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맞춘 대통령 통화…공짜는 없다

입력 2017.01.30 (18:04) 수정 2017.01.3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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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집무실(Oval Office)에서 통화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백악관 집무실(Oval Office)에서 통화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상간에 이뤄지는 통화는 최고 수준의 외교 행위 가운데 하나다. 서로 만나서 마주보며 진중하게 협의하는 정상회담이 내용의 충실도에서 앞선다면 통화는 속도감에서 빛난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경우에는 정상간 직통전화(Hot Line)을 둔다. 특히 통화는 아무 때, 아무 사이에서나 이뤄질 수 없다는 특성이 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일 경우 전화로 하기는 쉽지 않다.

통화는 타이밍..한중 정상 지난해 타이밍 놓쳐

지난해초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 사이에 조금 더 일찍 전화 통화가 성사됐더라면 한중관계는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까지 하고 나선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은 박 대통령의 통화 희망을 외면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는 고위관리들 사이에서는 '내가 미국의 비난을 무릅쓰고 전승기념행사까지 참석해줬는데 시진핑 주석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박대통령의 배신감 표출이 은밀하게 회자되기도 했다.

한중정상의 우의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우여곡절로 훼손됐다한중정상의 우의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우여곡절로 훼손됐다

그래서 결국 한참 후에 시진핑 주석과 박 대통령 사이에 통화가 이뤄졌지만 이미 배는 떠난 후였다. 믿을 것은 역시 미국이라며 사드 배치로 내부 결정이 끝난 후였다. 결국 한국 정부는 한중정상간 통화가 이뤄진 직후에 사드 배치 수용을 공개 발표했고 이는 중국 정부의 격분으로 이어졌다. 중국은 '어떻게 시진핑 주석 통화 직후에 사드를 발표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통화의 타이밍이 꼬일대로 꼬인 사례라고 할 것이다. 한국 정부의 사드 발표가 한중 정상간 통화가 이뤄지기 전이나 통화 후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있었어도 상황은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진 한미정상간 통화

오늘(30일)은 한미정상간에 통화가 이뤄졌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처음 갖는 한국 정상과의 통화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혹시 있을 지도 모를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미리 예방주사를 놓는 효과가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행정 명령 발동과 이에 따른 거센 반발 등으로 국내 상황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국정 장악력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반대파야 계속 반대하는 것이고 나는 준비된 로드맵대로 갈 길을 가는 것이며 필요한 외교력도 발휘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곰곰히 되짚어 보면 트럼프의 전화 정상외교는 계산된 일정표에 따라 이뤄지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취임후 국경을 맞댄 주변국인 캐나다, 멕시코 정상과 통화를 했다. 그 다음에는 독일, 프랑스 정상 등 가장 중요한 우방국의 지도자와 통화를 했고 이어 호주, 뉴질랜드 정상과 대화를 이어갔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중요하지만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주요 정보를 상시적으로 교환하는 영어 사용 5개 우방국(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속하기 때문에 언제나 대우가 확실하다. 한국과 통화한 날에는 중동의 핵심국가인 사우디, UAE 정상과 먼저 통화를 하고 맨 마지막 순서로 한국 정상과 통화를 했다.

당선자 시절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당선자 시절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는 트럼프 대통령

이들 나라들과는 별도로 트럼프가 특별 대우를 하는 나라들도 있다. 영국, 일본, 이스라엘이다. 영국 메이 총리는 트럼프 백악관을 방문하는 첫번째 손님으로, 정상회담과 기자회견까지 하고 다녀갔다. 당일치기 방문인 것을 보면 양국관계와 두 정상간 우의를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급하게 마련된 일정임에 분명하다. 일본은 당선자 시절 오바마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핵심 실세 이방카를 통해 총리가 트럼프를 만났고 취임 후 통화에 이어 며칠후 2월초에는 미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돼 있다. 이스라엘과는 별도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로 친밀감을 과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통화에는 목적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와의 통화는 빨리 했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통화에 분명한 목적을 두고 있음이 미 백악관 발표에도 묻어 나온다. 캐나다, 멕시코와는 나프타(NAFTA)를 폐지하고 개별 협정으로 가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멕시코에는 물론 장벽 건설비를 책임지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프랑스, 독일 정상과의 통화에서는 나토(NATO)가 방위분담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를 전달했다. 중동의 사우디와 UAE에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라는 요구를 전달해서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받아냈다. 트럼프는 사업가 출신 답게 정상간의 첫 통화에서부터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 모두 목적이 뚜렸한 통화들이다. 공짜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도 곧 청구서 날아들듯

미국 백악관 발표만 보면 한국 정부에 어떤 구체적인 요구를 전했다는 내용은 없다. 한미동맹 강화, 철석같은 대한방위공약 준수, 핵우산 등 대북 억지 이행, 합동군사능력 강화 등이 열거돼 있다. 다만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방한을 논의하고 상호 안보와 번영을 약속했다'고 돼있는 데 이 대목에 트럼프의 요구사항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한국측 발표에는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고 돼 있어서 관심사인 '사드 배치 찬성' 입장이 전달됐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도 발표만 안됐을뿐 어떤 수준으로든 거론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청구서는 머지않아 윤곽이 드러나게 돼있다. 대통령제 하에서 총리를 지내 정상외교와는 거리를 둬왔다고 할 수 있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사업가 대통령 트럼프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했는지는 며칠 후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방한하면 좀더 확실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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