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센 여자 열풍…유리천장에 막힌 여성들의 대리만족

입력 2017.02.13 (13:27) 수정 2017.02.1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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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X’ 中 ‘닥터 X’ 中

2016년 일본 드라마 중 1위는 '닥터 X'였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선적이다. 일본 제일의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 외과의사에 대한 이야기다.

아사히TV ‘닥터 X 홈페이지’ 캡쳐아사히TV ‘닥터 X 홈페이지’ 캡쳐

'닥터 X'는 2016년 선보인 일본 전체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21.6%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시청률 2위 드라마가 17%, 3위 드라마는 14%까지 떨어지니 닥터 X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알만하다. 게다가 지난 한 해 동안 평균 시청률 10%를 넘기는 드라마가 15개에 불과한 일본 드라마 시장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인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이 드라마는 처음 선보인 드라마도 아닌 시즌제 드라마다. 2012년을 시작으로 이번에 네 번째 시즌을 맞고 있지만 매 시즌 2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사랑받고 있다.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새로운 유형의 슈퍼우먼 탄생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 주인공 다이몬 미치코의 대표 대사다.

정말 그렇다. 이 여주인공은 어떤 수술도 단 한 번 실패한 적이 없다. 정치인부터 최고 스타까지 누구를 수술해도, 어떤 어려움 하에서 수술해도 이를 성공으로 이끈다. 수술실을 박차고 들어가 남의 수술을 가로채듯 집도하는 등 거침이 없다. 그리고 자기가 수술해야 하는 당위성은 저 한마디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라는 확신의 찬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

‘닥터 X 홈페이지’ 캡쳐‘닥터 X 홈페이지’ 캡쳐

게다가 다이몬 미치코는 프리랜서 의사다. 오직 실력 하나로 도도하게 최고의 병원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수술에 성공하면 그녀의 담당 변호사가 병원장을 찾아가 고액의 수술비를 당당히 요구한다. 하지만 이 또한 거부된 적이 없다. 어떤 환자가 등장하더라도 어떤 난관이 등장하더라도 결국 이야기는 수술의 성공과 거액의 요구로 흘러간다. 줄거리가 단순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사실 이 정도면 갈등과 복선, 그리고 반전이 숨어 있는 재밌는 한국 미니시리즈에 길들여진 어지간한 우리나라 시청자라면 재미없어할 정도이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하다. 하지만 묘하게 현실감 없는 그녀의 절대 꺾이지 않는 승승장구 스토리는 늘 소위 말하는 '사이다 전개'의 쾌감을 전하며 인기를 구가한다.

뭐든지 잘하려고 하는 슈퍼우먼 신드롬을 넘어, 절대 실패하지 않는 여성상을 만들어 놓은 드라마다.

"내가 못 파는 집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드라마, '家売るオンナ(이에우르온나)'.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집을 파는 여자'라는 드라마도 2016년도에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중 하나다.

니테레 ‘집을 파는 여자’ 홈페이지 캡쳐니테레 ‘집을 파는 여자’ 홈페이지 캡쳐

평균 시청률 11.58%를 얻어 시청률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으니, 훌륭한 성적이다.

이 드라마도 딱 한 가지 콘셉트다. 부동산 중개 회사에서 독보적인 판매력을 가진 여성. 어떤 사연에 어떤 어려움이 끼어들어도 주인공 '산겐야 마치'가 개입하면 안 팔리는 집이 없다. 모든 회차에서 여주인공은 척척 집들을 팔아치운다. 그리고 주인공이 모든 것을 결판내며 하는 대표 대사가 "내가 못 파는 집은 없습니다"이다.

사실 위 두 드라마를 보면,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여성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너무나 자신감 있게 주위를 살피지 않고 "나라면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일을 처리하는 슈퍼우먼의 모습. 주변은 온통 남성들뿐이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때로는 덜떨어진(?) 남성들을 리드하며 전진하는 여성상에 일본 여성들은 높은 시청률로 응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5년 일본의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65.5%로 G7(주요 7개국)이탈리아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일본 여성이 일하기 싫어서 그럴까? 아니다. 여성을 주저앉히는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 바 크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말 중 하나가, "여자들이 굳이 정규직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그만둬야 할 직장, 굳이 정규직으로 들어가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밤늦게까지 일하느니, 정시에 퇴근하는 비정규직으로 편히 일하며 배우자를 찾겠다는 의미란다.

물론 이를 모든 일본 여성의 생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채롭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일본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자리 잡고 일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농축된 사고가 숨어 있다.

