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한국인 슈바이처’…“아픈만큼 사랑한다”

입력 2016.12.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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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에 있는 도시 파라냐케. 이 곳에 치료할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하는 한국인 의사가 있다. 바로 박누가(58, 본명 박삼철) 씨다.

의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시작한 의료 봉사가 어느덧 27년 째. 박 씨는 필리핀 골짜기 무의촌을 찾아다니며 아픈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가 필리핀에서 의료 봉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지난 1989년. 평범한 외과 의사였던 그는당시 우연히 필리핀에 왔다가 이후 그 곳에 정착하게 됐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진료를 보고 빵과 비타민까지 챙겨주는 박 씨.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의 학비를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박 씨를 사람들은 '필리핀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본인도 위암4기, 그래도 놓을 수 없다


사실 박 씨는 남의 건강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필리핀 오지를 다니며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간염 등 10여 가지 넘는 질병을 직접 앓았던 그는 2004년 위암 판정을 받아 15%의 위만 남기고 다 잘라냈다. 이후 암 세포가 간과 임파선으로까지 전이됐고 2009년에는 간경화, 당뇨 판정까지 받았다. 암에 걸린 것조차 '내가 아픈 만큼 아픈 사람을 더 사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박 씨. 그에게 최근 다시 또 큰 시련이 찾아왔다. 위암 4기, 병원에서는 이제 남은 시간이 6개월 뿐이라고 통보했다.

어머니와 큰누나, 그리고 큰형까지 모두 암과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만큼 그의 병은 가족 병력이다. 박 씨의 아내와 아들, 그의 누나들은 박 씨가 한국으로 들어와 항암치료에만 전념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박 씨는 치료 받을 기회조차 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을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필리핀을 오가고 있다.


진료 보기 직전까지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지만 박 씨는 환자들 앞에서만큼은 전혀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저 의사도 죽음이 무서워서 덜덜 떤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치료자로서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료 버스 타고 다니며 봉사 활동


27년 전, 박 씨는 의료 봉사를 위해 아내와 6개월 된 큰 아들을 데리고 신혼살림을 다 팔아 필리핀으로 왔다. 봉사를 시작하고도 환자들을 치료할 병원이 없었던 박 씨는 의료 버스를 운행하며 필리핀 곳곳으로 진료를 다녔다. 덕분에 박 씨와 아내, 6개월된 아들은 화장실도 없는 이동 버스에서 6년간 살았다.


박 씨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7년 전쯤이다. 아픈 사람을 더 많이 치료하기 위해 입원실도 만들었다. 의료 봉사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환경이 갖춰졌지만 이제는 박 씨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 하지만 박 씨는 "내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내일 당장 어떻게 되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누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오로지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박 씨의 주변에는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

간호사도 없이 홀로 외로이 의료활동을 하는 박 씨를 돕기 위해 2년 전 박 씨의 처가 쪽 조카인 김주희(32) 씨가 필리핀으로 왔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는 김주희 씨는 의료 봉사를 하러 필리핀에 왔다가 아픈 박 씨를 보고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박 씨처럼 의료봉사에 삶을 바치고 싶다는 그녀는 간호사 업무를 하며 병원 살림을 맡고 있다. 갑상선 수술을 받느라 필리핀으로 오지 못하고 있는 박 씨의 아내 대신 박 씨의 건강을 살피기도 한다.


필리핀에 사는 한국 교민들 역시 박 씨의 의료 봉사를 돕는다. 오지로 의료 봉사를 다니는 박 씨의 운전 기사를 자처하거나 공수하기 힘든 한국 음식을 박 씨에게 가져다 주는 교민도 있다.

박 씨에게 치료를 받는 오지 사람들 역시 박 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치료비가 무료이지만, 박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이 가진 코코넛과 파파야를 선물하기도 한다.

2012년 KBS의 '인간극장-아픈만큼 사랑한다'에서 박 씨의 이야기가 전파를 탄 이후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박 씨의 인터넷 팬카페도 만들어져 그의 의료봉사를 후원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삶으로 증명하며 살아가는 박누가 씨. 그는 오늘도 자신의 병마와 싸우며 필리핀의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하고 있다.

KBS '인간극장-아픈만큼 사랑한다, 그 후'는 자신의 고통을 뒤로 한 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 박누가의 나눔의 삶을 전한다. 12월 26일(월)부터 12월 30일(금)까지 매일 오전 7시 5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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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의 ‘한국인 슈바이처’…“아픈만큼 사랑한다”
    • 입력 2016-12-27 15:19:23
    방송·연예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에 있는 도시 파라냐케. 이 곳에 치료할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필리핀 사람들을 무료로 진료하는 한국인 의사가 있다. 바로 박누가(58, 본명 박삼철) 씨다.

