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당신을 노린다

입력 2016.12.06 (15:05) 수정 2016.12.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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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 피해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지는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누가 속을까, 싶지만 보이스피싱 전화에 속아 돈을 떼이고, 뒤늦게 가슴을 치는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교묘해지고 있는 이 범죄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법

취재진은 지난달 새벽, 신문 배달을 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일흔살의 우영택 씨를 만났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우 영택시는 서울의 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 반에 출근해 6시에 배달을 마치고 퇴근하는 일을 2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해서 버는 5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지만, 우씨는 큰 불편 없이 생계를 꾸려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 씨는 요즘 밤을 새고 집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최근 생긴 천 2백만 원의 카드 빚 때문입니다. 누가 속을까, 싶었던 그 범죄, 보이스피싱에 속아 카드 대출 받은 돈을 모두 송금했기 때문입니다.


시중 모 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직원은 우씨에게 집요하도록 계속 전화를 걸어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도록 권했다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 거래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바로 돌려 줄테니 일단 8백만 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우 씨는 "계좌로 일단 돈을 보내면 거래 실적을 증명하고 다음 날 우 씨계좌로 다시 입금해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급하게 카드 대출을 받아 7백만 원을 먼저 입금하자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우 씨에게 돈이 부족하다며 5백만 원을 더 입금하라고 다시 독촉했습니다. 우 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카드 대출을 받아 돈을 보냈다고 합니다.


입금 다음날 은행에 찾아갔더니 전화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주는 일은 없고, 우 씨 앞으로 개설된 마이너스 통장 역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우 씨가 계좌를 확인해 봤을 때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미 돈을 인출한 후였습니다.

어느날 걸려온 한 통의 보이스피싱 전화는 우 씨의 노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보증금 3백만 원에 월 15만 원짜리 단칸 방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우 씨는 매일같이 카드 회사의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 수법 중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냉장고 피싱'이라는 수법입니다.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수법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25건의 피해가 집계됐습니다. 대포통장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직접 피해자들의 집에 찾아가 돈을 찾아가는 대담한 방식으로 범죄가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수법을 '냉장고 피싱'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먼저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나 계좌 정보가 도용돼 예금이 인출될 수 있으니, 즉시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놓으라고 말합니다.

출금한 돈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밖으로 나오도록 피해자들을 유인합니다. 이런 유형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수사했던 창원 서부경찰서 김대규 수사과장은 사기범들이 "지금 집에 돈은 안전하게 보관되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바깥에 나가서 형사를 만나서 자문을 받아라, 그럼 친절하게 수사 절차를 안내해줄것"이라며 피해자들을 속였다고 말합니다.

일단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에 신뢰를 보이기 시작하면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해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은행 직원 등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냉장고가 등장하는 이유는 집집마다 냉장고는 다 있는 편이고, 위치를 찾기도 쉽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이런 보이스피싱 유형은 떼인 돈도 돈이지만,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속았다는 자괴감이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고 경찰은 덧붙였습니다.


가족을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취재진이 만난 이 모 씨는 지난 4월, 아들이 납치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들의 이름까지 대며,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들 장기를 매매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이 씨의 아들이 친구의 보증을 섰는데, 그 돈을 못 받게 됐다며 당장 5천여만 원을 보내라고 끈질기게 이 씨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가 당장은 보낼 돈이 없다고 계속 버티자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아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지푸라기라도 쥐는 심정으로 아들에게 연락을 하자, 아무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씨는 "안 당해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살 떨리는 경험인지 모른다"며 요즘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치밀한 시나리오는 기본

과거 보이스피싱은 주로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경우처럼, 요즘엔 이런 방식은 드뭅니다. 올해 들어서는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금융회사를 사칭해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천 4백억 원이었고, 올 상반기까지 집계된 피해액도 736억 원에 달할 정도로 보이스피싱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법이 널리 알려지고 각종 예방책까지 나와 있지만 꾸준히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중국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우선피해자들이 별 의심 없이 받을 만한 1588 또는 1599로시작하는 전화 번호를 확보합니다. 통신사들로부터 전화 회선을 임대한 별정통신사들이 번호를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넘기는 수법으로 거래가 이뤄집니다.

