 총리가 개헌안 부결이 확정된 후 패배를 인정하고 총리 사퇴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AP]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4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이탈리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사퇴를 선언했다. 렌치 총리는 국민투표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에서 최대 20%p 가까운 격차로 부결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자 5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총리 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렌치 총리는 2014년 2월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올라 지난달 중순 취임 1,000일을 맞았지만 2년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렌치 총리는 국민투표 부결을 위해 활동한 진영이 "놀랍도록 명백한" 승리를 거뒀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하며 "패배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 정부에서의 내 경력은 여기서 끝난다"고 말했다.

렌치 총리는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현행 헌법을 고쳐 상원의원 수를 줄여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지방 정부와의 행정 중복을 막고 관료주의를 철폐하자는 명분으로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쳤고 국민투표 부결 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개헌안 반대 운동에 선봉에 선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 운동 창시자 베페 그릴로[사진=EPA]개헌안 반대 운동에 선봉에 선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 운동 창시자 베페 그릴로[사진=EPA]

렌치 총리의 개헌안은 올 초만 하더라도 60%에 육박하는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운동과 극우 성향의 정당 북부리그 등 야당들은 기성 정권을 심판하는 신임투표로 몰아갔다.

반이민, 반세계화 정서에 편승해 지난 6월 현실화된 브렉시트가 이탈리아 국민투표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고,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마테오 렌치 총리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다. 선동에 능한 오성운동의 창시자 베페 그릴로, 트럼프 당선인처럼 반이민,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는 극우 정당 북부리그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지지세력 결집에 이용하며 렌치를 상대로 총공세에 나섰다. 그 결과 여론조사 최종 공표일인 보름 전 발표된 조사에서는 반대가 찬성을 5∼11% 앞선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찌감치 패배가 확정됐다.

40% 육박한 청년 실업, 젊은이들의 분노

2014년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개헌안이 좌절된 것은 젊은 층의 반대가 특히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탈리아 젊은 세대는 2년 9개월 전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로 취임한 렌치 총리의 개혁 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그의 재임 기간 청년실업률이 체감할 만큼 개선되지 않고, 경제 성장도 지지부진하자 렌치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오성운동 등 야당의 주장에 급격히 기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 경제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지난해 성장률이 0.8%에 불과했고 청년실업률의 경우 40%에 육박하고 있다.

당장 일자리가 없어 부모집에 얹혀살거나, 직업이 있더라도 안정성이 떨어져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나 결혼, 출산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 청년들은 "이탈리아의 미래와 우리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한 렌치 총리의 말에 냉소했다.

'밀물' 난민…올해 유입 난민 사상 최대

청년층이 경제적 원인으로 렌치 총리에게 등을 돌렸다면 밀물처럼 유입되는 이민자와 난민들의 존재는 보수적인 장년층과 노년층이 지지를 철회하는 요인이 됐다. EU와 터키의 난민 송환 협정으로 그리스로 향하는 뱃길이 뜸해짐에 따라 올해 들어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난민의 최대 관문이 됐다. 현재까지 유입된 난민 수는 17만 1천 명으로 종전 최고 기록인 2014년의 17만 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처럼 난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렌치 총리에 실망한 보수적인 장년층이 대거 반대투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개헌안 투표가 제 2의 브렉시트 투표였던 셈이다.

오스트리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패배한 뒤 아내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진=AP]오스트리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패배한 뒤 아내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진=AP]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성향 후보 패배

이탈리아 개헌 투표와 비슷한 시간에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반 난민·반유럽'을 전면에 내세운 극우 성향의 후보가 애초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패배했다. 중도좌파 후보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극우 성향의 후보 노르베르트 호퍼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열세를 뒤집고 사실상 당선이 결정된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스스로 '난민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스탈린 체제의 소련에서 공포 정치를 피해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난민이었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네덜란드계 러시아인, 어머니는 에스토니아인이었다.

판 데어 벨렌은 유럽연합(EU) 체제를 신봉하는 친 유럽주의자다. 오스트리아 경제는 절대적으로 EU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경제관이다. 탈 EU를 주장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과는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고 EU와 협력 관계에 있는 기존 정당들보다도 더 EU에 가깝다. 그는 이날 선거 승리를 선언하면서 "나는 EU와 더 가까운 오스트리아를 위해 싸웠고 논쟁했다"고 말했다.

