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원 빙판에 웬 돼지고기 투척?

입력 2017.02.21 (11:37) 수정 2017.02.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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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수리가 물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활짝 편 날개와 매서운 눈빛 그리고 사냥감을 움켜쥔 발톱이 생생합니다. 방금 물고기를 잡아챈 거지요. 이런 극적인 현장을 우리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팔당댐 바로 아래쪽 한강 유역이 참수리의 대표적인 사냥터 가운데 하나입니다.

참수리 사냥터. 경기도 남양주군 한강 유역참수리 사냥터. 경기도 남양주군 한강 유역

흰꼬리수리. 멸종위기1급. 천연기념물 243-4호흰꼬리수리. 멸종위기1급. 천연기념물 243-4호

흰꼬리수리 역시 같은 곳에서 물고기를 사냥합니다. 참수리보다 좀 더 멀리, 팔당대교와 미사대교까지 넘나듭니다. 참수리와 흰꼬리수리 모두 키가 1m에 육박하는 데다 두 날개를 활짝 펼 경우 양 끝 길이가 2m에 달합니다. 가히 하늘의 제왕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런 덩치의 맹금류가 강물로 몸을 내리꽂으며 물고기를 잡는 순간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나무 위에서 사냥감을 찾는 참수리나무 위에서 사냥감을 찾는 참수리

팔당 아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검단산 자락은 수리류의 휴식처이자 사냥 전망대이기도 합니다. 사냥에 앞서 나무 위에 앉아서 강물 위를 내려다봅니다. 멀리 1km 이상 떨어진 사냥감도 파악할 정도로 시력이 뛰어납니다. 사냥감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와 순식간에 물고기를 잡아챕니다. 신기에 가깝습니다. 이러니 우리 해군도 고속정 이름을 '참수리'로 지었겠지요.

물고기를 사냥하는 참수리. 멸종위기1급. 천연기념물 243호.물고기를 사냥하는 참수리. 멸종위기1급. 천연기념물 243호.

올겨울에 성조와 유조를 포함해 5마리 참수리가 여기서 지내고 있습니다. 흰꼬리수리는 30여 마리에 이릅니다. 모두 겨울 철새입니다. 시베리아나 캄차카반도, 오호츠크 해안 등지에서 여름 번식을 마치고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습니다. 어린 새끼도 함께 데려와 물고기 사냥을 가르치지요. 참수리는 전 세계에 5천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멸종위기에 놓인 국제적 보호종입니다.

한강 빙판 위에 놓인 돼지고기한강 빙판 위에 놓인 돼지고기

빙판 위에 놓인 메기빙판 위에 놓인 메기


올겨울 참수리의 사냥터에서 특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변 쪽으로 물이 얼어붙은 곳에서 돼지고기가 발견된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태와 메기까지 널브러졌습니다. 20여 마리에 이릅니다. 빙판 위에 웬 고기들?




누가, 왜 이렇게 던져 놓았을까요? 고기가 놓인 곳, 바로 위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강변 언덕에 대형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가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수리들을 유인한 뒤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먹잇감을 던져 놓은 겁니다.

수리류 촬영 장비수리류 촬영 장비

실제로 이런 물고기를 먹는 흰꼬리수리가 포착됐습니다. 수리류는 사냥한 물고기뿐만 아니라 죽어 있는 물고기도 먹습니다. 까치와 갈매기, 까마귀도 던져진 고기에 달려듭니다. 먹이를 놓고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는 수리들이 죽은 고기에 모여들어 다투는 모습은 좀 어색합니다.

던져진 먹이를 먹는 흰꼬리수리와 까치던져진 먹이를 먹는 흰꼬리수리와 까치

일부 사진가들은 이런 먹이 주기와 사진 촬영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자연적인 수리류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준다는 거지요. 물고기 사냥을 배워야 할 어린 수리들이 쓰레기 처리를 배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기를 준 사람들은 철새에게 먹이를 주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발합니다.

사냥하는 흰꼬리수리사냥하는 흰꼬리수리

철새에게 먹이를 주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철원이나 순천만, 천수만 등 전국의 철새 도래지에서는 일부러 곡식을 뿌려줍니다. 과거 농경지에는 낙곡이 많았지만, 수확 기계의 발달로 낙곡이 줄어들고 볏짚마저 사료용으로 말아가 철새 먹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먹이를 주지는 않습니다.

수리류 사냥터에 붙은 안내판수리류 사냥터에 붙은 안내판

팔당 유역 한강은 상수원 보호구역입니다. 어로행위가 금지돼 수리류 먹이인 물고기가 풍부합니다. 혹한기에 강물이 모두 얼어붙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데도 인위적으로 먹잇감을 주는 건 부적절해 보입니다. 더구나 자연상태에서 수리류가 먹지 않는 돼지고기라니요? 메기도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울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바닷고기인 동태도 이상합니다. 법적으로도 상수원 보호구역에 오염원을 투기하는 것은 처벌 대상입니다. 실제로 한강유역환경청은 팔당 유역 지자체와 협조를 통해 상수원 오염 행위가 적발될 경우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흰꼬리수리흰꼬리수리

"철새 먹이 주기는 생태적 필요성이 있을 때 체계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말합니다. 야생의 행동방식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거죠. 개인이 임의로 먹이를 주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으로 새들의 먹거리와 행동양식이 변화하면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팔당에서 처음 참수리가 발견된 뒤 수리류 사냥터에 돼지고기나 메기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고성능 촬영장비를 갖춘 사진가들이 늘면서 일어난 일이지요. 지난해에는 수리부엉이 둥지를 훼손하고 야간에 조명을 터뜨린 사람들이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한 사진전에서는 새들을 접착제로 붙여놓고 촬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습니다. 촬영에 앞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료 제공: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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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수원 빙판에 웬 돼지고기 투척?
    • 입력 2017-02-21 11:37:22
    • 수정2017-02-21 13:16:20
    취재K
참수리가 물을 박차고 날아오릅니다. 활짝 편 날개와 매서운 눈빛 그리고 사냥감을 움켜쥔 발톱이 생생합니다. 방금 물고기를 잡아챈 거지요. 이런 극적인 현장을 우리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팔당댐 바로 아래쪽 한강 유역이 참수리의 대표적인 사냥터 가운데 하나입니다.

