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비나무의 죽음…백두대간에 무슨 일이?

입력 2017.02.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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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의 대표적 명소인 함백산(1,572m)입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설경이 빼어나지요. 겨울엔 설경 말고도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잎을 떨군 활엽수들 사이로 독야청청 확연하게 눈에 띄는 나무들, 바로 분비나무입니다. 구상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 침엽수입니다. 소백산과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통상 해발 1,000m는 넘는 산이라야 볼 수 있습니다.

강원도 함백산강원도 함백산

분비나무분비나무

함백산 정상에 오르면 분비나무 군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얗게 상고대가 내려앉은 분비나무는 독특한 경관을 선사합니다. 여름에는 활엽수들 사이에 가리지만, 겨울에는 뚜렷하게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런 멋진 나무를 후손들도 볼 수 있을까요? 언뜻 보기엔 건강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비나무 잎을 뒤집어 보면 병세를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한 분비나무 잎은 뒷면이 하얗습니다. 잎을 보호하는 유지 성분이 덮고 있는 거죠. 뒷면의 흰색은 다른 침엽수인 소나무나 전나무와 다른 특징이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면 은빛으로 빛나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위 사진의 아래쪽 잎들은 흰 유지 성분이 없이 녹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일부는 갈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건강을 잃고 속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겁니다.


가지 끝 부분에서 잎들이 떨어져 나간 나무들도 있습니다. 일부 가지는 잎이 모두 사라진 채 하얗게 말랐습니다. 역시 병든 겁니다. 이렇게 한번 약해진 나무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비록 부분적으로 푸른 잎이 남아 있지만, 수년 안에 죽음을 맞이하는 거지요.


고사한 분비나무고사한 분비나무

넘어진 분비나무넘어진 분비나무

마치 뼈를 드러내듯 하얗게 죽어 있는 분비나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크기로 보아 한창 젊게 커야 할 나무들도 있습니다. 일부 나무는 넘어져 뿌리를 드러냈습니다. 분비나무는 상대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 천근(賤根)성 수종입니다. 원래 강풍에 취약한 거지요. 그렇더라도 이 나무들은 수십 년 이상 백두대간의 강풍을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건강성이 떨어지다 보니 뿌리도 부실해져 강풍에 넘어간 겁니다.

설악산 소청봉 분비나무 집단 고사설악산 소청봉 분비나무 집단 고사

분비나무의 죽음은 여기만이 아닙니다. 이미 설악산의 경우 대청봉에서 귀떼기청봉에 이르기까지 군락지가 집단으로 고사했습니다. 오대산과 태백산, 소백산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의 절반 가량의 분비나무가 이미 고사했고 나머지도 건강성을 잃었다는 것이 지난해 녹색연합의 조사 결과입니다. 함백산도 이제 집단 고사의 초기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백두대간 고산 지역의 분비나무 전체가 멸종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지리산 구상나무 집단 고사지리산 구상나무 집단 고사

분비나무의 사망 원인은 구상나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형태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비슷한 근연종입니다. 열매가 아니고서는 일반인이 쉽게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구상나무 역시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에서 군락지가 빠르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상나무의 사망 원인은 분비나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함백산 분비나무 군락함백산 분비나무 군락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구상나무의 나이테 분석을 통해 사망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냈습니다. 봄철 수분 부족과 강해진 태풍을 고사의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겨울철 적설량이 부족하거나 봄철 이상 고온으로 눈이 빨리 녹아버리면 구상나무가 수분 부족으로 병드는 겁니다. 빈약한 적설량이나 봄철 강수량, 이상 고온 그리고 강한 태풍은 모두 온난화의 여파입니다. 이번 겨울도 함백산 적설량은 예년보다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쯤이면 1m 이상 눈이 쌓였어야 하지만 30cm 정도에 불과합니다.

[연관기사] ‘나이테’의 비밀…구상나무 죽음을 밝혀라


분비나무나 구상나무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식물 천이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변해왔고 그런 변화 속에 생명이 적응해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같은 급격한 변화는 우려가 큽니다. 한 종의 급격한 소멸은 다른 생명 종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수많은 관계로 서로 얽혀 있으니까요. 분비와 구상 다음에는 어떤 종이 사라질까요? 인류는 안전할까요? 위험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을 수 있습니다. '나무의 죽음'이라는 지구의 경고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관기사]
뼈를 발라낸 생선처럼 지리산이 말라간다
기후변화 탓 한반도 침엽수 집단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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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비나무의 죽음…백두대간에 무슨 일이?
    • 입력 2017-02-18 09:22:16
    취재K
겨울 산행의 대표적 명소인 함백산(1,572m)입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설경이 빼어나지요. 겨울엔 설경 말고도 또 다른 볼거리가 있습니다. 잎을 떨군 활엽수들 사이로 독야청청 확연하게 눈에 띄는 나무들, 바로 분비나무입니다. 구상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산 침엽수입니다. 소백산과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통상 해발 1,000m는 넘는 산이라야 볼 수 있습니다.

