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뉴스와 진실

입력 2017.02.19 (09:23) 수정 2017.02.1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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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독살 사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음모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탄핵을 앞두고 특정 세력이 국면 돌파용으로 일부러 저질렀다느니 혹은 독살 사건으로 이득을 볼 세력이 추진한 일이라느니 등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돌고 있다.

정부의 공식 발표와 언론보도가 있는데도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과 유언비어는 광장의 정치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탄핵과 관련해 뜨겁게 달아오른 시청 앞 광장에는 개인적인 신념에서 나오는 온갖 거짓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촛불 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 한다거나 촛불에 중국인 유학생이 동원되고 있다는 등의 말이 그것이다.

이들에게는 팩트(fact, 사실)가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팩트의 진위(眞僞) 차원 문제가 아니라 믿음 차원의 문제이다.

그래서 대통령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이나 언론은 추방되고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된다.

이들은 서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공유하고 감성을 불태우며 믿음을 쌓아간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구에도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옥스퍼드 사전 선정 ‘2016년 올해의 단어’옥스퍼드 사전 선정 ‘2016년 올해의 단어’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를 뽑았다.

포스트 트루스는 ‘비(非) 진실적인’ 혹은 ‘진실이 중요치 않은’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옥스퍼드사전위원회는 이 단어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팩트 자체보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치적 구호 등이 대중에 먹혀드는 세태를 반영한 말이라는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도 이 단어로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

포스트 트루스 정치 시대에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가 득세한다.

막말과 엉터리 주장 등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트럼프의 돌풍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 신인으로만 알았던 트럼프가 토론회 등에서 복잡한 이슈에 부딪쳐도 온갖 통계 수치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말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의 말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의 사실 검증 사이트인 ‘폴리티팩트(politifact.com)’는 트럼프의 말 가운데 70% 가량이 거짓에 가깝다고 밝혔다.

토론회나 유세장에서 그가 막힘없이 쏟아냈던 말 대부분이 생각나는대로 떠든 얘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뻔뻔히 거짓말을 하던 후보가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으로 뽑혔다.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자리에서 쫓겨났던 미국에서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SNS 등 IT기술의 발달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정보를 생산해 유통시킬 수 있다.

또 소비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엄청나다.

이런 환경은 내 맘에 드는 것만 믿고 따르는 ‘확증 편향적’ 정보 소비 경향을 만들어 냈고 정보 흐름의 왜곡을 부추겼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확증 편향적 소비 경향은 결국에 가선 진실이 설 땅을 좁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에 맞는 가짜 뉴스(fake news)에 눈을 돌리게 한다.

미국 대선 기간에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거나 클린턴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는 가짜 뉴스가 SNS 등을 통해 널리 유포되고 많은 사람이 이것을 진실로 믿었던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가 온 것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이상으로 남은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 11일, 광화문광장의 촛불 집회(왼쪽)와 서울광장의 태극기 집회(오른쪽)지난 11일, 광화문광장의 촛불 집회(왼쪽)와 서울광장의 태극기 집회(오른쪽)

우리의 경우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포스트 트루스 현상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가짜 뉴스가 널리 유포되고 대중 인기에 영합하려는 공약(空約)이 난무할 것이다.

무엇보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두려운 것은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 찾기’ 노력이다.

시민들은 자신의 감정만을 믿으려 하지 말고 비판적 시각으로 정보에 접근해야 한다.

정치인에게 진실의 언어를 요구하며,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사실(fact)을 분명하게 밝히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베껴 쓰기나 부풀려 쓰기는 언론의 신뢰도를 갉아 먹고 가짜 뉴스의 확산을 부채질한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이 겪고 있는 혼란상을 보자.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아픔은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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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19 09:23:29
    • 수정2017-02-19 11:20:09
    뉴스플러스
김정남 독살 사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음모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탄핵을 앞두고 특정 세력이 국면 돌파용으로 일부러 저질렀다느니 혹은 독살 사건으로 이득을 볼 세력이 추진한 일이라느니 등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돌고 있다.

