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가짜 뉴스’에 현혹될까?

입력 2017.01.20 (14:20) 수정 2017.01.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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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총장의 대통령 선거 도전은 유엔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유명 정치인이 외신 보도라며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뉴스는 사실이 아닌 ‘가짜(fake·페이크)’로 밝혀졌다.

유럽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언론에서 만든 기사인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급속히 전파됐던 내용을 해당 정치인이 확인도 안하고 인용한 것이다.

#2 “김정은 동지의 명에 따라 적화통일의 횃불을 들었습네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변호인이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라며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종북에 놀아났다는 취지로 언급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들었습네다’라는 표현은 개그맨들의 말이지 북한에서 쓰는 말이 아니며, ‘적화통일’도 남한에서 쓰는 표현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 계정 화면페이스북 이용자 계정 화면

위 기사는 촛불 집회가 한창인 지난해 말 페이스북에 나돌았던 글이다. 해외 유명 정치학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비판했다는 내용이다.

기사 형식을 갖추고 해외 유명인까지 거론한 이 글은 ‘박사모’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글은 가짜 뉴스였다.

기사에 언급된 영국과 일본의 정치학자들은 모두 가상 인물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일본 만화 영화의 캐릭터에서 따온 것으로 드러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는 ‘가짜 뉴스’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는 ‘가짜 뉴스’

가짜 뉴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부터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인 ‘버즈피드’에 따르면 미국 대선 직전 석달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 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 트럼프 지지해 전 세계 놀라게 하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뉴스는 전체 공유 수가 96만 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기존 언론이 생산하는 ‘진짜 뉴스’의 평균적인 공유 건수를 훨씬 뛰어 넘는 수치였다.

하지만 교황은 도널드 트럼프도, 힐러리 클린턴도 지지한 적이 없었다.

가짜 뉴스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가짜 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은 초비상이다.

지난해 독일과 러시아 외무장관은 가짜 뉴스 때문에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베를린에서 러시아 국적 미성년자가 난민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었다.

난민 보호 정책을 펴고 있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불리한 가짜 기사였다.

가짜(fake) 뉴스의 유통 채널로 지목되고 있는 페이스북가짜(fake) 뉴스의 유통 채널로 지목되고 있는 페이스북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짜 뉴스 유통 채널로 몰린 페이스북은 인공 지능으로 가짜 뉴스를 걸러내겠다고 했고 구글은 가짜 뉴스 사이트에 광고비를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 사람들은 왜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에 귀가 솔깃해지고, 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욕구 충족에 있어 최적의 매체가 된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려놓은 뉴스는 대체로 내 생각과 맞아 떨어져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가짜 뉴스가 날뛰는 데는 정치적 목적 외에 경제적 이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퍼질 때마다 ‘가짜 뉴스’ 생산자는 트래픽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영국 BBC 방송은 “마케도니아의 시골 마을 벨레스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미국 정치 사이트 100여 개를 만들고 가짜 뉴스를 퍼뜨려 페이스북 등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고향을 방문해 성묘하고 있다.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고향을 방문해 성묘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정치 분야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이 한국판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억울해 한다.

반 전 총장은 최근 성묘를 하면서 퇴주(退酒)는 하지 않고 음복(飮福)만 했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성묘하는 모습을 앞뒤 맥락을 알 수 없게 몇 초 정도로 짧게 편집해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전체 영상을 보면 반 전 총장은 퇴주를 하고 나서 음복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가짜 뉴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으로 가짜 뉴스가 생산돼 유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가짜 뉴스들은 정상 뉴스보다 더 빠르고 더 폭넓게 퍼져 나간다.

가짜 뉴스들이 이른바 ‘의혹’들에 대해 좀 더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밝힌다’라고 포장하면 가짜 뉴스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진다.

가짜 뉴스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미지 타격은 엄청나다.

문제는 가짜 뉴스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 전반에 심각한 갈등을 불러 온다.

가짜 뉴스를 비롯해 각종 의심과 음모론은 폐쇄적인 소통 구조에 기인한다.

우리 사회도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비공개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억측이 난무하고 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는가?

가짜 뉴스가 싹 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가짜 뉴스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며, 언론과 시민사회 등은 이러한 가짜 뉴스가 생산 유포되지 않도록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자세를 버리고 내 귀에 거슬리는 뉴스라도 찬찬히 뜯어 봐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려는 시민들의 성숙된 의식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가짜 뉴스에 속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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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왜 ‘가짜 뉴스’에 현혹될까?
    • 입력 2017-01-20 14:20:22
    • 수정2017-01-20 17:31:55
    취재K
#1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총장의 대통령 선거 도전은 유엔 협약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유명 정치인이 외신 보도라며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뉴스는 사실이 아닌 ‘가짜(fake·페이크)’로 밝혀졌다.