강원도 함백산
분비나무
함백산 정상에 오르면 분비나무 군락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얗게 상고대가 내려앉은 분비나무는 독특한 경관을 선사합니다. 여름에는 활엽수들 사이에 가리지만, 겨울에는 뚜렷하게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런 멋진 나무를 후손들도 볼 수 있을까요? 언뜻 보기엔 건강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비나무 잎을 뒤집어 보면 병세를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한 분비나무 잎은 뒷면이 하얗습니다. 잎을 보호하는 유지 성분이 덮고 있는 거죠. 뒷면의 흰색은 다른 침엽수인 소나무나 전나무와 다른 특징이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면 은빛으로 빛나며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위 사진의 아래쪽 잎들은 흰 유지 성분이 없이 녹색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일부는 갈색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건강을 잃고 속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겁니다.


가지 끝 부분에서 잎들이 떨어져 나간 나무들도 있습니다. 일부 가지는 잎이 모두 사라진 채 하얗게 말랐습니다. 역시 병든 겁니다. 이렇게 한번 약해진 나무는 다시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비록 부분적으로 푸른 잎이 남아 있지만, 수년 안에 죽음을 맞이하는 거지요.


고사한 분비나무
넘어진 분비나무
마치 뼈를 드러내듯 하얗게 죽어 있는 분비나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크기로 보아 한창 젊게 커야 할 나무들도 있습니다. 일부 나무는 넘어져 뿌리를 드러냈습니다. 분비나무는 상대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 천근(賤根)성 수종입니다. 원래 강풍에 취약한 거지요. 그렇더라도 이 나무들은 수십 년 이상 백두대간의 강풍을 견뎌왔습니다. 그러나 건강성이 떨어지다 보니 뿌리도 부실해져 강풍에 넘어간 겁니다.

설악산 소청봉 분비나무 집단 고사
분비나무의 죽음은 여기만이 아닙니다. 이미 설악산의 경우 대청봉에서 귀떼기청봉에 이르기까지 군락지가 집단으로 고사했습니다. 오대산과 태백산, 소백산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의 절반 가량의 분비나무가 이미 고사했고 나머지도 건강성을 잃었다는 것이 지난해 녹색연합의 조사 결과입니다. 함백산도 이제 집단 고사의 초기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백두대간 고산 지역의 분비나무 전체가 멸종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겁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지리산 구상나무 집단 고사
분비나무의 사망 원인은 구상나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는 형태뿐만 아니라 유전적으로도 비슷한 근연종입니다. 열매가 아니고서는 일반인이 쉽게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구상나무 역시 한라산과 지리산, 덕유산에서 군락지가 빠르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상나무의 사망 원인은 분비나무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함백산 분비나무 군락
최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구상나무의 나이테 분석을 통해 사망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냈습니다. 봄철 수분 부족과 강해진 태풍을 고사의 원인으로 지목됐습니다. 겨울철 적설량이 부족하거나 봄철 이상 고온으로 눈이 빨리 녹아버리면 구상나무가 수분 부족으로 병드는 겁니다. 빈약한 적설량이나 봄철 강수량, 이상 고온 그리고 강한 태풍은 모두 온난화의 여파입니다. 이번 겨울도 함백산 적설량은 예년보다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금쯤이면 1m 이상 눈이 쌓였어야 하지만 30cm 정도에 불과합니다.

[연관기사] ‘나이테’의 비밀…구상나무 죽음을 밝혀라


분비나무나 구상나무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식물 천이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변해왔고 그런 변화 속에 생명이 적응해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같은 급격한 변화는 우려가 큽니다. 한 종의 급격한 소멸은 다른 생명 종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수많은 관계로 서로 얽혀 있으니까요. 분비와 구상 다음에는 어떤 종이 사라질까요? 인류는 안전할까요? 위험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을 수 있습니다. '나무의 죽음'이라는 지구의 경고에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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