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대북방송 산 증인…‘김삿갓’ 오승룡

입력 2017.02.25 (08:20) 수정 2017.02.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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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해온 라디오 방송이 올해로 90년을 맞았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우리 라디오 방송 역사의 2/3를 함께 한 살아있는 전설이 계시는데요,

바로 원로 성우 오승룡 선생입니다.

대북 방송의 산 증인이시기도 하죠?

그래선지 탈북민들 중에 이분 목소리 기억하는 분 많다고 들었습니다.

네. 오랫동안 남북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오승룡 선생을 홍은지 리포타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 위치한 시청자 광장.

지난 13일부터 특별한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라디오 역사 9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입니다.

<녹취> “JODK,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1927년 서울 정동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 시절부터 현재의 KBS, 그리고 미래 라디오의 모습까지 각종 라디오 장비와 사진들이 전시돼 있는데요.

TV가 보급되면서 라디오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보이는 라디오’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데요.

오랜 세월만큼이나 저마다 라디오에 얽힌 추억도 많습니다.

은퇴한 개인택시 기사 변용구 할아버지.

한 때 교통 통신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에게 라디오는 오랜 친구였습니다.

라디오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던 목소리가 있습니다.

라디오 90년 역사 중 63년을 함께 해 왔고, 여전히 사랑받는 성우 중 한명인 오승룡 선생.

<인터뷰> 변용구(전직 개인택시 기사) : “좋아했죠. 그때는 거의 제일 많이 나와서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마 그분의 이름 제일 많이, 젊었을 때는 제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의 성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신입사원 시절부터 맡아 온 대북방송입니다.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83세) : "초기에는 KBS에 대공과라고 해가지고 1개 과였어요. 이북의 모순된 점 얘기하고 우리나라 발전사 얘기하고... 휴전을 하더라도 이 심리전은 휴전이 없어요."

10년 전 한국에 온 탈북민 최복화 씨.

20년 전, 북에 있던 그녀를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 준 것도 바로 이런 대북 방송이었습니다.

<인터뷰> 최복화(탈북민) : "주파수를 돌리다보니까 음악이 나왔어요. 그래서 듣기 시작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제가 들어온 곡, 그 노래를 라디오로 제가 한국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북한 청취자들에게도 친근한 목소리!

오승룡 선생은 지금은 KBS 한민족 방송의 라디오 드라마 <바람따라 구름따라>에서 ‘김삿갓’ 역을 맡고 있는데요.

<녹취> “죽은 지도자의 생일잔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건만...주민들의 생존권부터 보장하라!”

<인터뷰> 유환숙('바람따라 구름따라' 작가) : “완전 (극의) 기둥이시죠. 북한의 지도자들이 잘못하는 것은 호통도 쳐 주시고, 야단도 쳐 주시고 동시에 한국 사람들한테는 ‘북한 동포들은 우리 함께 이해하고 이렇게 받아줘야 된다’라는 어떤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 주시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역사 속의 풍류시인 김삿갓이 북한주민들의 실상을 전하고 북한 체제의 모순을 고발하는 라디오극 <바람따라 구름따라>.

1964년 <김삿갓 북한방랑기>로 시작해 수차례 이름을 바꿔가며 모두 만 천 회가 넘게 방송된 국내 최장수 라디오프로그램입니다.

<인터뷰> 변용구(전직 개인택시 기사) : “우리 나이 정도 된 사람은 전부 다 그거 안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전부 다 듣던 프로예요. 이북 실정에 대해서도 그 김삿갓 방랑기를 통해가지고, ‘아~ 이렇구나’하는 걸 느꼈고...”

북에서도 열심히 들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인터뷰> 주찬양(탈북민) : “우리가 신처럼 느끼면서 배워온, 세뇌 받는 그 사람들에 대한, 그 생활에 대해서 낱낱이 폭로하는 거니까 저도 신기하고 궁금하더라고요.”

매주 수요일 오전 9시, 삼십여 명의 후배들과 모여 연습을 시작하는 오승룡 선생.

‘김삿갓’이 될 때면, 그도, 후배들도 여든 셋이라는 나이를 잊습니다.

<인터뷰> 신온유(KBS 전속 성우) : “아우라가 대단하셔서 그냥 압도되는 것 같아요. 감정 표현 이런 것들 다 너무 그냥... 할 수 있을까? 저걸 정말 배우고 싶다...”

<녹취> “지도자의 이복형이자 김정일의 장남이 피살당했는데, 쉬쉬한다고 주민들이 모르겠는가...”

뉴스만큼이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김삿갓, 오승룡 선생!