정부의 공식 발표와 언론보도가 있는데도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유포하는 것이다.

이런 음모론과 유언비어는 광장의 정치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탄핵과 관련해 뜨겁게 달아오른 시청 앞 광장에는 개인적인 신념에서 나오는 온갖 거짓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촛불 세력이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 한다거나 촛불에 중국인 유학생이 동원되고 있다는 등의 말이 그것이다.

이들에게는 팩트(fact, 사실)가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팩트의 진위(眞僞) 차원 문제가 아니라 믿음 차원의 문제이다.

그래서 대통령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이나 언론은 추방되고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된다.

이들은 서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공유하고 감성을 불태우며 믿음을 쌓아간다.

이런 현상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구에도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옥스퍼드 사전 선정 ‘2016년 올해의 단어’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로 ‘포스트 트루스(post-truth)’를 뽑았다.

포스트 트루스는 ‘비(非) 진실적인’ 혹은 ‘진실이 중요치 않은’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옥스퍼드사전위원회는 이 단어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감정이나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팩트 자체보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정치적 구호 등이 대중에 먹혀드는 세태를 반영한 말이라는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도 이 단어로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도널드 트럼프
포스트 트루스 정치 시대에는 대중영합주의(populism)가 득세한다.

막말과 엉터리 주장 등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트럼프의 돌풍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치 신인으로만 알았던 트럼프가 토론회 등에서 복잡한 이슈에 부딪쳐도 온갖 통계 수치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며 말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의 말 대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다.

미국의 사실 검증 사이트인 ‘폴리티팩트(politifact.com)’는 트럼프의 말 가운데 70% 가량이 거짓에 가깝다고 밝혔다.

토론회나 유세장에서 그가 막힘없이 쏟아냈던 말 대부분이 생각나는대로 떠든 얘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뻔뻔히 거짓말을 하던 후보가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으로 뽑혔다.

불과 40여년 전만 해도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이 자리에서 쫓겨났던 미국에서 말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보다도 인터넷과 SNS 등 IT기술의 발달을 그 이유로 들 수 있다.

요즘은 누구나 쉽게 정보를 생산해 유통시킬 수 있다.

또 소비할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엄청나다.

이런 환경은 내 맘에 드는 것만 믿고 따르는 ‘확증 편향적’ 정보 소비 경향을 만들어 냈고 정보 흐름의 왜곡을 부추겼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확증 편향적 소비 경향은 결국에 가선 진실이 설 땅을 좁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에 맞는 가짜 뉴스(fake news)에 눈을 돌리게 한다.

미국 대선 기간에 교황이 트럼프를 지지한다거나 클린턴이 이슬람국가(IS)에 무기를 팔았다는 가짜 뉴스가 SNS 등을 통해 널리 유포되고 많은 사람이 이것을 진실로 믿었던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가 온 것이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진실’이 이상으로 남은 시대가 된 것이다.

지난 11일, 광화문광장의 촛불 집회(왼쪽)와 서울광장의 태극기 집회(오른쪽)
우리의 경우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리면서 포스트 트루스 현상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가짜 뉴스가 널리 유포되고 대중 인기에 영합하려는 공약(空約)이 난무할 것이다.

무엇보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에 두려운 것은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진실 찾기’ 노력이다.

시민들은 자신의 감정만을 믿으려 하지 말고 비판적 시각으로 정보에 접근해야 한다.

정치인에게 진실의 언어를 요구하며,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한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사실(fact)을 분명하게 밝히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베껴 쓰기나 부풀려 쓰기는 언론의 신뢰도를 갉아 먹고 가짜 뉴스의 확산을 부채질한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이 겪고 있는 혼란상을 보자.

그리고 현재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아픔은 어떠한가?

이 모든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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