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세종대왕이 ‘블랙리스트’ 작가였다고?

입력 2017.01.13 (15:16) 수정 2017.01.13 (16: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창제 이후인 1449년에 한글 활자로 발간된 가장 오래된 한글 문헌 중 하나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언어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15세기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어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악장을 대표하는 한글 시가 작품이기도 하다.

1월3일 보물 398호에서 국보 320호로 승격된 월인천강지곡1월3일 보물 398호에서 국보 320호로 승격된 월인천강지곡

문화재청은 바로 이 점을 높게 재평가해 보물로 지정돼 있던 『월인천강지곡』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5세기 중반 부안 실상사 불상의 복장물 즉 불상 안에 넣는 물품으로 봉안돼 오다 1914년 훼손된 불상을 소각하기 위해 복장물을 확인하던 중 발견됐다.

『월인천강지곡』이 불상 안에 있던 복장물 가운데 하나였던 점으로 미뤄볼 때 이 책이 불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 노래이고, 노래 작가가 세종대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세종대왕 영정세종대왕 영정

세종은 1446년에 왕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수양대군에게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전기를 엮은 『석보상절』을 편찬하게 했다. 그리고 『석보상절』이 완성되자 이를 보고 석가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지었는데, 이 노래가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천강』이라는 이름 자체도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본하는 형태로 편찬된 『월인석보』 1권의 첫머리에 있는 다음의 글귀가 이를 말하고 있다.

"부텨 百億世界(백억세계)에 化身(화신) 하야. 敎化(교화)하샤미 다리 즈믄 가라매 비치요미 같하니라."

이 문구는 『월인천강』이라는 제명이 '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백억세계에 화신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마치 달이 하나이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수많은 강에 비치는 것과 같은 뜻'임을 비유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이름에 걸맞게 석가의 공덕을 최고의 장엄과 공경으로 노래하고 있다.

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

석가모니 부처가 전생에 살던 도솔천에서 내려와 왕자로 자라고 결혼해 궁중에서 화려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에 대한 번민을 해결할 수 없어 몰래 출가했으며, 설산에서 수도하여 불도를 깨치고, 장엄한 권능으로 중생을 교화. 제도하다가 열반했다고 노래한다.

더하여 신중들이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신앙하기까지 부처의 전 생애를 소설적인 구조로 서사화하였다. 이를 통해 『월인천강지곡』은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석가의 인격과 권능을 신화적으로 미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조 이성계 영정태조 이성계 영정

우리는 역사적으로 고려가 권문세족과 승려계급의 탐욕과 부패로 도탄에 빠지자, 유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가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해 역성혁명을 이뤄 세운 나라가 조선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조선의 숭유배불 정책은 건국 과정에서 무학대사 같은 고승대덕의 도움을 일정 부분 받은 태조와 한글창제 이후 간경도감을 세워 불경언해에 나선 세조를 제외하고는 조선을 통틀어 일관된 국시였다.

드라마에서 태종 이방원으로 분장한 유아인드라마에서 태종 이방원으로 분장한 유아인

더욱이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인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강력한 숭유배불 정책을 편 것으로 유명하다. 태종은 즉위하자 불교종파를 병합하고 사원 수를 줄이면서 승려를 환속시켰다. 도첩제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왕사·국사제를 폐지하는 등의 억불정책을 폈다.

세종도 태종을 이어 즉위 6년에 불교종단을 폐합하여 선·교 양종으로 정리하고, 아버지 태종에 의해 전국 242개로 축소되었던 사찰을 다시 36개로 줄였으며, 성외 승려들의 성내 출입을 금하는 억불정책을 폈다.

이러던 세종이 소헌 왕후의 승하라는 비통한 사건을 당해 왕비의 명복을 빈다는 명분으로, 비록 수양대군을 비롯한 자식들의 간청이 있었지만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찬불가를 지은 것은 숭유배불이라는 국시를 어긴 것이 분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는 만 명에 가깝다. 이들은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거나 시국 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18대 대선당시‘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반정부. 좌파 성향 작가로 분류돼 요주의 대상으로 관리되고 있고, 심지어 일부 작가는 실제로 정부 지원에서도 배제됐다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을 특검에 고발했고, 특검의 수사로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김기춘, 조윤선.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김기춘, 조윤선.

