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폭력’ 급증…안으로 곪는 일본 사회

입력 2017.01.23 (16:32) 수정 2017.02.0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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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유명 출판사 중견 직원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해당 출판사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형 출판사 '고단샤'였다. 세기말적 상상력 등으로 화제와 논란을 일으키며 유명해진 만화 '진격의 거인'을 발간한 곳이다.

고단샤에서 출판된 '진격의 거인'고단샤에서 출판된 '진격의 거인'

체포된 출판사 직원은 공교롭게도 한국계 박 모 씨. '진격의 거인'을 담당했었고, 사건 당시엔 만화잡지의 편집차장을 맡고 있었다. 자택에 아내가 쓰러져 있다고 처음 신고했는데, 경찰은 부검 결과와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해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박 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고단샤 측은 '매우 유감'이며, '수사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여론의 관심은 '폭력성 짙은 만화 상품'의 담당자가 '잔혹한 사건'에 연루된 점에 주목했다. 한국 국적이란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부 언론이 사건의 배경을 파고 들면서 의외의 정황들이 드러났다.

일본 출판사 '고단샤'일본 출판사 '고단샤'

교도통신은 용의자 박 씨가 "아내가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녔다"고 주장했으나, 통원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또 "귀가해 이성을 잃은 아내와 몸싸움을 벌인 뒤, 아내 스스로 비극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3년 전 해당 지자체의 자녀가정지원센터에 부인이 상담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부인이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 "자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멍이 들 정도로 가정폭력을 행사했다"고 상담했다는 내용이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는 최종 수사결과와 사법적 판단이 남아 있지만, 사건의 이면에서 가정 폭력의 전형적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전체 범죄는 감소...친족간 폭행은 증가

살인 사건 담당 경찰서살인 사건 담당 경찰서

일본 사회가 가정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동 학대, 배우자 폭행, 노인 학대, 그리고 존비속 살인에 이르기까지 엽기적이고 잔혹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체 범죄 건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친족 간 폭력 사건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이 잠정 집계한 범죄통계 자료를 보면 2016년(지난해) '형법 범죄'는 99만 6,204건이었다. 역대 최저치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46년, 일본의 형법 범죄는 138만여 건이었다. 1998년 200만 건을 넘어선 뒤, 2002년 285만여 건으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이후 14년 연속 감소했는데, 2013년엔 131만 4천여 건, 2014년엔 121만 2천여 건, 그리고 2015년 109만여 건으로 급격히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 건 아래로 떨어졌다. 살인과 강도 등 강력 범죄 건수는 5,131건, 도난 등 재산 범죄는 72만 3,189건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전체 범죄와 주요 강력범죄는 감소하는데, 특이하게도 친족간 폭력 사건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잠정집계 결과,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폭행사건 2만 5,300여 건 가운데 친족 간 폭행사건은 약 24%인 6천100여 건에 이른다. 2007년 폭행 사건 2만 1,200여 건 중 친족 간 사건 비율은 7.6%인 천6백여 건이었다. 10년 새, 3.8배로 증가한 것이다.

배우자 폭행 4배 이상으로...더이상 '가족'이 아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배우자 간 폭행 사건은 4천여 건으로, 10년 새 4배 이상으로 늘었다. 부모 폭행은 700여 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고, 자녀 폭행은 600여 건으로 4배로 증가했다. 이쯤되면 '가족'은 이미 가족이 아니다.

전체 범죄가 급감하고 친족 간 폭행이 급증한 까닭은 무엇일까?

경찰청은 공공 장소에 설치된 각종 방범 카메라가 12년 사이 4배 가까이로 증가하는 등 치안 대책 강화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범죄가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방범 카메라를 이용한 용의자 검거율은 5.9%이지만, 카메라 설치에 따른 범죄 예방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공공 영역의 안전 문제는 강력한 제어 장치로 어느 정도 대응해 나갈 수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사적인 공간이다. 공간적·심리적으로 고립돼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고, 지역 주민들간의 유대 관계도 옅어지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사회의 구심력까지 약화되면서 전통적인 치안 시스템에 빈틈이 늘고 있다. 가정 폭력은 그 빈틈에 자리잡고 있다.

약한 사람에게 분풀이...비겁한 가학성

부인 살해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부인 살해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

정상적인 가정은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성을 회복해 사회로 복귀하는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은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가학적 방법'으로 해소하고 증폭시키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생존 경쟁 속에 경험하는 스트레스·열등감·좌절감의 해소 방법을 '가족'을 공격하는 데서 찾는 것이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권력과 권위주의에 쉽게 굴복하는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폭력은 그릇된 사회·문화적 관습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명백한 범죄행위가 '가정은 어떤 희생 속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허위의식 속에 은폐된다면, 가정폭력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

