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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행진”, 페미니즘의 어려운 ‘사회적 화해’
입력 2017.01.23 (10:27) 수정 2017.02.01 (17:52) 특파원 리포트
그건 분명 반트럼프 시위였다.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취임 직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런던, 나이로비, 맬버른, 한국의 서울과 남극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7개 대륙의 7백여곳에서 주최 측 추산 5백만여명이 참여한 이 거대한 시위는, 분명 반트럼프 시위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여성은 물론 인종, 종교, 환경, 평등, 건강, 성정체성 등 다양한 기본권이 후퇴될 위기에 놓였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에 다양한 기본권의 보장을 촉구하는 다중적 구호의 시위였다. 그런데도, 이 거대한 시위에 붙여진 이름은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이다.

‘여성’이란 구호가 이 모든 이슈들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 ‘여성’이 그 많은 기본권을 향한 외침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이 놀라운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워싱턴에서 런던, 서울, 남극까지…전세계를 물들인 핑크 모자

1월 21일 “여성들의 행진” 본 장소 워싱턴DC에는 50만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최근 몇 년간 워싱턴에서 벌어진 시위 중 가장 대규모였다. 주최 측이 예상했던 20만명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그 곳에 모였다. 전날 취임식으로 통제됐었던 내셔널몰 주변이 시민들로 꽉 들어찼다.

머리에는 “Pussy hats”이란 별칭이 붙은 핑크색 모자들을 썼다. pussy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속어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는 이른바 “라커룸 토크”라고 치부했던, ‘유부녀를 성기까지 잡으며 희롱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떠벌인, 그 녹음 테이프 내용에 빗대어, ‘여성의 성기를 더듬는 걸 자랑하는 대통령을 거부’한다는 의미의 상징적 모자다.

구호들은 다양했다. “여성이여, 일어나라”는 여성의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에서부터, “잃어버린 희망을 여기서 되찾겠다”는 선거 패배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자는 내용들, 또 “오바마케어 폐지 반대” “가족계획협회 지원 중단 반대” “공교육 지원 확대” 등 최근 트럼프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들, 인종, 종교에 의한 차별 반대, 환경 보호, 반전 평화 구호, 장애인 권리 보호, 성소수자 권리 보호, 이민자 권리 보호,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이슈들을 적은 피켓이 물결을 이뤘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대륙의 서쪽에서부터 캐나다 등 이웃나라에서까지, 주최측이 조직한 교통편 또는 자비를 들여 워싱턴 DC의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미국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행사의 명예회장을 맡았고, 유력 정치인들과 유력 여성인권운동가들은 물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전미아랍인 연맹” “오바마케어수호” “예스민즈예스” 등 거대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또 팝스타 마돈다,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발언했고, 애슐리 주드가 축하공연을 하는 등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이 직접 참석해 행사의 의미를 북돋웠다.

마돈나는 스스로 이 행진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평등권을 위한 주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스칼렛 요한슨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본적 건강권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가족계획협회 지원을 축소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결정을 비판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회장은 “시위는 소셜미디어에서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며, 책도 미디어 수단도 아닌 함께 하는 행동을 통해 주장을 펼치라고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위해 일어서고 말하고 행진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함께 하면 더 강하다’는 그의 대선 구호를 적어 시위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 워싱턴 본 시위에 대한 동조 시위도 전세계에서 조직적으로 펼쳐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흰색 오프숄더 드레스로 패션감각을 뽐낸 영부인 멜라니아가 취임식 파티를 즐기던 그 순간, 시차가 빨라 이미 21일이 시작된 호주 멜버른과 한국의 서울 강남역 등을 시작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런던에서만 10만명이 미 대사관앞에서부터 행진을 벌이는 등 유럽, 아프리카, 심지어 북극, 남극까지 전세계 700여곳에서 주최측 추산 5백만여명이 이 하룻 동안의 시위에 참여했다.



