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북한 실상을 고발한다…탈북민 래퍼
입력 2016.12.24 (08:20)
수정 2016.12.2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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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크리스마스가 내일이고, 연말인데요.
그래선지 요즘 좋은 공연들이 많이 열리더군요..
네. 저희가 오늘 전할 내용도 최근 있었던 한 특별한 공연과 관련돼 있습니다. 힙합 공연이죠.
네, 좀 낯선 분도 있겠지만, 들어보면 울림이 큽니다.
바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탈북민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힙합으로 호소하는 북한 인권, 기대되는데요.
신나는 공연장으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합니다.
<리포트>
젊음의 거리인 서울 홍대 앞!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금요일 밤인데요.
한 작은 공연장에서 힙합 공연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녹취> "그 땅은 리설주가 조국의 어머니 But she's not my 어머니. 내 어머니가 아오지에서 얻은 건 결핵 땅굴 판 돈 착취해서 만든 것은 핵."
이 공연의 주인공은 탈북민 래퍼 강춘혁 씨입니다.
미국 할렘가 흑인들이 특유의 저항정신을 담아 부르기 시작한 ‘힙합’이라는 장르.
북에서 온 춘혁 씨는 이 힙합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래퍼 춘혁 씨.
이날 새 자작곡인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는데요.
<녹취> 'For the Freedom (자유를 향하여)' : "배때지에 살이나 빼 도발은 그만 만들 때 됐네 식스팩."
노래와 랩으로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실상을 알리고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춘혁 씨.
목숨을 건 탈북과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도 담담히 풀어내는데요.
<녹취> "아들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은 채 고개 숙여 흐느끼네. 처자식 먹여 살리려 몰래 넘은 두만강 나랏님은 핵개발로 관심 밖인 백성..."
남다른 경험과 느낌을 담은 그의 노래,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인터뷰> 미셸(미국인) : "좋아요. 늘 멋져요. 저는 1등 팬입니다. 춘혁 씨는 아주 어려서 한국에 왔는데, 그의 재능을 북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쓰고 있다는 게 저는 정말 놀랍습니다."
<인터뷰> 이성주(탈북민) : "저도 옛날 생각에 이제 두만강 넘었을 때 그 생각, 그리고 중국에 있었을 때 생각, 또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렇게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공연에는 다른 가수들도 함께 해 흥을 돋웠는데요.
신나는 음악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제 멀리서 찾아오는 팬들도 있을 정돕니다.
<인터뷰> 김준혁(전북 전주시) : "친구들이랑 수능 끝나고 뭘 할까 하다가 저희가 같은 민족이고 그런 면에서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은 북한 난민들을 돕는 데 쓸 예정입니다.
국적도 연령층도 다양한 관객들, 춘혁 씨에게 궁금한 것도 많은데요.
힙합은 젊은이들만의 음악이라는 편견도 공감을 통해 사라집니다.
<인터뷰> 김석우(전 통일원 차관) : "저는 이런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랩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너무 공감이 가는 메시지를 아주 과감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단한 음악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1년 한국에 온 춘혁 씨는 미대를 졸업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는데요.
어린 시절 목격한 공개처형 장면을 그려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고, 미사일을 감춘 채 유모차에 앉아 떼쓰고 있는 아기 김정은,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양 쪽 눈에 그려진 자화상 등 다양한 그림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탈북했다 해외에서 붙잡혀 끝내 북송된 탈북민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이게 알리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젊은 아이들이 열 한 명이 잡혔었거든요. 그런데 다 다시 북송됐어요. 나이 많은 두 명은 아마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그때 느낌이)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던 춘혁 씨가 래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흑인들이 (랩을 통해) 자기네 인권을 얘기하고 자기 인생 얘기를 계속 했던 그런 문화에서 이제는 큰 대중문화가 됐잖아요. 그림 전시도 하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좀 이런 걸 상황을 알리면 많은 사람들이 들을 거 같다..."
주말 열정적인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월요일.
춘혁 씨가 한 북한인권운동단체를 찾았습니다.
평소 어머니 같이 여기는 김영자 국장에게 새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5년 전 하나원에서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지금까지 꾸준히 응원 해 준 고마운 분인데요.
실제 춘혁 씨의 이번 뮤직비디오에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기도 한 영자 씨.
