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노아의 방주’ 최초 공개

입력 2017.01.15 (08: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악행에 실망한 신은 대홍수를 내리지만 오직 노아에게만 자비를 베풀어 커다란 방주를 만들도록 명령한다. 그러면서 노아에게 깨끗한 짐승, 부정한 짐승, 공중의 새들을 배에 데리고 가 동물의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바로 '노아의 방주'다.

그런데 백두대간 줄기가 남북으로 이어지는 경상북도 봉화군에서도 '노아의 방주'를 찾을 수 있다. 핵전쟁과 같은 대재앙에 대비해 식물 종자를 영구 보관하는 종자 저장고다. KBS '취재파일K'가 세계 최초로 들어서는 야생식물 종자 영구보관소를 찾아가봤다.

'야생 식물' 종자 저장고


굽이굽이 산자락을 따라 해발 600미터 고지에 오르면 동그란 버섯 모양 시설물이 눈에 띈다. 야생 식물의 종자를 영구 보관하는 종자 저장소다. 내부의 종자 저장고는 산비탈을 파고들어간 길이 120미터 터널 형태로 돼 있다. 60cm 두께의 콘크리트 벽은 진도7의 지진도 견뎌낸다.


주 터널 옆에는 종자를 저장하는 냉동고가 줄지어 있다. 냉동고 안에 있는 종자보관실에서는 갖가지 식물 종자를 유리병에 밀봉해 위치정보와 함께 보관한다.

냉동고는 평소 전기로 냉동 보관이 이뤄지지만, 비상상황에서 전기 공급이 끊겨도 지하 깊숙한 곳에 설치돼 있어 한동안 종자가 손상되지 않는다. 냉동고는 영하 20도, 습도 5% 이하로 항상 건조한 상태가 유지된다.

스발바르 종자 저장고와 다른 점


각종 재해에 대비해 식물 씨앗을 지하 터널에 냉동 보존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8년 노르웨이, 북극과 가까운 스발바르섬의 국제 종자 저장고다. 터널에 보관된 상자 안에는 벼와 밀, 보리 등 세계 각국에서 보낸 86만 종 식량 작물 씨앗이 담겨 있다. 북한도 이곳에 식량 종자 씨앗 보관을 맡겼다.


스발바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만들어진 봉화 종자 보관소는 구조와 방식도 스발바르 보관소와 매우 유사하지만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스발바르 보관소가 식량 작물의 씨앗을 보관한다면, 봉화 보관소는 야생 식물의 씨앗을 보관한다.

야생 식물 씨앗을 보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013년 국제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구상나무가 야생상태에서 멸종될 경우, 봉화 보관소에 저장된 씨앗으로 되살릴 수 있다. 그동안 벼와 같은 작물 종자는 발아 조건과 생육 환경이 자세히 알려졌지만, 야생 식물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처음이다.


"전 지구상에 현존하는 식물 종이 30만 종 정돈데, 우리가 종자를 보관해 다시 발아시켜 재생할 수 있는 종자는 30%가 안 됩니다. 나머지 70%는 종자가 어떻게 발아하고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 지를 아직까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김기중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

해외 기탁으로 '종자 전쟁' 대비

현재까지 봉화 종자 보관소가 국내에서 확보해 연구 중인 종자는 4만여 점. 올해부터 해외 종자 보관도 시작한다. 각국이 종자 보호와 소유권 관리에 열을 올리는 '종자 전쟁' 상황에서 해외 기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해당 국가에서 가방 형태로 보낸 종자는 그대로 냉동창고에 보관되고 보관 비용은 전부 종자 보관소가 부담한다. 보관된 종자의 소유권과 일출권은 기탁한 기관과 국가가 가진다. 원칙적으로 종자 보관소는 경제적 이익이나 대가없이 생물 다양성 보존을 목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산업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종자 기탁으로 해외 기관과 협력 관계가 구축되면 공동 연구를 통해 우회적으로 자원 확보가 가능하다.

봉화 종자 보관소는 오는 7월 정식 운영에 맞춰 아시아 10개 나라로부터 종자를 기탁받아 공동 연구를 협의 중이다. 앞으로 6년 동안 세계 30만 점의 야생 식물 종자를 확보하는 것이 봉화 종자 보관소의 목표다.

'종자 금고' 속 씨앗 인출은 언제쯤?


지난 2015년 장기간 내전으로 작물 종자가 유실된 시리아가 종자 보관소에 맡겨둔 밀과 보리 씨앗을 찾아갔다. 스발바르 보관소의 첫 종자 인출이다. 종자 보관소는 10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만들었지만 설립된 지 불과 7년 만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종자 보관소의 영어 표현은 '종자 금고'라는 뜻의 시드 볼트(Seed Vault)다. 봉화 종자 보관소에서 첫 인출이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금고 속 씨앗이 필요한 시점이 아주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


미래 자원으로 유용하게 쓰일 야생 식물 종자를 보존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1월 15일(일) 밤 10시 50분에 KBS 1TV '취재파일K'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성희 kbs.psh@kbs.co.kr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한국판 ‘노아의 방주’ 최초 공개
    • 입력 2017-01-15 08:00:19
    방송·연예
인간의 악행에 실망한 신은 대홍수를 내리지만 오직 노아에게만 자비를 베풀어 커다란 방주를 만들도록 명령한다. 그러면서 노아에게 깨끗한 짐승, 부정한 짐승, 공중의 새들을 배에 데리고 가 동물의 씨가 마르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한다. 바로 '노아의 방주'다.

