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게임, ‘투견’

입력 2017.02.08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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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2마리를 링 위에 올려 싸우게 한 뒤 돈을 거는 수법으로 도박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의 목숨을 걸고 판돈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 끊임 없는 동물 학대 논란에도 개를 싸움에 붙여 돈내기를 하는 '투견 도박'은 지금도 계속해서 성행중이다.

KBS '추적 60분'이 잔혹한 투견 도박 실태와 동물 학대 논란을 취재했다.



산 속의 잔혹한 혈투, 투견

매주 일요일 투견이 벌어진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진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야산을 찾았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산 중턱에 마련된 원형 링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투견 업자들이 개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서로의 목덜미를 가차 없이 물어뜯기 시작하는 개들. 싸움을 벌인 두 마리의 개는 살점이 뜯겨 나가 피가 뚝뚝 떨어지지만 판돈을 건 주인들 때문에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취재진은 또 다른 사육장의 주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주인은 취재진에게 왕년에 잘 나가던 '투견판의 에이스'라며 한 마리의 개를 소개했다. 개는 어딘가 모르게 힘 없이 바둥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은 그 개를 흥분해서 날뛰는 개에게 던져버렸다. 알고 보니 싸움에서 지거나 늙은 개는 투견의 공격성을 부추기는 '미끼견'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마저도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하는 개는 도살장으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 투견업자는 "싸움 못하면 (개를) 안 기른다. 그냥 없앤다. 개소주를 내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견판은 '패배는 곧 죽음으로, 죽음은 곧 먹힘으로 연결된다'는 잔혹한 살생의 현장이다.

투견 단속 적발되고도 태연, 왜?

취재진은 또 한 건의 투견 도박이 열린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경찰과 공조해 현장을 급습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박 사실을 부인했다. 반면, 투견 주최자는 경찰의 심문에 "그냥 얘기해도 괜찮아 어차피 벌금 맞는 건데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가 단속에 적발되고도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투견은 명백한 동물 학대지만, 동물학대죄의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도박죄 역시 상습도박이 아닌 이상 1천만 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이 낮은 수준에 그치는 것도 문제지만, 투견 도박을 적발하는 단속 기준이 허술한 것 역시 문제다. 투견 현장을 적발했다 하더라도 투견에 의한 동물 학대 혐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야만 처벌이 가능하고, 도박 혐의 역시 돈을 주고받은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적용이 가능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투견, 개의 본성인가 인간의 탐욕인가

투견 업자들은 "우사인 볼트가 트랙만 보면 뛰듯이 개도 링만 보면 싸우고 싶을 거다"라며 "(정면승부를 좋아하는) 도사견이나 핏불테리어 같은 종은 본능적으로 싸우려는 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를 링 안에 넣어 죽을 때까지 싸움을 붙이거나, 줄에 매달아 모진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 개를 사랑하는 자신들만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반려견 행동 전문가에게 그동안 촬영한 투견 영상을 보여주고, 링 위에 오른 개들의 행동 신호를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는 투견 업자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강형욱 반려견 행동 전문가는 "(개들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저 상대와 싸우기 싫다'라는 신호들이 무시된 채 할 수 없이 링 안에 놓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타고난 싸움개'는 없다

전문가의 의견대로 '싸움'이 타고난 본능이 아니듯 '투견'이 그들의 운명이 아니라면, 투견들 역시 다른 수많은 반려견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을까.


취재진은 두 마리의 투견 '광명이'와 '화랑이'를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긴급 구조했다. 견주가 직접 떼어놓을 때까지 피투성이 상태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광명이와 경미한 부상을 입은 화랑이는 검사 결과 광명이는 장기입원 치료를, 화랑이는 간단한 치료 후 당분간 훈련소에서 행동 교정 훈련을 받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한번 물은 상대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투견판의 챔피언' 화랑이, 하지만 맹렬했던 화랑이도 훈련소에 입소해 각종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큰 변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취재진은 돌발 상황에 맞닥뜨린다. 화랑이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이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걸어 (화랑이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라 현장에서 발견된 투견의 경우, 임시 격리는 가능하지만 동물 학대만으로는 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다. 투견 화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2월 8일(수) 밤 11시 10분 KBS 2TV에서 방송되는 '추적 60분-죽음을 향한 게임, 투견'에서는 불법 투견 도박 현장을 집중 추적하고, 투견 도박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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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 게임, ‘투견’
    • 입력 2017-02-08 08:08:00
    방송·연예
개 2마리를 링 위에 올려 싸우게 한 뒤 돈을 거는 수법으로 도박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의 목숨을 걸고 판돈을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 끊임 없는 동물 학대 논란에도 개를 싸움에 붙여 돈내기를 하는 '투견 도박'은 지금도 계속해서 성행중이다.

