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사원 ‘과로 자살’ 파문…日 대기업 사장 결국 사임

입력 2016.12.2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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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모를 때부터 인생이다"
"토요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결정이 났다. 진짜로 죽고 싶다"
"휴일을 반납해서 만든 자료가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다. 이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감정이 다 사라졌다 "
"매일 다음 날이 오는 게 무서워서 잘 수 없다. 산책할 때 죽기 쉬울듯한 다리를 자주 찾게 됐다"

지난해 4월 일본 최대 광고 회사인 덴츠에 입사한 신입 사원 다카하시 마츠리(24)가 입사 6개월만인 지난해 10월부터 트위터 등 SNS와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 일부이다.

다카하시 마츠리가 숨지기 전 사용한 트위터에 올린 사진 다카하시 마츠리가 숨지기 전 사용한 트위터에 올린 사진

두 달 동안 '과로'로 힘들어하는 메시지를 50 개 이상 보낸 다카하시 마츠리는 지난해 12월 17일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하루를 버티면 앞에 뭐가 남아 있을까? 죽는 쪽이 더 행복한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죽기 전에 보낼 '유서 메일'의 수신자를 누구로 할지 생각했다"

결국, 다카하시 마츠리는 성탄절인 지난해 12월 25일 사원 주택 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다카하시 마츠리의 자살 사건 이후 '불법 잔업'등 덴츠 회사의 노동 실태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한 일본 후생 노동성은 사건 발생 1년여만인 28일 다카하시 마츠리씨에게 노사협정에서 정한 상한을 넘는 불법 잔업을 시키고 축소 신고를 하게 했다며 덴츠 법인과 당시 상사 1명을 노동기준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다카하시 마츠리의 '과로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일본 NHK 화면 다카하시 마츠리의 '과로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일본 NHK 화면

후생 노동성 조사결과 다카하시 씨는 자살하기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에는 130시간, 11월에는 99시간 초과 근무를 했으며 휴일이나 야간 근무도 자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후생 노동성이 과로사 위험이 커지는 이른바 "과로사 라인"으로 인정하는 '월 잔업 80시간'을 훌쩍 넘긴 수치이다. 덴츠에서는 또 직원들이 스스로 작성하는 '근무 상황보고 표'의 초과 근무가 월 70시간을 넘지 않도록 정해놓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다카하시 씨는 초과근무시간으로 130시간과 99시간이 아닌 10월에는 69.9 시간, 11월에는 69.5 시간을 기재했다.

일본 후생 노동성은 또 덴츠에서 다카하시 씨 이외에도 30명 이상의 사원이 불법 잔업을 강요당한 데다 100시간 이상 축소 신고한 사실도 밝혀냈다. 후생노동성은 이 같은 '관행적인 불법 잔업'이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회사 상급자들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다카하시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지 3개월 만에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처벌 절차에 착수한 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은 반영했다는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내년 1월부터 장시간 근무를 내버려둔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등 긴급대책도 마련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도 28일 기자회견에서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말해 근무방식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덴츠 사장 ,"무거운 책임 느끼고 사임"

일본 후생 노동성의 발표 직후 덴츠의 이시이 다다시 사장은 도쿄 덴츠 본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1년 사장으로 취임한 지 5년 만이다.

이시이 다다시 덴츠 사장(가운데)이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불법 잔업’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시이 다다시 덴츠 사장(가운데)이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불법 잔업’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시이 사장은 “장시간 노동의 근본적인 개혁을 끝내지 못해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유족에 대한 사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사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시이 사장은 "덴츠의 악명 높은 전통이라고 불리는 과도한 잔업의 원인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 퀄리티에 대한 과도한 지향, 현장주의, 엄격한 상하관계 등 독특한 덴츠만의 풍토가 과도한 잔업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시이 사장은 이어 “갓 입사한 사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통상적인 사원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며 “전체적으로 이 문제는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이라고 일컬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입사원에게 가해진 비인간적인 지시를 회사가 막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장시간 노동 '불법 잔업'이 덴츠만의 관행?