단 하루, 지구촌 500만의 시위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지난해 11월 8일,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하와이의 한 은퇴한 변호사 여성인 테레사 슉은 선거 다음날인 9일 페이스북에 “트럼프 취임식 뒤 워싱턴 행진”을 제안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다. 하루도 안돼 만여명이 즉각 답을 주고 여러 여성단체들이 접촉해올 정도로, 이 행진 제안은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공감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역시 선거 결과에 실망한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밥 블랜드 역시 11월 10일 페이스북에 “수백만 여성 행진”(원래 이름은 Million Pussy March로 다소 도발적이었으나 Million Women March로 수정)을 제안했다. 미 전역에서 행진을 벌이자는 아이디어였다. 이처럼 여성들의 시위 제안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면서, 아이디어는 “트럼프 취임식 다음 날 워싱턴에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행진을 벌이자”는 것으로 발전돼갔다.

그러나, 이 행진을 지구촌 700여 곳에서 5백만이 참여하는 거대한 시위로 실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성들의 행진”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었다. 이 아이디어가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될수록 더 커졌던 비판들과 그 비판을 수용한, 밥 블랜드 등 초기 조직자들의 열린 자세가 결국 이 행진의 성공을 이끌었다.


여성에서 다양성으로, 다양성에서 이슈로

“수백만 여성 행진” 제안은 시작되자마자 급속한 호응을 얻었으나, 동시에 비판에도 직면했다. 초기 행진 조직자들이 대부분 백인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초기 조직자들은 빠르게 수용했다. 다양한 여성, 인권단체들과의 연대를 이뤄나갔다. 백인 여성인 밥 블랜드와 함께, 총기 규제 활동가 흑인 여성 타미카 말로리, 범죄 정의 개혁 시민단체의 히스패닉계 여성 활동가 카르멘 페레즈, 전미아랍인협회의 무슬림 여성활동가 린다 사르수르 등 4명의 공동 의장 체제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4명의 공동의장의 면면만으로도 여성, 인종, 종교 등 다양한 기본권 이슈를 상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행사의 초기 이름이었던 “수백만 여성 행진”이 1997년 필라델피아 흑인 여성들의 시위와 이름이 같다는 지적에 이름도 최종적으로 “워싱턴 여성들의 행진”으로 바꾸게 되었다.


[관련 링크] “여성들의 행진” 홈페이지

이처럼 다양성을 확보한 “여성들의 행진”은 이 행진이 단지 여성들만의 행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여성들의 행진”의 홈페이지에 제시된 비전을 보자,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모든 지위에 있는 이민자들, 무슬림과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 성적 소수자, 원주민, 흑인과 유색인종, 장애인들,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 등 선거에서 상처를 입고 선거에 의해 두려움에 처한 모든 공동체들이, 이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우려에 어떻게 맞설지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워싱턴 여성들의 행진은 “새 정부가 출범한 첫날, 여성의 권리는 바로 인간 기본권들의 문제라는 것을 세계에 전할 것”이라고 말하며, 모든 성, 나이, 인종, 문화, 정치적 성향, 장애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여성들의 행진이 사회적 진보를 위해 기초를 닦아온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포괄할 것이라며, 이 운동은 단지 여성참정권론자, 노예해방론자들만의 운동이 아닌, 시민권 운동, 페미니스트 운동, 미국원주민운동,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등 경제적 평등 운동,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등 흑인인권운동이기도 하다고 규정한다.

어떻게 “여성들의 행진”이라는 이름 하에 이 광범위한 이슈들의 포괄이 가능했던 것일까?
“여성들의 행진”은 그들의 비전과 원칙을 정의하는 첫머리에
“여성들은 교차적 정체성(intersectional identities)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다중적인 사회 정의와 인권의 이슈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라고 쓴다.
즉 “교차적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논쟁적 이름 “교차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다.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여론분석기관과 언론들이 선거 직전까지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던,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분명 미국 여성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나 어떤 미국 여성들에게 더 충격적이었을까?

여성들의 투표 결과를 분석해보자, 백인 여성은 47%가 힐러리 클린턴을 찍었고, 흑인 여성은 94%가 클린턴을, 히스패닉계 여성은 69%가 클린턴을 찍었다. 즉 백인 여성은 여성인 클린턴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는 것이다. 반면 유색인종들은 압도적으로 클린턴을 지지했다.

