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십리’ ‘장승배기’ ‘압구정’ 공통점은?

입력 2017.02.0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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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하왕십리·행당동 일대를 일컫는 왕십리, 서울 강서구 염창동 264번지 일대 장승배기, 서울 강남구 압구정까지.

이들 마을에는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지명을 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로 행정적 편의를 위해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명은 역사적 배경이나 지역 설화, 전설, 민담 등을 모티브로 삼는다. 지형지물이나 특별한 기상현상, 자연현상을 토대로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다.

무학대사가 왕십리를 떠난 이유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왕십리다.

조선을 세운 뒤 태조 이성계는 새 도읍지를 삼기 위해 무학대사에게 좋은 자리를 찾아내라 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학대사가 조선 팔도를 다니다 왕십리에 와서 풍수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밭에서 소로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소를 보고 "미련한 소야, 십 리를 남겨 놓고 여기서 자리를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성을 냈다.

그 말을 들은 무학이 자기에게 한 말인 것을 알고 농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십 리를 더 가면 좋은 자리가 있다는 농부의 말에 무학이 그 길로 십 리를 더 갔더니 지금의 종로 한 복판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 후부터 농부가 밭을 갈던 곳을 왕십리라고 부르게 됐다.

사진:gettyimagesbank사진:gettyimagesbank

장승배기 설화도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노량진동에 걸친 이곳은 장승이 서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

과거 이 일대는 인가가 없고 울창한 나무숲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잊지 못한 정조가 화산(수원)에 있는 묘소 현륭원(顯隆園)으로 가려면 이곳을 항상 지나야 했다.

평소처럼 현륭원에 전배하러 가던 정조는 이 지점에서 쉬며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장승을 세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하고 명했다.

두 개의 장승이 세워진 뒤 이곳에는 장승배기란 지명이 붙게 됐다.

압구정과 한명회의 말로

그런가하면 땅의 생김새와 땅 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이르는 지형지물과 관련된 지명도 있다.

압구정은 조선 세조 때 한명회의 호 '압구정'을 따서 붙인 정자 이름이다. 여기서 압구정은 친할 압(狎)자와 갈매기 구(鷗)자를 쓰는데, 벼슬을 버리고 강가에 살며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1994년 KBS2TV에서 방영된 대하드라마 ‘한명회’의 한 장면1994년 KBS2TV에서 방영된 대하드라마 ‘한명회’의 한 장면

정자 주인인 한명회는 세조(수양대군)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운 일등공신이다. 볼품 없고 왜소한 외모에도 뛰어난 지략으로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고 건방져졌다.

한명회는 한강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매일같이 호화로운 잔치를 벌였다.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보따리로 배를 불리기도 했다. 결국 한명회는 임금의 눈 밖에 났고 다른 신하들로부터도 따돌림받게 됐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판교는 영국 케임브리지(Cambridge)와 마찬가지로 다리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사진:gettyimagesbank사진:gettyimagesbank

판교라는 지명은 운중천 냇물을 건너기 위해 만든 널빤지 다리에서 유래했다. 널다리, 너더리, 너다리 등 순우리말로 부르다가 한자어로 바꾼 것이 판교다.

팔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편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황해·평안·함경 등을 일컫는 팔도(八道)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도 흥미롭다.

팔도는 조선 초기 태종 13년 1413년에 행정구역을 여덟 군데로 나누면서 나온 말인데, 이런 행정구역이 만들어진 결정적 계기는 고려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에서 지방 유력 호족들은 지방제도의 한 형태로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계수관(界首官)'에 살았다. 이 계수관이 훗날 행정구역을 팔도로 나누는 토대가 됐다.

팔도는 주요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함경도는 함흥과 경성,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방면의 도라는 뜻으로 각 지방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 외에 경기도는 경성과 기내의 지방이란 뜻으로 경성은 서울, 기내는 서울 부근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근한 동네 이름에 얽힌 이야기. KBS해피FM '김난도의 트렌드 플러스'(2월 8일 방송)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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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십리’ ‘장승배기’ ‘압구정’ 공통점은?
    • 입력 2017-02-08 16:46:15
    방송·연예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행당동 일대를 일컫는 왕십리, 서울 강서구 염창동 264번지 일대 장승배기, 서울 강남구 압구정까지.

