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최후의 재두루미 가족…내년에도 올까?

입력 2016.12.2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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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서 먹이를 찾는 재두루미 한 쌍, 그 바로 뒤편에 아파트가 보입니다. 아파트 창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재두루미는 만 마리가 채 안 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사람의 접근을 꺼려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보기 힘든 재두루미를 아파트에서 볼 수 있다니! 아래 사진은 아파트에서 망원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아파트에서 촬영한 재두루미(300mm 망원렌즈)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아파트에서 촬영한 재두루미(300mm 망원렌즈)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아파트에서 촬영한 재두루미(800mm 망원렌즈)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아파트에서 촬영한 재두루미(800mm 망원렌즈)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재두루미를 이렇게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고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기가 어디일까요? 바로 김포 홍도평, 한강 하구에 마지막 남은 재두루미 월동지입니다. 밤이면 한강 너머 장항습지 갯벌에서 잠을 자고 낮이면 여기 홍도평에서 먹이를 찾습니다. 장항습지는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기 때문에 재두루미에겐 안전한 잠자리입니다. 그 장항습지 바로 건너편에 홍도평이 있습니다. 안전한 잠자리와 가까운 먹이터, 재두루미가 충분히 월동지로 삼을 만한 곳입니다.


홍도평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 가족. 12월 12일 촬영.홍도평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 가족. 12월 12일 촬영.



이런 조건 덕분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홍도평에는 백 마리가 넘는 재두루미가 월동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많은 재두루미가 온다면 세계적 탐조명소가 될 수 있습니다. 천만 서울 인구가 멀리 순천만이나 일본 이즈미를 가지 않고도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를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올해는 단 9마리만 목격됐습니다. 지난 12월 12일 취재진이 갔을 때는 한 가족, 세 마리만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줄었을까요? 잠자리가 더는 안전하지 않아서일까요? 먹이터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현재의 홍도평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공장과 창고가 들어선 홍도평 위를 날아가는 재두루미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공장과 창고가 들어선 홍도평 위를 날아가는 재두루미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홍도평에 들어선 각종 창고와 시설물홍도평에 들어선 각종 창고와 시설물

한때 농지만 펼쳐졌던 홍도평,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북쪽 절반가량의 농지에 한강시네폴리스라는 복합단지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 아래를 자동차 도로가 가로지릅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남쪽 농지에도 창고와 비닐하우스 등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재두루미 월동기인 지금도 공사가 한창입니다. 취재진이 갔을 때도 한쪽 농지에 2m 높이의 흙을 덮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농지 성토가 한창인 홍도평농지 성토가 한창인 홍도평

홍도평은 재두루미에게 이제 더이상 안전한 먹이터가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지금 남아있는 재두루미마저 홍도평을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포시는 홍도평을 보전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도평이 시가지와 가까운 데다가 개발 압력이 높다 보니 보전이 어렵다는 겁니다. 사유지라서 차량이나 사람 통행을 제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자의 개발을 막을 수도 없다는 게 김포시의 답변입니다.

홍도평 재두루미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홍도평 재두루미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시는 홍도평 대신 북서쪽 후평리에 재두루미 월동지를 조성했습니다. 후평리로 재두루미를 유인하기 위한 사업은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실제로 후평리에는 120ha의 넓은 농지에 생물다양성 계약을 맺고 볏짚 존치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먹이를 두고 두루미를 유인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후평리에는 재두루미가 찾아올까요?

김포시가 재두루미 월동지로 조성하고 있는 후평리 농지. 김포시가 재두루미 월동지로 조성하고 있는 후평리 농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후평리 들판은 넓습니다. 논 가운데 재두루미 조형물도 세웠습니다. 조형물을 보고 진짜 재두루미가 올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거죠. 도로에는 검은색 차단막도 둘렀습니다. 사람이나 차량이 이동하더라도 새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시선 차단막을 두른 겁니다. 이렇게 정성을 기울였지만 재두루미는 없습니다. 가을과 봄 철새 이동 시기에 어쩌다 몇 마리가 앉을 뿐, 여기서 월동하는 개체는 없습니다. 2009년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두루미는 후평리를 외면합니다. 기러기만 몇 마리씩 보일 뿐입니다.

후평리에 앉은 기러기후평리에 앉은 기러기

왜 재두루미는 후평리를 외면할까요? 새들의 마음을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후평리가 재두루미 잠자리인 장항습지에서 멀리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직선거리로도 13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잠자리 바로 옆에서 먹이터를 찾는 재두루미에게 후평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평리에서 아무리 유인해도 재두루미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예 김포와 한강하구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2001년 홍도평의 재두루미떼.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2001년 홍도평의 재두루미떼.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때 백 마리가 넘었던 홍도평 재두루미, 올해는 9마리만 찾았습니다. 내년에는 과연 몇 마리나 올까요? 수년 뒤에는 한 마리도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한강 하구 재두루미 월동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뒤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재두루미를 불러오기 어렵습니다. 올해 찾아온 9마리, 홍도평을 기억하는 9마리가 남아 있는 지금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부디 그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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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포 최후의 재두루미 가족…내년에도 올까?
    • 입력 2016-12-26 13:45:37
    취재K
논에서 먹이를 찾는 재두루미 한 쌍, 그 바로 뒤편에 아파트가 보입니다. 아파트 창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재두루미는 만 마리가 채 안 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사람의 접근을 꺼려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보기 힘든 재두루미를 아파트에서 볼 수 있다니! 아래 사진은 아파트에서 망원카메라로 촬영했습니다.