왜? 백인여성들은 실제로 성 차별적 경험을 유색인종 여성들보다 덜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인 여성들은 성 차별 문제보다는 다른 이슈들에 의해 더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운동기간 보여줬던,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무슬림, 장애인 등을 무시하거나 차별하거나 그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바라보는 태도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색인종 여성들은, 유색인종이면서 여성이거나, 유색인종이면서 이민자이면서 여성이거나, 또는 유색인종이면서 이민자이면서 무슬림이면서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여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차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다.

1989년 교차페미니즘이란 용어를 학계에 처음 선보인, UCLA 법학교수 킴벌리 크렌쇼는 그의 논문에서, 흑인 여성들은 주류 반인종주의이론과 주류 페미니스트이론 둘 다로부터 배제돼왔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 둘 중 어느 하나로는 흑인 여성들이 겪는 차별적 경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이 겪는 교차적 경험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단순히 합한 것 이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크렌쇼는 따라서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체계 또는 여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체계, 2가지가 완비돼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미대학여성협회의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백인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백인 여성은 78센트, 흑인 여성은 64센트, 히스패닉계 여성은 54센트를 번다. 분명, 더 다중적인 교차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차별받을 수 있다.

“여성들의 행진”은 여성의 권리운동이 단지 페미니즘적 이슈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기본 인권 문제라는 것으로 인식을 나아가게 하고, 다양한 기본권 수호자들과의 연대를 확대하기 위해, 이 교차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가치를 규정한 데서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흑인, 원주민,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더 유괴되고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살인되기 쉽다”고, “유색인종 여성들, 원주민 여성들, 장애인 여성들이 경찰에 구속되거나 성적 모욕을 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소외된 집단들에게 사법적 정의 실현이 더 긴급하다”고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또한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민자이면서 성소수자이면서 유색인종인 남자들 역시, 이민자, 성소수자, 유색인종이라는 교차적 차별에 직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많은 이슈들이 여성들만의 문제도 또 각각이 떨어진 독립적 문제들도 아닌, 교차됐을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여성들의 행진”은 성소수자, 경제, 건강, 최저임금, 인종, 평등, 이민자, 심지어 환경과 반전평화 이슈들까지 포괄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한 모든 여성들을 포괄하는 것을 물론, 광범위한 단체들과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차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인식의 확장이, 단 하루 500만명의 전세계적 행진을 실현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계륵을 삼킨 그들의 용기

그러나, 교차페미니즘은 어떤 이들에겐 달갑지 않은 자각을 일으킨다. 바로 “백인 여성들은 특권화 돼있어,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들보다 차별을 덜 겪을 수 있다”는 자각이다. 실제로 일부 백인 여성들은 이 시위에 대한 참여를 거부했다. “여성들의 행진”이 지나치게 교차적 문제를 가진 여성들에게 집중해, 백인여성들은 배제되고 공격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교차적 페미니즘은 사실 논쟁적 이름이다. ‘비백인 여성들, 즉 교차적 문제를 가진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의 독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수단적 개념이 아니냐, 교차성을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적 의식만 부추기고, 여성운동계 내부에 분열만 일으킨다’는 비판들이 제기돼왔다.

그런데, 이 비판을 과거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치환해보니 교묘히 맞아떨어진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의 독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적 개념이 아니냐, 성차별을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적 의식만 부추기고, 시민운동계 내부에 분열만 일으킨다”. 놀랍지 않은가, 이 데자부가 말이다.

그렇다, 전통적 페미니즘이든, 교차적 페미니즘이든 즉, 일반적 문제들이 여성의 문제와 결합될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 또는 독특한 차별이 다른 차별과 결합될 때 더 큰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들은 모두, 일반적인 문제 자체에 또 하나의 프리즘을, 또는 여러 개의 프리즘을 덧대야 하는, 복잡하고 불편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 차별의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인종, 이민자, 종교적 차별의 문제가 없는 것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되리라던 기대가 좌절된 데서, 이 거대한 행진을 조직하는 에너지가 나왔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여성들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면서 여성들의 문제만을, 트럼프의 성차별적 발언과 태도만을 비판하려 했더라면, 더 안전하고 쉬웠을지도 모른다.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할 일도, 외부의 불편한 논란을 감수해야 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의 행진은 알고 있었다. 여성들만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현실 세계에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는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또 그래서는 이런 복합적 문제들이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더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과연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교차적 페미니즘’이라는 계륵을 기꺼이 삼킨 것이다. 그들의 과감한 선택이 결국 광범위한 연대의 실현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전통적 페미니즘의 이름 “여성”을 그 모든 이슈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유지했다. 그리고 그 의도의 순수성을 인정받아, 그들 스스로의 예상마저 뛰어넘는, 워싱턴 50만, 전세계 500만이란 경이로운 숫자를 이뤄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의 그 어려운 사회적 화해와 연대.