번호는 중국 현지 SNS를 통해 거래됩니다. 이두열 안산단원경찰서 수사과 팀장은 "중국 SNS 서비스를 통해서 범죄에 사용되는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전화 번도 등이 거래되지만 국외 통신사 가입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걸기에 앞서 치밀한 각본도 짭니다. 취재 과정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작성한 대출 사기전화 대응 시나리오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엑셀 파일로 정리된 대응 매뉴얼에는 처음 통화를 시작했을 때 사용할 멘트부터 고객의 반응에 따른 대응 메뉴얼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클레임, 즉 불만 전화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 작성해 놨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금융쪽에 정확한 사람은 금융 쪽을 맡게 하고, 수사나 검찰 쪽에 식견이 있는 사람은 해당 팀에 배정하는 식으로 요즘 보이스피싱은 채용때부터 전문화, 분업화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돈을 입금받는 데 쓰이는 대포통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취업에 목마른 구직자들에게 접근합니다. 취재진은 지난 봄, 한 구인 사이트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 원서를 냈다는 20대 취업 준비생 모 씨를 만났습니다. 최 씨는 지원서를 내고 며칠 후, 합격됐다며 입사에 필요한 서류와 계좌번호, 출입증으로 쓸 칩을 장착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류와 체크카드를 보낸 직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최 씨 계좌로 입금을 했다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최 씨는 "은행에 찾아갔더니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계좌를 대포계좌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취업의 기쁨은 물거품이 됐고, 자칫 대포통장 제공자로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압도적 정보 쏟아내


소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보이스피싱 목소리에도 특징이 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에게 보이스피싱 전화 목소리 파일의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전화 목소리의 첫 번째 특징으로 '말이 무척 빠르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보통 발성은 1초에 2에서 3음절을 발음하는데, 취재진이 의뢰한 보이스피싱 녹음 전화에 등장하는 조직원은 1초에 7~8음절을 발음했다는 것입니다. 배 교수는 이런 현상이 "시나리오에 있는 많은 정보를 제한 된 시간 안에 전달하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이스피싱 목소리의 두 번째 특징으로 배 교수는 목소리 톤의 변화가 없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리의 높낮이에 변화가 적다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흥분하지 않고, 많은 양의 정보를 쏟아내면서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게 보이스피싱 전화의 특성이라는 얘기입니다.

전화로 예금을 옮기라고 한다면?