아파트에서 촬영한 재두루미(300mm 망원렌즈)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아파트에서 촬영한 재두루미(800mm 망원렌즈)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재두루미를 이렇게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말고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기가 어디일까요? 바로 김포 홍도평, 한강 하구에 마지막 남은 재두루미 월동지입니다. 밤이면 한강 너머 장항습지 갯벌에서 잠을 자고 낮이면 여기 홍도평에서 먹이를 찾습니다. 장항습지는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기 때문에 재두루미에겐 안전한 잠자리입니다. 그 장항습지 바로 건너편에 홍도평이 있습니다. 안전한 잠자리와 가까운 먹이터, 재두루미가 충분히 월동지로 삼을 만한 곳입니다.


홍도평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 가족. 12월 12일 촬영.


이런 조건 덕분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홍도평에는 백 마리가 넘는 재두루미가 월동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많은 재두루미가 온다면 세계적 탐조명소가 될 수 있습니다. 천만 서울 인구가 멀리 순천만이나 일본 이즈미를 가지 않고도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재두루미를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올해는 단 9마리만 목격됐습니다. 지난 12월 12일 취재진이 갔을 때는 한 가족, 세 마리만 볼 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줄었을까요? 잠자리가 더는 안전하지 않아서일까요? 먹이터에 문제가 생긴 걸까요? 현재의 홍도평 상황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공장과 창고가 들어선 홍도평 위를 날아가는 재두루미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홍도평에 들어선 각종 창고와 시설물
한때 농지만 펼쳐졌던 홍도평,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북쪽 절반가량의 농지에 한강시네폴리스라는 복합단지가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 아래를 자동차 도로가 가로지릅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남쪽 농지에도 창고와 비닐하우스 등 각종 시설물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재두루미 월동기인 지금도 공사가 한창입니다. 취재진이 갔을 때도 한쪽 농지에 2m 높이의 흙을 덮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농지 성토가 한창인 홍도평
홍도평은 재두루미에게 이제 더이상 안전한 먹이터가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지금 남아있는 재두루미마저 홍도평을 떠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포시는 홍도평을 보전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도평이 시가지와 가까운 데다가 개발 압력이 높다 보니 보전이 어렵다는 겁니다. 사유지라서 차량이나 사람 통행을 제한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자의 개발을 막을 수도 없다는 게 김포시의 답변입니다.

홍도평 재두루미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시는 홍도평 대신 북서쪽 후평리에 재두루미 월동지를 조성했습니다. 후평리로 재두루미를 유인하기 위한 사업은 지난 2009년부터 시작됐습니다. 실제로 후평리에는 120ha의 넓은 농지에 생물다양성 계약을 맺고 볏짚 존치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먹이를 두고 두루미를 유인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후평리에는 재두루미가 찾아올까요?

김포시가 재두루미 월동지로 조성하고 있는 후평리 농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후평리 들판은 넓습니다. 논 가운데 재두루미 조형물도 세웠습니다. 조형물을 보고 진짜 재두루미가 올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거죠. 도로에는 검은색 차단막도 둘렀습니다. 사람이나 차량이 이동하더라도 새들이 방해받지 않도록 시선 차단막을 두른 겁니다. 이렇게 정성을 기울였지만 재두루미는 없습니다. 가을과 봄 철새 이동 시기에 어쩌다 몇 마리가 앉을 뿐, 여기서 월동하는 개체는 없습니다. 2009년 이후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재두루미는 후평리를 외면합니다. 기러기만 몇 마리씩 보일 뿐입니다.

후평리에 앉은 기러기
왜 재두루미는 후평리를 외면할까요? 새들의 마음을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후평리가 재두루미 잠자리인 장항습지에서 멀리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직선거리로도 13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잠자리 바로 옆에서 먹이터를 찾는 재두루미에게 후평리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후평리에서 아무리 유인해도 재두루미는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예 김포와 한강하구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2001년 홍도평의 재두루미떼.                 ⓒ 윤순영: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때 백 마리가 넘었던 홍도평 재두루미, 올해는 9마리만 찾았습니다. 내년에는 과연 몇 마리나 올까요? 수년 뒤에는 한 마리도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한강 하구 재두루미 월동지는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 뒤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재두루미를 불러오기 어렵습니다. 올해 찾아온 9마리, 홍도평을 기억하는 9마리가 남아 있는 지금은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부디 그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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