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 문화재…흔적을 감추다

입력 2017.01.24 (17:07) 수정 2017.01.2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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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으로 역병이 돌던 조선 중기. 당시 임금이던 선조의 지시로 허준은 민가에 보급하기 위한 의학서, '동의보감'을 씁니다. 동의보감은 외경(지금의 외과)과 내경(내과), 잡병, 침구(침 놓는 법), 탕약 등 5가지 분야에 모두 25권으로 저술됐습니다. 특히 탕액 편의 경우 재료를 설명하는 부분 등을 한글로써, 일반 백성들도 쉽게 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5권으로 완결된 이후 맨 처음 찍은 동의보감 초간본(초판)은 국보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돼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찍힌 또다른 초간본이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도난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은 지금껏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 걸까요? 3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도난 문화재의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경북 안동의 군자마을은 댐 수몰지에 있던 고택들을 옮겨놓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 입구에는 조선시대 요리책인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 선생의 종택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 지난 2002년 9월, 고서적 140여 권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태풍 '루사'가 상륙한 날 밤이었습니다. 당시 이 종택의 관리인은 '덜그럭'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바람 때문이라 생각해 도둑을 의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안동의 여러 고택들이 이 종택과 똑같이 도둑을 맞았습니다.

고서들은 당시 대문 옆 사랑방에 보관돼 있었는데, 범인은 고서의 위치뿐 아니라 집 구조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난당한 시기와 수법 등을 고려할 때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추정됩니다. 도난 당한 고서 중에는 퇴계선생 매화시첩을 비롯해 희귀 서적도 여러 권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전국의 골동품 시장을 뒤졌지만 잃어버린 서적들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안동 군자마을에서 50km쯤 떨어진 경북 예천의 한 종택에는 지난 1986년 보물로 지정된 '대동운부군옥'이라는 문화재가 있습니다. 단군에서부터 조선 명종 이전까지의 역사와 인물, 사회, 문학을 총망라하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입니다. 이 종택에 '대동운부군옥' 목판 677장이 보관돼 있었는데 보물 지정 4년 뒤 100여 장을 도난 당했습니다.

종손이 수소문 끝에 잃어버린 목판 일부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판은 한 대학 박물관에 있었습니다. 도난당한 지 석 달 만에 되찾아오긴 했지만 목판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찾지 못한 56장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도난 문화재 29점에 대해 사상 첫 국제수배를 내렸는데 여기에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목판도 포함됐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화재들은 어떻게, 또 누구의 손에 들어간 걸까? 취재진은 어렵게 한 문화재 불법 매매업자를 만났습니다.

이 업자는 거래되는 문화재 대부분이 훔친 물건, 이른바 '장물'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문화재 매매 시장 자체가 사실상 도난품으로 이뤄져있고, 정상적인 물건은 없다는 겁니다. 또 장물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다 매매 시장에 내놓는 수법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섭니다. 절도 대상은주로 고택의 친인척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물색한다고 합니다. 훔친 물건은 소유자나 출처를 알 수 없게 훼손 과정을 거쳐 불법 거래됩니다.


지난해 말, 경찰이 회수한 동의보감 초간본도 장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책의 출처와 연원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지워진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 동의보감 초간본은 지난 1999년 장물업자가 절도범에게서 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한 사찰에 2천만 원을 받고 되판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물 시장을 떠돌던 귀중한 문화 유산이 지난 15년간 공개되지 않은 채 이 사찰에 있었던 겁니다.

동의보감 도난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경찰은 시간이 지나면 문화재의 소장 가치와 가격이 오르는 것을 노려 이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동의보감의 경우도 보물이었다가 국보로 지정되면서 가격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로 뛰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난 문화재가 박물관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경찰이 한 사설박물관에서 압수한 고서적은 대명률이라 불리는 조선 형법의 근간이 됐던 중국 명나라 법률 서적입니다. 중국에 있는 대명률보다 판본이 더 오래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 확인이 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이 대명률은 사설 박물관 측이 5년 전, 취재진이 만났던 문화재 매매업자로부터 장물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사설 박물관 측은 지난해 문화재당국에 신청해 이 대명률을 보물로 지정받았습니다.