의료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시작한 의료 봉사가 어느덧 27년 째. 박 씨는 필리핀 골짜기 무의촌을 찾아다니며 아픈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그가 필리핀에서 의료 봉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지난 1989년. 평범한 외과 의사였던 그는당시 우연히 필리핀에 왔다가 이후 그 곳에 정착하게 됐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진료를 보고 빵과 비타민까지 챙겨주는 박 씨.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의 학비를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박 씨를 사람들은 '필리핀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본인도 위암4기, 그래도 놓을 수 없다


사실 박 씨는 남의 건강보다 자신의 건강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필리핀 오지를 다니며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뎅기열, 간염 등 10여 가지 넘는 질병을 직접 앓았던 그는 2004년 위암 판정을 받아 15%의 위만 남기고 다 잘라냈다. 이후 암 세포가 간과 임파선으로까지 전이됐고 2009년에는 간경화, 당뇨 판정까지 받았다. 암에 걸린 것조차 '내가 아픈 만큼 아픈 사람을 더 사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박 씨. 그에게 최근 다시 또 큰 시련이 찾아왔다. 위암 4기, 병원에서는 이제 남은 시간이 6개월 뿐이라고 통보했다.

어머니와 큰누나, 그리고 큰형까지 모두 암과 간경화로 일찍 세상을 떠났던 만큼 그의 병은 가족 병력이다. 박 씨의 아내와 아들, 그의 누나들은 박 씨가 한국으로 들어와 항암치료에만 전념하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박 씨는 치료 받을 기회조차 없이 죽어가는 생명들을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며 필리핀을 오가고 있다.


진료 보기 직전까지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됐지만 박 씨는 환자들 앞에서만큼은 전혀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저 의사도 죽음이 무서워서 덜덜 떤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치료자로서 담대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료 버스 타고 다니며 봉사 활동


27년 전, 박 씨는 의료 봉사를 위해 아내와 6개월 된 큰 아들을 데리고 신혼살림을 다 팔아 필리핀으로 왔다. 봉사를 시작하고도 환자들을 치료할 병원이 없었던 박 씨는 의료 버스를 운행하며 필리핀 곳곳으로 진료를 다녔다. 덕분에 박 씨와 아내, 6개월된 아들은 화장실도 없는 이동 버스에서 6년간 살았다.


박 씨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건 7년 전쯤이다. 아픈 사람을 더 많이 치료하기 위해 입원실도 만들었다. 의료 봉사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할 수 환경이 갖춰졌지만 이제는 박 씨의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 하지만 박 씨는 "내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서 내일 당장 어떻게 되더라도 오늘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박누가를 사랑하는 사람들

오로지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박 씨의 주변에는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많다.

간호사도 없이 홀로 외로이 의료활동을 하는 박 씨를 돕기 위해 2년 전 박 씨의 처가 쪽 조카인 김주희(32) 씨가 필리핀으로 왔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는 김주희 씨는 의료 봉사를 하러 필리핀에 왔다가 아픈 박 씨를 보고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박 씨처럼 의료봉사에 삶을 바치고 싶다는 그녀는 간호사 업무를 하며 병원 살림을 맡고 있다. 갑상선 수술을 받느라 필리핀으로 오지 못하고 있는 박 씨의 아내 대신 박 씨의 건강을 살피기도 한다.


필리핀에 사는 한국 교민들 역시 박 씨의 의료 봉사를 돕는다. 오지로 의료 봉사를 다니는 박 씨의 운전 기사를 자처하거나 공수하기 힘든 한국 음식을 박 씨에게 가져다 주는 교민도 있다.

박 씨에게 치료를 받는 오지 사람들 역시 박 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치료비가 무료이지만, 박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그들이 가진 코코넛과 파파야를 선물하기도 한다.

2012년 KBS의 '인간극장-아픈만큼 사랑한다'에서 박 씨의 이야기가 전파를 탄 이후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박 씨의 인터넷 팬카페도 만들어져 그의 의료봉사를 후원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삶으로 증명하며 살아가는 박누가 씨. 그는 오늘도 자신의 병마와 싸우며 필리핀의 아픈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하고 있다.

KBS '인간극장-아픈만큼 사랑한다, 그 후'는 자신의 고통을 뒤로 한 채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의사 박누가의 나눔의 삶을 전한다. 12월 26일(월)부터 12월 30일(금)까지 매일 오전 7시 5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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