참수리 사냥터. 경기도 남양주군 한강 유역
흰꼬리수리. 멸종위기1급. 천연기념물 243-4호
흰꼬리수리 역시 같은 곳에서 물고기를 사냥합니다. 참수리보다 좀 더 멀리, 팔당대교와 미사대교까지 넘나듭니다. 참수리와 흰꼬리수리 모두 키가 1m에 육박하는 데다 두 날개를 활짝 펼 경우 양 끝 길이가 2m에 달합니다. 가히 하늘의 제왕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이런 덩치의 맹금류가 강물로 몸을 내리꽂으며 물고기를 잡는 순간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나무 위에서 사냥감을 찾는 참수리
팔당 아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검단산 자락은 수리류의 휴식처이자 사냥 전망대이기도 합니다. 사냥에 앞서 나무 위에 앉아서 강물 위를 내려다봅니다. 멀리 1km 이상 떨어진 사냥감도 파악할 정도로 시력이 뛰어납니다. 사냥감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와 순식간에 물고기를 잡아챕니다. 신기에 가깝습니다. 이러니 우리 해군도 고속정 이름을 '참수리'로 지었겠지요.

물고기를 사냥하는 참수리. 멸종위기1급. 천연기념물 243호.
올겨울에 성조와 유조를 포함해 5마리 참수리가 여기서 지내고 있습니다. 흰꼬리수리는 30여 마리에 이릅니다. 모두 겨울 철새입니다. 시베리아나 캄차카반도, 오호츠크 해안 등지에서 여름 번식을 마치고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습니다. 어린 새끼도 함께 데려와 물고기 사냥을 가르치지요. 참수리는 전 세계에 5천 마리 정도밖에 되지 않아 멸종위기에 놓인 국제적 보호종입니다.

한강 빙판 위에 놓인 돼지고기
빙판 위에 놓인 메기

올겨울 참수리의 사냥터에서 특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변 쪽으로 물이 얼어붙은 곳에서 돼지고기가 발견된 겁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태와 메기까지 널브러졌습니다. 20여 마리에 이릅니다. 빙판 위에 웬 고기들?




누가, 왜 이렇게 던져 놓았을까요? 고기가 놓인 곳, 바로 위를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습니다. 강변 언덕에 대형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가 줄지어 늘어서 있습니다. 수리들을 유인한 뒤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먹잇감을 던져 놓은 겁니다.

수리류 촬영 장비
실제로 이런 물고기를 먹는 흰꼬리수리가 포착됐습니다. 수리류는 사냥한 물고기뿐만 아니라 죽어 있는 물고기도 먹습니다. 까치와 갈매기, 까마귀도 던져진 고기에 달려듭니다. 먹이를 놓고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는 수리들이 죽은 고기에 모여들어 다투는 모습은 좀 어색합니다.

던져진 먹이를 먹는 흰꼬리수리와 까치
일부 사진가들은 이런 먹이 주기와 사진 촬영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자연적인 수리류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준다는 거지요. 물고기 사냥을 배워야 할 어린 수리들이 쓰레기 처리를 배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기를 준 사람들은 철새에게 먹이를 주는 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반발합니다.

사냥하는 흰꼬리수리
철새에게 먹이를 주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닙니다. 철원이나 순천만, 천수만 등 전국의 철새 도래지에서는 일부러 곡식을 뿌려줍니다. 과거 농경지에는 낙곡이 많았지만, 수확 기계의 발달로 낙곡이 줄어들고 볏짚마저 사료용으로 말아가 철새 먹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먹이를 주지는 않습니다.

수리류 사냥터에 붙은 안내판
팔당 유역 한강은 상수원 보호구역입니다. 어로행위가 금지돼 수리류 먹이인 물고기가 풍부합니다. 혹한기에 강물이 모두 얼어붙어 먹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데도 인위적으로 먹잇감을 주는 건 부적절해 보입니다. 더구나 자연상태에서 수리류가 먹지 않는 돼지고기라니요? 메기도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울에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바닷고기인 동태도 이상합니다. 법적으로도 상수원 보호구역에 오염원을 투기하는 것은 처벌 대상입니다. 실제로 한강유역환경청은 팔당 유역 지자체와 협조를 통해 상수원 오염 행위가 적발될 경우 처벌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흰꼬리수리
"철새 먹이 주기는 생태적 필요성이 있을 때 체계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말합니다. 야생의 행동방식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거죠. 개인이 임의로 먹이를 주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으로 새들의 먹거리와 행동양식이 변화하면 생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 팔당에서 처음 참수리가 발견된 뒤 수리류 사냥터에 돼지고기나 메기가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고성능 촬영장비를 갖춘 사진가들이 늘면서 일어난 일이지요. 지난해에는 수리부엉이 둥지를 훼손하고 야간에 조명을 터뜨린 사람들이 물의를 빚기도 했습니다. 한 사진전에서는 새들을 접착제로 붙여놓고 촬영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적도 있습니다. 촬영에 앞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해 보입니다.

자료 제공: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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