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법인세 논쟁’ 정부는 진실을 말했나?

입력 2017.01.14 (09:00) 수정 2017.01.15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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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JTBC 토론회에서 '법인세 실효세율'을 놓고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원책 변호사가 벌인 설전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재명 시장은 "10대 그룹의 평균 법인세 실효세율이 12%로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고 주장했고, 전원책 변호사는 "16%를 넘는다.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엉터리 통계"라고 반박했지요.

JTBC가 메인뉴스에서 누구 주장이 맞는지 '팩트 체크'를 했고, 자체적으로 자료를 모아 사실을 규명하는 글을 쓴 블로거도 여럿 등장했습니다. 이재명-전원책 설전은, 토론자의 태도 논란과는 별개로, 법인세 논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했고, '실효세율'이라는 중요하고 어려운 개념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한몫을 한 셈입니다.

야당 "실효세율 낮다" vs. 정부 "GDP 대비 비중 높다"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최근 몇 년간의 논쟁에서 가장 기본적인 쟁점은 우리나라 법인세 부담이 OECD 평균과 비교해 높으냐, 낮으냐였습니다. OECD 평균과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이냐 하는 논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모두 'OECD 평균'과 비교하며 논리를 전개해왔습니다.

법인세 부담이 낮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야당이 꺼내 든 주력 무기가 바로 위에서 언급된 '실효세율'이었고, 법인세 부담이 높다고 주장하는 재계와 여당, 현 정부의 주력 무기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 비중'이었습니다.

이재명-전원책 설전을 계기로 '실효세율'이라는 '창'이 날카로운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이뤄진 만큼, 'GDP 대비 법인세 수입'이라는 '방패'에 대해서도 그 합리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청문회 때부터 이 '방패'를 가져다 썼습니다.


다수 언론 매체들은 정부의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법인세 논쟁과 관련된 기사를 쓸 때 한국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높음을 뒷받침하는 주된 논거로 인용해왔습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 어느 정도길래

지난해 7월 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10~2013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수비중은 3.5%로 OECD 평균 2.9%를 웃돌았습니다.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높습니다.


최근인 2015년에 우리나라의 법인세수 비중은 3.2%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OECD 평균(2.7%)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정부의 주장처럼, 우리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높아 보입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 2000년을 살펴보니...

그런데, 'GDP 대비 법인세수'가 정말 법인세 부담의 높고, 낮음을 설명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요? 17년 전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2000년 당시 우리나라 법인세율을 살펴보면, 최고 명목세율은 28%로 2015년보다 6% 포인트나 높았습니다. 더 중요한 실효세율도 23.7%로 2015년의 16.1%보다 크게 높았습니다.

기업들이 만 원을 벌면 2015년에는 1,610원을, 2000년에는 2,370원을 냈으니 2000년의 세 부담이 더 무거웠던 거죠.

그런데, 2000년 기준으로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어땠을까요? 3.0%로 2015년(3.2%)보다 낮았습니다. 또, 2000년 당시 OECD 평균(3.2%)에 비해서도 낮았습니다.


시간의 흐름대로 보자면, 2000년에서 2015년으로 가면서 동일한 기업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은 줄었는데,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높아진 결과가 나온 겁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가 법인세 부담과 일관된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에 숨겨진 함정

직관적으로는 정부 주장이 맞아보이는데, 왜 이런 '미스매치'가 생기는 걸까요?

GDP에는 기업뿐 아니라 가계와 정부(공공부문)가 창출한 부가가치(소득)도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GDP 가운데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의 비중은 나라에 따라 다르고, 한 나라에서도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GDP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런 '미스매치'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GNI(국민총소득: GDP와 대동소이)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이 18.9%인데 우리나라는 24.8%나 됩니다. 2010년부터 5년간의 추세를 봐도 그 격차가 비슷합니다. (GNI 내 '기업소득'의 개념이 세법상 '기업소득'과는 차이가 존재하므로 이 수치가 실제 기업소득 비중을 완벽히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이 자료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이 높은 건 우리 국민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몫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가계보다 더 많이 버니까 법인세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지, 세 부담 자체가 커서 그런 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다시 2000년과 2015년간 비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00년 당시 우리 '국민소득 대비 기업소득' 비중을 찾아보니 17.6%로 나옵니다. 2015년(24.6%)보다 크게 낮았습니다.