낯선 땅에서 방황하던 춘혁 씨가 가수 겸 화가로 성장해 가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터뷰> 김영자(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 "여러 분야의 롤모델을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뭔가 이렇게 성공하는 것을 다른 (탈북민) 후배들이 봤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고 싶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춘혁 씨가 상당히 잘 성장하고 있고... 나는 늘 박수쳐주고 싶죠."
춘혁 씨는 이제 전시회와 콘서트를 통해서 북한인권운동가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소희(북한인권시민연합 캠페인팀) : "북한 인권에 관심이 없고 뭐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되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인식 교육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자와 비판, 독설이 섞인 그림과 랩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 강춘혁 씨.
특히 젊은 층에게 큰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그 관심과 공감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올해 나이 서른한 살.
인생의 절반을 살았던 떠나 온 고향 북한의 현실을 노래로 알리고 있는 춘혁 씨.
통일 되는 그날 까지, 그의 노래는 계속될 겁니다.
<녹취> "내 가사 속에 잠든 수많은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 부디 평안하게 눈 감아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눠진 땅에서는 끝나지 않는 never ending story (끝나지 않는 이야기). The story will be Continued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이고, 연말인데요.
그래선지 요즘 좋은 공연들이 많이 열리더군요..
네. 저희가 오늘 전할 내용도 최근 있었던 한 특별한 공연과 관련돼 있습니다. 힙합 공연이죠.
네, 좀 낯선 분도 있겠지만, 들어보면 울림이 큽니다.
바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탈북민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힙합으로 호소하는 북한 인권, 기대되는데요.
신나는 공연장으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합니다.
<리포트>
젊음의 거리인 서울 홍대 앞!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금요일 밤인데요.
한 작은 공연장에서 힙합 공연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녹취> "그 땅은 리설주가 조국의 어머니 But she's not my 어머니. 내 어머니가 아오지에서 얻은 건 결핵 땅굴 판 돈 착취해서 만든 것은 핵."
이 공연의 주인공은 탈북민 래퍼 강춘혁 씨입니다.
미국 할렘가 흑인들이 특유의 저항정신을 담아 부르기 시작한 ‘힙합’이라는 장르.
북에서 온 춘혁 씨는 이 힙합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래퍼 춘혁 씨.
이날 새 자작곡인
<녹취> 'For the Freedom (자유를 향하여)' : "배때지에 살이나 빼 도발은 그만 만들 때 됐네 식스팩."
노래와 랩으로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실상을 알리고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춘혁 씨.
목숨을 건 탈북과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도 담담히 풀어내는데요.
<녹취> "아들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은 채 고개 숙여 흐느끼네. 처자식 먹여 살리려 몰래 넘은 두만강 나랏님은 핵개발로 관심 밖인 백성..."
남다른 경험과 느낌을 담은 그의 노래,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인터뷰> 미셸(미국인) : "좋아요. 늘 멋져요. 저는 1등 팬입니다. 춘혁 씨는 아주 어려서 한국에 왔는데, 그의 재능을 북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쓰고 있다는 게 저는 정말 놀랍습니다."
<인터뷰> 이성주(탈북민) : "저도 옛날 생각에 이제 두만강 넘었을 때 그 생각, 그리고 중국에 있었을 때 생각, 또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렇게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공연에는 다른 가수들도 함께 해 흥을 돋웠는데요.
신나는 음악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제 멀리서 찾아오는 팬들도 있을 정돕니다.
<인터뷰> 김준혁(전북 전주시) : "친구들이랑 수능 끝나고 뭘 할까 하다가 저희가 같은 민족이고 그런 면에서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은 북한 난민들을 돕는 데 쓸 예정입니다.
국적도 연령층도 다양한 관객들, 춘혁 씨에게 궁금한 것도 많은데요.
힙합은 젊은이들만의 음악이라는 편견도 공감을 통해 사라집니다.
<인터뷰> 김석우(전 통일원 차관) : "저는 이런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랩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너무 공감이 가는 메시지를 아주 과감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단한 음악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1년 한국에 온 춘혁 씨는 미대를 졸업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는데요.
어린 시절 목격한 공개처형 장면을 그려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고, 미사일을 감춘 채 유모차에 앉아 떼쓰고 있는 아기 김정은,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양 쪽 눈에 그려진 자화상 등 다양한 그림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탈북했다 해외에서 붙잡혀 끝내 북송된 탈북민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이게 알리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젊은 아이들이 열 한 명이 잡혔었거든요. 그런데 다 다시 북송됐어요. 나이 많은 두 명은 아마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그때 느낌이)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던 춘혁 씨가 래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흑인들이 (랩을 통해) 자기네 인권을 얘기하고 자기 인생 얘기를 계속 했던 그런 문화에서 이제는 큰 대중문화가 됐잖아요. 그림 전시도 하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좀 이런 걸 상황을 알리면 많은 사람들이 들을 거 같다..."
