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26) 가난한 노인, 죽어야 해방되는 노동의 굴레

입력 2017.01.17 (16:49) 수정 2017.01.19 (10:1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폐지로 살아가는 170만 명의 노인들

길을 걷다가 수시로 마주치는 장면 아닌가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굽은 허리, 깡마른 팔과 다리로 폐지 수레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보노라면 달려가 밀어드리고 싶습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태양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남들보다 라면 박스 한 개, 신문지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면 노인들은 부지런히 골목 쓰레기통과 셔터 내려진 가게 앞을 뒤지고 다녀야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주운 폐지를 '고물상'이라고 흔히 부르는 재활용센터에 넘기고 손에 쥐는 돈은 그야말로 푼돈 수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고된 노동을 생각하면 폐지와 고철값이라도 좀 올라주면 좋으련만, 자꾸 내려가니 수레는 무거워지지만, 지갑에 들어오는 돈은 가벼워져만 갑니다.

6년 전인 2011년만 해도 폐 골판지는 1kg당 200원 정도였는데요, 2013년 이후에는 70원 안팎까지 떨어져 영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100kg을 주워도 7천 원 정도,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주워도 21만 원이 고작입니다.

지난해에는 벼룩의 간을 내먹는 파렴치한 재활용센터들이 공정위에 적발돼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재활용품 수거 업체 18군데가 2010년부터 3년 동안 킬로그램 당 10원에서 30원씩 값을 후려치기로 담합을 했다가 적발된 사건인데요, 부모 같은 노인들의 힘겨운 삶이 안쓰럽지도 않았을까요? 더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깎는데 짬짜미를 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납작한 노인들을 더욱 납작하게 만드는 이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라도 오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정말 폐지는 엄청나게 무거워지고, 미끄러지거나 수레에 깔려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몸을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재활용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도 생계를 위해서 무려 170만 명의 노인들이 폐지를 모으고 있고, 이들이 한 달 평균 버는 돈은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에 그칩니다. 10명에 한 명 꼴로 부상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도 그저 빨리 걸어가야 할 '거리'에 불과하고, 노년의 풍요로워야 할 '삶'도 해치워야 할 '시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요.

그렇지 않나요? 장수라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야 욕망의 대상이지, 가진 것 없고 몸도 불편하면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듯이 어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장수는 축복이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천형으로 변질되는 것이지요.

사회의 구석진 곳, 몸도 아픈 곳에 눈길이 가는 것이 시인들의 속성인가 봅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시(詩)들이 여기저기 발견됩니다.


화창한 날도 폐지 수레를 끄는 일은 버거운데 눈마저 펄펄 내리면 굽은 노인의 등에 쌓이는 눈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구부러진 골목길을 힘겹게 돌아가는 하얀 노인의 굽은 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도 한없이 굽어지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새벽은 마(魔)의 시간입니다.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조금만 더 자자는 의지가 사정없이 으르렁거리는 시간, 시인은 창문 너머로 부스럭부스럭 폐지를 줍는 노인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고 이불을 박차겠지요. 지친 일상 지친 마음을 다잡는 저 엄숙한 소리에 더는 뭉그적거리지 못하고.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 세계 최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30년 전의 일본보다 급속도로 사회가 늙어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체 인구의 7.2% 수준이었던 65세 이상 고령자가 2015년에는 13.1%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오는 2030년에는 24.3%, 2040년에는 무려 32.3%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젊어서 땀 흘려 일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노후 대비까지 해서, 일하느라 못 가본 곳 구경 다니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생존에 밀려 접어두었던 취미 생활도 하는 우아한 노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이런 축복받는 노후와는 거리가 멉니다. 돈이 없어 노후가 무료하고, 돈이 없어 죽음을 택하고 돈이 없어 일을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통계들이 우울한 노년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노인 빈곤율이 무려 49.6%로 OECD 평균 12.6%에 네 배가 넘습니다. 노인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가난에 시달린다는 말입니다. 비교적 높다는 일본도 20%가 되지 않고 유럽의 복지국가 독일은 9.4%, 프랑스는 3.8%에 불과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퇴한 이후 계속 일을 해야 노인들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31.3%, OECD 국가 중에 아이슬란드를 빼면 가장 높습니다. 일본은 20.8%, 독일은 5.8%, 프랑스는 2.3%에 그쳤습니다. 특히 75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고용률도 19.2%로 세계 최고입니다. OECD 평균이 4.8%에 불과하니 역시 네 배 이상 높은 수칩니다.