이 '국민소득 대비 기업소득' 개념을 끼워 넣으면, 동일 소득에 대한 기업의 세 부담은 2000년이 2015년보다 높은데, 왜 'GDP 대비 법인세수'는 2015년이 더 높게 나오는지 퍼즐이 맞춰집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경제에서 기업소득이 큰 폭으로 늘다 보니 법인세 부담이 낮아져도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더 높게 나타났던 겁니다.

'잘못된 잣대' 들이댄 정부, 알았나? 몰랐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이 기업의 세 부담을 재는 척도가 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점을 정부가 몰랐을까요?

기획재정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OECD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국가 간 법인세 부담 비교 자료가 'GDP 대비 법인세 비중'뿐이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쓸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2000년과 2015년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GDP 대비 법인세수'는 단순히 '한계'가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들이대느냐에 따라 법인세 부담의 수준을 완전히 달라보이게 만드는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진보 진영의 무기인 '실효세율'에 대해서는 '국가 간 비교에 한계가 있는 수단'이라고 지적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잣대를,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세 부담의 합리적 척도인 것처럼 내세워온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법인세를 올릴지, 말지는 단순히 OECD 평균과 비교한 세 부담의 높낮이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나라 재정과 소득세 등 다른 세원과의 형평, 투자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검토해야 하고, 경제 논리 외에 정권의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올리느냐 마느냐, 그 결정과는 별개로, 법인세 논쟁 자체가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반해 생산적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것은 책임감을 가진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될 기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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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법인세 논쟁’ 정부는 진실을 말했나?
    • 입력 2017-01-14 09:00:21
    • 수정2017-01-15 09:18:45
    취재후·사건후
최근 JTBC 토론회에서 '법인세 실효세율'을 놓고 이재명 성남시장과 전원책 변호사가 벌인 설전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재명 시장은 "10대 그룹의 평균 법인세 실효세율이 12%로 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고 주장했고, 전원책 변호사는 "16%를 넘는다.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는 엉터리 통계"라고 반박했지요.

JTBC가 메인뉴스에서 누구 주장이 맞는지 '팩트 체크'를 했고, 자체적으로 자료를 모아 사실을 규명하는 글을 쓴 블로거도 여럿 등장했습니다. 이재명-전원책 설전은, 토론자의 태도 논란과는 별개로, 법인세 논쟁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했고, '실효세율'이라는 중요하고 어려운 개념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한몫을 한 셈입니다.

야당 "실효세율 낮다" vs. 정부 "GDP 대비 비중 높다"

법인세 인상을 둘러싼 최근 몇 년간의 논쟁에서 가장 기본적인 쟁점은 우리나라 법인세 부담이 OECD 평균과 비교해 높으냐, 낮으냐였습니다. OECD 평균과 비교하는 것이 합리적이냐 하는 논쟁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모두 'OECD 평균'과 비교하며 논리를 전개해왔습니다.

법인세 부담이 낮다고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야당이 꺼내 든 주력 무기가 바로 위에서 언급된 '실효세율'이었고, 법인세 부담이 높다고 주장하는 재계와 여당, 현 정부의 주력 무기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법인세 비중'이었습니다.

이재명-전원책 설전을 계기로 '실효세율'이라는 '창'이 날카로운 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분석이 이뤄진 만큼, 'GDP 대비 법인세 수입'이라는 '방패'에 대해서도 그 합리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는 청문회 때부터 이 '방패'를 가져다 썼습니다.


다수 언론 매체들은 정부의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법인세 논쟁과 관련된 기사를 쓸 때 한국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높음을 뒷받침하는 주된 논거로 인용해왔습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 어느 정도길래

지난해 7월 조세재정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2010~2013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수비중은 3.5%로 OECD 평균 2.9%를 웃돌았습니다. 34개 OECD 회원국 가운데 7번째로 높습니다.


최근인 2015년에 우리나라의 법인세수 비중은 3.2%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OECD 평균(2.7%)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정부의 주장처럼, 우리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이 높아 보입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 2000년을 살펴보니...

