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궐에도 멀쩡한 가창오리…철새는 억울해

입력 2017.01.06 (14:06) 수정 2017.01.0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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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떼가 물 위를 덮었습니다. 거의 빈틈 없이 빽빽합니다. 바로 가창오리, 다른 새들과 달리 낮에 이렇게 물 위에서 쉽니다. 대부분 새들은 낮에 먹이를 먹고 밤에 쉬지요. 수십만 마리가 한곳에 모이는 것도 가창오리의 특징입니다. 쉬다가도 위협이 있으면 수시로 자리를 옮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보여줍니다.



가창오리는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입니다. 전 세계 개체군의 95%, 40만 마리가량이 우리나라에서 월동합니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해 보호하는 종입니다. 수십만 가창오리가 하늘에서 펼치는 군무는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장관입니다. 특히 해질녘 먹이를 찾아 일시에 날아오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노을 속에 펼쳐지는 군무는 가히 환상적이지요.




올해도 영암호에는 30만 마리가 넘는 가창오리가 왔습니다. 예년 같으면 탐조객들의 발길도 이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철새 도래지로 가는 길 곳곳이 막혀 있습니다. AI를 옮기기 때문에 아예 접근하지 말라는 겁니다. 철새 도래지에 다녀온 사람은 축산 농가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합니다. 철새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습니다. 정말 철새 때문에 AI가 문제 되는 걸까요?

철새 탐방로를 가로막은 현수막.철새 탐방로를 가로막은 현수막.

그렇다면 AI를 옮긴다는 철새들의 건강은 어떨까요? 수십만 마리가 한곳에 모여 지내는 가창오리는 AI로부터 안전할까요? 축사의 닭이나 오리는 AI에 감염되면 수십,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죽습니다. 하지만 철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간혹 철새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긴 하지만 무더기로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올들어 영암호 주변에서 야생 가창오리 사체가 발견된 적은 없습니다. 기러기나 청둥오리도 건강합니다.



AI는 Avian Influenza, 조류 인플루엔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새들이 걸리는 독감인 거죠. 사람이 그렇듯 새들도 독감에 걸립니다. 사람이 가끔 독감 때문에 죽듯이 새들도 그렇습니다. 다만, 걸린다고 다 죽지는 않습니다. AI 바이러스와 새들은 함께 경쟁하면서 진화하는 공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이러스가 강해지는 만큼 새들도 강한 면역력을 키워왔습니다. 바이러스가 모든 새를 죽인다면 숙주가 사라져 바이러스 자체도 소멸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적당히 숙주를 괴롭히면서 새들과 함께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런 AI가 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가 됐습니다. 왜일까요?

들판에서 먹이 찾는 기러기들판에서 먹이 찾는 기러기

야생의 철새와 달리 '공장식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이나 오리는 고병원성 AI에 노출되면 곧바로 죽습니다. 면역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란계 축사의 닭은 A4용지 한 장 보다 좁은 면적에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알을 더 낳게 하려고 밤에도 불을 켜 놓습니다. 그런 닭은 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집단으로 폐사합니다.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위험성도 커집니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요? 바로 사람입니다.

산란계 축사산란계 축사

지금까지 AI 때문에 죽은 닭과 오리가 3천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대학살입니다. 가혹한 사육환경에 이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매몰, 살처분이라는 참혹한 상황입니다. 경제적 손실 비용만도 1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늘을 덮은 가창오리하늘을 덮은 가창오리

EU는 가금류의 밀집 사육을 2012년부터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지난 13년간 AI 발생 건수가 스웨덴은 1건, 영국은 3건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89곳 농장 가운데 올해 AI 피해를 당한 농장은 단 한 곳에 불과합니다. 해답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육되는 동물에게도 최소한의 복지, 건강을 보장해야 합니다. 철새 접근을 막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철새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된 사육 방식이 문제인 겁니다. AI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영암호 주변 농경지 철새 먹이주기영암호 주변 농경지 철새 먹이주기


