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호마키(절분김밥)와 편의점 ‘알바’의 눈물

입력 2017.01.30 (16:01) 수정 2017.02.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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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호마끼…행운을 부른다는 '절분 김밥']

일본의 절기음식 가운데 ‘에호마키’라는 것이 있다. 한국말로 의역하면 ‘절분 김밥'쯤 될 것 같다. 입춘 전날 먹음으로써 복을 불러들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철이 갈리는 날을 가리켜 ‘절분(節分)’이라고 하는데, 절기상 다음 계절이 시작되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전날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입춘의 바로 전날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인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입춘 하루 전날을‘절분절’이라 하여 각별한 날로 삼고 있다.

에호마끼는 절분을 특별하게 여기는 풍습 중 하나이다. '마메마키’라 하는 콩을 뿌려 액운을 쫓고, ‘에호마키’라는 김밥을 먹으며 복 받기를 기원한다.

김밥 속에 갖가지 먹거리를 가득 채워 두툼하게 만들어 먹되,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어야 좋다고 한다. 보통 7가지 복을 상징하는 7가지 식재료를 김밥 속으로 넣어 두툼하게 만드는데, 꼭 7가지가 아니어도 본인 취향에 따라 만들어 먹으면 된다. 유통업체 등은 장어나 게살 따위의 일반적이지 않은 김밥재료를 넣어 비싸게 팔기도 한다.


김밥 한 줄 먹는다고 엄청난 행운이 생길리는 만무하지만, 김밥 한 줄로 '올해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긍정의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잠시나마 현실의 어려움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나름 의미 있는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거기에는 혹독한 겨울을 잘 마무리하고 다가올 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금만 기다리면 밝은 빛이 현실의 어둠을 몰아낼 것이라는 민중의 염원이 세시풍습으로 자리잡았다'고 거창하게 의미 부여를 할 수도 있을 법하다.

[절분 앞두고 '김밥' 판매 전쟁]

에호마키를 먹으면 재수가 좋아진다는 풍습은 일본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생겨난 풍습이었다. 일부 지방에서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풍습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데는 풍습 자체가 갖는 보편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통업체들의 상업적 수완이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우정 등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빌미 삼아, 특정 날짜에 초콜릿이며 사탕이며 막대과자 따위를 팔아치우는데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말이다.

매년 입춘 전날(절분)이 다가오면, 에호마끼가 편의점으로 주요 상품으로 등장한다. 올해도 절분(2월3일)을 앞두고, 편의점에서 에호마키 판매 전쟁이 시작됐다. 무릇 다른 먹거리와 마찬가지로 팔릴 양을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족하지 않게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팔고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결국 부담은 판매 현장의 몫으로 남기 쉽다. 유통기한이 짧은 김밥이라면, 재고 처리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니다 다를까 올해도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트위터 등 SNS에 에호마키 판매 할당을 받아서 부담스럽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다. '수십개의 판매 할당량을 명령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에호마키 할당…편의점의 '블랙바이트'인가?]


이른바 '블랙바이트(피고용 학생을 가혹하게 다루는 아르바이트)' 상담 창구에는 매년 비슷한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에호마키 등의 판매 목표를 강제로 할당해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것을 빌미로 고용주가 월급 중 몇만 엔을 임의로 공제하고 지급했다는 하소연도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자기 돈을 들여 재고를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월급에서 공제하는 것은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피고용자가 할당량을 자발적으로 매입한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고용주 측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르바이트 학생 개개인이 법적 대응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이는 한국과 마찬가지이다.


편의점 본부 차원에서 판매량 강제 할당이 이뤄지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편의점 대기업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책임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프렌차이즈 계약을 맺은 각 점포들이 자발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본사가 할당량을 부과하거나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매입을 강제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무리한 부담을 강요하지 않도록 계약 점포들을 지도하고 있다' 등등, 그럴 듯한 주장만 내놓고 있다.


