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 상자엔 무엇이?…외면하기 힘든 현실

입력 2016.1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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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는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여성이다.

그녀의 호기심으로 온갖 불행과 악덕을 가둬 둔 상자가 열리고 인류에게는 재앙이 시작된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말아야 할 금단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영화 ‘판도라’영화 ‘판도라’

영화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시작된다.

평화롭고 조용한 어촌 마을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고 마을 주민들은 발전소에 기대어 삶을 영위한다.

그러던 중 이 지역에 강진이 발생한다.

노후화된 한별1호기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새어 나온다.

옆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저장소도 폭발 위험에 처한다.

나라 전체가 핵 재앙에 빠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영화는 위기의 순간에 보여지는 정치 지도자와 관료, 그리고 민초들의 모습을 탐색한다.


“그동안 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목숨을 걸고 사고 현장을 지킨 발전소 소장(정진영 분)과 대통령(김명민 분)간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원전이 폭발하고 방사능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올라오는 각종 보고가 총리(이경영 분)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이다.

무능력한 대통령의 모습이다.

실세인 총리와 관료들은 사고를 축소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오히려 사고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다.

급기야 피난 인파가 몰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발전회사는 발전회사대로 사람의 목숨보다 경제적 손실을 더욱 두려워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영화 속 장면들이 크게 낯설지 않다. 왜?


“사고는 자기들이 쳐놓고 국민들이 수습하라고 한다”

죽음의 현장에서 발 벗고 사고 수습에 나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민초들이었다.

그 지역에서 나서 자라온 주민들로,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피폭된 몸을 이끌고 인명 구조는 물론 복구 작업에까지 나선다.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담담히 내놓은 것이다.

주인공(김남길 분)은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한마디 말을 내뱉는다.

“사느라 욕봤데이”

영화 ‘판도라’제작 모습영화 ‘판도라’제작 모습

메가폰을 잡은 박정우 감독은 4년 전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만도 해도 이런 현실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경주 지역의 강진, 세월호 7시간, 최순실 국정 농단...

박 감독은 그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 같은 일이 이 땅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며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박 감독은 “우리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보다는 편안한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희망을 놓지 말자”고 강조한다.

박 감독의 판도라 상자에는 희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9월, 규모 5.1 지진이 경주 인근에서 발생했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24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인 우리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껄끄럽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 밀집도는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불안감을 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 운영과 설비 현황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공개이다.

이를 통해 국민과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영화 속 아이들 말대로 원전 속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밥솥’이 들어 있는지, 아니면 열면 큰일이 생기는 ‘무슨 상자’가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미리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요즈음 원전 사고 만큼은 영화로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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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도라’ 상자엔 무엇이?…외면하기 힘든 현실
    • 입력 2016-12-17 09:00:27
    취재K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는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여성이다.

그녀의 호기심으로 온갖 불행과 악덕을 가둬 둔 상자가 열리고 인류에게는 재앙이 시작된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말아야 할 금단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영화 ‘판도라’
영화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서 시작된다.

평화롭고 조용한 어촌 마을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고 마을 주민들은 발전소에 기대어 삶을 영위한다.

그러던 중 이 지역에 강진이 발생한다.

노후화된 한별1호기에 균열이 생기고 결국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새어 나온다.

옆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저장소도 폭발 위험에 처한다.

나라 전체가 핵 재앙에 빠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영화는 위기의 순간에 보여지는 정치 지도자와 관료, 그리고 민초들의 모습을 탐색한다.


“그동안 대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목숨을 걸고 사고 현장을 지킨 발전소 소장(정진영 분)과 대통령(김명민 분)간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원전이 폭발하고 방사능이 확산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올라오는 각종 보고가 총리(이경영 분)에 의해 차단되기 때문이다.

무능력한 대통령의 모습이다.

실세인 총리와 관료들은 사고를 축소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오히려 사고를 걷잡을 수 없이 키운다.

급기야 피난 인파가 몰려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아비규환이 벌어진다.

발전회사는 발전회사대로 사람의 목숨보다 경제적 손실을 더욱 두려워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영화 속 장면들이 크게 낯설지 않다. 왜?


“사고는 자기들이 쳐놓고 국민들이 수습하라고 한다”

죽음의 현장에서 발 벗고 사고 수습에 나선 사람들은 다름 아닌 민초들이었다.

그 지역에서 나서 자라온 주민들로, 발전소 하청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피폭된 몸을 이끌고 인명 구조는 물론 복구 작업에까지 나선다.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담담히 내놓은 것이다.

주인공(김남길 분)은 마지막 순간 자신에게 한마디 말을 내뱉는다.

“사느라 욕봤데이”

영화 ‘판도라’제작 모습
메가폰을 잡은 박정우 감독은 4년 전 이 영화를 처음 기획할 때만도 해도 이런 현실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경주 지역의 강진, 세월호 7시간, 최순실 국정 농단...

박 감독은 그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모티브를 얻어 그 같은 일이 이 땅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영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서 상상도 하기 싫은 일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보며 자신도 놀랐다고 한다.

박 감독은 “우리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보다는 편안한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희망을 놓지 말자”고 강조한다.

박 감독의 판도라 상자에는 희망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 9월, 규모 5.1 지진이 경주 인근에서 발생했다.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영화는 24기의 원자로를 운영 중인 우리에게는 다소 불편하고 껄끄럽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 밀집도는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불안감을 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 운영과 설비 현황에 대한 철저하고 투명한 공개이다.

이를 통해 국민과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영화 속 아이들 말대로 원전 속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커다란 밥솥’이 들어 있는지, 아니면 열면 큰일이 생기는 ‘무슨 상자’가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만 미리 미리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는 요즈음 원전 사고 만큼은 영화로 그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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