KBS '추적 60분'이 잔혹한 투견 도박 실태와 동물 학대 논란을 취재했다.



산 속의 잔혹한 혈투, 투견

매주 일요일 투견이 벌어진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진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야산을 찾았다. 실제로 그곳에서는 오후 2시가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더니 산 중턱에 마련된 원형 링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투견 업자들이 개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서로의 목덜미를 가차 없이 물어뜯기 시작하는 개들. 싸움을 벌인 두 마리의 개는 살점이 뜯겨 나가 피가 뚝뚝 떨어지지만 판돈을 건 주인들 때문에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취재진은 또 다른 사육장의 주인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된다. 주인은 취재진에게 왕년에 잘 나가던 '투견판의 에이스'라며 한 마리의 개를 소개했다. 개는 어딘가 모르게 힘 없이 바둥거리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은 그 개를 흥분해서 날뛰는 개에게 던져버렸다. 알고 보니 싸움에서 지거나 늙은 개는 투견의 공격성을 부추기는 '미끼견'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마저도 가치가 없어졌다고 판단하는 개는 도살장으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한 투견업자는 "싸움 못하면 (개를) 안 기른다. 그냥 없앤다. 개소주를 내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투견판은 '패배는 곧 죽음으로, 죽음은 곧 먹힘으로 연결된다'는 잔혹한 살생의 현장이다.

투견 단속 적발되고도 태연, 왜?

취재진은 또 한 건의 투견 도박이 열린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경찰과 공조해 현장을 급습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도박 사실을 부인했다. 반면, 투견 주최자는 경찰의 심문에 "그냥 얘기해도 괜찮아 어차피 벌금 맞는 건데 뭐"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가 단속에 적발되고도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투견은 명백한 동물 학대지만, 동물학대죄의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도박죄 역시 상습도박이 아닌 이상 1천만 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이 낮은 수준에 그치는 것도 문제지만, 투견 도박을 적발하는 단속 기준이 허술한 것 역시 문제다. 투견 현장을 적발했다 하더라도 투견에 의한 동물 학대 혐의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야만 처벌이 가능하고, 도박 혐의 역시 돈을 주고받은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만 적용이 가능해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투견, 개의 본성인가 인간의 탐욕인가

투견 업자들은 "우사인 볼트가 트랙만 보면 뛰듯이 개도 링만 보면 싸우고 싶을 거다"라며 "(정면승부를 좋아하는) 도사견이나 핏불테리어 같은 종은 본능적으로 싸우려는 습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를 링 안에 넣어 죽을 때까지 싸움을 붙이거나, 줄에 매달아 모진 훈련을 반복하는 것이 개를 사랑하는 자신들만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과연 그럴까.


반려견 행동 전문가에게 그동안 촬영한 투견 영상을 보여주고, 링 위에 오른 개들의 행동 신호를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문가는 투견 업자의 주장과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강형욱 반려견 행동 전문가는 "(개들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저 상대와 싸우기 싫다'라는 신호들이 무시된 채 할 수 없이 링 안에 놓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타고난 싸움개'는 없다

전문가의 의견대로 '싸움'이 타고난 본능이 아니듯 '투견'이 그들의 운명이 아니라면, 투견들 역시 다른 수많은 반려견들처럼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지낼 수 있을까.


취재진은 두 마리의 투견 '광명이'와 '화랑이'를 동물보호단체와 함께 긴급 구조했다. 견주가 직접 떼어놓을 때까지 피투성이 상태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광명이와 경미한 부상을 입은 화랑이는 검사 결과 광명이는 장기입원 치료를, 화랑이는 간단한 치료 후 당분간 훈련소에서 행동 교정 훈련을 받도록 조치가 내려졌다.

한번 물은 상대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는 '투견판의 챔피언' 화랑이, 하지만 맹렬했던 화랑이도 훈련소에 입소해 각종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놀이를 하면서 큰 변화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던 중 취재진은 돌발 상황에 맞닥뜨린다. 화랑이의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이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걸어 (화랑이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에 따라 현장에서 발견된 투견의 경우, 임시 격리는 가능하지만 동물 학대만으로는 소유권을 박탈할 수 없다. 투견 화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2월 8일(수) 밤 11시 10분 KBS 2TV에서 방송되는 '추적 60분-죽음을 향한 게임, 투견'에서는 불법 투견 도박 현장을 집중 추적하고, 투견 도박을 근절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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