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연금술’ 수소를 금속으로…‘슈퍼전도체’ 성큼

입력 2017.02.14 (14:22) 수정 2017.02.1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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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것은 수소였다. 태양과 별들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이고 영원한 침묵 속에서 뭉치면서 온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탈리아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저서 '주기율표'에서 수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실제로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면서 가장 먼저 태어난 원소다. 동시에 가장 가볍기 때문에 지구에서 대부분 날아가버렸지만 태양 표면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생명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소가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치있는 물질'로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압력 205GPa에서는 수소 분자 사이의 공간이 많아 빛이 통과하며 투명하게 보인다. 압력을 495GPa로 높이자 금속 결정으로 변하며 빛을 반사한다. 자료: 하버드대압력 205GPa에서는 수소 분자 사이의 공간이 많아 빛이 통과하며 투명하게 보인다. 압력을 495GPa로 높이자 금속 결정으로 변하며 빛을 반사한다. 자료: 하버드대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하버드대 연구팀이 수소 기체를 고체 상태인 금속으로 만들었다는 논문이 실렸다. 압력을 엄청나게 높인 상태에서 수소 기체를 광택을 지닌 금속으로 변환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는데, 실험실의 기압은 495GPa(기가파스칼)에 달했다. 지구 대기압(1기압)으로 환산하면 495만 기압으로 지표보다 495만 배나 고압이라는 얘기다.


연구팀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압력이 높은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다이아몬드 2개를 사용했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다이아몬드의 뾰족한 끝 사이에 수소 기체를 놓고 압력을 극한으로 높여가며 변화를 관측했는데, 실험 도중 다이아몬드가 깨지거나 금이 가서 새로 제작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금속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수소 샘플의 지름은 8마이크로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다.

수소는 주기율표에서 1족 알칼리 금속들과 함께 있다.수소는 주기율표에서 1족 알칼리 금속들과 함께 있다.

지구에서 수소는 산소와 결합한 물, 즉 액체 상태로 존재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수소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주기율표를 보면 수소의 위치는 1번으로 1족 알칼리 금속들과 함께 있다. 리튬과 나트륨, 칼륨 등 1족 원소들은 은백색의 광택이 나는 반응성 좋은 금속들로 상온에서 고체로 존재한다. 수소는 왜 이런 자리에 놓이게 된 걸까.

1935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유진 위그너와 힐러드 헌팅턴은 수소에 약 25만 기압의 압력을 가하면 금속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수소 기체를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변환할 수 있다는 어찌보면 허무맹랑한 이론이 거의 1세기 전에 등장한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수소는 주기율표 상의 한 식구인 알칼리 금속들과 비슷한 성질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고압 환경을 구현하는 일이 쉽지 않아 수소 기체를 금속으로 만드는 작업은 물리학제의 난제로 꼽혔다. 단 지구를 벗어나면 예외다. 목성이나 토성의 내부는 엄청난 고압 환경이어서 금속성 수소가 존재할 것으로 예측됐다.

초전도체는 특정 조건에서 전기적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다.초전도체는 특정 조건에서 전기적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왜 전세계 과학자들은 수소 기체를 금속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단순히 80여년 전의 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지적인 욕망만은 아닐 거다. 수소 금속은 바로 엄청난 산업적 가치를 지닌 '슈퍼 전도체'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가 금속 상태로 변하면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을 갖게 된다. 특히 주기율표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가 금속이 될 경우 500℃를 넘는 고온 환경만 아니면 초전도성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전자제품을 오래 사용하면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이유는 바로 전기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손실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소 금속으로 만든 전선이나 배터리는 저항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력 손실도 제로가 된다. 발전소에서 송전시 발생하는 15%의 전력 손실을 없애고 고효율 전자제품은 물론 자기부상열차, 수소/전기 자동차 등 운송수단의 성능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로켓 연료에 활용하면 심우주 탐사가 가능해진다. 수소 금속을 다시 액체나 기체로 변환시킬 때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활용할 계획인데, 로켓의 추력이 지금보다 20배 정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주에 널려있는 수소 기체를 슈퍼 전도체인 금속으로 만드는 일은 한 마디로 '21세기 연금술'인 셈이다.

