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2+4학제’…자연계 블랙홀 되나?

입력 2017.0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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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생명과학과에 입학한 A양은 요즘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인 PEET 준비에 정신이 없다.

PEET가 올 8월에 있기 때문이다.

약학대학은 지난 2009년부터 기존 4년제에서 학사 편입 형식의 ‘2+4 체제’로 개편됐다.

다른 전공을 2년간 공부한 학생을 대상으로 편입생을 선발해 4년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현 학사 제도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약대에 진학할 수 없다.

약대 진학이 목표였던 A양이 대학입시 때 유사학과인 생명과학과를 택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A양은 입학하자마자 2학년 때인 지난해까지 다른 것보다 학점 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온갖 정보를 입수해 될 수 있으면 학점을 따기 쉬운 과목을 택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선 전공 공부보다는 PEET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약대 편입에는 PEET 성적과 대학 1,2학년 내신 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약대가 의치한(醫齒韓)에 이어 ‘자연계 블랙홀’로 부상했다.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자연과학 계열 대학생의 상당수가 약대 입시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화학 계열이나 생명과학 계열인데 최근 들어서는 공과 계열 학생들도 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들 계열 학과에서는 휴학생과 중도 탈락생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 조사 결과, 수도권 대학의 화학과 자퇴율은 ‘약대 2+4’ 체제 시행 이후 40%를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진 이화여대 화학나노학과 교수는 “이 제도의 가장 큰 병폐는 대학 기초과학 학과들의 교육과정을 약대 편입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학생들이 도중에 약대로 입학하기 위해 자퇴해 버리는 경우 기초과학분야는 텅 비게 돼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약대 입시 경쟁률은 평균 10:1이 될 정도로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PEET에 대비한 사교육으로 연간 수천억 원의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해마다 누적되는 재수, 삼수생들로 인해 ‘약대 입시 낭인’이 생겨날 정도이다.

약대의 입장에서도 입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져 졸업한 뒤 대학원 진학 등 연구 영역보다는 직업 약사의 진로를 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연구 경쟁력은 날로 저하되고 있다.

한균희 연세대 약학대학 학장은 “약대 입학생의 고령화에 따른 약국 쏠림 현상과 전문 연구인력의 감소, 자연대 우수학생의 약대로의 유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약대 입학제도가 하루속히 바로 잡혀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기초과학 육성과 약대 학제 발전방향 토론회’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기초과학 육성과 약대 학제 발전방향 토론회’

전국 35개 약학대학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약학교육협의회’도 최근 결의문을 통해 현행 2+4학제를‘통합 6년제’로 전환해줄 것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고등학교 졸업자 등을 대상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해 6년간 교육시키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박성수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장은 “현행 약대 학제는 시행 초기 단계라면서 당장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만 약학계 등과 꾸준히 논의해 개선책을 찾아 보겠다”고 말했다.

약대 학제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약학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만큼 시급히 공론화돼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약대 학제는 단지 약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기초과학 발전과 밀접히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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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대 2+4학제’…자연계 블랙홀 되나?
    • 입력 2017-02-26 09:00:17
    취재K
재작년 생명과학과에 입학한 A양은 요즘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인 PEET 준비에 정신이 없다.

PEET가 올 8월에 있기 때문이다.

약학대학은 지난 2009년부터 기존 4년제에서 학사 편입 형식의 ‘2+4 체제’로 개편됐다.

다른 전공을 2년간 공부한 학생을 대상으로 편입생을 선발해 4년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현 학사 제도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약대에 진학할 수 없다.

약대 진학이 목표였던 A양이 대학입시 때 유사학과인 생명과학과를 택했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A양은 입학하자마자 2학년 때인 지난해까지 다른 것보다 학점 관리에 온 힘을 쏟았다.

온갖 정보를 입수해 될 수 있으면 학점을 따기 쉬운 과목을 택했다.

그리고 올해 들어선 전공 공부보다는 PEET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약대 편입에는 PEET 성적과 대학 1,2학년 내신 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약대가 의치한(醫齒韓)에 이어 ‘자연계 블랙홀’로 부상했다.

의학전문대학원과 치의학전문대학원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자연과학 계열 대학생의 상당수가 약대 입시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화학 계열이나 생명과학 계열인데 최근 들어서는 공과 계열 학생들도 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이들 계열 학과에서는 휴학생과 중도 탈락생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 조사 결과, 수도권 대학의 화학과 자퇴율은 ‘약대 2+4’ 체제 시행 이후 40%를 오르내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성진 이화여대 화학나노학과 교수는 “이 제도의 가장 큰 병폐는 대학 기초과학 학과들의 교육과정을 약대 편입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학생들이 도중에 약대로 입학하기 위해 자퇴해 버리는 경우 기초과학분야는 텅 비게 돼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약대 입시 경쟁률은 평균 10:1이 될 정도로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PEET에 대비한 사교육으로 연간 수천억 원의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해마다 누적되는 재수, 삼수생들로 인해 ‘약대 입시 낭인’이 생겨날 정도이다.

약대의 입장에서도 입학생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져 졸업한 뒤 대학원 진학 등 연구 영역보다는 직업 약사의 진로를 택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연구 경쟁력은 날로 저하되고 있다.

한균희 연세대 약학대학 학장은 “약대 입학생의 고령화에 따른 약국 쏠림 현상과 전문 연구인력의 감소, 자연대 우수학생의 약대로의 유출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약대 입학제도가 하루속히 바로 잡혀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기초과학 육성과 약대 학제 발전방향 토론회’
전국 35개 약학대학 학장들의 모임인 ‘한국약학교육협의회’도 최근 결의문을 통해 현행 2+4학제를‘통합 6년제’로 전환해줄 것을 교육부에 촉구했다.

고등학교 졸업자 등을 대상으로 대학 신입생을 선발해 6년간 교육시키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박성수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장은 “현행 약대 학제는 시행 초기 단계라면서 당장 결론을 내기는 어렵지만 약학계 등과 꾸준히 논의해 개선책을 찾아 보겠다”고 말했다.

약대 학제 문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약학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만큼 시급히 공론화돼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약대 학제는 단지 약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기초과학 발전과 밀접히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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