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대통령 퇴진 정국…남아공 흔들

입력 2016.12.10 (21:49) 수정 2016.12.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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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아프리카 대륙의 끝,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지금 정국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요,

비선 실세 관련 부패 문제와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난 등이 겹치면서 지난달부터 본격화됐습니다.

여론에 힘입어 국회에서 탄핵 시도가 이뤄졌지만 처리가 무산되며 정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데요,

요하네스버그에서 김덕훈 특파원이 전합니다.

<리포트>

<녹취> "주마는 사퇴하라!"

지난달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 군중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 제이컵 주마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입니다.

성난 군중은 주변 상점을 부수고, 경찰과 충돌 직전까지 맞붙습니다.

극렬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는 경우도 속출했습니다.

<녹취> 줄리어스 말레마('경제해방투쟁' 대표) : "우리는 늙은 대통령 하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유를 망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단체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녹취> 시포 피탸나('남아공을 구하라' 의장) : "주마 대통령이 더는 우리 시민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날 프리토리아 법원은 주마 대통령의 비리 혐의가 담긴 국민권익보호원의 보고서 공개를 명령했습니다.

보고서 공개를 막아달라는 대통령 측의 요청을 법원이 거부한 겁니다.

'포로가 된 국가', 남아공 권익보호원이 작성한 문건의 제목입니다.

355쪽 짜리 이 보고서에는 사라하 컴퓨터 등 거대 기업을 소유한 인도계 재벌 굽타 일가와 대통령의 국정농단 실태가 자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2015년 12월, 주마 대통령은 능력을 인정받던 재무장관, 은란라 네네를 갑작스레 해임합니다.

국제 금융 기관장으로 보직을 변경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녹취> 레라토 음벨레(BBC 아프리카 기자) : "이번 대통령 결정에 대해 모든 방송과 신문, SNS에서는 충격과 놀라움,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인사에 굽타 일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건의 양상이 바뀝니다.

당시 재무차관이 장관 해임 6주 전에 굽타 일가가 자신에게 차기 장관직을 제안했다고 직접 폭로한 겁니다.

또, 굽타 일가가 에너지 공기업 에스컴의 이사진 구성에도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에스컴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네네 전 장관이 무분별한 예산 지출과 핵발전소 신설에 반대하며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기 때문에 이 폭로는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굽타 일가가 정부 인사와 이권에 개입한 정황 열건 이상이 확인되면서 주마 대통령 퇴진 압박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수도 프리토리아로부터 570km 떨어진 은칸들라, 이곳에는 대통령 사저가 있습니다.

주마 대통령은 고향 자택의 경호 시설 확충을 이유로 예산을 요청했습니다.

모두 2억 4천6백만 랜드, 약 212억 원이 들었습니다.

<인터뷰> 툴리 마돈셀라(전 국민권익보호원장) : "자신 사저에 불법적으로 국고를 사용한 사실이 대통령의 행위와 직접 연관돼 있다는 점을 찾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대통령 사저 땅 안에 수영장과 원형 관람석, 닭장 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권익보호원은 이 모든 시설이 대통령 경호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불법적인 호화 주택 건설에 주민들은 위화감마저 느낍니다.

<인터뷰> 은칸들라 주민 : "저를 보는 게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어렵게 사는데 저런 집을 짓다니요. 우리는 아무도 저렇게 안 도와주는데..."

비리와 부패로 예산을 탕진하면서 정작 국민과 약속한 공약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의 한 대학교, 건물마다 창문 곳곳이 깨져있고, 총장실이 있는 건물에는 출입 통제선까지 쳐졌습니다.

취재진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학생회를 찾았습니다.

올해 졸업반인 이 학생 역시 한해 천만 원씩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부 태도에 울분이 터트립니다.

<인터뷰> 은툼바 린도(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학생회) : "부패에는 돈을 빼돌리면서, 왜 무상 교육에는 돈을 쓰지 않는 겁니까. 정부는 즉각 반부패 조치에 착수해야 합니다."

대학생들은 무상 교육 공약을 지키라며 굽타 정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마 대통령, 국민들의 퇴진 압박이 이어지자 국회에 출석해 소신 발언을 하며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녹취> 제이컵 주마(남아공 대통령) : "권익보호원의 문건은 매우 터무니없습니다. 제 시각에서는 공정하지 않아요. 제게, 또 국민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변명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민주연합 등 야당들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불신임을 추진했습니다.