유럽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언론에서 만든 기사인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급속히 전파됐던 내용을 해당 정치인이 확인도 안하고 인용한 것이다.

#2 “김정은 동지의 명에 따라 적화통일의 횃불을 들었습네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변호인이 북한 노동신문의 보도라며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종북에 놀아났다는 취지로 언급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들었습네다’라는 표현은 개그맨들의 말이지 북한에서 쓰는 말이 아니며, ‘적화통일’도 남한에서 쓰는 표현으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 계정 화면
위 기사는 촛불 집회가 한창인 지난해 말 페이스북에 나돌았던 글이다. 해외 유명 정치학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비판했다는 내용이다.

기사 형식을 갖추고 해외 유명인까지 거론한 이 글은 ‘박사모’를 중심으로 박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 글은 가짜 뉴스였다.

기사에 언급된 영국과 일본의 정치학자들은 모두 가상 인물이었다. 이들의 이름은 일본 만화 영화의 캐릭터에서 따온 것으로 드러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한다는 ‘가짜 뉴스’
가짜 뉴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부터이다.

미국 온라인 매체인 ‘버즈피드’에 따르면 미국 대선 직전 석달 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많이 공유된 가짜 뉴스는 ‘프란치스코 교황, 트럼프 지지해 전 세계 놀라게 하다’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뉴스는 전체 공유 수가 96만 건에 이르렀는데, 이는 기존 언론이 생산하는 ‘진짜 뉴스’의 평균적인 공유 건수를 훨씬 뛰어 넘는 수치였다.

하지만 교황은 도널드 트럼프도, 힐러리 클린턴도 지지한 적이 없었다.

가짜 뉴스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가짜 뉴스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오는 9월 총선을 앞둔 독일은 초비상이다.

지난해 독일과 러시아 외무장관은 가짜 뉴스 때문에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베를린에서 러시아 국적 미성년자가 난민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었다.

난민 보호 정책을 펴고 있는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불리한 가짜 기사였다.

가짜(fake) 뉴스의 유통 채널로 지목되고 있는 페이스북
사정이 이렇게 되자 가짜 뉴스 유통 채널로 몰린 페이스북은 인공 지능으로 가짜 뉴스를 걸러내겠다고 했고 구글은 가짜 뉴스 사이트에 광고비를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 사람들은 왜 터무니없는 가짜 뉴스에 귀가 솔깃해지고, 또 속아 넘어가는 것일까?

사회가 점점 양극화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한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욕구 충족에 있어 최적의 매체가 된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려놓은 뉴스는 대체로 내 생각과 맞아 떨어져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가짜 뉴스가 날뛰는 데는 정치적 목적 외에 경제적 이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가짜 뉴스’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퍼질 때마다 ‘가짜 뉴스’ 생산자는 트래픽에 따른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

영국 BBC 방송은 “마케도니아의 시골 마을 벨레스에서 10대 청소년들이 미국 정치 사이트 100여 개를 만들고 가짜 뉴스를 퍼뜨려 페이스북 등을 통해 돈을 벌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고향을 방문해 성묘하고 있다.
가짜 뉴스는 정치 분야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이 한국판 가짜 뉴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며 억울해 한다.

반 전 총장은 최근 성묘를 하면서 퇴주(退酒)는 하지 않고 음복(飮福)만 했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성묘하는 모습을 앞뒤 맥락을 알 수 없게 몇 초 정도로 짧게 편집해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전체 영상을 보면 반 전 총장은 퇴주를 하고 나서 음복을 하는 모습이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가짜 뉴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네거티브 선거 전략으로 가짜 뉴스가 생산돼 유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가짜 뉴스들은 정상 뉴스보다 더 빠르고 더 폭넓게 퍼져 나간다.

가짜 뉴스들이 이른바 ‘의혹’들에 대해 좀 더 직설적이고 자극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기존 언론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밝힌다’라고 포장하면 가짜 뉴스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진다.

가짜 뉴스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미지 타격은 엄청나다.

문제는 가짜 뉴스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 전반에 심각한 갈등을 불러 온다.

가짜 뉴스를 비롯해 각종 의심과 음모론은 폐쇄적인 소통 구조에 기인한다.

우리 사회도 이른바 ‘세월호 7시간’ 비공개로 인해 얼마나 많은 억측이 난무하고 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지 않는가?

가짜 뉴스가 싹 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 모든 분야에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가짜 뉴스를 이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하며, 언론과 시민사회 등은 이러한 가짜 뉴스가 생산 유포되지 않도록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자세를 버리고 내 귀에 거슬리는 뉴스라도 찬찬히 뜯어 봐 균형 잡힌 태도를 유지하려는 시민들의 성숙된 의식이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가짜 뉴스에 속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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