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브리핑 예고와 번복…왜?

입력 2017.02.09 (17:25) 수정 2017.02.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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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8일) 오후 1시 반쯤 점심식사를 마치고 국회 기자실로 복귀하던 길,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출입 취재기자들에게 단체로 보낸 민주당 공보실의 알림 문자엔 '오후 2시10분, 윤호중 정책위의장 브리핑'이라고 찍혀있었습니다.

순간 긴장했습니다. 예정에 없던 브리핑이었으니까요. "내가 뭘 놓친 거지?"

보통 브리핑이라 하면, 대변인이나 원내대변인이 당 또는 원내에 돌아가는 상황, 현안 논평 등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걸 말합니다.

그런데 정책위의장이 직접 브리핑을 한다..당내 주요 정책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일테니, '내가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었나?' 긴장할 수밖에요.

내용을 재빨리 파악하던 중, 10분도 안돼 '브리핑이 연기됐다'는 문자가 날아들더니..다시 30여 분 뒤 '브리핑이 취소되었다'는 문자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1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날 당초 하려던 브리핑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획기적인' 행사를 발표하려 했습니다.
민주당과 주한 미 대사관이 함께 '정책 포럼'을 준비했다는 내용이었죠.
경제, 외교, 안보 등을 주제로 정기적으로 토론을 벌인다는 거였습니다.

"더는 '반미 정당'이라고 부르지 마라"

그런데, 왜 획기적이냐고요?

특정 정당, 그것도 (국회 제1당이긴 하지만) 야당이 미국 대사관과 포럼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특히 이번 포럼은 일각에서 민주당에 '반미(反美)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걸 막고, 외교·안보에서 유능한 정당의 모습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논의돼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중도로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죠.

민주당은 그간 사드 문제 등으로 외교·안보가 이슈로 떠오를 때 당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의 행보로 비판도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정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행사는 윤호중 의장이 취임한 지난 해 9월부터 꽤 오래 공을 들여 추진해왔다고 합니다.

논의 끝에 분기별로 1차례식 행사를 열고, 첫 행사는 오는 28일 국회에서 '4차 산업 육성 방안'을 주제로 개최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 시간, 장소, 발제자까지 정해놨다고도 하네요.

마침 이날 오전, 이 소식을 미리 접한 연합뉴스에서 오전에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자들의 문의가 잇따랐을테고, '친절하게' 한번에 설명해주기 위해 정책위의장의 브리핑이 마련된 거였죠.

문제는, 논의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미국 대사관 측에 갑작스런 사정이 생긴 건지, 갑자기 행사 개최 자체에 제동이 걸린 겁니다.

주한 美대사관, "'한미 정책 포럼'이란 행사 없어"

정책위의장 브리핑 일정이 공지됐다가 취소되는 사이, 포럼 공동주최인 주한 미 대사관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대사관의 <해명 이메일> 내용은 이랬습니다.

“한미정책포럼” 없어

오늘 (2월 8일)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한미정책포럼”이라는 행사는 없으며,

주한 미국대사관은 대한민국 국회와 정기적 경제 정책 포럼을 가질 계획도 없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대한민국의 상호 경제 이해 관계자들과 자주 상의를 합니다.

U.S. Embassy: There is no “Korea-U.S. Policy Forum”
Contrary to various news reports published on February 8, there is no so-called “Korea-U.S. Policy Forum,” nor is there any plan to establish a regularly held U.S.-ROK economic policy forum with the National Assembly.
The U.S. Embassy regularly consults with all ROK stakeholders on issues of

mutual economic interest.

한마디로 미 대사관 측은 "그런 행사는 없고, 국회와 정기적 경제 정책 포럼을 가질 계획도 없다"고 일축한 겁니다.

'사정상 연기됐다, 취소됐다'도 아니고 '그런 행사 자체가 없다'니, 협의 파트너였던 민주당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요.

대사관 측의 공식 입장은 '전혀 아니다'였지만, 민주당 측에 전해온 비공식적 입장은 이랬습니다. "아직 확정된 일정이 아닌 만큼, 행사를 대선 이후로 무기한 연기하자"고 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태도가 180도 달라진 데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요?

한참 말을 꺼리던 민주당 관계자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주장합니다.

"새누리당 등에서 행사 내용을 미리 알고 대사관 측에 항의한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한미'라고 하니까..'민주당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냐, 민주당과 이런 포럼을 하는 저의가 뭐냐' 이런 항의를 받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탄핵 국면 등 민감한 시기에 미국 대사관이 특정 정당과 보조를 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민주당 "재추진…정치적 시각으로 해석 말라"

결국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9일(오늘)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미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와 정책교류를 준비해왔는데, 언론 보도가 문제가 돼 미 대사관 측에서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미국과 정책포럼을 하는 것을 시샘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일부 정치 세력을 겨냥했고요.

이어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압력을 넣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등 정당의 정당한 교류를 훼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미 대사관과 협의해 조속한 시일에 행사를 재추진해가겠다"며 행사가 완전히 무산된 게 아니라고 강조했는데요.

특정 정치 세력의 과잉 간섭이든 아니든 간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 끈 고쳐맨' 격이 된 민주당의 '획기적인' 정책 포럼은 아무래도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는 재추진되긴 어려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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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당 정책위의장의 브리핑 예고와 번복…왜?
    • 입력 2017-02-09 17:25:59
    • 수정2017-02-10 15:45:12
    정치
어제(8일) 오후 1시 반쯤 점심식사를 마치고 국회 기자실로 복귀하던 길,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출입 취재기자들에게 단체로 보낸 민주당 공보실의 알림 문자엔 '오후 2시10분, 윤호중 정책위의장 브리핑'이라고 찍혀있었습니다.