멋진 로맨스그레이(romancegrey)를 꿈꾸던 한 시인은 이런 현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습니다. 은퇴하면 무지개가 뜨는 멋진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멀리 시골까지 손수 운전해 가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 결코 멋지지 않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넋두리합니다.



청매화가 빗방울 속에 몸이 젖는다니 아마 봄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었나 봅니다. 시인은 첫 강의를 위해 먼 시골길을 손수 운전해 가는데 운전이 여간 서툴지 않습니다. 매화는 진한 향기 뿜어내면서 청초하게 피어날 텐데, 정작 자신의 삶은 낙엽 지는 가을입니다. 거대한 비현실 앞에서 시인은 우울해집니다.

빈곤은 자연히 각종 질병과 자살로 이어집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58.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과 통계청의 노인실태 보고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33%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고, 11%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요즘 미디어의 뉴스를 보면 고독이나 가난, 질병을 견디지 못한 노인들, 자신도 아픈데 더 아픈 배우자를 돌보다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노인들의 자살 기사가 빠질 날이 없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노인들

젊은이들도 취직하기 어려운 판에 노인들이 번듯한 직업을 얻기란 여건 어렵지 않습니다. 기업이나 점포에서 기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노인들의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 데다, 급속도로 변하는 지식과 정보, 트렌드를 따라잡기가 역부족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자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단순노동이 고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에도 노인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썩 만족스러운 대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는 데 만족하는 노인도 있습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자신도 노인이면서 더 어려운 노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을 미안해하는 고운 마음씨의 노인인가 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3만 3천 원으로 평생 벼르던 집을 장만하셨다니 축하할 일이고요. 그런데 그 장만한 집이 손에 잡힌 물집이라니 시인은 얼마나 눈시울이 뜨거웠을까요? 번듯한 집 한 채 해드리지 못하는 게 못내 가슴 아픈데 손에다 물집 하나 지어드렸으니, 시인의 눈에도 눈물 집 하나 지어졌지 않을까요?

벼랑으로 몰리는 노인들

노인의 삶은 이렇게 팍팍해지는데, 수명은 자꾸 늘어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남성 기대수명은 78.5세, 여성은 85.1세로 평균 81.8세나 됩니다. 지난 1970년 남성의 기대수명은 58.7세에 불과했고, 여성도 65.6세에 그쳤으니 불과 반세기도 못돼 평균수명은 평균 20년 가량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1번째로 장수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1위인 일본이 83세 정도니까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환갑잔치는 거의 사라졌고, "칠십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구도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어찌 된 셈인지 은퇴연령은 점점 빨라집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였습니다. 자영업자를 빼고 월급생활자로만 본다면, 은퇴하고도 30년 가까이를 살아야 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얼마 정도의 돈이 있어야 최소한의 생활이 될까요?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2인 가족의 최저생계비는 105만 원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밥만 먹고 숨만 쉬는 돈인데도 30년을 살려면 3억 6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서울에서 평균 수준의 경제, 문화생활을 누리려면 한 달에 23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려면 8억 가까운 돈이 있어야 합니다.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니까 필요한 돈은 더 불어나겠지요.