결국 어찌보면 억지스러운 위 두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여성상이기에, 대리만족감을 선사하며 많은 인기를 구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14년 우리나라 여성 경제참가율은 57% 수준이었다. 일본(65%)보다 더 낮다. 일본 걱정할 일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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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센 여자 열풍…유리천장에 막힌 여성들의 대리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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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02-13 13: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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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X’ 中 2016년 일본 드라마 중 1위는 '닥터 X'였다. 줄거리는 비교적 단선적이다. 일본 제일의 병원에서 일하는 여자 외과의사에 대한 이야기다. 아사히TV ‘닥터 X 홈페이지’ 캡쳐 '닥터 X'는 2016년 선보인 일본 전체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21.6%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다. 시청률 2위 드라마가 17%, 3위 드라마는 14%까지 떨어지니 닥터 X가 얼마나 인기를 끌었는지 알만하다. 게다가 지난 한 해 동안 평균 시청률 10%를 넘기는 드라마가 15개에 불과한 일본 드라마 시장을 감안하면 폭발적인 인기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이 드라마는 처음 선보인 드라마도 아닌 시즌제 드라마다. 2012년을 시작으로 이번에 네 번째 시즌을 맞고 있지만 매 시즌 20%를 넘나드는 시청률로 사랑받고 있다.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새로운 유형의 슈퍼우먼 탄생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 주인공 다이몬 미치코의 대표 대사다. 정말 그렇다. 이 여주인공은 어떤 수술도 단 한 번 실패한 적이 없다. 정치인부터 최고 스타까지 누구를 수술해도, 어떤 어려움 하에서 수술해도 이를 성공으로 이끈다. 수술실을 박차고 들어가 남의 수술을 가로채듯 집도하는 등 거침이 없다. 그리고 자기가 수술해야 하는 당위성은 저 한마디 "나는 실패하지 않으니까"라는 확신의 찬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 ‘닥터 X 홈페이지’ 캡쳐 게다가 다이몬 미치코는 프리랜서 의사다. 오직 실력 하나로 도도하게 최고의 병원에서 살아남는다. 그리고 수술에 성공하면 그녀의 담당 변호사가 병원장을 찾아가 고액의 수술비를 당당히 요구한다. 하지만 이 또한 거부된 적이 없다. 어떤 환자가 등장하더라도 어떤 난관이 등장하더라도 결국 이야기는 수술의 성공과 거액의 요구로 흘러간다. 줄거리가 단순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사실 이 정도면 갈등과 복선, 그리고 반전이 숨어 있는 재밌는 한국 미니시리즈에 길들여진 어지간한 우리나라 시청자라면 재미없어할 정도이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하다. 하지만 묘하게 현실감 없는 그녀의 절대 꺾이지 않는 승승장구 스토리는 늘 소위 말하는 '사이다 전개'의 쾌감을 전하며 인기를 구가한다. 뭐든지 잘하려고 하는 슈퍼우먼 신드롬을 넘어, 절대 실패하지 않는 여성상을 만들어 놓은 드라마다. "내가 못 파는 집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드라마, '家売るオンナ(이에우르온나)'. 우리 말로 번역하면 '집을 파는 여자'라는 드라마도 2016년도에 인기를 끌었던 일본 드라마 중 하나다. 니테레 ‘집을 파는 여자’ 홈페이지 캡쳐 평균 시청률 11.58%를 얻어 시청률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으니, 훌륭한 성적이다. 이 드라마도 딱 한 가지 콘셉트다. 부동산 중개 회사에서 독보적인 판매력을 가진 여성. 어떤 사연에 어떤 어려움이 끼어들어도 주인공 '산겐야 마치'가 개입하면 안 팔리는 집이 없다. 모든 회차에서 여주인공은 척척 집들을 팔아치운다. 그리고 주인공이 모든 것을 결판내며 하는 대표 대사가 "내가 못 파는 집은 없습니다"이다. 사실 위 두 드라마를 보면,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여성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너무나 자신감 있게 주위를 살피지 않고 "나라면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일을 처리하는 슈퍼우먼의 모습. 주변은 온통 남성들뿐이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때로는 덜떨어진(?) 남성들을 리드하며 전진하는 여성상에 일본 여성들은 높은 시청률로 응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015년 일본의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65.5%로 G7(주요 7개국)이탈리아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일본 여성이 일하기 싫어서 그럴까? 아니다. 여성을 주저앉히는 사회적 구조에 기인한 바 크다. 일본에서 생활하며 들었던 말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말 중 하나가, "여자들이 굳이 정규직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그만둬야 할 직장, 굳이 정규직으로 들어가 많은 책임을 짊어지고 밤늦게까지 일하느니, 정시에 퇴근하는 비정규직으로 편히 일하며 배우자를 찾겠다는 의미란다. 물론 이를 모든 일본 여성의 생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채롭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일본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자리 잡고 일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농축된 사고가 숨어 있다. 결국 어찌보면 억지스러운 위 두 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일본에서는 불가능한 여성상이기에, 대리만족감을 선사하며 많은 인기를 구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거 아는지 모르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2014년 우리나라 여성 경제참가율은 57% 수준이었다. 일본(65%)보다 더 낮다. 일본 걱정할 일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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