30분 지연 인출제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 번호를 차단하는 등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 금액을 되찾은 비율은 30% 안팍에 불과합니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김범수 팀장은 "단기간에 신용등급을 향상시켜 주겠다든지, 전산 처리 작업을 통해서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우선 사기 전화로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개인정보를 전화로 묻거나 예금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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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당신을 노린다
    • 입력 2016-12-06 15:05:25
    • 수정2016-12-06 15:09:59
    취재K
보이스피싱이라는 범죄 피해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지는 이미 10년이 넘었습니다. 누가 속을까, 싶지만 보이스피싱 전화에 속아 돈을 떼이고, 뒤늦게 가슴을 치는 피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은 교묘해지고 있는 이 범죄가 단순히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수법 취재진은 지난달 새벽, 신문 배달을 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일흔살의 우영택 씨를 만났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우 영택시는 서울의 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 반에 출근해 6시에 배달을 마치고 퇴근하는 일을 2년 가까이 해오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새벽 신문 배달을 해서 버는 50여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지만, 우씨는 큰 불편 없이 생계를 꾸려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 씨는 요즘 밤을 새고 집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최근 생긴 천 2백만 원의 카드 빚 때문입니다. 누가 속을까, 싶었던 그 범죄, 보이스피싱에 속아 카드 대출 받은 돈을 모두 송금했기 때문입니다. 시중 모 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직원은 우씨에게 집요하도록 계속 전화를 걸어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도록 권했다고 합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면 은행 거래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바로 돌려 줄테니 일단 8백만 원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우 씨는 "계좌로 일단 돈을 보내면 거래 실적을 증명하고 다음 날 우 씨계좌로 다시 입금해주겠다"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급하게 카드 대출을 받아 7백만 원을 먼저 입금하자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우 씨에게 돈이 부족하다며 5백만 원을 더 입금하라고 다시 독촉했습니다. 우 씨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카드 대출을 받아 돈을 보냈다고 합니다. 입금 다음날 은행에 찾아갔더니 전화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주는 일은 없고, 우 씨 앞으로 개설된 마이너스 통장 역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상하다고 느낀 우 씨가 계좌를 확인해 봤을 때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미 돈을 인출한 후였습니다. 어느날 걸려온 한 통의 보이스피싱 전화는 우 씨의 노년을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보증금 3백만 원에 월 15만 원짜리 단칸 방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우 씨는 매일같이 카드 회사의 독촉 전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 수법 중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냉장고 피싱'이라는 수법입니다. 주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수법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25건의 피해가 집계됐습니다. 대포통장에 대한 규제가 까다로워지면서 직접 피해자들의 집에 찾아가 돈을 찾아가는 대담한 방식으로 범죄가 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수법을 '냉장고 피싱'이라고 부르는 걸까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먼저 금융감독원이나 경찰을 사칭해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나 계좌 정보가 도용돼 예금이 인출될 수 있으니, 즉시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 놓으라고 말합니다. 출금한 돈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밖으로 나오도록 피해자들을 유인합니다. 이런 유형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수사했던 창원 서부경찰서 김대규 수사과장은 사기범들이 "지금 집에 돈은 안전하게 보관되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바깥에 나가서 형사를 만나서 자문을 받아라, 그럼 친절하게 수사 절차를 안내해줄것"이라며 피해자들을 속였다고 말합니다. 일단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에 신뢰를 보이기 시작하면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통화를 시도해 개인정보를 알아내고, 은행 직원 등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냉장고가 등장하는 이유는 집집마다 냉장고는 다 있는 편이고, 위치를 찾기도 쉽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의 설명입니다. 이런 보이스피싱 유형은 떼인 돈도 돈이지만, 터무니없는 거짓말에 속았다는 자괴감이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만든다고 경찰은 덧붙였습니다. 가족을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취재진이 만난 이 모 씨는 지난 4월, 아들이 납치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들의 이름까지 대며,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아들 장기를 매매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이 씨의 아들이 친구의 보증을 섰는데, 그 돈을 못 받게 됐다며 당장 5천여만 원을 보내라고 끈질기게 이 씨를 협박했습니다. 하지만 이 씨가 당장은 보낼 돈이 없다고 계속 버티자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아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지푸라기라도 쥐는 심정으로 아들에게 연락을 하자, 아무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 씨는 "안 당해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살 떨리는 경험인지 모른다"며 요즘은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는 아예 받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치밀한 시나리오는 기본 과거 보이스피싱은 주로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는 비교적 간단한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경우처럼, 요즘엔 이런 방식은 드뭅니다. 올해 들어서는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금융회사를 사칭해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전체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2천 4백억 원이었고, 올 상반기까지 집계된 피해액도 736억 원에 달할 정도로 보이스피싱 범죄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수법이 널리 알려지고 각종 예방책까지 나와 있지만 꾸준히 피해자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중국에 거점을 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우선피해자들이 별 의심 없이 받을 만한 1588 또는 1599로시작하는 전화 번호를 확보합니다. 통신사들로부터 전화 회선을 임대한 별정통신사들이 번호를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에게 넘기는 수법으로 거래가 이뤄집니다. 번호는 중국 현지 SNS를 통해 거래됩니다. 이두열 안산단원경찰서 수사과 팀장은 "중국 SNS 서비스를 통해서 범죄에 사용되는 대포통장이나 대포폰, 전화 번도 등이 거래되지만 국외 통신사 가입 정보를 확인할 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화를 걸기에 앞서 치밀한 각본도 짭니다. 취재 과정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작성한 대출 사기전화 대응 시나리오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엑셀 파일로 정리된 대응 매뉴얼에는 처음 통화를 시작했을 때 사용할 멘트부터 고객의 반응에 따른 대응 메뉴얼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습니다. 클레임, 즉 불만 전화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 작성해 놨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금융쪽에 정확한 사람은 금융 쪽을 맡게 하고, 수사나 검찰 쪽에 식견이 있는 사람은 해당 팀에 배정하는 식으로 요즘 보이스피싱은 채용때부터 전문화, 분업화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돈을 입금받는 데 쓰이는 대포통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취업에 목마른 구직자들에게 접근합니다. 취재진은 지난 봄, 한 구인 사이트에서 직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사 원서를 냈다는 20대 취업 준비생 모 씨를 만났습니다. 최 씨는 지원서를 내고 며칠 후, 합격됐다며 입사에 필요한 서류와 계좌번호, 출입증으로 쓸 칩을 장착하기 위해 체크카드를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서류와 체크카드를 보낸 직후,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최 씨 계좌로 입금을 했다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최 씨는 "은행에 찾아갔더니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계좌를 대포계좌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취업의 기쁨은 물거품이 됐고, 자칫 대포통장 제공자로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압도적 정보 쏟아내 소리만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보이스피싱 목소리에도 특징이 있습니다. 취재진은 전문가에게 보이스피싱 전화 목소리 파일의 분석을 의뢰했습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전화 목소리의 첫 번째 특징으로 '말이 무척 빠르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보통 발성은 1초에 2에서 3음절을 발음하는데, 취재진이 의뢰한 보이스피싱 녹음 전화에 등장하는 조직원은 1초에 7~8음절을 발음했다는 것입니다. 배 교수는 이런 현상이 "시나리오에 있는 많은 정보를 제한 된 시간 안에 전달하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보이스피싱 목소리의 두 번째 특징으로 배 교수는 목소리 톤의 변화가 없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리의 높낮이에 변화가 적다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흥분하지 않고, 많은 양의 정보를 쏟아내면서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게 보이스피싱 전화의 특성이라는 얘기입니다. 전화로 예금을 옮기라고 한다면? 30분 지연 인출제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전화 번호를 차단하는 등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 금액을 되찾은 비율은 30% 안팍에 불과합니다. 금융감독원 불법금융대응단 김범수 팀장은 "단기간에 신용등급을 향상시켜 주겠다든지, 전산 처리 작업을 통해서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는 것은 우선 사기 전화로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이 개인정보를 전화로 묻거나 예금을 옮기도록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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