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동호인이 되려면?…올해부터 달라진다

입력 2017.02.23 (14:48) 수정 2017.02.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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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상 최초의 스포츠로 분류되는 것이 발로 공을 차는 축구다. 축구가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다. 중국, 영국 또는 고대 그리스가 4~5천 년 전부터 축구를 했다는 주장이 있을 만큼 축구의 기원은 그 설이 무성하다.

다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기원전 3세기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츄슈'를 고대 축구의 기원으로 인정했다 (중국 외교력의 힘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공통으로 드러난 사실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미 고대부터 축구를 군사훈련용으로 고안해 발전시켰으며 이를 널리 대중화시켰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4~5세기경 고대 그리스 벽화기원전 4~5세기경 고대 그리스 벽화

전통복장을 한 선수들이 ‘츄슈’를 하는 부조상 [2007년 FIFA 본부]전통복장을 한 선수들이 ‘츄슈’를 하는 부조상 [2007년 FIFA 본부]

일제도 두려워했던 조선 축구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류의 가장 친근한 놀이가 된 축구는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이 가장 즐기고 좋아하는 스포츠이자 거대 산업으로도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해오는 바로는 우리나라에 처음 근대 축구 경기를 전한 이들은 1882년 제물포항에 내린 영국 군인들이라고 한다.

한반도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아래에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부터다. 1921년 제1회 전 조선 축구대회가 개최됐고 이어 1928년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조직인 '조선심판협회'가 창립됐다. 5년 뒤인 1933년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생겨 공식적인 기틀을 마렸했다.

서울 대 평양 축구팀 대결 [1933년, 동대문 운동장]서울 대 평양 축구팀 대결 [1933년, 동대문 운동장]

조선 축구는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일본을 능가했다. 1926년 배제 중학이 일본에서 열린 일본중학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일본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듬해 조선축구단도 극동올림픽 우승팀인 ‘일본 축구의 자랑’ 와세다 대학과의 경기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는 등 조선 축구는 늘 일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건 역시 축구였다.

당연히 일본으로서는 조선 축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급기야 일본은 1934년 '축구 통제 안' 이란 법령까지 만들었다. 조선 땅에서 축구 경기를 열려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조선 축구 말살을 의미했다. 1938년 결국 일제는 '조선축구협회'마저 강제로 해산시켰을 정도였다.

해방과 함께 강제 해산됐던 조선축구협회는 10년만인 1948년 대한축구협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같은 해 국제축구연맹 FIFA에 가입했고 1948년 런던 올림픽에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세계무대에 처음 등장했다.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하는 영광도 안게 됐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통합 관리…올해부터 달라지는 동호인 자격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 등 이제는 아시아 최강 가운데 하나가 된 한국 축구의 열기는 생활체육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축구는 지난해까지 대한체육회에 공식 등록된 동호인 숫자만 해도 6만 명을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1위였다.


그런데 생활체육 동호인들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올해부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다. 지난해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는 안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달라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축구의 경우 대한축구협회가 엘리트 선수들뿐 아니라 생활체육 동호인들까지 함께 통합 관리를 맡게 된다.

동호인들은 각 시·군·구 축구협회를 통해 다시 등록해야 한다. 등록을 마쳐야 대한축구협회와 각 지역에서 주최하는 생활축구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등록은 연중 가능하다.

대한축구협회….'부정선수 적발한다'

엘리트 선수들과 함께 통합 관리를 받는 만큼 동호인들의 기준도 엄격해진다. 올해부터는 한 명이 한 클럽에서만 뛸 수 있도록 해 예년처럼 한 명이 여러 팀에서 뛰던 일이 불가능해졌다. 또 대한축구협회 선수 데이터와 연동해 엘리트팀 출신 선수가 경력을 속이고 생활축구 대회에 출전하는 등의 부정선수 시비를 막기로 했다.

대한축구협회 측은 올 2월에만 벌써 800개 팀, 1만 6천 명 이상이 등록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전국대회 일정은 다음 달 확정 발표되며 생활축구 개막 대회인 4월 대한축구협회장 대회를 비롯해 각 시도 대회부터 새 등록기준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협회는 등록 과정을 더 간소화하기 위해 2018년까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할 계획이다.

축구만큼이나 동호인 대회가 많은 배드민턴 등 다른 생활체육 종목들도 달라진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통폐합이 더 긍정적인 '우리 동네 예체능' 효과를 가져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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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동호인이 되려면?…올해부터 달라진다
    • 입력 2017-02-23 14:48:45
    • 수정2017-02-23 15:03:03
    취재K
인류의 역사상 최초의 스포츠로 분류되는 것이 발로 공을 차는 축구다. 축구가 언제 어디서 시작됐는지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다. 중국, 영국 또는 고대 그리스가 4~5천 년 전부터 축구를 했다는 주장이 있을 만큼 축구의 기원은 그 설이 무성하다.