오랜 세월 적나라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대북 방송에 참여하며 두려움을 느낀 적도 있지만, 오늘도 남다른 보람과 사명감으로 연기합니다.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 : “신상옥 최은희 부부... 최은희 씨가 그래요. 날 보더니 ‘나 북한에 있을 때 미스터 오 방송 들었어.’ 아 그러셨어요? (하니까) ‘그거 들으니까 빨리 오고 싶었어.’ 이런 얘기를 최은희 여사가 해 주셔서 아, 방송하는 보람은 이런 데서 느끼는구나, 대북방송 하는 보람...”

방송인으로서의 소명의식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 : “북한에는 문화어라는 게 있고 우리는 표준어가 있습니다만, 문화어하고 표준어하고 아주 차이가 많아요. 이 말의 통일성, 북한 사람들의 그 문화어를 우리말하고 거의 같게 만들어 줘야 되겠다...”

남과 북의 청취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원로 방송인의 사명감과 방송 철학!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데요.

이제는 젊은 후배들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녹음이 끝난 오후.

후배 성우들이 방송국 한 편에 다시 모입니다.

북한 사투리와 북한 내부사정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인터뷰> 김용(KBS 전속 성우) : “보면서 아, 이렇게 이렇게 사는구나, 북한 사람들은... 사실은 많이 생각을 못하고 살잖아요, 저희 나이 대의 사람들은. 그런데 그런 걸 많이 알게 되죠.”

선배들에게 배운 북한 사투리를 다시 후배들에게 가르쳐주는 성우 이규석 씨.

오승룡 선생처럼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방송인의 역할 또한 늘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규석(성우) : “다가올 통일이라든가 (남북)교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남북한 언어 문제와 언어 이질화 문제와 문화적 이질감 그것을 극복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확고히 갖고 있습니다.”

평생을 라디오와 함께 한 라디오의 전설이자 대북방송의 산 증인, 오승룡 선생은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 : “그 전에는 ‘라디오는 나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건 건방진 생각이고, 라디오가 느티나무예요. 그 그늘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방송에 대한 그의 책임감과 대북방송에 대한 사명감은 청취자들에게 오늘도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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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대북방송 산 증인…‘김삿갓’ 오승룡
    • 입력 2017-02-25 08:22:47
    • 수정2017-02-25 08:34:29
    남북의 창
<앵커 멘트>

국민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해온 라디오 방송이 올해로 90년을 맞았다고 하더군요.

네. 그런 우리 라디오 방송 역사의 2/3를 함께 한 살아있는 전설이 계시는데요,

바로 원로 성우 오승룡 선생입니다.

대북 방송의 산 증인이시기도 하죠?

그래선지 탈북민들 중에 이분 목소리 기억하는 분 많다고 들었습니다.

네. 오랫동안 남북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오승룡 선생을 홍은지 리포타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 위치한 시청자 광장.

지난 13일부터 특별한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라디오 역사 9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입니다.

<녹취> “JODK, 여기는 경성방송국입니다.”

1927년 서울 정동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방송국.

‘경성방송국’ 시절부터 현재의 KBS, 그리고 미래 라디오의 모습까지 각종 라디오 장비와 사진들이 전시돼 있는데요.

TV가 보급되면서 라디오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보이는 라디오’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며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는데요.

오랜 세월만큼이나 저마다 라디오에 얽힌 추억도 많습니다.

은퇴한 개인택시 기사 변용구 할아버지.

한 때 교통 통신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던 그에게 라디오는 오랜 친구였습니다.

라디오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일상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는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던 목소리가 있습니다.

라디오 90년 역사 중 63년을 함께 해 왔고, 여전히 사랑받는 성우 중 한명인 오승룡 선생.

<인터뷰> 변용구(전직 개인택시 기사) : “좋아했죠. 그때는 거의 제일 많이 나와서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아마 그분의 이름 제일 많이, 젊었을 때는 제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의 성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신입사원 시절부터 맡아 온 대북방송입니다.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83세) : "초기에는 KBS에 대공과라고 해가지고 1개 과였어요. 이북의 모순된 점 얘기하고 우리나라 발전사 얘기하고... 휴전을 하더라도 이 심리전은 휴전이 없어요."

10년 전 한국에 온 탈북민 최복화 씨.

20년 전, 북에 있던 그녀를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해 준 것도 바로 이런 대북 방송이었습니다.

<인터뷰> 최복화(탈북민) : "주파수를 돌리다보니까 음악이 나왔어요. 그래서 듣기 시작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제가 들어온 곡, 그 노래를 라디오로 제가 한국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북한 청취자들에게도 친근한 목소리!