그래서 모자라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인의 노동비율이 OECD 최고 수준이 된 것입니다. OECD 통계를 보면 형식적으로 직장에서 은퇴하는 나이는 52세지만, 실제로 일을 손에서 놓는 나이는 남자가 73세, 여자는 71세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평균 수명과의 차이를 계산해보면 남자는 죽기 5년 전이 되어야 일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얘깁니다. 프랑스의 경우 실제 은퇴하는 나이가 60세이니까, 우리나라 노인들보다 13년을 그야말로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3년부터 우리나라는 60대 전반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20대 청년의 비율보다 높은 웃지 못할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은퇴한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많이 일한다니, 할 말을 잃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점점 더 가파른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노인들의 생계와 복지를 확충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안과 소극적으로 노령연금을 비롯해 각종 공적연금 제도를 확충해 노인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생명줄을 튼튼히 손봐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노후는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방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노인이 되는 길을 피해갈 수 없는 일이고 보면, 노령화에 대한 대책은 결국 젊은이들에 대한 대책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예외 없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버리거나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노인 문제의 해결은 어쩌면 단군 이래 가장 잘살고 있다는 한국 사회가 힘써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노인들이 빵을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노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적당한 노동으로 삶의 보람을 찾는 사회, 하여 노익장이라는 말이 겉치레 수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 봅니다. 이미 2천5백 년 전 지구의 반대쪽에 살았던 청빈한 철학자가 꿈꿨던 노인의 삶이 이 땅에서 다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디오게네스에게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 이제 연세도 많으시니 그만 쉬엄쉬엄 편하게 지내시지요."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천만에! 경주 마차 달리기에서 결승점이 보인다고 말이 별안간 천천히 달리면 되겠는가? 오히려 더 속력을 내야지!"

[바로가기] ☞ [임병걸의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시리즈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26) 가난한 노인, 죽어야 해방되는 노동의 굴레
    • 입력 2017-01-17 16:49:41
    • 수정2017-01-19 10:10:13
    임병걸의 시로 보는 경제

폐지로 살아가는 170만 명의 노인들

길을 걷다가 수시로 마주치는 장면 아닌가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굽은 허리, 깡마른 팔과 다리로 폐지 수레를 끌고 가는 장면을 보노라면 달려가 밀어드리고 싶습니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태양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새벽, 남들보다 라면 박스 한 개, 신문지 한 장이라도 더 주우려면 노인들은 부지런히 골목 쓰레기통과 셔터 내려진 가게 앞을 뒤지고 다녀야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주운 폐지를 '고물상'이라고 흔히 부르는 재활용센터에 넘기고 손에 쥐는 돈은 그야말로 푼돈 수준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고된 노동을 생각하면 폐지와 고철값이라도 좀 올라주면 좋으련만, 자꾸 내려가니 수레는 무거워지지만, 지갑에 들어오는 돈은 가벼워져만 갑니다.

6년 전인 2011년만 해도 폐 골판지는 1kg당 200원 정도였는데요, 2013년 이후에는 70원 안팎까지 떨어져 영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100kg을 주워도 7천 원 정도,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주워도 21만 원이 고작입니다.

지난해에는 벼룩의 간을 내먹는 파렴치한 재활용센터들이 공정위에 적발돼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재활용품 수거 업체 18군데가 2010년부터 3년 동안 킬로그램 당 10원에서 30원씩 값을 후려치기로 담합을 했다가 적발된 사건인데요, 부모 같은 노인들의 힘겨운 삶이 안쓰럽지도 않았을까요? 더 올려주지는 못할망정 깎는데 짬짜미를 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납작한 노인들을 더욱 납작하게 만드는 이 뉴스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라도 오거나 눈이라도 내리면 정말 폐지는 엄청나게 무거워지고, 미끄러지거나 수레에 깔려 돈을 벌기는 고사하고 몸을 다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재활용연대라는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도 생계를 위해서 무려 170만 명의 노인들이 폐지를 모으고 있고, 이들이 한 달 평균 버는 돈은 10만 원에서 20만 원 정도에 그칩니다. 10명에 한 명 꼴로 부상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는 아름다운 가로수 길도 그저 빨리 걸어가야 할 '거리'에 불과하고, 노년의 풍요로워야 할 '삶'도 해치워야 할 '시간'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요.

그렇지 않나요? 장수라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야 욕망의 대상이지, 가진 것 없고 몸도 불편하면 노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듯이 어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됩니다. 장수는 축복이 아니고, 죽지 못해 사는 천형으로 변질되는 것이지요.