대통령 불신임은 국회 의석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탄핵과는 달리, 과반이 찬성하면 대통령을 비롯한 내각 총사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점한 집권당은 야당의 불신임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녹취> 그웨데 만타시(아프리카민족회의(여당) 사무총장) : "활발하고, 정직하고, 진솔하고 때로는 어려웠던 토론을 거쳐, 우리당 전국위원회는 주마 대통령에 대한 사임 요구를 지지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습니다."

지난 4월 대통령 탄핵 실패에 이어, 불신임 투표까지 좌절되면서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졌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외곽, 강당으로 속속 인파가 밀려듭니다.

권익보호원 보고서가 공개된 뒤 한 달 째 이어지고 있는 대통령 퇴진 집회입니다.

<인터뷰> 괴드리히 가디('경제해방투쟁' 사무총장) : "독재자는 물러나야 합니다. 부패한 대통령도 물러나야죠. 민주화된 나라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그럴 겁니다."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집회 참여자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무지 사발랄라(집회 참석 시민) : "아이들의 음식, 의복, 학교 등록금과 다른 비용을 댈 여유가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없어요."

현 정부의 실정에다 경제난까지 깊어지면서 극단적인 사회주의 정당까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붉은 옷을 맞춰 입은 시위대, '경제자유투쟁당' 지지자입니다.

토지 강제 수용, 광산과 은행 국유화 등 다소 과격한 정책 기조가 빈곤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며 창당 4년 만에 제 3당의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평일 오후인데도 시민 2천여 명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경제 양극화와 인종 간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인터뷰> 무지 사발랄라(집회 참석 시민) : "우리는 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릴 겁니다. 그 수밖에 없어요.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테니까요."

비선 실세와 엮인 국정농단, 경기 침체에 따른 저소득층의 불만, 그리고 극단적 정치 세력 등장까지, 임기 8년 차를 맞은 주마 대통령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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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대통령 퇴진 정국…남아공 흔들
    • 입력 2016-12-10 21:54:50
    • 수정2016-12-10 22:30:09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멘트>

아프리카 대륙의 끝,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지금 정국이 무척 혼란스럽습니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요,

비선 실세 관련 부패 문제와 갈수록 심화되는 경제난 등이 겹치면서 지난달부터 본격화됐습니다.

여론에 힘입어 국회에서 탄핵 시도가 이뤄졌지만 처리가 무산되며 정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데요,

요하네스버그에서 김덕훈 특파원이 전합니다.

<리포트>

<녹취> "주마는 사퇴하라!"

지난달 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 군중 수천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통령 제이컵 주마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입니다.

성난 군중은 주변 상점을 부수고, 경찰과 충돌 직전까지 맞붙습니다.

극렬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는 경우도 속출했습니다.

<녹취> 줄리어스 말레마('경제해방투쟁' 대표) : "우리는 늙은 대통령 하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자유를 망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시민단체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녹취> 시포 피탸나('남아공을 구하라' 의장) : "주마 대통령이 더는 우리 시민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날 프리토리아 법원은 주마 대통령의 비리 혐의가 담긴 국민권익보호원의 보고서 공개를 명령했습니다.

보고서 공개를 막아달라는 대통령 측의 요청을 법원이 거부한 겁니다.

'포로가 된 국가', 남아공 권익보호원이 작성한 문건의 제목입니다.

355쪽 짜리 이 보고서에는 사라하 컴퓨터 등 거대 기업을 소유한 인도계 재벌 굽타 일가와 대통령의 국정농단 실태가 자세히 기술돼 있습니다.

2015년 12월, 주마 대통령은 능력을 인정받던 재무장관, 은란라 네네를 갑작스레 해임합니다.

국제 금융 기관장으로 보직을 변경한다는 명목이었습니다.

<녹취> 레라토 음벨레(BBC 아프리카 기자) : "이번 대통령 결정에 대해 모든 방송과 신문, SNS에서는 충격과 놀라움, 냉소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갑작스러운 인사에 굽타 일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건의 양상이 바뀝니다.

당시 재무차관이 장관 해임 6주 전에 굽타 일가가 자신에게 차기 장관직을 제안했다고 직접 폭로한 겁니다.

또, 굽타 일가가 에너지 공기업 에스컴의 이사진 구성에도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에스컴을 통해 이권을 챙기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됐습니다.

네네 전 장관이 무분별한 예산 지출과 핵발전소 신설에 반대하며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기 때문에 이 폭로는 신빙성을 더했습니다.