사상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좌파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작가로 분류되는데 숭유배불을 국시로 받들던 조선에서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면 비록 왕이라도 지금의 블랙리스트 작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과 반대에 부딪쳤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 28년 3월 26일 실록에는 세종이 자식들의 간청에 따라 『월인천강지곡』을 짓기로 했으나 흉년이 든 나라 사정을 감안해 자식들과 세종 자신의 사비로 출판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승지들에게 말하니 부처의 영험을 폄하하며 책을 편찬하지 말라고 청했다고 기록돼 있다.

비록 세종이 노래는 지었지만 출판에는 관여하지 않고, 국가의 공금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는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월인천강지곡』의 편찬은 비밀리에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월인천강지곡』의 편찬에서부터 전승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당대 문헌 자료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으로 뒷받침된다.

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 활자본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 활자본

조선 초기 숭유배불 정책이 국시로 받들어졌던 시대에 공자나 맹자 대신 부처를 찬양했다는 이유로 왕이 지은 노래일지라도 어쩔수 없이 몰래 편찬됐던『월인천강지곡』이 지금까지의 보물에서 한 단계 격이 높은 국보로 재평가 받았다. 이는 『월인천강지곡』의 국어국문학적 가치가 갈수록 더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시를 어기면서까지 사랑하는 왕비의 명복을 부처에게 빌기 위해 블랙리스트 작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세종의 인간적 순수함과 용기도 재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소설 ‘소년이 온다’ 출판 이후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폭로하는 작가 한강소설 ‘소년이 온다’ 출판 이후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폭로하는 작가 한강