오승룡 선생은 지금은 KBS 한민족 방송의 라디오 드라마 <바람따라 구름따라>에서 ‘김삿갓’ 역을 맡고 있는데요.

<녹취> “죽은 지도자의 생일잔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건만...주민들의 생존권부터 보장하라!”

<인터뷰> 유환숙('바람따라 구름따라' 작가) : “완전 (극의) 기둥이시죠. 북한의 지도자들이 잘못하는 것은 호통도 쳐 주시고, 야단도 쳐 주시고 동시에 한국 사람들한테는 ‘북한 동포들은 우리 함께 이해하고 이렇게 받아줘야 된다’라는 어떤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해 주시는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역사 속의 풍류시인 김삿갓이 북한주민들의 실상을 전하고 북한 체제의 모순을 고발하는 라디오극 <바람따라 구름따라>.

1964년 <김삿갓 북한방랑기>로 시작해 수차례 이름을 바꿔가며 모두 만 천 회가 넘게 방송된 국내 최장수 라디오프로그램입니다.

<인터뷰> 변용구(전직 개인택시 기사) : “우리 나이 정도 된 사람은 전부 다 그거 안 들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에요. 전부 다 듣던 프로예요. 이북 실정에 대해서도 그 김삿갓 방랑기를 통해가지고, ‘아~ 이렇구나’하는 걸 느꼈고...”

북에서도 열심히 들었던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인터뷰> 주찬양(탈북민) : “우리가 신처럼 느끼면서 배워온, 세뇌 받는 그 사람들에 대한, 그 생활에 대해서 낱낱이 폭로하는 거니까 저도 신기하고 궁금하더라고요.”

매주 수요일 오전 9시, 삼십여 명의 후배들과 모여 연습을 시작하는 오승룡 선생.

‘김삿갓’이 될 때면, 그도, 후배들도 여든 셋이라는 나이를 잊습니다.

<인터뷰> 신온유(KBS 전속 성우) : “아우라가 대단하셔서 그냥 압도되는 것 같아요. 감정 표현 이런 것들 다 너무 그냥... 할 수 있을까? 저걸 정말 배우고 싶다...”

<녹취> “지도자의 이복형이자 김정일의 장남이 피살당했는데, 쉬쉬한다고 주민들이 모르겠는가...”

뉴스만큼이나 생생한 소식을 전하는 김삿갓, 오승룡 선생!

오랜 세월 적나라한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대북 방송에 참여하며 두려움을 느낀 적도 있지만, 오늘도 남다른 보람과 사명감으로 연기합니다.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 : “신상옥 최은희 부부... 최은희 씨가 그래요. 날 보더니 ‘나 북한에 있을 때 미스터 오 방송 들었어.’ 아 그러셨어요? (하니까) ‘그거 들으니까 빨리 오고 싶었어.’ 이런 얘기를 최은희 여사가 해 주셔서 아, 방송하는 보람은 이런 데서 느끼는구나, 대북방송 하는 보람...”

방송인으로서의 소명의식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 : “북한에는 문화어라는 게 있고 우리는 표준어가 있습니다만, 문화어하고 표준어하고 아주 차이가 많아요. 이 말의 통일성, 북한 사람들의 그 문화어를 우리말하고 거의 같게 만들어 줘야 되겠다...”

남과 북의 청취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원로 방송인의 사명감과 방송 철학!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데요.

이제는 젊은 후배들이 존경의 마음을 담아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녹음이 끝난 오후.

후배 성우들이 방송국 한 편에 다시 모입니다.

북한 사투리와 북한 내부사정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기 위해서입니다.

<인터뷰> 김용(KBS 전속 성우) : “보면서 아, 이렇게 이렇게 사는구나, 북한 사람들은... 사실은 많이 생각을 못하고 살잖아요, 저희 나이 대의 사람들은. 그런데 그런 걸 많이 알게 되죠.”

선배들에게 배운 북한 사투리를 다시 후배들에게 가르쳐주는 성우 이규석 씨.

오승룡 선생처럼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방송인의 역할 또한 늘 기억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규석(성우) : “다가올 통일이라든가 (남북)교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남북한 언어 문제와 언어 이질화 문제와 문화적 이질감 그것을 극복하는 데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확고히 갖고 있습니다.”

평생을 라디오와 함께 한 라디오의 전설이자 대북방송의 산 증인, 오승룡 선생은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인터뷰> 오승룡(원로 성우) : “그 전에는 ‘라디오는 나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건 건방진 생각이고, 라디오가 느티나무예요. 그 그늘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방송에 대한 그의 책임감과 대북방송에 대한 사명감은 청취자들에게 오늘도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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