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우리 공직자들은 왜 “노(No)”라고 말 못하는가?

입력 2017.02.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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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신 가운데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거부해 자리에서 쫓겨난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의 기사가 유독 눈에 띈다.

예이츠 장관 대행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대통령의 명령에 단호하게 “노(No)”라고 외쳤다.

“행정명령을 변호하는 게 정의를 추구하는 법무부의 책임과 일치한다는 확신도,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예이츠를 전격 해임했다.

직(職)을 건 예이츠의 ‘항명’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권력자보다는 법질서를 존중하는,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그의 성향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권에 충성하는 조직원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공직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반기를 든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반기를 든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

예이츠의 행동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전·현직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잇단 수난을 겪고 있다.

수천 명의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을 추려내 정부 지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작업에 숨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보건복지부 고위공무원들도 특검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윗선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영혼 없는 공무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는 공무원들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는 공무원들

일부에서는 ‘공무원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추진하는 공무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난하고자 하는 대상은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공복(公僕)들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을 던져 버리고 그 대가로 출세를 갈망하는 일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권력자 주변에서 그들의 권력 남용 도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소신 있는 정책 입안이나 집행보다는 정무직에 대한 충성을 우선시한다.

이들은 더 나아가 부하 직원에게도 영혼을 버리라고 강요한다.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시키는 대로만 해라.”

문체부 고위공무원의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되어 있다.

공무원이 봉사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직장 상사도 아닌 바로 국민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실무자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정책은 결국은 추진되지 못했다.

부당함을 넘어 불법적인 지시에 대해서도 왜 “아니요(No)”를 외치지 못하는 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 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윗사람의 명령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히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무원에겐 당연히 영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 용기 있게 “아니요(No)”라고 외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

그리고 “아니요(No)”를 외친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는 든든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자.

상부의 지시가 불법적이라고 판단될지라도 이행을 거부하는 공무원에게는 당장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국가·지방공무원법을 개정해 직무상 위법한 명령일 경우 복종을 거부하도록 의무화하고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명문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공무원들도 영혼을 지키려고 노력하자.

국민을 향한, 맑고 깨끗한 영혼 말이다.

이런 공무원들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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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5 09:00:27
    뉴스플러스
최근 외신 가운데 트럼프 미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거부해 자리에서 쫓겨난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의 기사가 유독 눈에 띈다.

예이츠 장관 대행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대통령의 명령에 단호하게 “노(No)”라고 외쳤다.

“행정명령을 변호하는 게 정의를 추구하는 법무부의 책임과 일치한다는 확신도, 행정명령이 합법적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예이츠를 전격 해임했다.

직(職)을 건 예이츠의 ‘항명’에 대해 워싱턴포스트(WP)는 “권력자보다는 법질서를 존중하는, 그리고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그의 성향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권에 충성하는 조직원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실천하는 공직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反) 이민 행정명령’에 반기를 든 예이츠 전 법무장관 대행
예이츠의 행동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전·현직 공무원들이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잇단 수난을 겪고 있다.

수천 명의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을 추려내 정부 지원을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작업에 숨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또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보건복지부 고위공무원들도 특검 조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윗선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영혼 없는 공무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로 출근하는 공무원들
일부에서는 ‘공무원 동정론’을 펴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도 바뀌는 것이 당연한데 이를 추진하는 공무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비난하고자 하는 대상은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공복(公僕)들이 아니다.

자신의 영혼을 던져 버리고 그 대가로 출세를 갈망하는 일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권력자 주변에서 그들의 권력 남용 도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소신 있는 정책 입안이나 집행보다는 정무직에 대한 충성을 우선시한다.

이들은 더 나아가 부하 직원에게도 영혼을 버리라고 강요한다.

“생각하지 마라. 판단은 내가 할 테니 너희들은 시키는 대로만 해라.”

문체부 고위공무원의 말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간부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7조에는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라고 되어 있다.

공무원이 봉사해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직장 상사도 아닌 바로 국민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과정에서도 나타났듯이 실무자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정책은 결국은 추진되지 못했다.

부당함을 넘어 불법적인 지시에 대해서도 왜 “아니요(No)”를 외치지 못하는 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 뿐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윗사람의 명령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생에 해를 끼치는 일이라면, 마땅히 의연하게 굽히지 말고 확연히 자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무원에겐 당연히 영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서 용기 있게 “아니요(No)”라고 외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자.

그리고 “아니요(No)”를 외친 사람을 보호해줄 수 있는 든든한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하자.

상부의 지시가 불법적이라고 판단될지라도 이행을 거부하는 공무원에게는 당장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국가·지방공무원법을 개정해 직무상 위법한 명령일 경우 복종을 거부하도록 의무화하고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명문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공무원들도 영혼을 지키려고 노력하자.

국민을 향한, 맑고 깨끗한 영혼 말이다.

이런 공무원들이 많아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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