사회의 구석진 곳, 몸도 아픈 곳에 눈길이 가는 것이 시인들의 속성인가 봅니다.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시(詩)들이 여기저기 발견됩니다.


화창한 날도 폐지 수레를 끄는 일은 버거운데 눈마저 펄펄 내리면 굽은 노인의 등에 쌓이는 눈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아플까요? 구부러진 골목길을 힘겹게 돌아가는 하얀 노인의 굽은 몸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도 한없이 굽어지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새벽은 마(魔)의 시간입니다. 이제는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조금만 더 자자는 의지가 사정없이 으르렁거리는 시간, 시인은 창문 너머로 부스럭부스럭 폐지를 줍는 노인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다잡고 이불을 박차겠지요. 지친 일상 지친 마음을 다잡는 저 엄숙한 소리에 더는 뭉그적거리지 못하고.

노인 빈곤율, 노인 자살률 세계 최고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30년 전의 일본보다 급속도로 사회가 늙어가고 있습니다. 2000년 전체 인구의 7.2% 수준이었던 65세 이상 고령자가 2015년에는 13.1%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오는 2030년에는 24.3%, 2040년에는 무려 32.3%로 늘어난다고 합니다.


젊어서 땀 흘려 일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노후 대비까지 해서, 일하느라 못 가본 곳 구경 다니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생존에 밀려 접어두었던 취미 생활도 하는 우아한 노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노인들은 이런 축복받는 노후와는 거리가 멉니다. 돈이 없어 노후가 무료하고, 돈이 없어 죽음을 택하고 돈이 없어 일을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노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통계들이 우울한 노년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노인 빈곤율이 무려 49.6%로 OECD 평균 12.6%에 네 배가 넘습니다. 노인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가난에 시달린다는 말입니다. 비교적 높다는 일본도 20%가 되지 않고 유럽의 복지국가 독일은 9.4%, 프랑스는 3.8%에 불과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퇴한 이후 계속 일을 해야 노인들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에서 일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31.3%, OECD 국가 중에 아이슬란드를 빼면 가장 높습니다. 일본은 20.8%, 독일은 5.8%, 프랑스는 2.3%에 그쳤습니다. 특히 75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고용률도 19.2%로 세계 최고입니다. OECD 평균이 4.8%에 불과하니 역시 네 배 이상 높은 수칩니다.


멋진 로맨스그레이(romancegrey)를 꿈꾸던 한 시인은 이런 현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습니다. 은퇴하면 무지개가 뜨는 멋진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멀리 시골까지 손수 운전해 가면서 강의를 해야 하는 결코 멋지지 않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고 넋두리합니다.



청매화가 빗방울 속에 몸이 젖는다니 아마 봄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었나 봅니다. 시인은 첫 강의를 위해 먼 시골길을 손수 운전해 가는데 운전이 여간 서툴지 않습니다. 매화는 진한 향기 뿜어내면서 청초하게 피어날 텐데, 정작 자신의 삶은 낙엽 지는 가을입니다. 거대한 비현실 앞에서 시인은 우울해집니다.

빈곤은 자연히 각종 질병과 자살로 이어집니다. 지난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58.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았습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과 통계청의 노인실태 보고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33%가 우울 증상을 경험했고, 11%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요즘 미디어의 뉴스를 보면 고독이나 가난, 질병을 견디지 못한 노인들, 자신도 아픈데 더 아픈 배우자를 돌보다 생명줄을 놓아버리는 노인들의 자살 기사가 빠질 날이 없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노인들

젊은이들도 취직하기 어려운 판에 노인들이 번듯한 직업을 얻기란 여건 어렵지 않습니다. 기업이나 점포에서 기피하는 것도 있겠지만, 노인들의 체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 데다, 급속도로 변하는 지식과 정보, 트렌드를 따라잡기가 역부족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자연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단순노동이 고작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에도 노인들이 몰리고 있습니다. 썩 만족스러운 대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는 데 만족하는 노인도 있습니다.