전국의 사찰에서 도난 당했던 보물급 불교 문화재들도 한 사설 박물관에서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최근 3년 사이 경찰이 이 박물관에서 회수한 도난 문화재만 60점 가량 됩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의 황평우 소장은 과거 공개적으로 구입하지 않은 채 박물관이 소장 중인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가 도난이나 도굴된 것들을 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박물관에 유물을 보관하는 것이 도난이나 도굴당한 문화재의 도피처가 되는 현실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문화재 범죄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문화재 은닉 혐의를 받고 있는 사찰과 사설 박물관은 장물인 줄 몰랐다거나 집안 대대로 물려반은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닉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폐지되긴 했지만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판례를 보면 '문화재 은닉'의 개념을 지하 깊은 곳에 매몰하거나 깊은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행위라고 한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가 맞닿은 땅에 축조된 삼년산성의 고분에서는 15년 전, 삼국시대 도기와 고려 청자 등 수백 점이 도굴됐습니다. 산성에 고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도굴이 시작된 겁니다. 이렇게 사라진 문화재는 지난 30년간 2만 8천여 점. 이 가운데 제자리로 돌아온 문화재는 17%에 불과합니다.


현재 문화재 절도범 공소시효는 일반 절도와 같은 10년입니다. 절도 후 공소시효만 지나면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 절도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 절도 공소시효를 대폭 늘려 문화재 밀거래 시장을 틀어막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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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4 17:07:39
    • 수정2017-01-24 17:07:59
    취재K
임진왜란으로 역병이 돌던 조선 중기. 당시 임금이던 선조의 지시로 허준은 민가에 보급하기 위한 의학서, '동의보감'을 씁니다. 동의보감은 외경(지금의 외과)과 내경(내과), 잡병, 침구(침 놓는 법), 탕약 등 5가지 분야에 모두 25권으로 저술됐습니다. 특히 탕액 편의 경우 재료를 설명하는 부분 등을 한글로써, 일반 백성들도 쉽게 보고 사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5권으로 완결된 이후 맨 처음 찍은 동의보감 초간본(초판)은 국보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돼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기에 찍힌 또다른 초간본이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도난당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귀중한 문화 유산은 지금껏 어디에 숨겨져 있었던 걸까요? 3만 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도난 문화재의 실태를 추적했습니다.


경북 안동의 군자마을은 댐 수몰지에 있던 고택들을 옮겨놓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 입구에는 조선시대 요리책인 '수운잡방'의 저자, 김유 선생의 종택도 있습니다. 이 곳에서 지난 2002년 9월, 고서적 140여 권이 한꺼번에 사라졌습니다. 태풍 '루사'가 상륙한 날 밤이었습니다. 당시 이 종택의 관리인은 '덜그럭'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바람 때문이라 생각해 도둑을 의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안동의 여러 고택들이 이 종택과 똑같이 도둑을 맞았습니다.

고서들은 당시 대문 옆 사랑방에 보관돼 있었는데, 범인은 고서의 위치뿐 아니라 집 구조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난당한 시기와 수법 등을 고려할 때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으로 추정됩니다. 도난 당한 고서 중에는 퇴계선생 매화시첩을 비롯해 희귀 서적도 여러 권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전국의 골동품 시장을 뒤졌지만 잃어버린 서적들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안동 군자마을에서 50km쯤 떨어진 경북 예천의 한 종택에는 지난 1986년 보물로 지정된 '대동운부군옥'이라는 문화재가 있습니다. 단군에서부터 조선 명종 이전까지의 역사와 인물, 사회, 문학을 총망라하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입니다. 이 종택에 '대동운부군옥' 목판 677장이 보관돼 있었는데 보물 지정 4년 뒤 100여 장을 도난 당했습니다.