구현하기 힘든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가 아닌 상온, 상압 조건에서 초전도성을 갖게 된다면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게 넓어진다.구현하기 힘든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가 아닌 상온, 상압 조건에서 초전도성을 갖게 된다면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게 넓어진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현재 고압 상태에서 금속으로 변했던 수소 샘플을 상온과 상압 조건으로 되돌려놓는 추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만약 초전도성을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가 아닌 상온, 상압에서도 실현한다면 꿈의 초전도체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연구팀은 탄소 원자인 흑연이 엄청난 압력과 뜨거운 온도에서 다이아몬드로 변하더라도 그대로 다이아몬드의 성질을 계속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성질을 물리학에선 '메타 스테이블'(meta-stable)이라고 하는데, 만약 수소 금소의 상온/상압 초전도성이 확인된다면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도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은 초전도성의 위상 전이 현상을 규명한 영국 연구진이 수상했다.2016년 노벨 물리학상은 초전도성의 위상 전이 현상을 규명한 영국 연구진이 수상했다.

실제로 초전도체 연구 분야는 노벨상 '노다지'로 불린다. 1957년 금속에서 초전도체의 성질을 규명한 3명의 물리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87년엔 구리의 산화물이 극저온에서 초전도성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한 2명의 과학자가 수상했다.