주말 열정적인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월요일.
춘혁 씨가 한 북한인권운동단체를 찾았습니다.
평소 어머니 같이 여기는 김영자 국장에게 새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5년 전 하나원에서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지금까지 꾸준히 응원 해 준 고마운 분인데요.
실제 춘혁 씨의 이번 뮤직비디오에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기도 한 영자 씨.
낯선 땅에서 방황하던 춘혁 씨가 가수 겸 화가로 성장해 가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터뷰> 김영자(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 "여러 분야의 롤모델을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뭔가 이렇게 성공하는 것을 다른 (탈북민) 후배들이 봤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고 싶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춘혁 씨가 상당히 잘 성장하고 있고... 나는 늘 박수쳐주고 싶죠."
춘혁 씨는 이제 전시회와 콘서트를 통해서 북한인권운동가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소희(북한인권시민연합 캠페인팀) : "북한 인권에 관심이 없고 뭐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되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인식 교육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자와 비판, 독설이 섞인 그림과 랩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 강춘혁 씨.
특히 젊은 층에게 큰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그 관심과 공감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올해 나이 서른한 살.
인생의 절반을 살았던 떠나 온 고향 북한의 현실을 노래로 알리고 있는 춘혁 씨.
통일 되는 그날 까지, 그의 노래는 계속될 겁니다.
<녹취> "내 가사 속에 잠든 수많은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 부디 평안하게 눈 감아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눠진 땅에서는 끝나지 않는 never ending story (끝나지 않는 이야기). The story will be Continued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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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로 미래로] 북한 실상을 고발한다…탈북민 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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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6-12-24 07:51:14
- 수정2016-12-24 09:13:04
<앵커 멘트>
크리스마스가 내일이고, 연말인데요.
그래선지 요즘 좋은 공연들이 많이 열리더군요..
네. 저희가 오늘 전할 내용도 최근 있었던 한 특별한 공연과 관련돼 있습니다. 힙합 공연이죠.
네, 좀 낯선 분도 있겠지만, 들어보면 울림이 큽니다.
바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탈북민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힙합으로 호소하는 북한 인권, 기대되는데요.
신나는 공연장으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합니다.
<리포트>
젊음의 거리인 서울 홍대 앞!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금요일 밤인데요.
한 작은 공연장에서 힙합 공연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녹취> "그 땅은 리설주가 조국의 어머니 But she's not my 어머니. 내 어머니가 아오지에서 얻은 건 결핵 땅굴 판 돈 착취해서 만든 것은 핵."
이 공연의 주인공은 탈북민 래퍼 강춘혁 씨입니다.
미국 할렘가 흑인들이 특유의 저항정신을 담아 부르기 시작한 ‘힙합’이라는 장르.
북에서 온 춘혁 씨는 이 힙합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래퍼 춘혁 씨.
이날 새 자작곡인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는데요.
<녹취> 'For the Freedom (자유를 향하여)' : "배때지에 살이나 빼 도발은 그만 만들 때 됐네 식스팩."
노래와 랩으로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실상을 알리고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춘혁 씨.
목숨을 건 탈북과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도 담담히 풀어내는데요.
<녹취> "아들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은 채 고개 숙여 흐느끼네. 처자식 먹여 살리려 몰래 넘은 두만강 나랏님은 핵개발로 관심 밖인 백성..."
남다른 경험과 느낌을 담은 그의 노래,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인터뷰> 미셸(미국인) : "좋아요. 늘 멋져요. 저는 1등 팬입니다. 춘혁 씨는 아주 어려서 한국에 왔는데, 그의 재능을 북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쓰고 있다는 게 저는 정말 놀랍습니다."
<인터뷰> 이성주(탈북민) : "저도 옛날 생각에 이제 두만강 넘었을 때 그 생각, 그리고 중국에 있었을 때 생각, 또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렇게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공연에는 다른 가수들도 함께 해 흥을 돋웠는데요.
신나는 음악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제 멀리서 찾아오는 팬들도 있을 정돕니다.