후진적 경쟁사회일수록 '실패의 책임'을 상대적 '약자(소수자)'에게 돌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손쉬운 분풀이 대상은 가정내 약자, 친족일 가능성이 높다. 비겁하고 잔인하며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이다. 이런 류의 비겁한 범죄행위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안으로 곪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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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정 폭력’ 급증…안으로 곪는 일본 사회
    • 입력 2017-01-23 16:32:43
    • 수정2017-02-01 17:51:25
    특파원 리포트
최근 일본의 유명 출판사 중견 직원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해당 출판사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형 출판사 '고단샤'였다. 세기말적 상상력 등으로 화제와 논란을 일으키며 유명해진 만화 '진격의 거인'을 발간한 곳이다. 고단샤에서 출판된 '진격의 거인' 체포된 출판사 직원은 공교롭게도 한국계 박 모 씨. '진격의 거인'을 담당했었고, 사건 당시엔 만화잡지의 편집차장을 맡고 있었다. 자택에 아내가 쓰러져 있다고 처음 신고했는데, 경찰은 부검 결과와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해 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박 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고단샤 측은 '매우 유감'이며, '수사 추이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여론의 관심은 '폭력성 짙은 만화 상품'의 담당자가 '잔혹한 사건'에 연루된 점에 주목했다. 한국 국적이란 점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부 언론이 사건의 배경을 파고 들면서 의외의 정황들이 드러났다. 일본 출판사 '고단샤' 교도통신은 용의자 박 씨가 "아내가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녔다"고 주장했으나, 통원 기록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또 "귀가해 이성을 잃은 아내와 몸싸움을 벌인 뒤, 아내 스스로 비극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3년 전 해당 지자체의 자녀가정지원센터에 부인이 상담을 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부인이 "멱살을 잡히는 등 폭행을 당했다", "자상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멍이 들 정도로 가정폭력을 행사했다"고 상담했다는 내용이다.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는 최종 수사결과와 사법적 판단이 남아 있지만, 사건의 이면에서 가정 폭력의 전형적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전체 범죄는 감소...친족간 폭행은 증가 살인 사건 담당 경찰서 일본 사회가 가정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동 학대, 배우자 폭행, 노인 학대, 그리고 존비속 살인에 이르기까지 엽기적이고 잔혹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체 범죄 건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친족 간 폭력 사건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이 잠정 집계한 범죄통계 자료를 보면 2016년(지난해) '형법 범죄'는 99만 6,204건이었다. 역대 최저치다.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46년, 일본의 형법 범죄는 138만여 건이었다. 1998년 200만 건을 넘어선 뒤, 2002년 285만여 건으로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이후 14년 연속 감소했는데, 2013년엔 131만 4천여 건, 2014년엔 121만 2천여 건, 그리고 2015년 109만여 건으로 급격히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 처음으로 100만 건 아래로 떨어졌다. 살인과 강도 등 강력 범죄 건수는 5,131건, 도난 등 재산 범죄는 72만 3,189건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다. 전체 범죄와 주요 강력범죄는 감소하는데, 특이하게도 친족간 폭력 사건은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 잠정집계 결과, 지난해 경찰이 적발한 폭행사건 2만 5,300여 건 가운데 친족 간 폭행사건은 약 24%인 6천100여 건에 이른다. 2007년 폭행 사건 2만 1,200여 건 중 친족 간 사건 비율은 7.6%인 천6백여 건이었다. 10년 새, 3.8배로 증가한 것이다. 배우자 폭행 4배 이상으로...더이상 '가족'이 아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배우자 간 폭행 사건은 4천여 건으로, 10년 새 4배 이상으로 늘었다. 부모 폭행은 700여 건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고, 자녀 폭행은 600여 건으로 4배로 증가했다. 이쯤되면 '가족'은 이미 가족이 아니다. 전체 범죄가 급감하고 친족 간 폭행이 급증한 까닭은 무엇일까? 경찰청은 공공 장소에 설치된 각종 방범 카메라가 12년 사이 4배 가까이로 증가하는 등 치안 대책 강화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범죄가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방범 카메라를 이용한 용의자 검거율은 5.9%이지만, 카메라 설치에 따른 범죄 예방 효과가 큰 것으로 분석됐다. 공공 영역의 안전 문제는 강력한 제어 장치로 어느 정도 대응해 나갈 수 하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사적인 공간이다. 공간적·심리적으로 고립돼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고, 지역 주민들간의 유대 관계도 옅어지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 사회의 구심력까지 약화되면서 전통적인 치안 시스템에 빈틈이 늘고 있다. 가정 폭력은 그 빈틈에 자리잡고 있다. 약한 사람에게 분풀이...비겁한 가학성 부인 살해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 정상적인 가정은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성을 회복해 사회로 복귀하는 보금자리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가정은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가학적 방법'으로 해소하고 증폭시키는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생존 경쟁 속에 경험하는 스트레스·열등감·좌절감의 해소 방법을 '가족'을 공격하는 데서 찾는 것이다. 가족 중에서도 가장 약한 사람이 가장 큰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권력과 권위주의에 쉽게 굴복하는 사회에서는 가정폭력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폭력은 그릇된 사회·문화적 관습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기 마련이다. 명백한 범죄행위가 '가정은 어떤 희생 속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허위의식 속에 은폐된다면, 가정폭력은 결코 없어질 수 없다. 후진적 경쟁사회일수록 '실패의 책임'을 상대적 '약자(소수자)'에게 돌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손쉬운 분풀이 대상은 가정내 약자, 친족일 가능성이 높다. 비겁하고 잔인하며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이다. 이런 류의 비겁한 범죄행위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안으로 곪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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