영암호 철새 도래지 주변 들판에서는 먹이주기가 한창입니다. 먹이가 풍부해야 철새들이 건강해져 AI를 이겨냅니다. 또 먹이를 찾아 멀리 날아가지 않아야 바이러스를 퍼뜨릴 확률도 줄어듭니다. 그래야 가창오리 군무도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철새와 공존, 생태가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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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 창궐에도 멀쩡한 가창오리…철새는 억울해
    • 입력 2017-01-06 14:06:16
    • 수정2017-01-06 14:07:01
    취재K
오리떼가 물 위를 덮었습니다. 거의 빈틈 없이 빽빽합니다. 바로 가창오리, 다른 새들과 달리 낮에 이렇게 물 위에서 쉽니다. 대부분 새들은 낮에 먹이를 먹고 밤에 쉬지요. 수십만 마리가 한곳에 모이는 것도 가창오리의 특징입니다. 쉬다가도 위협이 있으면 수시로 자리를 옮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마다 수만 마리가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장관을 보여줍니다. 가창오리는 멀리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겨울 철새입니다. 전 세계 개체군의 95%, 40만 마리가량이 우리나라에서 월동합니다.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해 보호하는 종입니다. 수십만 가창오리가 하늘에서 펼치는 군무는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장관입니다. 특히 해질녘 먹이를 찾아 일시에 날아오르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노을 속에 펼쳐지는 군무는 가히 환상적이지요. 올해도 영암호에는 30만 마리가 넘는 가창오리가 왔습니다. 예년 같으면 탐조객들의 발길도 이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올해는 다릅니다. 철새 도래지로 가는 길 곳곳이 막혀 있습니다. AI를 옮기기 때문에 아예 접근하지 말라는 겁니다. 철새 도래지에 다녀온 사람은 축산 농가 근처에도 가지 말라고 합니다. 철새가 애물단지 취급을 받습니다. 정말 철새 때문에 AI가 문제 되는 걸까요? 철새 탐방로를 가로막은 현수막. 그렇다면 AI를 옮긴다는 철새들의 건강은 어떨까요? 수십만 마리가 한곳에 모여 지내는 가창오리는 AI로부터 안전할까요? 축사의 닭이나 오리는 AI에 감염되면 수십, 수백 마리가 한꺼번에 죽습니다. 하지만 철새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간혹 철새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긴 하지만 무더기로 죽는 경우는 없습니다. 올들어 영암호 주변에서 야생 가창오리 사체가 발견된 적은 없습니다. 기러기나 청둥오리도 건강합니다. AI는 Avian Influenza, 조류 인플루엔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새들이 걸리는 독감인 거죠. 사람이 그렇듯 새들도 독감에 걸립니다. 사람이 가끔 독감 때문에 죽듯이 새들도 그렇습니다. 다만, 걸린다고 다 죽지는 않습니다. AI 바이러스와 새들은 함께 경쟁하면서 진화하는 공진화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이러스가 강해지는 만큼 새들도 강한 면역력을 키워왔습니다. 바이러스가 모든 새를 죽인다면 숙주가 사라져 바이러스 자체도 소멸하게 됩니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적당히 숙주를 괴롭히면서 새들과 함께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그런 AI가 최근 들어 심각한 문제가 됐습니다. 왜일까요? 들판에서 먹이 찾는 기러기 야생의 철새와 달리 '공장식 축사'에서 사육되는 닭이나 오리는 고병원성 AI에 노출되면 곧바로 죽습니다. 면역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산란계 축사의 닭은 A4용지 한 장 보다 좁은 면적에서 평생을 살아갑니다. 알을 더 낳게 하려고 밤에도 불을 켜 놓습니다. 그런 닭은 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바이러스에 노출되면 집단으로 폐사합니다.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위험성도 커집니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나요? 바로 사람입니다. 산란계 축사 지금까지 AI 때문에 죽은 닭과 오리가 3천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대학살입니다. 가혹한 사육환경에 이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매몰, 살처분이라는 참혹한 상황입니다. 경제적 손실 비용만도 1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하늘을 덮은 가창오리 EU는 가금류의 밀집 사육을 2012년부터 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지난 13년간 AI 발생 건수가 스웨덴은 1건, 영국은 3건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89곳 농장 가운데 올해 AI 피해를 당한 농장은 단 한 곳에 불과합니다. 해답은 분명해 보입니다. 사육되는 동물에게도 최소한의 복지, 건강을 보장해야 합니다. 철새 접근을 막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철새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된 사육 방식이 문제인 겁니다. AI는 사람들의 잘못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입니다. 영암호 주변 농경지 철새 먹이주기 영암호 철새 도래지 주변 들판에서는 먹이주기가 한창입니다. 먹이가 풍부해야 철새들이 건강해져 AI를 이겨냅니다. 또 먹이를 찾아 멀리 날아가지 않아야 바이러스를 퍼뜨릴 확률도 줄어듭니다. 그래야 가창오리 군무도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철새와 공존, 생태가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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