그런데 백두대간 줄기가 남북으로 이어지는 경상북도 봉화군에서도 '노아의 방주'를 찾을 수 있다. 핵전쟁과 같은 대재앙에 대비해 식물 종자를 영구 보관하는 종자 저장고다. KBS '취재파일K'가 세계 최초로 들어서는 야생식물 종자 영구보관소를 찾아가봤다.

'야생 식물' 종자 저장고


굽이굽이 산자락을 따라 해발 600미터 고지에 오르면 동그란 버섯 모양 시설물이 눈에 띈다. 야생 식물의 종자를 영구 보관하는 종자 저장소다. 내부의 종자 저장고는 산비탈을 파고들어간 길이 120미터 터널 형태로 돼 있다. 60cm 두께의 콘크리트 벽은 진도7의 지진도 견뎌낸다.


주 터널 옆에는 종자를 저장하는 냉동고가 줄지어 있다. 냉동고 안에 있는 종자보관실에서는 갖가지 식물 종자를 유리병에 밀봉해 위치정보와 함께 보관한다.

냉동고는 평소 전기로 냉동 보관이 이뤄지지만, 비상상황에서 전기 공급이 끊겨도 지하 깊숙한 곳에 설치돼 있어 한동안 종자가 손상되지 않는다. 냉동고는 영하 20도, 습도 5% 이하로 항상 건조한 상태가 유지된다.

스발바르 종자 저장고와 다른 점


각종 재해에 대비해 식물 씨앗을 지하 터널에 냉동 보존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전에도 있었다. 2008년 노르웨이, 북극과 가까운 스발바르섬의 국제 종자 저장고다. 터널에 보관된 상자 안에는 벼와 밀, 보리 등 세계 각국에서 보낸 86만 종 식량 작물 씨앗이 담겨 있다. 북한도 이곳에 식량 종자 씨앗 보관을 맡겼다.


스발바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만들어진 봉화 종자 보관소는 구조와 방식도 스발바르 보관소와 매우 유사하지만 역할에서 차이가 있다. 스발바르 보관소가 식량 작물의 씨앗을 보관한다면, 봉화 보관소는 야생 식물의 씨앗을 보관한다.

야생 식물 씨앗을 보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식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2013년 국제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구상나무가 야생상태에서 멸종될 경우, 봉화 보관소에 저장된 씨앗으로 되살릴 수 있다. 그동안 벼와 같은 작물 종자는 발아 조건과 생육 환경이 자세히 알려졌지만, 야생 식물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처음이다.


"전 지구상에 현존하는 식물 종이 30만 종 정돈데, 우리가 종자를 보관해 다시 발아시켜 재생할 수 있는 종자는 30%가 안 됩니다. 나머지 70%는 종자가 어떻게 발아하고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 지를 아직까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김기중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

해외 기탁으로 '종자 전쟁' 대비

현재까지 봉화 종자 보관소가 국내에서 확보해 연구 중인 종자는 4만여 점. 올해부터 해외 종자 보관도 시작한다. 각국이 종자 보호와 소유권 관리에 열을 올리는 '종자 전쟁' 상황에서 해외 기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까?


해당 국가에서 가방 형태로 보낸 종자는 그대로 냉동창고에 보관되고 보관 비용은 전부 종자 보관소가 부담한다. 보관된 종자의 소유권과 일출권은 기탁한 기관과 국가가 가진다. 원칙적으로 종자 보관소는 경제적 이익이나 대가없이 생물 다양성 보존을 목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산업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종자 기탁으로 해외 기관과 협력 관계가 구축되면 공동 연구를 통해 우회적으로 자원 확보가 가능하다.

봉화 종자 보관소는 오는 7월 정식 운영에 맞춰 아시아 10개 나라로부터 종자를 기탁받아 공동 연구를 협의 중이다. 앞으로 6년 동안 세계 30만 점의 야생 식물 종자를 확보하는 것이 봉화 종자 보관소의 목표다.

'종자 금고' 속 씨앗 인출은 언제쯤?


지난 2015년 장기간 내전으로 작물 종자가 유실된 시리아가 종자 보관소에 맡겨둔 밀과 보리 씨앗을 찾아갔다. 스발바르 보관소의 첫 종자 인출이다. 종자 보관소는 100년 이상 미래를 내다보고 만들었지만 설립된 지 불과 7년 만에 유용하게 사용됐다.

종자 보관소의 영어 표현은 '종자 금고'라는 뜻의 시드 볼트(Seed Vault)다. 봉화 종자 보관소에서 첫 인출이 언제 이뤄질지는 알 수 없지만 금고 속 씨앗이 필요한 시점이 아주 먼 미래가 아닐 수도 있다.


미래 자원으로 유용하게 쓰일 야생 식물 종자를 보존하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 1월 15일(일) 밤 10시 50분에 KBS 1TV '취재파일K'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성희 kbs.psh@kbs.co.kr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