페미니즘은 유효하지만, 페미니즘은 논쟁적이다.
예를 들어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여성 대통령을 강조하자, 한편에서 나온, 그렇다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라는 논란을 생각해보자. 여성이냐 아니냐 라는 잣대만으로 대통령을 뽑으라는 주장은 분명 잘못됐다. 투표의 기준이 될 더 중요한 이슈들이,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페미니즘 자체가 쓸모가 없는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은 결코 이런 편협된 주장을 하자는 운동이 아니란 것이다.

어쨌든 페미니즘은,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사회 문제를 남녀 성차별적 시각으로 보면 문제의 근본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왔고, 그것은 일견 사실이기에, 이에 대한 해법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과 사회적 이슈들 사이의 화해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해법을 찾아야만 할, 페미니즘의 숙명적 과제일 것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논란을 감수하면서 연대와 화해를 위한 대안을 취하고, 그래도 다시 페미니즘을 추구한 “여성들의 행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 “여성들의 행진”, 페미니즘의 어려운 ‘사회적 화해’
    • 입력 2017-01-23 10:27:31
    • 수정2017-02-01 17:52:06
    특파원 리포트
그건 분명 반트럼프 시위였다.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취임 직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런던, 나이로비, 맬버른, 한국의 서울과 남극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7개 대륙의 7백여곳에서 주최 측 추산 5백만여명이 참여한 이 거대한 시위는, 분명 반트럼프 시위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여성은 물론 인종, 종교, 환경, 평등, 건강, 성정체성 등 다양한 기본권이 후퇴될 위기에 놓였다며, 트럼프 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에 다양한 기본권의 보장을 촉구하는 다중적 구호의 시위였다. 그런데도, 이 거대한 시위에 붙여진 이름은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이다.

‘여성’이란 구호가 이 모든 이슈들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것, ‘여성’이 그 많은 기본권을 향한 외침의 상징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이 놀라운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워싱턴에서 런던, 서울, 남극까지…전세계를 물들인 핑크 모자

1월 21일 “여성들의 행진” 본 장소 워싱턴DC에는 50만여명의 시민이 모였다. 최근 몇 년간 워싱턴에서 벌어진 시위 중 가장 대규모였다. 주최 측이 예상했던 20만명의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그 곳에 모였다. 전날 취임식으로 통제됐었던 내셔널몰 주변이 시민들로 꽉 들어찼다.

머리에는 “Pussy hats”이란 별칭이 붙은 핑크색 모자들을 썼다. pussy는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속어다.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는 이른바 “라커룸 토크”라고 치부했던, ‘유부녀를 성기까지 잡으며 희롱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떠벌인, 그 녹음 테이프 내용에 빗대어, ‘여성의 성기를 더듬는 걸 자랑하는 대통령을 거부’한다는 의미의 상징적 모자다.

구호들은 다양했다. “여성이여, 일어나라”는 여성의 궐기를 촉구하는 내용에서부터, “잃어버린 희망을 여기서 되찾겠다”는 선거 패배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자는 내용들, 또 “오바마케어 폐지 반대” “가족계획협회 지원 중단 반대” “공교육 지원 확대” 등 최근 트럼프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들, 인종, 종교에 의한 차별 반대, 환경 보호, 반전 평화 구호, 장애인 권리 보호, 성소수자 권리 보호, 이민자 권리 보호, 최저임금 인상 등 다양한 이슈들을 적은 피켓이 물결을 이뤘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대륙의 서쪽에서부터 캐나다 등 이웃나라에서까지, 주최측이 조직한 교통편 또는 자비를 들여 워싱턴 DC의 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미국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행사의 명예회장을 맡았고, 유력 정치인들과 유력 여성인권운동가들은 물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전미아랍인 연맹” “오바마케어수호” “예스민즈예스” 등 거대 시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했다. 또 팝스타 마돈다,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발언했고, 애슐리 주드가 축하공연을 하는 등 유명 헐리우드 스타들이 직접 참석해 행사의 의미를 북돋웠다.