중도좌파의 전 녹색당 당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를 누르고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AP]중도좌파의 전 녹색당 당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를 누르고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AP]

EU 진영, "오스트리아 대선 결과 환영"

EU 진영에서는 '반 난민. 반유럽'의 진영의 패배라는 의미를 강조하며 선거 결과에 대해 잇따라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성명에서 판 데어 벨렌을 향해 "전폭적인 축하 인사를 건네게 돼 기쁘다"며 "EU 집행위원회를 대표해서, 또 개인적으로도 전면적인 성공을 기원한다"고 크게 환영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트위터에서 "명확한 친유럽 메시지를 지닌 운동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판 데어 벨렌에게 축하인사를 보내며 그의 승리는 국수주의와 '반유럽 포퓰리즘'의 중대한 패배"라고 환영했다.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는 "유럽 전체가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았다"며 "우익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양식과 분별의 명백한 승리"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 지도자들에게 이는 '잠깐의 안도'일 뿐 안심은 이르다는 지적도 곧바로 뒤따랐다. 2018년 9월로 예정됐지만, 이제는 조기에 치러질 것으로 관측되는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자유당이 최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호퍼 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46.4% 득표했다. 극우 성향의 마른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FN) 대표는 "용감하게 싸운 자유당에 축하를 보낸다. 다음 선거는 그들의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포퓰리즘 유럽에 확산할까?