덴츠에서는 1991년에도 입사 2년 차 남성 사원(당시(24세)이 과로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1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회사는 직원의 심신건강에 주의할 의무를 진다"며 자살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노동 당국은 또 덴츠 본사에서 일하던 30대 남성 사원이 2013년 질병으로 숨진 것에 대해서도 과로사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2010년 8월 중부 지사, 2014년 6월 간사이 지사, 2015년 8월 도쿄 본사에서도 불법 잔업이 적발돼 시정 권고를 받은 바 있다.

이처럼 덴츠에서 '불법 잔업'이라는 악습이 근절되고 않고 20년 이상 지속하면서 일상화된 건 덴츠의 사훈으로 여겨지는 '귀십칙(鬼十則)'때문이라는 게 일본 언론과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덴츠에서 '성공 십계명'이라고도 불리는 '귀십칙'은 전후 덴츠의 중흥을 이끌었던 제4대 사장 요시다 히데오씨가 만든 것으로 직원들의 업무 수첩에 적혀 있다.

덴츠의 사훈으로 여겨지는 ‘귀십칙’덴츠의 사훈으로 여겨지는 ‘귀십칙’

'귀십칙'에는 "파고든 일이라면 완수할 때까지는 죽어도 포기하지 마라",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게 아니다", "늘 머리를 회전시켜 모든 방면에 신경을 쓰고 한 치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는 그런 것이다." 등 과도한 업무를 당연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덴츠 이외에도 일본 기업에서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돼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NHK는 후생 노동성이 규정한 '한 달 80시간 잔업'을 초과하는 업체가 20%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과로 자살'(미수 포함)로 인한 산재 인정은 2015년도에만 93건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과로사 방지 대책 추진법이 2014년 시행됐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 관행이 일본만의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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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입 사원 ‘과로 자살’ 파문…日 대기업 사장 결국 사임
    • 입력 2016-12-29 13:53:01
    취재K
"살기 위해 일하는지, 일하기 위해 사는지 모를 때부터 인생이다"
"토요일도 출근해야 한다고 결정이 났다. 진짜로 죽고 싶다"
"휴일을 반납해서 만든 자료가 신랄하게 비판을 받았다. 이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하다. 자고 싶다는 생각 말고는 감정이 다 사라졌다 "
"매일 다음 날이 오는 게 무서워서 잘 수 없다. 산책할 때 죽기 쉬울듯한 다리를 자주 찾게 됐다"

지난해 4월 일본 최대 광고 회사인 덴츠에 입사한 신입 사원 다카하시 마츠리(24)가 입사 6개월만인 지난해 10월부터 트위터 등 SNS와 자신의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 일부이다.

다카하시 마츠리가 숨지기 전 사용한 트위터에 올린 사진
두 달 동안 '과로'로 힘들어하는 메시지를 50 개 이상 보낸 다카하시 마츠리는 지난해 12월 17일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 스트레스 가득한 하루하루를 버티면 앞에 뭐가 남아 있을까? 죽는 쪽이 더 행복한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죽기 전에 보낼 '유서 메일'의 수신자를 누구로 할지 생각했다"

결국, 다카하시 마츠리는 성탄절인 지난해 12월 25일 사원 주택 4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

다카하시 마츠리의 자살 사건 이후 '불법 잔업'등 덴츠 회사의 노동 실태에 대한 전면 조사에 착수한 일본 후생 노동성은 사건 발생 1년여만인 28일 다카하시 마츠리씨에게 노사협정에서 정한 상한을 넘는 불법 잔업을 시키고 축소 신고를 하게 했다며 덴츠 법인과 당시 상사 1명을 노동기준법 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다카하시 마츠리의 '과로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일본 NHK 화면
후생 노동성 조사결과 다카하시 씨는 자살하기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에는 130시간, 11월에는 99시간 초과 근무를 했으며 휴일이나 야간 근무도 자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후생 노동성이 과로사 위험이 커지는 이른바 "과로사 라인"으로 인정하는 '월 잔업 80시간'을 훌쩍 넘긴 수치이다. 덴츠에서는 또 직원들이 스스로 작성하는 '근무 상황보고 표'의 초과 근무가 월 70시간을 넘지 않도록 정해놓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다카하시 씨는 초과근무시간으로 130시간과 99시간이 아닌 10월에는 69.9 시간, 11월에는 69.5 시간을 기재했다.