마돈나는 스스로 이 행진을 ‘혁명의 시작’이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평등권을 위한 주장을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스칼렛 요한슨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기본적 건강권을 위한 유일한 수단인 가족계획협회 지원을 축소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결정을 비판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회장은 “시위는 소셜미디어에서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며, 책도 미디어 수단도 아닌 함께 하는 행동을 통해 주장을 펼치라고 촉구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가치를 위해 일어서고 말하고 행진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함께 하면 더 강하다’는 그의 대선 구호를 적어 시위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 워싱턴 본 시위에 대한 동조 시위도 전세계에서 조직적으로 펼쳐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흰색 오프숄더 드레스로 패션감각을 뽐낸 영부인 멜라니아가 취임식 파티를 즐기던 그 순간, 시차가 빨라 이미 21일이 시작된 호주 멜버른과 한국의 서울 강남역 등을 시작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런던에서만 10만명이 미 대사관앞에서부터 행진을 벌이는 등 유럽, 아프리카, 심지어 북극, 남극까지 전세계 700여곳에서 주최측 추산 5백만여명이 이 하룻 동안의 시위에 참여했다.



단 하루, 지구촌 500만의 시위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지난해 11월 8일,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하와이의 한 은퇴한 변호사 여성인 테레사 슉은 선거 다음날인 9일 페이스북에 “트럼프 취임식 뒤 워싱턴 행진”을 제안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다. 하루도 안돼 만여명이 즉각 답을 주고 여러 여성단체들이 접촉해올 정도로, 이 행진 제안은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공감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역시 선거 결과에 실망한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밥 블랜드 역시 11월 10일 페이스북에 “수백만 여성 행진”(원래 이름은 Million Pussy March로 다소 도발적이었으나 Million Women March로 수정)을 제안했다. 미 전역에서 행진을 벌이자는 아이디어였다. 이처럼 여성들의 시위 제안이 소셜미디어를 타고 빠르게 확산되면서, 아이디어는 “트럼프 취임식 다음 날 워싱턴에서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행진을 벌이자”는 것으로 발전돼갔다.

그러나, 이 행진을 지구촌 700여 곳에서 5백만이 참여하는 거대한 시위로 실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성들의 행진”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었다. 이 아이디어가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확산될수록 더 커졌던 비판들과 그 비판을 수용한, 밥 블랜드 등 초기 조직자들의 열린 자세가 결국 이 행진의 성공을 이끌었다.


여성에서 다양성으로, 다양성에서 이슈로

“수백만 여성 행진” 제안은 시작되자마자 급속한 호응을 얻었으나, 동시에 비판에도 직면했다. 초기 행진 조직자들이 대부분 백인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다양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초기 조직자들은 빠르게 수용했다. 다양한 여성, 인권단체들과의 연대를 이뤄나갔다. 백인 여성인 밥 블랜드와 함께, 총기 규제 활동가 흑인 여성 타미카 말로리, 범죄 정의 개혁 시민단체의 히스패닉계 여성 활동가 카르멘 페레즈, 전미아랍인협회의 무슬림 여성활동가 린다 사르수르 등 4명의 공동 의장 체제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4명의 공동의장의 면면만으로도 여성, 인종, 종교 등 다양한 기본권 이슈를 상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행사의 초기 이름이었던 “수백만 여성 행진”이 1997년 필라델피아 흑인 여성들의 시위와 이름이 같다는 지적에 이름도 최종적으로 “워싱턴 여성들의 행진”으로 바꾸게 되었다.