순간 긴장했습니다. 예정에 없던 브리핑이었으니까요. "내가 뭘 놓친 거지?"

보통 브리핑이라 하면, 대변인이나 원내대변인이 당 또는 원내에 돌아가는 상황, 현안 논평 등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걸 말합니다.

그런데 정책위의장이 직접 브리핑을 한다..당내 주요 정책 등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일테니, '내가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었나?' 긴장할 수밖에요.

내용을 재빨리 파악하던 중, 10분도 안돼 '브리핑이 연기됐다'는 문자가 날아들더니..다시 30여 분 뒤 '브리핑이 취소되었다'는 문자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1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날 당초 하려던 브리핑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획기적인' 행사를 발표하려 했습니다.
민주당과 주한 미 대사관이 함께 '정책 포럼'을 준비했다는 내용이었죠.
경제, 외교, 안보 등을 주제로 정기적으로 토론을 벌인다는 거였습니다.

"더는 '반미 정당'이라고 부르지 마라"

그런데, 왜 획기적이냐고요?

특정 정당, 그것도 (국회 제1당이긴 하지만) 야당이 미국 대사관과 포럼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입니다.

특히 이번 포럼은 일각에서 민주당에 '반미(反美)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걸 막고, 외교·안보에서 유능한 정당의 모습을 강화하려는 차원에서 논의돼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중도로의 외연을 넓히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죠.

민주당은 그간 사드 문제 등으로 외교·안보가 이슈로 떠오를 때 당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의 행보로 비판도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게다가 정책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 행사는 윤호중 의장이 취임한 지난 해 9월부터 꽤 오래 공을 들여 추진해왔다고 합니다.

논의 끝에 분기별로 1차례식 행사를 열고, 첫 행사는 오는 28일 국회에서 '4차 산업 육성 방안'을 주제로 개최하기로 하는 등 구체적 시간, 장소, 발제자까지 정해놨다고도 하네요.

마침 이날 오전, 이 소식을 미리 접한 연합뉴스에서 오전에 관련 기사가 나왔습니다.

기자들의 문의가 잇따랐을테고, '친절하게' 한번에 설명해주기 위해 정책위의장의 브리핑이 마련된 거였죠.

문제는, 논의가 완전히 무르익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미국 대사관 측에 갑작스런 사정이 생긴 건지, 갑자기 행사 개최 자체에 제동이 걸린 겁니다.

주한 美대사관, "'한미 정책 포럼'이란 행사 없어"

정책위의장 브리핑 일정이 공지됐다가 취소되는 사이, 포럼 공동주최인 주한 미 대사관에서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대사관의 <해명 이메일> 내용은 이랬습니다.

“한미정책포럼” 없어

오늘 (2월 8일)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한미정책포럼”이라는 행사는 없으며,

주한 미국대사관은 대한민국 국회와 정기적 경제 정책 포럼을 가질 계획도 없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대한민국의 상호 경제 이해 관계자들과 자주 상의를 합니다.

U.S. Embassy: There is no “Korea-U.S. Policy Forum”
Contrary to various news reports published on February 8, there is no so-called “Korea-U.S. Policy Forum,” nor is there any plan to establish a regularly held U.S.-ROK economic policy forum with the National Assembly.
The U.S. Embassy regularly consults with all ROK stakeholders on issues of

mutual economic interest.

한마디로 미 대사관 측은 "그런 행사는 없고, 국회와 정기적 경제 정책 포럼을 가질 계획도 없다"고 일축한 겁니다.

'사정상 연기됐다, 취소됐다'도 아니고 '그런 행사 자체가 없다'니, 협의 파트너였던 민주당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요.

대사관 측의 공식 입장은 '전혀 아니다'였지만, 민주당 측에 전해온 비공식적 입장은 이랬습니다. "아직 확정된 일정이 아닌 만큼, 행사를 대선 이후로 무기한 연기하자"고 했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태도가 180도 달라진 데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요?

한참 말을 꺼리던 민주당 관계자는 한숨을 쉬더니 이렇게 주장합니다.

"새누리당 등에서 행사 내용을 미리 알고 대사관 측에 항의한 것 같다. 대선을 앞두고 '한미'라고 하니까..'민주당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냐, 민주당과 이런 포럼을 하는 저의가 뭐냐' 이런 항의를 받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탄핵 국면 등 민감한 시기에 미국 대사관이 특정 정당과 보조를 맞추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민주당 "재추진…정치적 시각으로 해석 말라"

결국 윤호중 정책위의장은 9일(오늘)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미국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국가와 정책교류를 준비해왔는데, 언론 보도가 문제가 돼 미 대사관 측에서 연기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미국과 정책포럼을 하는 것을 시샘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다"며 일부 정치 세력을 겨냥했고요.

이어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압력을 넣거나 불만을 터뜨리는 등 정당의 정당한 교류를 훼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미 대사관과 협의해 조속한 시일에 행사를 재추진해가겠다"며 행사가 완전히 무산된 게 아니라고 강조했는데요.

특정 정치 세력의 과잉 간섭이든 아니든 간에 '오얏나무 밑에서 갓 끈 고쳐맨' 격이 된 민주당의 '획기적인' 정책 포럼은 아무래도 대선이 끝나기 전까지는 재추진되긴 어려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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