조금이라도 더 일상과 가까운 조건에서 초전도성을 실현하려는 연구는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지난해에는 "초전도성이 낮은 온도에서 일어날 수 있고 높은 온도에서는 사라질 수 있다"는 '위상 전이 메커니즘'을 증명한 연구자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하버드대 연구팀의 추가 연구 성과 발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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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4 14:22:09
    • 수정2017-02-14 14:44:54
    취재K
"그러니까 그것은 수소였다. 태양과 별들 속에서 타고 있는 것이고 영원한 침묵 속에서 뭉치면서 온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이탈리아 화학자인 프리모 레비는 저서 '주기율표'에서 수소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실제로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면서 가장 먼저 태어난 원소다. 동시에 가장 가볍기 때문에 지구에서 대부분 날아가버렸지만 태양 표면에서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 덕분에 우리가 살고 있으니 생명의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소가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치있는 물질'로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압력 205GPa에서는 수소 분자 사이의 공간이 많아 빛이 통과하며 투명하게 보인다. 압력을 495GPa로 높이자 금속 결정으로 변하며 빛을 반사한다. 자료: 하버드대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하버드대 연구팀이 수소 기체를 고체 상태인 금속으로 만들었다는 논문이 실렸다. 압력을 엄청나게 높인 상태에서 수소 기체를 광택을 지닌 금속으로 변환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는데, 실험실의 기압은 495GPa(기가파스칼)에 달했다. 지구 대기압(1기압)으로 환산하면 495만 기압으로 지표보다 495만 배나 고압이라는 얘기다. 연구팀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압력이 높은 상태를 구현하기 위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다이아몬드 2개를 사용했다. 단단하기로 유명한 다이아몬드의 뾰족한 끝 사이에 수소 기체를 놓고 압력을 극한으로 높여가며 변화를 관측했는데, 실험 도중 다이아몬드가 깨지거나 금이 가서 새로 제작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금속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수소 샘플의 지름은 8마이크로미터(㎛)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 정도다. 수소는 주기율표에서 1족 알칼리 금속들과 함께 있다. 지구에서 수소는 산소와 결합한 물, 즉 액체 상태로 존재하거나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수소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 그런데 주기율표를 보면 수소의 위치는 1번으로 1족 알칼리 금속들과 함께 있다. 리튬과 나트륨, 칼륨 등 1족 원소들은 은백색의 광택이 나는 반응성 좋은 금속들로 상온에서 고체로 존재한다. 수소는 왜 이런 자리에 놓이게 된 걸까. 1935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인 유진 위그너와 힐러드 헌팅턴은 수소에 약 25만 기압의 압력을 가하면 금속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수소 기체를 전기가 통하는 금속으로 변환할 수 있다는 어찌보면 허무맹랑한 이론이 거의 1세기 전에 등장한 셈이다. 만약 그렇다면 수소는 주기율표 상의 한 식구인 알칼리 금속들과 비슷한 성질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고압 환경을 구현하는 일이 쉽지 않아 수소 기체를 금속으로 만드는 작업은 물리학제의 난제로 꼽혔다. 단 지구를 벗어나면 예외다. 목성이나 토성의 내부는 엄청난 고압 환경이어서 금속성 수소가 존재할 것으로 예측됐다. 초전도체는 특정 조건에서 전기적 저항이 0이 되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왜 전세계 과학자들은 수소 기체를 금속으로 만들기 위한 연구에 매달리고 있는 걸까? 단순히 80여년 전의 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지적인 욕망만은 아닐 거다. 수소 금속은 바로 엄청난 산업적 가치를 지닌 '슈퍼 전도체'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가 금속 상태로 변하면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을 갖게 된다. 특히 주기율표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가 금속이 될 경우 500℃를 넘는 고온 환경만 아니면 초전도성을 계속 유지하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전자제품을 오래 사용하면 뜨끈하게 열이 오르는 이유는 바로 전기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손실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소 금속으로 만든 전선이나 배터리는 저항이 전혀 없기 때문에 전력 손실도 제로가 된다. 발전소에서 송전시 발생하는 15%의 전력 손실을 없애고 고효율 전자제품은 물론 자기부상열차, 수소/전기 자동차 등 운송수단의 성능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 로켓 연료에 활용하면 심우주 탐사가 가능해진다. 수소 금속을 다시 액체나 기체로 변환시킬 때 발생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활용할 계획인데, 로켓의 추력이 지금보다 20배 정도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주에 널려있는 수소 기체를 슈퍼 전도체인 금속으로 만드는 일은 한 마디로 '21세기 연금술'인 셈이다. 구현하기 힘든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가 아닌 상온, 상압 조건에서 초전도성을 갖게 된다면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게 넓어진다. 하버드대 연구팀은 현재 고압 상태에서 금속으로 변했던 수소 샘플을 상온과 상압 조건으로 되돌려놓는 추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만약 초전도성을 극저온이나 초고압 상태가 아닌 상온, 상압에서도 실현한다면 꿈의 초전도체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연구팀은 탄소 원자인 흑연이 엄청난 압력과 뜨거운 온도에서 다이아몬드로 변하더라도 그대로 다이아몬드의 성질을 계속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성질을 물리학에선 '메타 스테이블'(meta-stable)이라고 하는데, 만약 수소 금소의 상온/상압 초전도성이 확인된다면 올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도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은 초전도성의 위상 전이 현상을 규명한 영국 연구진이 수상했다. 실제로 초전도체 연구 분야는 노벨상 '노다지'로 불린다. 1957년 금속에서 초전도체의 성질을 규명한 3명의 물리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1987년엔 구리의 산화물이 극저온에서 초전도성을 보인다는 것을 입증한 2명의 과학자가 수상했다. 조금이라도 더 일상과 가까운 조건에서 초전도성을 실현하려는 연구는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지난해에는 "초전도성이 낮은 온도에서 일어날 수 있고 높은 온도에서는 사라질 수 있다"는 '위상 전이 메커니즘'을 증명한 연구자에게 노벨 물리학상이 돌아갔다. 하버드대 연구팀의 추가 연구 성과 발표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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