'블랙바이트 유니온(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지원하는 노동조합)'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편의점 대기업 본부의 조언에 따라 점포 측에서 높은 판매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할당량을 강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가맹점 본사의 마케팅 조언은 점포주 입장에서 의무사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맹점 본사의 마케팅 방법이 합법과 탈법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면, 당장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면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일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맹점 대기업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마케팅 전략이, 저 아래쪽 판매 현장으로 내려가면 편의점 '알바'의 눈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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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호마키(절분김밥)와 편의점 ‘알바’의 눈물
    • 입력 2017-01-30 16:01:14
    • 수정2017-02-01 17: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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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호마끼…행운을 부른다는 '절분 김밥'] 일본의 절기음식 가운데 ‘에호마키’라는 것이 있다. 한국말로 의역하면 ‘절분 김밥'쯤 될 것 같다. 입춘 전날 먹음으로써 복을 불러들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철이 갈리는 날을 가리켜 ‘절분(節分)’이라고 하는데, 절기상 다음 계절이 시작되는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전날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입춘의 바로 전날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인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입춘 하루 전날을‘절분절’이라 하여 각별한 날로 삼고 있다. 에호마끼는 절분을 특별하게 여기는 풍습 중 하나이다. '마메마키’라 하는 콩을 뿌려 액운을 쫓고, ‘에호마키’라는 김밥을 먹으며 복 받기를 기원한다. 김밥 속에 갖가지 먹거리를 가득 채워 두툼하게 만들어 먹되, 자르지 않고 통째로 먹어야 좋다고 한다. 보통 7가지 복을 상징하는 7가지 식재료를 김밥 속으로 넣어 두툼하게 만드는데, 꼭 7가지가 아니어도 본인 취향에 따라 만들어 먹으면 된다. 유통업체 등은 장어나 게살 따위의 일반적이지 않은 김밥재료를 넣어 비싸게 팔기도 한다. 김밥 한 줄 먹는다고 엄청난 행운이 생길리는 만무하지만, 김밥 한 줄로 '올해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긍정의 마음을 가질 수만 있다면, 그래서 잠시나마 현실의 어려움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나름 의미 있는 '통과의례'가 될 것이다. 거기에는 혹독한 겨울을 잘 마무리하고 다가올 봄에는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서민들의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따라서 '조금만 기다리면 밝은 빛이 현실의 어둠을 몰아낼 것이라는 민중의 염원이 세시풍습으로 자리잡았다'고 거창하게 의미 부여를 할 수도 있을 법하다. [절분 앞두고 '김밥' 판매 전쟁] 에호마키를 먹으면 재수가 좋아진다는 풍습은 일본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생겨난 풍습이었다. 일부 지방에서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풍습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데는 풍습 자체가 갖는 보편성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통업체들의 상업적 수완이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과 우정 등 숭고한 정신적 가치를 빌미 삼아, 특정 날짜에 초콜릿이며 사탕이며 막대과자 따위를 팔아치우는데 능력을 발휘한 것처럼 말이다. 매년 입춘 전날(절분)이 다가오면, 에호마끼가 편의점으로 주요 상품으로 등장한다. 올해도 절분(2월3일)을 앞두고, 편의점에서 에호마키 판매 전쟁이 시작됐다. 무릇 다른 먹거리와 마찬가지로 팔릴 양을 정확히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족하지 않게 준비할 수밖에 없는데, 팔고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로 남는다. 결국 부담은 판매 현장의 몫으로 남기 쉽다. 유통기한이 짧은 김밥이라면, 재고 처리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아니다 다를까 올해도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트위터 등 SNS에 에호마키 판매 할당을 받아서 부담스럽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주로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들이다. '수십개의 판매 할당량을 명령받았다'는 내용도 있다. [에호마키 할당…편의점의 '블랙바이트'인가?] 이른바 '블랙바이트(피고용 학생을 가혹하게 다루는 아르바이트)' 상담 창구에는 매년 비슷한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에호마키 등의 판매 목표를 강제로 할당해서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것을 빌미로 고용주가 월급 중 몇만 엔을 임의로 공제하고 지급했다는 하소연도 반복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자기 돈을 들여 재고를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월급에서 공제하는 것은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피고용자가 할당량을 자발적으로 매입한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고용주 측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약자인 아르바이트 학생 개개인이 법적 대응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이는 한국과 마찬가지이다. 편의점 본부 차원에서 판매량 강제 할당이 이뤄지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지만, 편의점 대기업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책임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프렌차이즈 계약을 맺은 각 점포들이 자발적으로 영업하고 있다', '본사가 할당량을 부과하거나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매입을 강제하지 않는다',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무리한 부담을 강요하지 않도록 계약 점포들을 지도하고 있다' 등등, 그럴 듯한 주장만 내놓고 있다. '블랙바이트 유니온(아르바이트 학생들을 지원하는 노동조합)'은 NHK와의 인터뷰를 통해, '편의점 대기업 본부의 조언에 따라 점포 측에서 높은 판매 목표를 세우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결과적으로 아르바이트 학생들에게 할당량을 강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가맹점 본사의 마케팅 조언은 점포주 입장에서 의무사항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가맹점 본사의 마케팅 방법이 합법과 탈법의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면, 당장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한다면 도덕적으로 무책임한 일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맹점 대기업이 기계적으로 만들어낸 마케팅 전략이, 저 아래쪽 판매 현장으로 내려가면 편의점 '알바'의 눈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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