[관련 링크] “여성들의 행진” 홈페이지

이처럼 다양성을 확보한 “여성들의 행진”은 이 행진이 단지 여성들만의 행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여성들의 행진”의 홈페이지에 제시된 비전을 보자,

그들은 그들의 임무를 “모든 지위에 있는 이민자들, 무슬림과 다양한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 성적 소수자, 원주민, 흑인과 유색인종, 장애인들, 성폭행을 당한 사람들 등 선거에서 상처를 입고 선거에 의해 두려움에 처한 모든 공동체들이, 이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우려에 어떻게 맞설지에 대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워싱턴 여성들의 행진은 “새 정부가 출범한 첫날, 여성의 권리는 바로 인간 기본권들의 문제라는 것을 세계에 전할 것”이라고 말하며, 모든 성, 나이, 인종, 문화, 정치적 성향, 장애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한 여성들의 행진이 사회적 진보를 위해 기초를 닦아온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포괄할 것이라며, 이 운동은 단지 여성참정권론자, 노예해방론자들만의 운동이 아닌, 시민권 운동, 페미니스트 운동, 미국원주민운동,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등 경제적 평등 운동,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등 흑인인권운동이기도 하다고 규정한다.

어떻게 “여성들의 행진”이라는 이름 하에 이 광범위한 이슈들의 포괄이 가능했던 것일까?
“여성들의 행진”은 그들의 비전과 원칙을 정의하는 첫머리에
“여성들은 교차적 정체성(intersectional identities)을 가지고 있고 따라서 다중적인 사회 정의와 인권의 이슈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라고 쓴다.
즉 “교차적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논쟁적 이름 “교차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다.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여론분석기관과 언론들이 선거 직전까지도 승리를 의심하지 않았던, 힐러리 클린턴의 패배는, 분명 미국 여성들에게 충격이었다. 그러나 어떤 미국 여성들에게 더 충격적이었을까?

여성들의 투표 결과를 분석해보자, 백인 여성은 47%가 힐러리 클린턴을 찍었고, 흑인 여성은 94%가 클린턴을, 히스패닉계 여성은 69%가 클린턴을 찍었다. 즉 백인 여성은 여성인 클린턴보다 트럼프를 더 지지했다는 것이다. 반면 유색인종들은 압도적으로 클린턴을 지지했다.

왜? 백인여성들은 실제로 성 차별적 경험을 유색인종 여성들보다 덜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인 여성들은 성 차별 문제보다는 다른 이슈들에 의해 더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색인종 여성들에게는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운동기간 보여줬던, 여성, 유색인종, 이민자, 무슬림, 장애인 등을 무시하거나 차별하거나 그 문제를 심각하지 않게 바라보는 태도가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색인종 여성들은, 유색인종이면서 여성이거나, 유색인종이면서 이민자이면서 여성이거나, 또는 유색인종이면서 이민자이면서 무슬림이면서 성소수자이면서 동시에 여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차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다.

1989년 교차페미니즘이란 용어를 학계에 처음 선보인, UCLA 법학교수 킴벌리 크렌쇼는 그의 논문에서, 흑인 여성들은 주류 반인종주의이론과 주류 페미니스트이론 둘 다로부터 배제돼왔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이 둘 중 어느 하나로는 흑인 여성들이 겪는 차별적 경험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이 겪는 교차적 경험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단순히 합한 것 이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크렌쇼는 따라서 흑인 여성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체계 또는 여성차별을 금지하는 법체계, 2가지가 완비돼있어도 보호받지 못하는 차별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미대학여성협회의 최근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백인 남성이 1달러를 벌 때 백인 여성은 78센트, 흑인 여성은 64센트, 히스패닉계 여성은 54센트를 번다. 분명, 더 다중적인 교차적 정체성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더 차별받을 수 있다.

“여성들의 행진”은 여성의 권리운동이 단지 페미니즘적 이슈만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기본 인권 문제라는 것으로 인식을 나아가게 하고, 다양한 기본권 수호자들과의 연대를 확대하기 위해, 이 교차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가치를 규정한 데서 대놓고 이렇게 말한다.
“흑인, 원주민, 트랜스젠더 여성들은 더 유괴되고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고 살인되기 쉽다”고, “유색인종 여성들, 원주민 여성들, 장애인 여성들이 경찰에 구속되거나 성적 모욕을 당할 확률이 더 높다”고, “소외된 집단들에게 사법적 정의 실현이 더 긴급하다”고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또한 남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이민자이면서 성소수자이면서 유색인종인 남자들 역시, 이민자, 성소수자, 유색인종이라는 교차적 차별에 직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많은 이슈들이 여성들만의 문제도 또 각각이 떨어진 독립적 문제들도 아닌, 교차됐을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여성들의 행진”은 성소수자, 경제, 건강, 최저임금, 인종, 평등, 이민자, 심지어 환경과 반전평화 이슈들까지 포괄하고, 다양한 상황에 처한 모든 여성들을 포괄하는 것을 물론, 광범위한 단체들과의 연대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차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인식의 확장이, 단 하루 500만명의 전세계적 행진을 실현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계륵을 삼킨 그들의 용기