시인의 어머니는 자신도 노인이면서 더 어려운 노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을 미안해하는 고운 마음씨의 노인인가 봅니다. 열심히 일해서 번 3만 3천 원으로 평생 벼르던 집을 장만하셨다니 축하할 일이고요. 그런데 그 장만한 집이 손에 잡힌 물집이라니 시인은 얼마나 눈시울이 뜨거웠을까요? 번듯한 집 한 채 해드리지 못하는 게 못내 가슴 아픈데 손에다 물집 하나 지어드렸으니, 시인의 눈에도 눈물 집 하나 지어졌지 않을까요?

벼랑으로 몰리는 노인들

노인의 삶은 이렇게 팍팍해지는데, 수명은 자꾸 늘어납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남성 기대수명은 78.5세, 여성은 85.1세로 평균 81.8세나 됩니다. 지난 1970년 남성의 기대수명은 58.7세에 불과했고, 여성도 65.6세에 그쳤으니 불과 반세기도 못돼 평균수명은 평균 20년 가량이 늘어난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1번째로 장수하는 나라가 됐습니다. 1위인 일본이 83세 정도니까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환갑잔치는 거의 사라졌고, "칠십까지 사는 것은 예로부터 드물다"는 중국의 시성 두보의 시구도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어찌 된 셈인지 은퇴연령은 점점 빨라집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평균 퇴직연령은 52.6세였습니다. 자영업자를 빼고 월급생활자로만 본다면, 은퇴하고도 30년 가까이를 살아야 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은퇴하고 죽을 때까지 얼마 정도의 돈이 있어야 최소한의 생활이 될까요?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2인 가족의 최저생계비는 105만 원 정도입니다. 그야말로 밥만 먹고 숨만 쉬는 돈인데도 30년을 살려면 3억 6천만 원이 필요합니다. 서울에서 평균 수준의 경제, 문화생활을 누리려면 한 달에 23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려면 8억 가까운 돈이 있어야 합니다.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어나니까 필요한 돈은 더 불어나겠지요.

그래서 모자라는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노인의 노동비율이 OECD 최고 수준이 된 것입니다. OECD 통계를 보면 형식적으로 직장에서 은퇴하는 나이는 52세지만, 실제로 일을 손에서 놓는 나이는 남자가 73세, 여자는 71세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평균 수명과의 차이를 계산해보면 남자는 죽기 5년 전이 되어야 일에서 자유로워진다는 얘깁니다. 프랑스의 경우 실제 은퇴하는 나이가 60세이니까, 우리나라 노인들보다 13년을 그야말로 여유로운 노후를 즐기는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13년부터 우리나라는 60대 전반 일하는 노인의 비율이 20대 청년의 비율보다 높은 웃지 못할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은퇴한 아버지가 아들보다 더 많이 일한다니, 할 말을 잃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더 큰 재앙이 닥치기 전에 점점 더 가파른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노인들의 생계와 복지를 확충하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적극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방안과 소극적으로 노령연금을 비롯해 각종 공적연금 제도를 확충해 노인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생명줄을 튼튼히 손봐주어야 합니다.

개인의 노후는 각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그야말로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방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노인이 되는 길을 피해갈 수 없는 일이고 보면, 노령화에 대한 대책은 결국 젊은이들에 대한 대책이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예외 없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식이 아버지를 버리거나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노인 문제의 해결은 어쩌면 단군 이래 가장 잘살고 있다는 한국 사회가 힘써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노인들이 빵을 해결하기 위해 억지로 노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적당한 노동으로 삶의 보람을 찾는 사회, 하여 노익장이라는 말이 겉치레 수사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꿈꿔 봅니다. 이미 2천5백 년 전 지구의 반대쪽에 살았던 청빈한 철학자가 꿈꿨던 노인의 삶이 이 땅에서 다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디오게네스에게 제자들이 말했다. "스승님, 이제 연세도 많으시니 그만 쉬엄쉬엄 편하게 지내시지요."

디오게네스가 말했다. "천만에! 경주 마차 달리기에서 결승점이 보인다고 말이 별안간 천천히 달리면 되겠는가? 오히려 더 속력을 내야지!"

[바로가기] ☞ [임병걸의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시리즈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