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지로 쓰러졌다던 남편 알고보니…

입력 2017.02.20 (18:07) 수정 2017.02.20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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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심정지라더니…” 회사가 무면허 사고 은폐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왜 쓰러진지는 모르겠는데 심정지인 것 같아요. 20분 만에 발견됐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1시, 장모(49)씨는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남편 지모(52)씨는 구리시 자원회수시설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구리타워'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지 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폐를 비롯해 여러 장기가 손상됐고 목뼈와 늑골이 부러져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지 씨에게 지병이 있었냐고 물어왔다. 그는 지 씨가 작업 중 갑자기 쓰러져 뒤늦게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 씨는 그날 밤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이 병원 담당 의사가 밤늦은 시간 장 씨를 불렀다.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보면 늑골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의 상태는 훨씬 심각해요. 한쪽 신장이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큰 외부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거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 씨는 혼란스러웠다. 남편의 직장 동료들은 쓰러져 있던 지 씨를 뒤늦게 발견했다는 것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나흘이 흘렀다.

남편은 조금씩 의식을 회복했다. 장 씨는 남편과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높은 데서 떨어진 거지?"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 차에 부딪쳤어?"

그제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 씨는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사고 닷새 뒤인 지난 1월 3일 장 씨와 함께 구리시 자원회수시설을 방문해 CCTV를 확인했다. CCTV에는 스키드로더(불도저와 비슷한 산업/건설용 장비)가 후진 중에 지 씨를 들이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사고 당일인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1시 40분쯤 촬영된 작업장 내 CCTV. 회사 측은 CCTV 화면이 흐려 사고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당일인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1시 40분쯤 촬영된 작업장 내 CCTV. 회사 측은 CCTV 화면이 흐려 사고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CCTV 화면이 흐려 사고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고, 경찰과 함께 영상을 본 뒤에야 사고가 났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회사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당시 지 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고 아무도 사고 상황을 목격하지 않아 왜 쓰러져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 씨 가족들에게도 이 같은 상황을 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최초 119 신고는 교통사고로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진이 입수한 신고 당시 녹취파일엔 "교통사고가 났다. 차에 사람이 치였다.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니 빨리 와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다른 회사 관계자는 지 씨 가족들에게 처음부터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실토했다. 사고를 낸 중장비 운전사는 물론, 책임자인 팀장까지도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사고 발생 50일이 지났지만 지 씨는 여전히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몸 오른쪽이 마비됐고 재활은 불투명한 상태다. 가족들은 회사 측이 병원에 사고 사실을 말하지 않아 지 씨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아내 장 씨는 "의사 선생님이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한다. 사고 사실을 알려줬다면 곧바로 경추 부분 수술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 씨는 현재 몸 오른쪽이 마비된 상태다. 의료진은 경추 손상으로 재활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지 씨는 현재 몸 오른쪽이 마비된 상태다. 의료진은 경추 손상으로 재활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구리경찰서는 사고 운전자를 입건했다. 그는 무면허 상태로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채 스키드로더를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작업 책임자를 상대로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조사하고, 사고 은폐 사실이 확인될 경우 범인도피 혐의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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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정지로 쓰러졌다던 남편 알고보니…
    • 입력 2017-02-20 18:07:51
    • 수정2017-02-20 19:50:09
    취재K

[연관 기사] “심정지라더니…” 회사가 무면허 사고 은폐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왜 쓰러진지는 모르겠는데 심정지인 것 같아요. 20분 만에 발견됐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1시, 장모(49)씨는 남편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왔다. 남편 지모(52)씨는 구리시 자원회수시설 쓰레기 소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구리타워'로 잘 알려진 곳이다.

지 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폐를 비롯해 여러 장기가 손상됐고 목뼈와 늑골이 부러져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지 씨에게 지병이 있었냐고 물어왔다. 그는 지 씨가 작업 중 갑자기 쓰러져 뒤늦게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건강하던 남편이 갑자기 쓰러진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 씨는 그날 밤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이 병원 담당 의사가 밤늦은 시간 장 씨를 불렀다.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보면 늑골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의 상태는 훨씬 심각해요. 한쪽 신장이 완전히 망가질 정도로 큰 외부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높은 곳에서 떨어졌거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장 씨는 혼란스러웠다. 남편의 직장 동료들은 쓰러져 있던 지 씨를 뒤늦게 발견했다는 것 외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나흘이 흘렀다.

남편은 조금씩 의식을 회복했다. 장 씨는 남편과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높은 데서 떨어진 거지?"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혹시 차에 부딪쳤어?"

그제야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 씨는 곧바로 경찰서로 향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사고 닷새 뒤인 지난 1월 3일 장 씨와 함께 구리시 자원회수시설을 방문해 CCTV를 확인했다. CCTV에는 스키드로더(불도저와 비슷한 산업/건설용 장비)가 후진 중에 지 씨를 들이받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사고 당일인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1시 40분쯤 촬영된 작업장 내 CCTV. 회사 측은 CCTV 화면이 흐려 사고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CCTV 화면이 흐려 사고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고, 경찰과 함께 영상을 본 뒤에야 사고가 났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회사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당시 지 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고 아무도 사고 상황을 목격하지 않아 왜 쓰러져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 씨 가족들에게도 이 같은 상황을 알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KBS 취재 결과 최초 119 신고는 교통사고로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진이 입수한 신고 당시 녹취파일엔 "교통사고가 났다. 차에 사람이 치였다. 손을 댈 수 없는 상황이니 빨리 와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다른 회사 관계자는 지 씨 가족들에게 처음부터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실토했다. 사고를 낸 중장비 운전사는 물론, 책임자인 팀장까지도 사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사고 발생 50일이 지났지만 지 씨는 여전히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몸 오른쪽이 마비됐고 재활은 불투명한 상태다. 가족들은 회사 측이 병원에 사고 사실을 말하지 않아 지 씨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아내 장 씨는 "의사 선생님이 이미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한다. 사고 사실을 알려줬다면 곧바로 경추 부분 수술에 들어갔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 씨는 현재 몸 오른쪽이 마비된 상태다. 의료진은 경추 손상으로 재활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구리경찰서는 사고 운전자를 입건했다. 그는 무면허 상태로 안전교육도 받지 않은 채 스키드로더를 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작업 책임자를 상대로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조사하고, 사고 은폐 사실이 확인될 경우 범인도피 혐의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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