보고서를 통해 굽타 일가가 정부 인사와 이권에 개입한 정황 열건 이상이 확인되면서 주마 대통령 퇴진 압박이 더욱 거세졌습니다.

수도 프리토리아로부터 570km 떨어진 은칸들라, 이곳에는 대통령 사저가 있습니다.

주마 대통령은 고향 자택의 경호 시설 확충을 이유로 예산을 요청했습니다.

모두 2억 4천6백만 랜드, 약 212억 원이 들었습니다.

<인터뷰> 툴리 마돈셀라(전 국민권익보호원장) : "자신 사저에 불법적으로 국고를 사용한 사실이 대통령의 행위와 직접 연관돼 있다는 점을 찾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저 멀리 보이는 대통령 사저 땅 안에 수영장과 원형 관람석, 닭장 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권익보호원은 이 모든 시설이 대통령 경호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불법적인 호화 주택 건설에 주민들은 위화감마저 느낍니다.

<인터뷰> 은칸들라 주민 : "저를 보는 게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어렵게 사는데 저런 집을 짓다니요. 우리는 아무도 저렇게 안 도와주는데..."

비리와 부패로 예산을 탕진하면서 정작 국민과 약속한 공약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의 한 대학교, 건물마다 창문 곳곳이 깨져있고, 총장실이 있는 건물에는 출입 통제선까지 쳐졌습니다.

취재진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학생회를 찾았습니다.

올해 졸업반인 이 학생 역시 한해 천만 원씩 빚을 지고 있습니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부 태도에 울분이 터트립니다.

<인터뷰> 은툼바 린도(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교 학생회) : "부패에는 돈을 빼돌리면서, 왜 무상 교육에는 돈을 쓰지 않는 겁니까. 정부는 즉각 반부패 조치에 착수해야 합니다."

대학생들은 무상 교육 공약을 지키라며 굽타 정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주마 대통령, 국민들의 퇴진 압박이 이어지자 국회에 출석해 소신 발언을 하며 자신에 대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녹취> 제이컵 주마(남아공 대통령) : "권익보호원의 문건은 매우 터무니없습니다. 제 시각에서는 공정하지 않아요. 제게, 또 국민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변명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민주연합 등 야당들은 여론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불신임을 추진했습니다.

대통령 불신임은 국회 의석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탄핵과는 달리, 과반이 찬성하면 대통령을 비롯한 내각 총사퇴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국회 의석의 절대다수를 점한 집권당은 야당의 불신임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녹취> 그웨데 만타시(아프리카민족회의(여당) 사무총장) : "활발하고, 정직하고, 진솔하고 때로는 어려웠던 토론을 거쳐, 우리당 전국위원회는 주마 대통령에 대한 사임 요구를 지지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습니다."

지난 4월 대통령 탄핵 실패에 이어, 불신임 투표까지 좌절되면서 정국은 더욱 혼란에 빠졌습니다.

요하네스버그 외곽, 강당으로 속속 인파가 밀려듭니다.

권익보호원 보고서가 공개된 뒤 한 달 째 이어지고 있는 대통령 퇴진 집회입니다.

<인터뷰> 괴드리히 가디('경제해방투쟁' 사무총장) : "독재자는 물러나야 합니다. 부패한 대통령도 물러나야죠. 민주화된 나라라면 어느 곳에서라도 그럴 겁니다."

젊은 층부터 중장년층까지 집회 참여자는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인터뷰> 무지 사발랄라(집회 참석 시민) : "아이들의 음식, 의복, 학교 등록금과 다른 비용을 댈 여유가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없어요."

현 정부의 실정에다 경제난까지 깊어지면서 극단적인 사회주의 정당까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붉은 옷을 맞춰 입은 시위대, '경제자유투쟁당' 지지자입니다.

토지 강제 수용, 광산과 은행 국유화 등 다소 과격한 정책 기조가 빈곤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며 창당 4년 만에 제 3당의 위치까지 올랐습니다.

평일 오후인데도 시민 2천여 명이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경제 양극화와 인종 간 차별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분노가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인터뷰> 무지 사발랄라(집회 참석 시민) : "우리는 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릴 겁니다. 그 수밖에 없어요.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테니까요."

비선 실세와 엮인 국정농단, 경기 침체에 따른 저소득층의 불만, 그리고 극단적 정치 세력 등장까지, 임기 8년 차를 맞은 주마 대통령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요하네스버그에서 김덕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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