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어린이를 구하고 별이 된 노인

입력 2017.02.0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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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지난해) 일본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3,904명이다. 67년만에 4천 명 아래로 떨어졌다. 10만명 당 사망자 수는 3.07명으로, 역대 최저이다.

그래도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희생되는 셈이다.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의 사망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다.

사람을 향해 차량이 돌진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승용차와 소형 트럭, 대형 트럭에 이르기까지 차종도 가리지 않고, 주택가, 통학로, 횡단보도, 병원 경내에 이르기까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있다. 차량이 달리는 곳은 어디든 위험하다.

사고 대부분이 운전자의 중과실에 의해 발생했다. 고령자의 착오 운전도 있고, 음주 운전도 있다. 항상 희생자는 선량한 이웃이다. 사고 경위를 살펴보면 일본이 교통문화 선진국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학길에 음전운전 차량 돌진...70명 노인 사망

음주 운전 트럭에 의해 70대 남성이 사망한 사고 현장음주 운전 트럭에 의해 70대 남성이 사망한 사고 현장

1월(지난달) 30일 시마네 현에서 70대 남성이 트럭에 치여 숨졌다. 노인 사고가 많은 일본인지라, 여느 교통사고처럼 보였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차량 운전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전형적인 음주 운전 사고였다.

경찰 수사와 언론 취재를 통해,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희생자는 등교 중인 어린이들의 안전을 챙기다 변을 당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 수사와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73살 미하라 씨. 사고 당일 아침 7시쯤, 시마네 현 마스다 시의 국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등교하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돕고 있었다. 트럭 한대가 갑자기 어린이들의 행렬로 돌진했다.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지만, 사망자는 미하라 씨 한 명 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한 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다른 학생들은 무사했다. 미하라 씨가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상황이다.

등굣길 어린들의 교통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미하라 씨의 일상이자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초등학교까지 약 6km의 길을 어린이들과 함께 걸었다. 어린이들도 '아저씨', '아저씨' 하며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4년 전 교통사고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 딸을 잃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곳 인근이었다.

故 미하라 씨가 34년 전에 교통사고로 잃은 둘째 딸故 미하라 씨가 34년 전에 교통사고로 잃은 둘째 딸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뒤 10년 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초등학생들이 안전하게 찻길을 건너 학교까지 도착하는 것을 지켜본 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말년의 삶은 다른 사람과 지역 사회를 위한 여정으로 가득했다. 마을의 전통예능 보존단체의 회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열성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후계자 육성의 즐거움을 말하며 크게 웃던 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착하고, 정말 크나큰 존재였다'는 입을 모았다.

故 미하라 씨의 영결식故 미하라 씨의 영결식

지난 2월 2일 자택 인근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그와 함께 등굣길을 걸었던 어린이들, 그리고 교사와 주민 등 수백 명이 찾아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조사가 이어지고, 피리소리와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고인의 삶을 돌아보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사고 현장에는 미하라 씨의 삶을 기르고 죽음을 애도하는 헌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안전을 오랫 동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가 국화꽃과 함께 놓여졌다. 다시는 이런 어이 없는 비극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그리고, 지난 2월 8일 사이타마 현에서 신호를 무시한 트럭이 인도로 돌진해 1명이 숨졌다. 아들과 함께 길을 가던 30대 여성이 숨졌다. 가족은 깊은 슬픔 속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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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어린이를 구하고 별이 된 노인
    • 입력 2017-02-09 16:05:49
    특파원 리포트
2016년(지난해) 일본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3,904명이다. 67년만에 4천 명 아래로 떨어졌다. 10만명 당 사망자 수는 3.07명으로, 역대 최저이다.

그래도 하루 평균 10명 이상이 희생되는 셈이다.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보행자와 자전거 운전자의 사망 비중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다.

사람을 향해 차량이 돌진하는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승용차와 소형 트럭, 대형 트럭에 이르기까지 차종도 가리지 않고, 주택가, 통학로, 횡단보도, 병원 경내에 이르기까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있다. 차량이 달리는 곳은 어디든 위험하다.

사고 대부분이 운전자의 중과실에 의해 발생했다. 고령자의 착오 운전도 있고, 음주 운전도 있다. 항상 희생자는 선량한 이웃이다. 사고 경위를 살펴보면 일본이 교통문화 선진국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통학길에 음전운전 차량 돌진...70명 노인 사망

음주 운전 트럭에 의해 70대 남성이 사망한 사고 현장
1월(지난달) 30일 시마네 현에서 70대 남성이 트럭에 치여 숨졌다. 노인 사고가 많은 일본인지라, 여느 교통사고처럼 보였다. 경찰 조사 결과, 가해 차량 운전자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전형적인 음주 운전 사고였다.

경찰 수사와 언론 취재를 통해,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희생자는 등교 중인 어린이들의 안전을 챙기다 변을 당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경찰 수사와 마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재구성한 사건은 다음과 같다.


73살 미하라 씨. 사고 당일 아침 7시쯤, 시마네 현 마스다 시의 국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등교하는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너도록 돕고 있었다. 트럭 한대가 갑자기 어린이들의 행렬로 돌진했다.

끔찍한 참사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지만, 사망자는 미하라 씨 한 명 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한 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다른 학생들은 무사했다. 미하라 씨가 어린이들을 살리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상황이다.

등굣길 어린들의 교통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미하라 씨의 일상이자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초등학교까지 약 6km의 길을 어린이들과 함께 걸었다. 어린이들도 '아저씨', '아저씨' 하며 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4년 전 교통사고로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 딸을 잃었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곳 인근이었다.

故 미하라 씨가 34년 전에 교통사고로 잃은 둘째 딸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뒤 10년 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매일 아침 초등학생들이 안전하게 찻길을 건너 학교까지 도착하는 것을 지켜본 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말년의 삶은 다른 사람과 지역 사회를 위한 여정으로 가득했다. 마을의 전통예능 보존단체의 회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열성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후계자 육성의 즐거움을 말하며 크게 웃던 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했다. '착하고, 정말 크나큰 존재였다'는 입을 모았다.

故 미하라 씨의 영결식
지난 2월 2일 자택 인근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그와 함께 등굣길을 걸었던 어린이들, 그리고 교사와 주민 등 수백 명이 찾아와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조사가 이어지고, 피리소리와 북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참석자들은 고인의 삶을 돌아보고 이별을 아쉬워했다.

사고 현장에는 미하라 씨의 삶을 기르고 죽음을 애도하는 헌화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의 안전을 오랫 동안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가 국화꽃과 함께 놓여졌다. 다시는 이런 어이 없는 비극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그리고, 지난 2월 8일 사이타마 현에서 신호를 무시한 트럭이 인도로 돌진해 1명이 숨졌다. 아들과 함께 길을 가던 30대 여성이 숨졌다. 가족은 깊은 슬픔 속에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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