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무라카미 하루키…또 신간 열풍

입력 2017.02.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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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일본의 서점가에는 신간 소설을 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부 서점이 새벽 0시부터 발매에 들어가겠다고 밝히자, 열성 독자들은 전날 저녁부터 서점으로 모여들었다.

원래 한국보다 월등히 책을 많이 읽는 일본이지만, 자정부터 책을 사려고 줄 서는 것은 극성스러우면서도 부러운 풍경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 몇 년에 한 번씩 작품을 낼 때마다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가다.

14번째 장편소설로 돌아오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은 14번째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이다. 제1부 '출현하는 이데아', 제2부 '변하는 메타포' 등 두 권으로 구성됐다.

장편소설로는 '색채가 없는 타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발표한 지 4년, 여러 권에 걸친 본격 장편소설로서는 '1Q84' 이후 7년 만이다.

발행 부수는 1권 70만 부, 2권 60반 부 등 모두 130만 부이다. 처음엔 각 50만 부씩 계획했다가 다시 늘려 잡았다.

대목 맞은 서점...기념행사도

서점에서 벌이는 하루키 신간 이벤트서점에서 벌이는 하루키 신간 이벤트

도쿄의 일부 대형서점에서는 23일 저녁부터 안내 간판을 설치하고, 진열대에 책을 쌓아놓고, 자정이 되자 기념행사와 함께 책 판매에 돌입했다. 날이 밝은 뒤 느긋하게 와도 책 수량은 충분할 터인데, 열성 팬들은 한시라도 빨리 책을 사려고 수십 명 씩 줄을 섰다.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아든 팬들은 '오늘 밤새 읽을 생각'이라며 즐거워했다. 서점 측은 매장 안에서 밤새 책을 읽고 싶은 시민들을 위해 별도의 독서 코너를 마련했다. 담요와 따뜻한 음료까지 준비했다.

새로운 감수성으로 독서시장을 평정하다

책을 많이 읽는 일본에서도 이처럼 신도롬을 일으키는 작가는 소수다. 이른바 '불티나게 팔리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루키는 1979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1973년의 핀볼', '양을 둘러싼 모험' 등을 발표했다. 주로 도시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간결한 문체로 그려냈다. 전후 세대로서, 기존 문단과는 전혀 다른 감수성을 지닌,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탄생이었다.

1987년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은 400만 부가 팔리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한국어 번역판으로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4년 펴낸 8번째 장편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200만 부가 팔렸다.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1995년 발생한 신흥종교집단 '옴 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사건 피해자 6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논픽션 '언더 그라운드'를 펴내기도 했다.

2009년 등단 30주년에 발표한 3권짜리 장편소설 '1Q84'는 380만 부 이상 팔렸다. 사회 문제를 정면에서 다뤄 화제를 모았다.


'1Q84' 1권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5권 중 하나이다.

2013년 '색채가 없는 타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일주일 새 100만 부가 팔렸다.

일본 문학의 자랑...노벨상을 바라보다

하루키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등 5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다. 단순히 번역된 것이 아니라, 널리 읽히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0년 전 독일 지방의 소도시를 취재차 방문했을 때, 서점의 문학 코너에서 그의 소설 작품이 여럿 진열돼 팔리는 것을 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루키는 단순히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프란츠 카프카 상' 등 해외에서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여러 해 전부터 노벨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또 나온다면 하루키가 가장 유력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발표 현장에서 일본 취재팀과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은 약간 들떠 있었던 것 같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조만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로서 능력. 지식인으로서 양심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 의식, 그리고 활발한 번역 작업과 강력한 인지도까지, 노벨상 유력 후보로서의 기본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노벨상 수상자의 중요 덕목으로 꼽히는 품성, 즉 '양심, 인권, 평화에 대한 감수성'역시 갖추고 있다.

2015년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타국을 침략했다는 개요는 사실'이라며, '제대로 사죄하는 것이 중요'다고 지적했다. 또 '상대국이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에 유리한 맹목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양심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놀라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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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무라카미 하루키…또 신간 열풍
    • 입력 2017-02-27 11:37:15
    특파원 리포트
지난 2월 24일 일본의 서점가에는 신간 소설을 사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일부 서점이 새벽 0시부터 발매에 들어가겠다고 밝히자, 열성 독자들은 전날 저녁부터 서점으로 모여들었다.

