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있다고?

입력 2016.12.21 (11:49) 수정 2016.12.21 (17:4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969년 10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 등 세계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핵전쟁 경계령을 내렸다. 핵전쟁을 시작할지 모르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악성 소문도 퍼뜨렸다. 자신이 공산주의에 강박감을 느끼고 화가 났을 때 자제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핵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이야기가 일부러 퍼져나가게 했다. 이를 위해 실제로 핵미사일로 무장한 폭격기인 B52 폭격기를 발진시키기도 했다.

이런 전략에는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 있었다. 당시 북베트남을 배후에서 지원하던 소련이 위협을 느껴 북베트남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호찌민(胡志明)이 파리에서 열리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믿었다. 이 전략이 계획대로만 됐다면 미국은 승리를 취한 채 베트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닉슨이 자신을 스스로 비이성적인 인물로 비하하는 전략을 쓴 것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이다.

"나는 그것을 '미치광이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이려 하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뭐든 할 것이라고 북베트남이 믿도록 할 것이네. 우리는 이런 이야기가 그들에게 흘러들어 가도록 해야 하네.”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핵심참모였던 H.R 할더만에게 설명한 말이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왼쪽)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사진=AP)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왼쪽)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사진=AP)

미국은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외교 전략의 하나로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공식기록에 나타난다. 미국의 치명적인 이익이 공격당할 경우 갑작스럽게 변할 뿐 아니라, 반드시 보복하는 국가임을 알리고 심지어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방식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에는 대상 국가들이 이라크, 리비아, 쿠바, 북한 등으로 옮겨갔고, 이들 국가에 ‘비이성적인’ 미국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행동했다. 그래야 이들 국가에 공포감과 의구심을 조장하고 강화할 수 있어 도발을 주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7일 앨라배마 주 모빌에 있는 래드-피블스 체육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P)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7일 앨라배마 주 모빌에 있는 래드-피블스 체육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P)

"트럼프, '미치광이 이론' 활용해 공포 유발"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이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과거 냉전 시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을 외교전략에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중국 군함이 남중국해 해상에서 미국의 수중 드론을 나포하자 트럼프가 "훔친 드론을 반환할 필요 없다"고 이례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러한 '미치광이 이론'의 전형적 수법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수중 드론을 나포한 지 닷새 만에 반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예측불허와 전통적 국제규범에 대한 무시라는 자신의 평판을 외교정책에서 활용함으로써 적국을 불안하게 하고 위협해 양보를 끌어내려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만 총통과 통화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뒤흔든 것이나 친(親) 러시아 성향의 국무장관을 발탁해 러시아와의 긴장 완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 역시 '미치광이 이론'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닉슨 정권에서 출발한 캐슬린 T.맥파런드(부보좌관)와 모니카 크롤리(선임국장)에 각각 임명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러나 "닉슨은 미국과 소련 등 2개의 슈퍼파워가 있던 2극 체제에서 이 게임을 사용했다"며 " 트럼프가 이끌 세계는 이슬람 국가(IS)의 비대칭 전쟁이 최고의 우려 상황으로 떠오른 다극 체제"라고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9월 대선 후보 2차 토론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을 향해 "미치광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후보는 당시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이란 핵 합의는 끔찍하고 무능력한 것"이라고 거론한 뒤, 갑자기 "누구도 미치광이가 앉아서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 '미치광이'라고 비판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미치광이 이론'을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한 반응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바로가기] ☞ 도널드 트럼프, 외교 정책에 ‘미치광이 이론’ 활용(워싱턴 포스트)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트럼프가 ‘미치광이 행세’를 하고 있다고?
    • 입력 2016-12-21 11:49:20
    • 수정2016-12-21 17:42:37
    취재K
1969년 10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은 동아시아와 유럽, 중동 등 세계 각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핵전쟁 경계령을 내렸다. 핵전쟁을 시작할지 모르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라고 신호를 보낸 것이다.

닉슨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악성 소문도 퍼뜨렸다. 자신이 공산주의에 강박감을 느끼고 화가 났을 때 자제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핵 버튼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이야기가 일부러 퍼져나가게 했다. 이를 위해 실제로 핵미사일로 무장한 폭격기인 B52 폭격기를 발진시키기도 했다.

이런 전략에는 고도의 노림수가 숨어 있었다. 당시 북베트남을 배후에서 지원하던 소련이 위협을 느껴 북베트남을 움직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호찌민(胡志明)이 파리에서 열리는 협상 테이블에 나올 것으로 믿었다. 이 전략이 계획대로만 됐다면 미국은 승리를 취한 채 베트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닉슨이 자신을 스스로 비이성적인 인물로 비하하는 전략을 쓴 것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제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이다.

"나는 그것을 '미치광이 이론'이라고 이름을 붙이려 하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뭐든 할 것이라고 북베트남이 믿도록 할 것이네. 우리는 이런 이야기가 그들에게 흘러들어 가도록 해야 하네.”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핵심참모였던 H.R 할더만에게 설명한 말이다.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왼쪽)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오른쪽)(사진=AP)
미국은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외교 전략의 하나로 '미치광이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공식기록에 나타난다. 미국의 치명적인 이익이 공격당할 경우 갑작스럽게 변할 뿐 아니라, 반드시 보복하는 국가임을 알리고 심지어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방식이다.

구소련 붕괴 이후에는 대상 국가들이 이라크, 리비아, 쿠바, 북한 등으로 옮겨갔고, 이들 국가에 ‘비이성적인’ 미국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행동했다. 그래야 이들 국가에 공포감과 의구심을 조장하고 강화할 수 있어 도발을 주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7일 앨라배마 주 모빌에 있는 래드-피블스 체육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P)
"트럼프, '미치광이 이론' 활용해 공포 유발"

이른바 '미치광이 이론'이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WP)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과거 냉전 시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미치광이 이론'(the Madman Theory)을 외교전략에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중국 군함이 남중국해 해상에서 미국의 수중 드론을 나포하자 트럼프가 "훔친 드론을 반환할 필요 없다"고 이례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이러한 '미치광이 이론'의 전형적 수법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수중 드론을 나포한 지 닷새 만에 반환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예측불허와 전통적 국제규범에 대한 무시라는 자신의 평판을 외교정책에서 활용함으로써 적국을 불안하게 하고 위협해 양보를 끌어내려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만 총통과 통화해 '하나의 중국' 정책을 뒤흔든 것이나 친(親) 러시아 성향의 국무장관을 발탁해 러시아와의 긴장 완화 움직임을 보이는 것 역시 '미치광이 이론'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닉슨 정권에서 출발한 캐슬린 T.맥파런드(부보좌관)와 모니카 크롤리(선임국장)에 각각 임명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러나 "닉슨은 미국과 소련 등 2개의 슈퍼파워가 있던 2극 체제에서 이 게임을 사용했다"며 " 트럼프가 이끌 세계는 이슬람 국가(IS)의 비대칭 전쟁이 최고의 우려 상황으로 떠오른 다극 체제"라고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9월 대선 후보 2차 토론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을 향해 "미치광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후보는 당시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 "이란 핵 합의는 끔찍하고 무능력한 것"이라고 거론한 뒤, 갑자기 "누구도 미치광이가 앉아서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북한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에 대해 '미치광이'라고 비판했던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미치광이 이론'을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에 대한 반응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바로가기] ☞ 도널드 트럼프, 외교 정책에 ‘미치광이 이론’ 활용(워싱턴 포스트)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