일본 후생 노동성은 또 덴츠에서 다카하시 씨 이외에도 30명 이상의 사원이 불법 잔업을 강요당한 데다 100시간 이상 축소 신고한 사실도 밝혀냈다. 후생노동성은 이 같은 '관행적인 불법 잔업'이 지속해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회사 상급자들의 관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은 다카하시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지 3개월 만에 회사와 직원들에 대한 처벌 절차에 착수한 건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은 반영했다는 것이다.

후생노동성은 내년 1월부터 장시간 근무를 내버려둔 기업 명단을 공개하는 등 긴급대책도 마련했다.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도 28일 기자회견에서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없앨 필요가 있다”고 말해 근무방식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덴츠 사장 ,"무거운 책임 느끼고 사임"

일본 후생 노동성의 발표 직후 덴츠의 이시이 다다시 사장은 도쿄 덴츠 본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11년 사장으로 취임한 지 5년 만이다.

이시이 다다시 덴츠 사장(가운데)이 회사 관계자들과 함께 ‘불법 잔업’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이시이 사장은 “장시간 노동의 근본적인 개혁을 끝내지 못해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유족에 대한 사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사임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시이 사장은 "덴츠의 악명 높은 전통이라고 불리는 과도한 잔업의 원인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 퀄리티에 대한 과도한 지향, 현장주의, 엄격한 상하관계 등 독특한 덴츠만의 풍토가 과도한 잔업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시이 사장은 이어 “갓 입사한 사원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통상적인 사원과 같은 지시를 받았다”며 “전체적으로 이 문제는 '권력을 이용한 괴롭힘'이라고 일컬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입사원에게 가해진 비인간적인 지시를 회사가 막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장시간 노동 '불법 잔업'이 덴츠만의 관행?

덴츠에서는 1991년에도 입사 2년 차 남성 사원(당시(24세)이 과로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다. 12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은 “회사는 직원의 심신건강에 주의할 의무를 진다"며 자살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일본 노동 당국은 또 덴츠 본사에서 일하던 30대 남성 사원이 2013년 질병으로 숨진 것에 대해서도 과로사라는 판정을 내렸다. 이와 함께 2010년 8월 중부 지사, 2014년 6월 간사이 지사, 2015년 8월 도쿄 본사에서도 불법 잔업이 적발돼 시정 권고를 받은 바 있다.

이처럼 덴츠에서 '불법 잔업'이라는 악습이 근절되고 않고 20년 이상 지속하면서 일상화된 건 덴츠의 사훈으로 여겨지는 '귀십칙(鬼十則)'때문이라는 게 일본 언론과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덴츠에서 '성공 십계명'이라고도 불리는 '귀십칙'은 전후 덴츠의 중흥을 이끌었던 제4대 사장 요시다 히데오씨가 만든 것으로 직원들의 업무 수첩에 적혀 있다.

덴츠의 사훈으로 여겨지는 ‘귀십칙’
'귀십칙'에는 "파고든 일이라면 완수할 때까지는 죽어도 포기하지 마라", "일은 스스로 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게 아니다", "늘 머리를 회전시켜 모든 방면에 신경을 쓰고 한 치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는 그런 것이다." 등 과도한 업무를 당연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또 덴츠 이외에도 일본 기업에서 장시간 노동이 관행화돼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일본 NHK는 후생 노동성이 규정한 '한 달 80시간 잔업'을 초과하는 업체가 20%가 넘는다고 보도했다. 일본에서 '과로 자살'(미수 포함)로 인한 산재 인정은 2015년도에만 93건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과로사 방지 대책 추진법이 2014년 시행됐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장시간 노동 관행이 일본만의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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