오스트리아에선 약간 주춤했지만, 이탈리아를 장악한 포퓰리즘은 내년에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세력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내년 3월 총선이 예정된 네덜란드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헤이르트 빌더스가 이끄는 극우 정당인 자유당이 중도우파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도 집권 사회당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을 맴돌면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이끄는 극우와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나서는 보수의 대결로 압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연임 도전을 선언한 내년 가을 독일 총선에서도 난민 대규모 유입과 이민자 출신의 테러 등 범죄행위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틈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약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중도에 기반을 둔 전통 정당들을 포퓰리즘 세력이 대체하는 현상이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면서 유럽의 전후 질서가 도전받고 있다"며 "국경과 이민,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유럽적 가치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에서 차례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CNN방송 역시 "트럼프의 승리에 유럽의 포퓰리즘이 자극을 받으며 한때 정치적 변방에 국한됐던 극우, 국수주의 정당, 반유럽 정당들이 이제 전통적인 정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며 앞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도 포퓰리즘에 포섭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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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 [뉴스9] 이탈리아 개헌 부결…유로존 위기 오나?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미국 대선에서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당선 등 올 들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됐다. 이탈리아 국민투표와 나란히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중도좌파 성향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72) 전 녹색당 당수가 극우 후보를 누르고 사실상 당선됨으로써 유럽 주요 두 나라가 동시에 포퓰리즘에 희생되는 사태는 면하게 됐다. 하지만 대서양을 오가며 파죽지세로 힘을 키워가고 있는 포퓰리즘이 내년에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세력을 넓힐 가능성도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가 총리가 개헌안 부결이 확정된 후 패배를 인정하고 총리 사퇴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AP]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4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이탈리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사퇴를 선언했다. 렌치 총리는 국민투표 직후 발표된 출구조사에서 최대 20%p 가까운 격차로 부결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자 5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총리 궁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렌치 총리는 2014년 2월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올라 지난달 중순 취임 1,000일을 맞았지만 2년 9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렌치 총리는 국민투표 부결을 위해 활동한 진영이 "놀랍도록 명백한" 승리를 거뒀다는 말로 패배를 인정하며 "패배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 정부에서의 내 경력은 여기서 끝난다"고 말했다. 렌치 총리는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현행 헌법을 고쳐 상원의원 수를 줄여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지방 정부와의 행정 중복을 막고 관료주의를 철폐하자는 명분으로 개헌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쳤고 국민투표 부결 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내비쳤다. 개헌안 반대 운동에 선봉에 선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 운동 창시자 베페 그릴로[사진=EPA] 렌치 총리의 개헌안은 올 초만 하더라도 60%에 육박하는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었으나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운동과 극우 성향의 정당 북부리그 등 야당들은 기성 정권을 심판하는 신임투표로 몰아갔다. 반이민, 반세계화 정서에 편승해 지난 6월 현실화된 브렉시트가 이탈리아 국민투표 분위기를 바꾸는 전환점이 됐고,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마테오 렌치 총리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다. 선동에 능한 오성운동의 창시자 베페 그릴로, 트럼프 당선인처럼 반이민,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는 극우 정당 북부리그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을 지지세력 결집에 이용하며 렌치를 상대로 총공세에 나섰다. 그 결과 여론조사 최종 공표일인 보름 전 발표된 조사에서는 반대가 찬성을 5∼11% 앞선 것으로 드러나면서 일찌감치 패배가 확정됐다. 40% 육박한 청년 실업, 젊은이들의 분노 2014년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개헌안이 좌절된 것은 젊은 층의 반대가 특히 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탈리아 젊은 세대는 2년 9개월 전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로 취임한 렌치 총리의 개혁 정책에 큰 기대를 걸었으나 그의 재임 기간 청년실업률이 체감할 만큼 개선되지 않고, 경제 성장도 지지부진하자 렌치 정부의 실정을 심판해야 한다는 오성운동 등 야당의 주장에 급격히 기운 것으로 풀이된다. 이탈리아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평균 경제 성장률이 4%를 웃도는 상황에서 지난해 성장률이 0.8%에 불과했고 청년실업률의 경우 40%에 육박하고 있다. 당장 일자리가 없어 부모집에 얹혀살거나, 직업이 있더라도 안정성이 떨어져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나 결혼, 출산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이탈리아 청년들은 "이탈리아의 미래와 우리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한 렌치 총리의 말에 냉소했다. '밀물' 난민…올해 유입 난민 사상 최대 청년층이 경제적 원인으로 렌치 총리에게 등을 돌렸다면 밀물처럼 유입되는 이민자와 난민들의 존재는 보수적인 장년층과 노년층이 지지를 철회하는 요인이 됐다. EU와 터키의 난민 송환 협정으로 그리스로 향하는 뱃길이 뜸해짐에 따라 올해 들어 이탈리아는 아프리카 난민의 최대 관문이 됐다. 현재까지 유입된 난민 수는 17만 1천 명으로 종전 최고 기록인 2014년의 17만 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처럼 난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렌치 총리에 실망한 보수적인 장년층이 대거 반대투표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개헌안 투표가 제 2의 브렉시트 투표였던 셈이다. 오스트리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패배한 뒤 아내와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사진=AP]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성향 후보 패배 이탈리아 개헌 투표와 비슷한 시간에 치러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반 난민·반유럽'을 전면에 내세운 극우 성향의 후보가 애초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패배했다. 중도좌파 후보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극우 성향의 후보 노르베르트 호퍼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열세를 뒤집고 사실상 당선이 결정된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은 스스로 '난민의 자식'이라고 부르는 이민자 집안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스탈린 체제의 소련에서 공포 정치를 피해 독일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넘어온 난민이었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네덜란드계 러시아인, 어머니는 에스토니아인이었다. 판 데어 벨렌은 유럽연합(EU) 체제를 신봉하는 친 유럽주의자다. 오스트리아 경제는 절대적으로 EU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경제관이다. 탈 EU를 주장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과는 정반대의 자리에 서 있고 EU와 협력 관계에 있는 기존 정당들보다도 더 EU에 가깝다. 그는 이날 선거 승리를 선언하면서 "나는 EU와 더 가까운 오스트리아를 위해 싸웠고 논쟁했다"고 말했다. 중도좌파의 전 녹색당 당수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이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를 누르고 당선이 사실상 확정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사진=AP] EU 진영, "오스트리아 대선 결과 환영" EU 진영에서는 '반 난민. 반유럽'의 진영의 패배라는 의미를 강조하며 선거 결과에 대해 잇따라 환영의 뜻을 밝혔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성명에서 판 데어 벨렌을 향해 "전폭적인 축하 인사를 건네게 돼 기쁘다"며 "EU 집행위원회를 대표해서, 또 개인적으로도 전면적인 성공을 기원한다"고 크게 환영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트위터에서 "명확한 친유럽 메시지를 지닌 운동으로 대선에서 승리한 판 데어 벨렌에게 축하인사를 보내며 그의 승리는 국수주의와 '반유럽 포퓰리즘'의 중대한 패배"라고 환영했다. 독일의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는 "유럽 전체가 마음의 짐을 하나 내려놓았다"며 "우익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양식과 분별의 명백한 승리"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럽 지도자들에게 이는 '잠깐의 안도'일 뿐 안심은 이르다는 지적도 곧바로 뒤따랐다. 2018년 9월로 예정됐지만, 이제는 조기에 치러질 것으로 관측되는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자유당이 최대 의석을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호퍼 진영은 이번 대선에서 46.4% 득표했다. 극우 성향의 마른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FN) 대표는 "용감하게 싸운 자유당에 축하를 보낸다. 다음 선거는 그들의 것"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포퓰리즘 유럽에 확산할까? 오스트리아에선 약간 주춤했지만, 이탈리아를 장악한 포퓰리즘은 내년에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까지 세력을 넓힐 가능성이 있다. 내년 3월 총선이 예정된 네덜란드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헤이르트 빌더스가 이끄는 극우 정당인 자유당이 중도우파 여당인 자유민주당과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내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도 집권 사회당 정부의 지지율이 바닥을 맴돌면서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이끄는 극우와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후보가 나서는 보수의 대결로 압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4연임 도전을 선언한 내년 가을 독일 총선에서도 난민 대규모 유입과 이민자 출신의 테러 등 범죄행위로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틈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이 약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중도에 기반을 둔 전통 정당들을 포퓰리즘 세력이 대체하는 현상이 유럽 전역에서 나타나면서 유럽의 전후 질서가 도전받고 있다"며 "국경과 이민,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유럽적 가치는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에서 차례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CNN방송 역시 "트럼프의 승리에 유럽의 포퓰리즘이 자극을 받으며 한때 정치적 변방에 국한됐던 극우, 국수주의 정당, 반유럽 정당들이 이제 전통적인 정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다"며 앞으로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도 포퓰리즘에 포섭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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