그런데, 'GDP 대비 법인세수'가 정말 법인세 부담의 높고, 낮음을 설명하는 잣대가 될 수 있을까요? 17년 전인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2000년 당시 우리나라 법인세율을 살펴보면, 최고 명목세율은 28%로 2015년보다 6% 포인트나 높았습니다. 더 중요한 실효세율도 23.7%로 2015년의 16.1%보다 크게 높았습니다.

기업들이 만 원을 벌면 2015년에는 1,610원을, 2000년에는 2,370원을 냈으니 2000년의 세 부담이 더 무거웠던 거죠.

그런데, 2000년 기준으로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어땠을까요? 3.0%로 2015년(3.2%)보다 낮았습니다. 또, 2000년 당시 OECD 평균(3.2%)에 비해서도 낮았습니다.


시간의 흐름대로 보자면, 2000년에서 2015년으로 가면서 동일한 기업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은 줄었는데,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절대적으로도, 상대적으로도 높아진 결과가 나온 겁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가 법인세 부담과 일관된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줍니다.

'GDP 대비 법인세수'에 숨겨진 함정

직관적으로는 정부 주장이 맞아보이는데, 왜 이런 '미스매치'가 생기는 걸까요?

GDP에는 기업뿐 아니라 가계와 정부(공공부문)가 창출한 부가가치(소득)도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GDP 가운데 기업이 벌어들인 소득의 비중은 나라에 따라 다르고, 한 나라에서도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니 GDP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런 '미스매치'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14년을 기준으로 GNI(국민총소득: GDP와 대동소이)에서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평균이 18.9%인데 우리나라는 24.8%나 됩니다. 2010년부터 5년간의 추세를 봐도 그 격차가 비슷합니다. (GNI 내 '기업소득'의 개념이 세법상 '기업소득'과는 차이가 존재하므로 이 수치가 실제 기업소득 비중을 완벽히 반영하는 건 아닙니다.)


이 자료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이 높은 건 우리 국민소득에서 기업이 차지하는 몫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많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기업들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가계보다 더 많이 버니까 법인세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은 것이지, 세 부담 자체가 커서 그런 건 아니라는 설명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다시 2000년과 2015년간 비교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00년 당시 우리 '국민소득 대비 기업소득' 비중을 찾아보니 17.6%로 나옵니다. 2015년(24.6%)보다 크게 낮았습니다.

이 '국민소득 대비 기업소득' 개념을 끼워 넣으면, 동일 소득에 대한 기업의 세 부담은 2000년이 2015년보다 높은데, 왜 'GDP 대비 법인세수'는 2015년이 더 높게 나오는지 퍼즐이 맞춰집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경제에서 기업소득이 큰 폭으로 늘다 보니 법인세 부담이 낮아져도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은 더 높게 나타났던 겁니다.

'잘못된 잣대' 들이댄 정부, 알았나? 몰랐나?

'GDP 대비 법인세수' 비중이 기업의 세 부담을 재는 척도가 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점을 정부가 몰랐을까요?

기획재정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OECD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국가 간 법인세 부담 비교 자료가 'GDP 대비 법인세 비중'뿐이다. 한계가 있음을 알지만, 쓸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하지만, 2000년과 2015년의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GDP 대비 법인세수'는 단순히 '한계'가 있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들이대느냐에 따라 법인세 부담의 수준을 완전히 달라보이게 만드는 '왜곡'이 생길 수 있습니다.

정부는 진보 진영의 무기인 '실효세율'에 대해서는 '국가 간 비교에 한계가 있는 수단'이라고 지적해왔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잣대를, 아무런 부연 설명도 없이, 세 부담의 합리적 척도인 것처럼 내세워온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의문입니다.

법인세를 올릴지, 말지는 단순히 OECD 평균과 비교한 세 부담의 높낮이만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나라 재정과 소득세 등 다른 세원과의 형평, 투자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두루 검토해야 하고, 경제 논리 외에 정권의 철학과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할 수도 있는 사안입니다.

하지만, 올리느냐 마느냐, 그 결정과는 별개로, 법인세 논쟁 자체가 정확한 사실 관계에 기반해 생산적으로 전개되도록 하는 것은 책임감을 가진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될 기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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