<인터뷰> 김준혁(전북 전주시) : "친구들이랑 수능 끝나고 뭘 할까 하다가 저희가 같은 민족이고 그런 면에서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은 북한 난민들을 돕는 데 쓸 예정입니다.
국적도 연령층도 다양한 관객들, 춘혁 씨에게 궁금한 것도 많은데요.
힙합은 젊은이들만의 음악이라는 편견도 공감을 통해 사라집니다.
<인터뷰> 김석우(전 통일원 차관) : "저는 이런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랩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너무 공감이 가는 메시지를 아주 과감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단한 음악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1년 한국에 온 춘혁 씨는 미대를 졸업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는데요.
어린 시절 목격한 공개처형 장면을 그려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고, 미사일을 감춘 채 유모차에 앉아 떼쓰고 있는 아기 김정은,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양 쪽 눈에 그려진 자화상 등 다양한 그림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탈북했다 해외에서 붙잡혀 끝내 북송된 탈북민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이게 알리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젊은 아이들이 열 한 명이 잡혔었거든요. 그런데 다 다시 북송됐어요. 나이 많은 두 명은 아마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그때 느낌이)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던 춘혁 씨가 래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흑인들이 (랩을 통해) 자기네 인권을 얘기하고 자기 인생 얘기를 계속 했던 그런 문화에서 이제는 큰 대중문화가 됐잖아요. 그림 전시도 하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좀 이런 걸 상황을 알리면 많은 사람들이 들을 거 같다..."
주말 열정적인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월요일.
춘혁 씨가 한 북한인권운동단체를 찾았습니다.
평소 어머니 같이 여기는 김영자 국장에게 새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5년 전 하나원에서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지금까지 꾸준히 응원 해 준 고마운 분인데요.
실제 춘혁 씨의 이번 뮤직비디오에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기도 한 영자 씨.
낯선 땅에서 방황하던 춘혁 씨가 가수 겸 화가로 성장해 가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터뷰> 김영자(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 "여러 분야의 롤모델을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뭔가 이렇게 성공하는 것을 다른 (탈북민) 후배들이 봤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고 싶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춘혁 씨가 상당히 잘 성장하고 있고... 나는 늘 박수쳐주고 싶죠."
춘혁 씨는 이제 전시회와 콘서트를 통해서 북한인권운동가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소희(북한인권시민연합 캠페인팀) : "북한 인권에 관심이 없고 뭐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되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인식 교육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자와 비판, 독설이 섞인 그림과 랩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 강춘혁 씨.
특히 젊은 층에게 큰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그 관심과 공감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올해 나이 서른한 살.
인생의 절반을 살았던 떠나 온 고향 북한의 현실을 노래로 알리고 있는 춘혁 씨.
통일 되는 그날 까지, 그의 노래는 계속될 겁니다.
<녹취> "내 가사 속에 잠든 수많은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 부디 평안하게 눈 감아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눠진 땅에서는 끝나지 않는 never ending story (끝나지 않는 이야기). The story will be Continued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이고, 연말인데요.
그래선지 요즘 좋은 공연들이 많이 열리더군요..
네. 저희가 오늘 전할 내용도 최근 있었던 한 특별한 공연과 관련돼 있습니다. 힙합 공연이죠.
네, 좀 낯선 분도 있겠지만, 들어보면 울림이 큽니다.
바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탈북민 래퍼의 이야기입니다.
힙합으로 호소하는 북한 인권, 기대되는데요.
신나는 공연장으로 홍은지 리포터가 안내합니다.
<리포트>
젊음의 거리인 서울 홍대 앞!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금요일 밤인데요.
한 작은 공연장에서 힙합 공연이 한창입니다.
그런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가사가 예사롭지 않은데요.
<녹취> "그 땅은 리설주가 조국의 어머니 But she's not my 어머니. 내 어머니가 아오지에서 얻은 건 결핵 땅굴 판 돈 착취해서 만든 것은 핵."
이 공연의 주인공은 탈북민 래퍼 강춘혁 씨입니다.
미국 할렘가 흑인들이 특유의 저항정신을 담아 부르기 시작한 ‘힙합’이라는 장르.
북에서 온 춘혁 씨는 이 힙합으로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래퍼 춘혁 씨.
이날 새 자작곡인
<녹취> 'For the Freedom (자유를 향하여)' : "배때지에 살이나 빼 도발은 그만 만들 때 됐네 식스팩."
노래와 랩으로 북한 주민들이 처한 실상을 알리고 비판의 메시지를 던지는 춘혁 씨.