원래 한국보다 월등히 책을 많이 읽는 일본이지만, 자정부터 책을 사려고 줄 서는 것은 극성스러우면서도 부러운 풍경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 몇 년에 한 번씩 작품을 낼 때마다 신드롬을 일으키는 작가다.

14번째 장편소설로 돌아오다


이번에 발표한 작품은 14번째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이다. 제1부 '출현하는 이데아', 제2부 '변하는 메타포' 등 두 권으로 구성됐다.

장편소설로는 '색채가 없는 타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발표한 지 4년, 여러 권에 걸친 본격 장편소설로서는 '1Q84' 이후 7년 만이다.

발행 부수는 1권 70만 부, 2권 60반 부 등 모두 130만 부이다. 처음엔 각 50만 부씩 계획했다가 다시 늘려 잡았다.

대목 맞은 서점...기념행사도

서점에서 벌이는 하루키 신간 이벤트
도쿄의 일부 대형서점에서는 23일 저녁부터 안내 간판을 설치하고, 진열대에 책을 쌓아놓고, 자정이 되자 기념행사와 함께 책 판매에 돌입했다. 날이 밝은 뒤 느긋하게 와도 책 수량은 충분할 터인데, 열성 팬들은 한시라도 빨리 책을 사려고 수십 명 씩 줄을 섰다.


'따끈따끈한' 신간을 받아든 팬들은 '오늘 밤새 읽을 생각'이라며 즐거워했다. 서점 측은 매장 안에서 밤새 책을 읽고 싶은 시민들을 위해 별도의 독서 코너를 마련했다. 담요와 따뜻한 음료까지 준비했다.

새로운 감수성으로 독서시장을 평정하다

책을 많이 읽는 일본에서도 이처럼 신도롬을 일으키는 작가는 소수다. 이른바 '불티나게 팔리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등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루키는 1979년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문예지의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1973년의 핀볼', '양을 둘러싼 모험' 등을 발표했다. 주로 도시 젊은이들이 느끼는 상실감을 간결한 문체로 그려냈다. 전후 세대로서, 기존 문단과는 전혀 다른 감수성을 지닌,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탄생이었다.

1987년 발표한 '노르웨이의 숲'은 400만 부가 팔리는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작품으로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한국어 번역판으로는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다.

1994년 펴낸 8번째 장편 '태엽 감는 새 연대기'는 200만 부가 팔렸다.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1995년 발생한 신흥종교집단 '옴 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사건 피해자 6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한 뒤, 논픽션 '언더 그라운드'를 펴내기도 했다.

2009년 등단 30주년에 발표한 3권짜리 장편소설 '1Q84'는 380만 부 이상 팔렸다. 사회 문제를 정면에서 다뤄 화제를 모았다.


'1Q84' 1권은 2006년부터 2015년까지 교보문고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5권 중 하나이다.

2013년 '색채가 없는 타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일주일 새 100만 부가 팔렸다.

일본 문학의 자랑...노벨상을 바라보다

하루키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중국어 등 5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다. 단순히 번역된 것이 아니라, 널리 읽히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10년 전 독일 지방의 소도시를 취재차 방문했을 때, 서점의 문학 코너에서 그의 소설 작품이 여럿 진열돼 팔리는 것을 보고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루키는 단순히 대중적인 작가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프란츠 카프카 상' 등 해외에서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여러 해 전부터 노벨문학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일본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또 나온다면 하루키가 가장 유력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발표 현장에서 일본 취재팀과 마주친 적이 있다. 그들은 약간 들떠 있었던 것 같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조만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는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로서 능력. 지식인으로서 양심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주제 의식, 그리고 활발한 번역 작업과 강력한 인지도까지, 노벨상 유력 후보로서의 기본 조건은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노벨상 수상자의 중요 덕목으로 꼽히는 품성, 즉 '양심, 인권, 평화에 대한 감수성'역시 갖추고 있다.

2015년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타국을 침략했다는 개요는 사실'이라며, '제대로 사죄하는 것이 중요'다고 지적했다. 또 '상대국이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중의 인기를 얻기에 유리한 맹목적 국수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양심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놀라운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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