아울러 반정부. 좌파성향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와 문체부에 의해 블랙리스트 멍에를 짊어진 작가들도 하루빨리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블랙리스트 실체를 확인하고, 이를 도모한 세력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것이 시급하다. 특검의 수사가 이 모든 것을 풀어가는 단초를 제공하기를 고대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뉴스플러스] 세종대왕이 ‘블랙리스트’ 작가였다고?
    • 입력 2017-01-13 15:16:10
    • 수정2017-01-13 16:40:20
    뉴스플러스
얼마 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된 『월인천강지곡』은 한글 창제 이후인 1449년에 한글 활자로 발간된 가장 오래된 한글 문헌 중 하나이다. 따라서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언어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15세기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서의 어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용비어천가와 더불어 악장을 대표하는 한글 시가 작품이기도 하다. 1월3일 보물 398호에서 국보 320호로 승격된 월인천강지곡 문화재청은 바로 이 점을 높게 재평가해 보물로 지정돼 있던 『월인천강지곡』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15세기 중반 부안 실상사 불상의 복장물 즉 불상 안에 넣는 물품으로 봉안돼 오다 1914년 훼손된 불상을 소각하기 위해 복장물을 확인하던 중 발견됐다. 『월인천강지곡』이 불상 안에 있던 복장물 가운데 하나였던 점으로 미뤄볼 때 이 책이 불교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 노래이고, 노래 작가가 세종대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세종대왕 영정 세종은 1446년에 왕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수양대군에게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석가모니의 전기를 엮은 『석보상절』을 편찬하게 했다. 그리고 『석보상절』이 완성되자 이를 보고 석가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지었는데, 이 노래가 『월인천강지곡』이다. 『월인천강』이라는 이름 자체도 부처의 공덕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을 합본하는 형태로 편찬된 『월인석보』 1권의 첫머리에 있는 다음의 글귀가 이를 말하고 있다. "부텨 百億世界(백억세계)에 化身(화신) 하야. 敎化(교화)하샤미 다리 즈믄 가라매 비치요미 같하니라." 이 문구는 『월인천강』이라는 제명이 ' 부처의 본체는 하나이지만 백억세계에 화신으로 나타나서 중생을 교화하시는 것이, 마치 달이 하나이지만 시공을 초월해서 수많은 강에 비치는 것과 같은 뜻'임을 비유적으로 풀이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은 이름에 걸맞게 석가의 공덕을 최고의 장엄과 공경으로 노래하고 있다. 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 석가모니 부처가 전생에 살던 도솔천에서 내려와 왕자로 자라고 결혼해 궁중에서 화려하고 안락한 생활을 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에 대한 번민을 해결할 수 없어 몰래 출가했으며, 설산에서 수도하여 불도를 깨치고, 장엄한 권능으로 중생을 교화. 제도하다가 열반했다고 노래한다. 더하여 신중들이 진신 사리를 봉안하고, 신앙하기까지 부처의 전 생애를 소설적인 구조로 서사화하였다. 이를 통해 『월인천강지곡』은 불교의 심오한 진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석가의 인격과 권능을 신화적으로 미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조 이성계 영정 우리는 역사적으로 고려가 권문세족과 승려계급의 탐욕과 부패로 도탄에 빠지자, 유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가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해 역성혁명을 이뤄 세운 나라가 조선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조선의 숭유배불 정책은 건국 과정에서 무학대사 같은 고승대덕의 도움을 일정 부분 받은 태조와 한글창제 이후 간경도감을 세워 불경언해에 나선 세조를 제외하고는 조선을 통틀어 일관된 국시였다. 드라마에서 태종 이방원으로 분장한 유아인 더욱이 신진사대부를 대표하는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인 세종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강력한 숭유배불 정책을 편 것으로 유명하다. 태종은 즉위하자 불교종파를 병합하고 사원 수를 줄이면서 승려를 환속시켰다. 도첩제를 엄격하게 실시하고 왕사·국사제를 폐지하는 등의 억불정책을 폈다. 세종도 태종을 이어 즉위 6년에 불교종단을 폐합하여 선·교 양종으로 정리하고, 아버지 태종에 의해 전국 242개로 축소되었던 사찰을 다시 36개로 줄였으며, 성외 승려들의 성내 출입을 금하는 억불정책을 폈다. 이러던 세종이 소헌 왕후의 승하라는 비통한 사건을 당해 왕비의 명복을 빈다는 명분으로, 비록 수양대군을 비롯한 자식들의 간청이 있었지만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찬불가를 지은 것은 숭유배불이라는 국시를 어긴 것이 분명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작가는 만 명에 가깝다. 이들은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했거나 시국 선언에 참여한 문학인, 18대 대선당시‘문재인 후보 지지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2014년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 참여한 예술인 등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반정부. 좌파 성향 작가로 분류돼 요주의 대상으로 관리되고 있고, 심지어 일부 작가는 실제로 정부 지원에서도 배제됐다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문체부 장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을 특검에 고발했고, 특검의 수사로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질문에 답변하는 김기춘, 조윤선. 사상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좌파적 성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 작가로 분류되는데 숭유배불을 국시로 받들던 조선에서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면 비록 왕이라도 지금의 블랙리스트 작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과 반대에 부딪쳤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 28년 3월 26일 실록에는 세종이 자식들의 간청에 따라 『월인천강지곡』을 짓기로 했으나 흉년이 든 나라 사정을 감안해 자식들과 세종 자신의 사비로 출판하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승지들에게 말하니 부처의 영험을 폄하하며 책을 편찬하지 말라고 청했다고 기록돼 있다. 비록 세종이 노래는 지었지만 출판에는 관여하지 않고, 국가의 공금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는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월인천강지곡』의 편찬은 비밀리에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월인천강지곡』의 편찬에서부터 전승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당대 문헌 자료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으로 뒷받침된다. 국보 320호 월인천강지곡 활자본 조선 초기 숭유배불 정책이 국시로 받들어졌던 시대에 공자나 맹자 대신 부처를 찬양했다는 이유로 왕이 지은 노래일지라도 어쩔수 없이 몰래 편찬됐던『월인천강지곡』이 지금까지의 보물에서 한 단계 격이 높은 국보로 재평가 받았다. 이는 『월인천강지곡』의 국어국문학적 가치가 갈수록 더 빛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발맞춰 국시를 어기면서까지 사랑하는 왕비의 명복을 부처에게 빌기 위해 블랙리스트 작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세종의 인간적 순수함과 용기도 재평가받기를 기대한다. 소설 ‘소년이 온다’ 출판 이후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폭로하는 작가 한강 아울러 반정부. 좌파성향이라는 이유로 청와대와 문체부에 의해 블랙리스트 멍에를 짊어진 작가들도 하루빨리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창작활동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블랙리스트 실체를 확인하고, 이를 도모한 세력이 누구인지를 가리는 것이 시급하다. 특검의 수사가 이 모든 것을 풀어가는 단초를 제공하기를 고대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