목숨을 건 탈북과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낀 점들도 담담히 풀어내는데요.
<녹취> "아들이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릎 꿇은 채 고개 숙여 흐느끼네. 처자식 먹여 살리려 몰래 넘은 두만강 나랏님은 핵개발로 관심 밖인 백성..."
남다른 경험과 느낌을 담은 그의 노래,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인터뷰> 미셸(미국인) : "좋아요. 늘 멋져요. 저는 1등 팬입니다. 춘혁 씨는 아주 어려서 한국에 왔는데, 그의 재능을 북한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쓰고 있다는 게 저는 정말 놀랍습니다."
<인터뷰> 이성주(탈북민) : "저도 옛날 생각에 이제 두만강 넘었을 때 그 생각, 그리고 중국에 있었을 때 생각, 또 한국 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생각들이 파노라마처럼 이렇게 지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이번 공연에는 다른 가수들도 함께 해 흥을 돋웠는데요.
신나는 음악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이제 멀리서 찾아오는 팬들도 있을 정돕니다.
<인터뷰> 김준혁(전북 전주시) : "친구들이랑 수능 끝나고 뭘 할까 하다가 저희가 같은 민족이고 그런 면에서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은 북한 난민들을 돕는 데 쓸 예정입니다.
국적도 연령층도 다양한 관객들, 춘혁 씨에게 궁금한 것도 많은데요.
힙합은 젊은이들만의 음악이라는 편견도 공감을 통해 사라집니다.
<인터뷰> 김석우(전 통일원 차관) : "저는 이런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 랩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너무 공감이 가는 메시지를 아주 과감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단한 음악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함경북도 출신으로 2001년 한국에 온 춘혁 씨는 미대를 졸업한 화가이기도 합니다.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는데요.
어린 시절 목격한 공개처형 장면을 그려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기도 했고, 미사일을 감춘 채 유모차에 앉아 떼쓰고 있는 아기 김정은, 태극기와 북한의 인공기가 양 쪽 눈에 그려진 자화상 등 다양한 그림으로 날카로운 풍자와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탈북했다 해외에서 붙잡혀 끝내 북송된 탈북민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그림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사람들이게 알리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젊은 아이들이 열 한 명이 잡혔었거든요. 그런데 다 다시 북송됐어요. 나이 많은 두 명은 아마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그때 느낌이)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던 춘혁 씨가 래퍼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뭘까요?
<인터뷰> 강춘혁(탈북민 래퍼 겸 화가) : "흑인들이 (랩을 통해) 자기네 인권을 얘기하고 자기 인생 얘기를 계속 했던 그런 문화에서 이제는 큰 대중문화가 됐잖아요. 그림 전시도 하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도 좀 이런 걸 상황을 알리면 많은 사람들이 들을 거 같다..."
주말 열정적인 무대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월요일.
춘혁 씨가 한 북한인권운동단체를 찾았습니다.
평소 어머니 같이 여기는 김영자 국장에게 새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5년 전 하나원에서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지금까지 꾸준히 응원 해 준 고마운 분인데요.
실제 춘혁 씨의 이번 뮤직비디오에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기도 한 영자 씨.
낯선 땅에서 방황하던 춘혁 씨가 가수 겸 화가로 성장해 가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인터뷰> 김영자(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국장) : "여러 분야의 롤모델을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뭔가 이렇게 성공하는 것을 다른 (탈북민) 후배들이 봤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넣어주고 싶은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춘혁 씨가 상당히 잘 성장하고 있고... 나는 늘 박수쳐주고 싶죠."
춘혁 씨는 이제 전시회와 콘서트를 통해서 북한인권운동가로서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소희(북한인권시민연합 캠페인팀) : "북한 인권에 관심이 없고 뭐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되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어서 인식 교육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자와 비판, 독설이 섞인 그림과 랩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있는 강춘혁 씨.
특히 젊은 층에게 큰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는데요.
그 관심과 공감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올해 나이 서른한 살.
인생의 절반을 살았던 떠나 온 고향 북한의 현실을 노래로 알리고 있는 춘혁 씨.
통일 되는 그날 까지, 그의 노래는 계속될 겁니다.
<녹취> "내 가사 속에 잠든 수많은 부모 형제 친구들에게 부디 평안하게 눈 감아 주길 바랄 뿐입니다. 나눠진 땅에서는 끝나지 않는 never ending story (끝나지 않는 이야기). The story will be Continued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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