그러나, 교차페미니즘은 어떤 이들에겐 달갑지 않은 자각을 일으킨다. 바로 “백인 여성들은 특권화 돼있어, 유색인종, 이민자 여성들보다 차별을 덜 겪을 수 있다”는 자각이다. 실제로 일부 백인 여성들은 이 시위에 대한 참여를 거부했다. “여성들의 행진”이 지나치게 교차적 문제를 가진 여성들에게 집중해, 백인여성들은 배제되고 공격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교차적 페미니즘은 사실 논쟁적 이름이다. ‘비백인 여성들, 즉 교차적 문제를 가진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의 독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수단적 개념이 아니냐, 교차성을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적 의식만 부추기고, 여성운동계 내부에 분열만 일으킨다’는 비판들이 제기돼왔다.

그런데, 이 비판을 과거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치환해보니 교묘히 맞아떨어진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문제의 독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적 개념이 아니냐, 성차별을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적 의식만 부추기고, 시민운동계 내부에 분열만 일으킨다”. 놀랍지 않은가, 이 데자부가 말이다.

그렇다, 전통적 페미니즘이든, 교차적 페미니즘이든 즉, 일반적 문제들이 여성의 문제와 결합될 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 또는 독특한 차별이 다른 차별과 결합될 때 더 큰 차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들은 모두, 일반적인 문제 자체에 또 하나의 프리즘을, 또는 여러 개의 프리즘을 덧대야 하는, 복잡하고 불편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성 차별의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인종, 이민자, 종교적 차별의 문제가 없는 것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되리라던 기대가 좌절된 데서, 이 거대한 행진을 조직하는 에너지가 나왔음은 분명하다. 어쩌면, “여성들이여 일어나라”고 외치면서 여성들의 문제만을, 트럼프의 성차별적 발언과 태도만을 비판하려 했더라면, 더 안전하고 쉬웠을지도 모른다. 내부의 치열한 고민과 결정을 해야 할 일도, 외부의 불편한 논란을 감수해야 할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성들의 행진은 알고 있었다. 여성들만의 문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현실 세계에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가 존재하는지를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또 그래서는 이런 복합적 문제들이 여성들에 대한 차별을 더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과연 페미니즘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교차적 페미니즘’이라는 계륵을 기꺼이 삼킨 것이다. 그들의 과감한 선택이 결국 광범위한 연대의 실현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그러면서도 전통적 페미니즘의 이름 “여성”을 그 모든 이슈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유지했다. 그리고 그 의도의 순수성을 인정받아, 그들 스스로의 예상마저 뛰어넘는, 워싱턴 50만, 전세계 500만이란 경이로운 숫자를 이뤄낼 수 있었다.

페미니즘의 그 어려운 사회적 화해와 연대.

페미니즘은 유효하지만, 페미니즘은 논쟁적이다.
예를 들어 과거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여성 대통령을 강조하자, 한편에서 나온, 그렇다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찍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라는 논란을 생각해보자. 여성이냐 아니냐 라는 잣대만으로 대통령을 뽑으라는 주장은 분명 잘못됐다. 투표의 기준이 될 더 중요한 이슈들이,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페미니즘 자체가 쓸모가 없는 것인가? 더 중요한 것은 페미니즘은 결코 이런 편협된 주장을 하자는 운동이 아니란 것이다.

어쨌든 페미니즘은,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사회 문제를 남녀 성차별적 시각으로 보면 문제의 근본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왔고, 그것은 일견 사실이기에, 이에 대한 해법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 자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즘과 사회적 이슈들 사이의 화해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그것은 지금도 풀리지 않았고, 어쩌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해법을 찾아야만 할, 페미니즘의 숙명적 과제일 것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논란을 감수하면서 연대와 화해를 위한 대안을 취하고, 그래도 다시 페미니즘을 추구한 “여성들의 행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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