종손이 수소문 끝에 잃어버린 목판 일부의 소재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목판은 한 대학 박물관에 있었습니다. 도난당한 지 석 달 만에 되찾아오긴 했지만 목판은 이미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끝내 찾지 못한 56장은 27년이 지난 지금도 행방이 묘연합니다.


경찰은 지난 2010년 도난 문화재 29점에 대해 사상 첫 국제수배를 내렸는데 여기에 조선시대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목판도 포함됐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문화재들은 어떻게, 또 누구의 손에 들어간 걸까? 취재진은 어렵게 한 문화재 불법 매매업자를 만났습니다.

이 업자는 거래되는 문화재 대부분이 훔친 물건, 이른바 '장물'이라고 털어놨습니다. 문화재 매매 시장 자체가 사실상 도난품으로 이뤄져있고, 정상적인 물건은 없다는 겁니다. 또 장물은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보관하다 매매 시장에 내놓는 수법을 쓴다고 말했습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섭니다. 절도 대상은주로 고택의 친인척이나 주변 사람들을 통해 물색한다고 합니다. 훔친 물건은 소유자나 출처를 알 수 없게 훼손 과정을 거쳐 불법 거래됩니다.


지난해 말, 경찰이 회수한 동의보감 초간본도 장물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책의 출처와 연원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지워진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이 동의보감 초간본은 지난 1999년 장물업자가 절도범에게서 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2년 뒤 한 사찰에 2천만 원을 받고 되판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장물 시장을 떠돌던 귀중한 문화 유산이 지난 15년간 공개되지 않은 채 이 사찰에 있었던 겁니다.

동의보감 도난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경찰은 시간이 지나면 문화재의 소장 가치와 가격이 오르는 것을 노려 이같은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 동의보감의 경우도 보물이었다가 국보로 지정되면서 가격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로 뛰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난 문화재가 박물관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경찰이 한 사설박물관에서 압수한 고서적은 대명률이라 불리는 조선 형법의 근간이 됐던 중국 명나라 법률 서적입니다. 중국에 있는 대명률보다 판본이 더 오래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 확인이 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이 대명률은 사설 박물관 측이 5년 전, 취재진이 만났던 문화재 매매업자로부터 장물을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사설 박물관 측은 지난해 문화재당국에 신청해 이 대명률을 보물로 지정받았습니다.

전국의 사찰에서 도난 당했던 보물급 불교 문화재들도 한 사설 박물관에서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최근 3년 사이 경찰이 이 박물관에서 회수한 도난 문화재만 60점 가량 됩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의 황평우 소장은 과거 공개적으로 구입하지 않은 채 박물관이 소장 중인 문화재 가운데 상당수가 도난이나 도굴된 것들을 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박물관에 유물을 보관하는 것이 도난이나 도굴당한 문화재의 도피처가 되는 현실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처럼 문화재 범죄 수법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지만 처벌은 쉽지 않습니다. 현재 문화재 은닉 혐의를 받고 있는 사찰과 사설 박물관은 장물인 줄 몰랐다거나 집안 대대로 물려반은 유산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은닉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폐지되긴 했지만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판례를 보면 '문화재 은닉'의 개념을 지하 깊은 곳에 매몰하거나 깊은 물 속에 가라앉게 하는 행위라고 한정적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 시대 신라와 백제가 맞닿은 땅에 축조된 삼년산성의 고분에서는 15년 전, 삼국시대 도기와 고려 청자 등 수백 점이 도굴됐습니다. 산성에 고분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도굴이 시작된 겁니다. 이렇게 사라진 문화재는 지난 30년간 2만 8천여 점. 이 가운데 제자리로 돌아온 문화재는 17%에 불과합니다.


현재 문화재 절도범 공소시효는 일반 절도와 같은 10년입니다. 절도 후 공소시효만 지나면 큰 돈을 벌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 절도는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문화재 절도 공소시효를 대폭 늘려 문화재 밀거래 시장을 틀어막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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