다만 국제축구연맹(FIFA)은 기원전 3세기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츄슈'를 고대 축구의 기원으로 인정했다 (중국 외교력의 힘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공통으로 드러난 사실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미 고대부터 축구를 군사훈련용으로 고안해 발전시켰으며 이를 널리 대중화시켰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4~5세기경 고대 그리스 벽화
전통복장을 한 선수들이 ‘츄슈’를 하는 부조상 [2007년 FIFA 본부]
일제도 두려워했던 조선 축구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류의 가장 친근한 놀이가 된 축구는 오늘날 지구촌 사람들이 가장 즐기고 좋아하는 스포츠이자 거대 산업으로도 발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해오는 바로는 우리나라에 처음 근대 축구 경기를 전한 이들은 1882년 제물포항에 내린 영국 군인들이라고 한다.

한반도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규칙 아래에 경기가 열리기 시작한 때는 1920년대부터다. 1921년 제1회 전 조선 축구대회가 개최됐고 이어 1928년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조직인 '조선심판협회'가 창립됐다. 5년 뒤인 1933년에는 '조선축구협회'가 생겨 공식적인 기틀을 마렸했다.

서울 대 평양 축구팀 대결 [1933년, 동대문 운동장]
조선 축구는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일본을 능가했다. 1926년 배제 중학이 일본에서 열린 일본중학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건 일본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이듬해 조선축구단도 극동올림픽 우승팀인 ‘일본 축구의 자랑’ 와세다 대학과의 경기에서 2승 1패를 기록하는 등 조선 축구는 늘 일본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울분을 풀어줄 수 있는 건 역시 축구였다.

당연히 일본으로서는 조선 축구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급기야 일본은 1934년 '축구 통제 안' 이란 법령까지 만들었다. 조선 땅에서 축구 경기를 열려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조선 축구 말살을 의미했다. 1938년 결국 일제는 '조선축구협회'마저 강제로 해산시켰을 정도였다.

해방과 함께 강제 해산됐던 조선축구협회는 10년만인 1948년 대한축구협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같은 해 국제축구연맹 FIFA에 가입했고 1948년 런던 올림픽에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세계무대에 처음 등장했다. 한국 축구는 1954년 스위스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 최초로 진출하는 영광도 안게 됐다.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 통합 관리…올해부터 달라지는 동호인 자격

월드컵 8회 연속 본선 진출 등 이제는 아시아 최강 가운데 하나가 된 한국 축구의 열기는 생활체육에서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축구는 지난해까지 대한체육회에 공식 등록된 동호인 숫자만 해도 6만 명을 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1위였다.


그런데 생활체육 동호인들이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올해부터 새로운 기준이 적용된다. 지난해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이 하나의 단체로 통합하는 안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달라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축구의 경우 대한축구협회가 엘리트 선수들뿐 아니라 생활체육 동호인들까지 함께 통합 관리를 맡게 된다.

동호인들은 각 시·군·구 축구협회를 통해 다시 등록해야 한다. 등록을 마쳐야 대한축구협회와 각 지역에서 주최하는 생활축구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등록은 연중 가능하다.

대한축구협회….'부정선수 적발한다'

엘리트 선수들과 함께 통합 관리를 받는 만큼 동호인들의 기준도 엄격해진다. 올해부터는 한 명이 한 클럽에서만 뛸 수 있도록 해 예년처럼 한 명이 여러 팀에서 뛰던 일이 불가능해졌다. 또 대한축구협회 선수 데이터와 연동해 엘리트팀 출신 선수가 경력을 속이고 생활축구 대회에 출전하는 등의 부정선수 시비를 막기로 했다.

대한축구협회 측은 올 2월에만 벌써 800개 팀, 1만 6천 명 이상이 등록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전국대회 일정은 다음 달 확정 발표되며 생활축구 개막 대회인 4월 대한축구협회장 대회를 비롯해 각 시도 대회부터 새 등록기준이 적용된다고 밝혔다. 협회는 등록 과정을 더 간소화하기 위해 2018년까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할 계획이다.

축구만큼이나 동호인 대회가 많은 배드민턴 등 다른 생활체육 종목들도 달라진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다.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의 통폐합이 더 긍정적인 '우리 동네 예체능' 효과를 가져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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