이들 마을에는 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지명을 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로 행정적 편의를 위해 짓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명은 역사적 배경이나 지역 설화, 전설, 민담 등을 모티브로 삼는다. 지형지물이나 특별한 기상현상, 자연현상을 토대로 이름을 짓는 경우도 있다.

무학대사가 왕십리를 떠난 이유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왕십리다.

조선을 세운 뒤 태조 이성계는 새 도읍지를 삼기 위해 무학대사에게 좋은 자리를 찾아내라 명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학대사가 조선 팔도를 다니다 왕십리에 와서 풍수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밭에서 소로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소를 보고 "미련한 소야, 십 리를 남겨 놓고 여기서 자리를 잡으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성을 냈다.

그 말을 들은 무학이 자기에게 한 말인 것을 알고 농부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십 리를 더 가면 좋은 자리가 있다는 농부의 말에 무학이 그 길로 십 리를 더 갔더니 지금의 종로 한 복판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그 후부터 농부가 밭을 갈던 곳을 왕십리라고 부르게 됐다.

사진:gettyimagesbank
장승배기 설화도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노량진동에 걸친 이곳은 장승이 서있던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다.

과거 이 일대는 인가가 없고 울창한 나무숲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잊지 못한 정조가 화산(수원)에 있는 묘소 현륭원(顯隆園)으로 가려면 이곳을 항상 지나야 했다.

평소처럼 현륭원에 전배하러 가던 정조는 이 지점에서 쉬며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하나는 장사 모양을 한 남자 장승을 세워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또 하나는 여자 장승을 세워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으로 하여라"하고 명했다.

두 개의 장승이 세워진 뒤 이곳에는 장승배기란 지명이 붙게 됐다.

압구정과 한명회의 말로

그런가하면 땅의 생김새와 땅 위에 있는 모든 물체를 이르는 지형지물과 관련된 지명도 있다.

압구정은 조선 세조 때 한명회의 호 '압구정'을 따서 붙인 정자 이름이다. 여기서 압구정은 친할 압(狎)자와 갈매기 구(鷗)자를 쓰는데, 벼슬을 버리고 강가에 살며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1994년 KBS2TV에서 방영된 대하드라마 ‘한명회’의 한 장면
정자 주인인 한명회는 세조(수양대군)가 왕위에 오르도록 도운 일등공신이다. 볼품 없고 왜소한 외모에도 뛰어난 지략으로 영의정까지 지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고 건방져졌다.

한명회는 한강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매일같이 호화로운 잔치를 벌였다.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선물 보따리로 배를 불리기도 했다. 결국 한명회는 임금의 눈 밖에 났고 다른 신하들로부터도 따돌림받게 됐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판교는 영국 케임브리지(Cambridge)와 마찬가지로 다리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사진:gettyimagesbank
판교라는 지명은 운중천 냇물을 건너기 위해 만든 널빤지 다리에서 유래했다. 널다리, 너더리, 너다리 등 순우리말로 부르다가 한자어로 바꾼 것이 판교다.

팔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한편 경기·충청·전라·경상·강원·황해·평안·함경 등을 일컫는 팔도(八道)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도 흥미롭다.

팔도는 조선 초기 태종 13년 1413년에 행정구역을 여덟 군데로 나누면서 나온 말인데, 이런 행정구역이 만들어진 결정적 계기는 고려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고려에서 지방 유력 호족들은 지방제도의 한 형태로 행정구역을 의미하는 '계수관(界首官)'에 살았다. 이 계수관이 훗날 행정구역을 팔도로 나누는 토대가 됐다.

팔도는 주요 지역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함경도는 함흥과 경성, 평안도는 평양과 안주, 황해도는 황주와 해주, 강원도는 강릉과 원주,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 방면의 도라는 뜻으로 각 지방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이 외에 경기도는 경성과 기내의 지방이란 뜻으로 경성은 서울, 기내는 서울 부근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근한 동네 이름에 얽힌 이야기. KBS해피FM '김난도의 트렌드 플러스'(2월 8일 방송)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프로덕션2] 박성희 kbs.ps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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